히스토리아 - 주경철의 역사 에세이
주경철 지음 / 산처럼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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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어렵지 않게 풀어낸 작가의 지식이 부럽다.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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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불가피한 것으로 체념하고 감내하던 폭정도 일단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즉시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억압으로 여겨지게 된다. 왜냐하면 일부 폐단이 시정될 경우 아직 시정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폐단은 더욱 참기 힘든 것으로 돋보이게 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사람들은 고통을 덜 받는 만큼 감수성이 더욱 예민해지는 것이다. 봉건제는 절정기에 있을 때 오히려 해체기의 경우보다 프랑스인들에게 증오감을 덜 불러일으켰다. 마찬가지로 루이 16세의 사소한 권력 남용이 루이 14세의 혹독한 전제정치보다 더 참기 힘든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보마르셰의 짦은 투옥 기간이 드라고나드 사건 때보다 훨씬 엄청난 동요를 파리에서 불러일으키지 않았던가 - 구체제와 프랑스 혁명

 

알렉산드로가 인도에서 만난한 철학자는 인간이 얼마 동안 사는 것이 좋으냐는 물음에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할 때까지"라고 답했다.

 

대부분의 포유루는 발정기가 따로 있어서 그때만 잠깐 성행위를 한다. 그렇지만 인간은 너무나도 다양한 방식으로 비생식적인 성행위를 한다. 인간 외에 생애 전반에 걸쳐 흥분하고 활동하는 또 다른 동물로는 돌고래 정도가 있을 뿐이다.

인간이 그토록 성행위를 많이 하는 이유는 아마도 오랜 기간 무력한 어린 시절을 보내는 자식들을 공동으로 키워야 하는 부부가 긴밀한 유대감을 가져야 할 필요 때문이 아닐까 추론한다.

 

스파르타식 교육 : 아이들은 일곱 살까지 부모 곁에서 지내지만 이후 <아고게>라 불리는 단체에 들어가서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공동생활을 한다.

 

피해자가 입은 피해와 같은 정도의 손해를 가해자에게 가하는 보복을 법칙을 탈리오 법칙 (lex talionis)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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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 - 30년간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15년간 파킨슨병을 앓으며 비로소 깨달은 인생의 지혜 42
김혜남 지음 / 갤리온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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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쓸데 없는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은 아닐까..

 

나도 이제 재미 있게 살아야 할텐데.. 생각은 그렇게 하는 데,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찡그린 얼굴로 회사를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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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아픔을 견디다 보면 아품이 조금은 수그러드는 때가 반드시 온다. 고통이 24시간 내내 똑같은 강도로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고통과 고통 사이에 조금은 덜 아픈 시간이 분명 있다.

 

쉽게 절망하지 않는다. 내일 조금은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로마의 사상가 키케로가 말하지 않았던가.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고..

 

어쩌면 세상에서 진실로 두려운 것은 눈이 있어도 아름다운 것을 볼 줄 모르고, 귀가 있어도 음악을 듣지 못하고, 마음이 있어도 참된 것을 이해하고 감동하지 못하며 가슴의 열정을 불사르지 못하는 사람이 아닐까.. -- 구로야니기 테츠코 <창가의 토토>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내 인생을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냐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통제 소재를 내 안으로 가져올 것, 저 사람들이 원하는 것에 내가 맞춰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내가 저 일을 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 그러면 하기 싫은 일을 할 때조차 시키니까 어쩔수 없이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는 거다. 내가 빨리 해 주고 넘어가 버리는 거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즉 내가 그 일의 주체가 되고 주인이 되는 것이다.

 

부부 관계의 가장 큰 비극은 서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사람과의 관계에 한계를 미리 설정해 두는 편이다. 관계를 맺게 되면 그 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함부로 넘어서는 안 될 적정선을 만들고 지키는 것이다. 이를테면 나는 친구 사이에 돈거래를 하지 않는다. 친구가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받지 않을 생각으로 줄 수 있는 만큼을 줘 버린다.

 

정신 치료에서 자주 쓰는 말이 있다. No commet is better than any comment

아무 말 안고 가만히 들어 주는 것이 그 어떤 말을 해 주는 것보다 더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가고 싶을 때 가지 않으면 가려고 할 때는 갈 수가 없단다. 그리고 너의 꿈을 따르지 않는다면 넌 식물이나 다름없어.

 

나는 왜 말로는 쉬어야 한다면서도 몸을 혹사시켰던 걸까? 돌이켜 보면 나는 그 어떤 일이든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직장에서든 집에서든 내가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없으면 일이 잘 안돌아가거나 잘못될 거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도맡아 하곤 했다.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것을 여기저기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는 증거라고 생각해 좋아하기까지 했다.

 

독립과 고립의 차이 : 독립은 스스로 자신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런데 사실 독립은 의존해야 할 때 의존할 수 있는 능력을 전제로 한다.

 

혼자만의 경험과 느낌은 내 기억 속에서 색이 바래져 가기 쉽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는 기억은 추억이 되고 역사가 된다. 그와 나 사이의 공간에 저장되어 의미를 부여받고 확장될 수 있는 것이다.

 

충고는 기본적으로 <너는 틀렸다>는 뉘앙스를 품고 있다. 사람은 누구가 자기가 틀렸더라도 막상 그것을 지적하면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할뿐더러 청개구리처럼 엇나가고 싶어 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럼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정현종 <방문객>

 

가족은 눈물로 걷는 인생의 길목에서 가장 오래 가장 멀리까지 배웅해 주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꼭 가족이 아니어도 언제든 나를 믿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는 불안하고 두려운 인생도 묵묵히 걸어갈 힘을 얻는다.

 

안타깝게도 회사에서 우리는 마음에 드는 사람하고만 일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회사의 존재 이유는 수익 창출이지 구성원들 사이의 친목은 아니기 때문이지. 또 살다 보면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 가치관이나 성향이 다른 사람,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너희들도 이미 그런 사람을 만났거나 앞으로 만나게 되겠지. 따라서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선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도 잘 지내고, 싫어하는 사람과도 같이 일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너희들도 내 나이기 되어 보면 알겠지만 누구보다 높은 직위에 있던 사람도, 남부럽지 않을 만큼 돈을 많이 번 사람도 언젠가 하던 일을 그만두고 은퇴해야 할 시점이 온다. 그때 그 사람의 품위를 지켜 주는 것이 바로 자기실현을 위한 노력 여부란다. 자아를 가꾸지보다 돈과 직위로 자신을 증명하려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내려오자마자 존재 가치를 상실하고 깊은 회한에 빠지기 때문이다.

 

결혼 생활은 힘든 게 당연하다. 연애는 먼 곳에서 산을 구경하는 거라면, 결혼은 그 산을 직접 오르는 거다. 멀리서 봤을 땐 몰랐던 상대의 장점과 단점을 속속들이 경험하는 게 결혼 생활이라는 말이다. 게다가 현실의 문제까지 겹쳐지면 더욱 골치 아플 수 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론 참고 때론 싸우며 현명하게 그 산을 올랐을 때 누릴 수 있는 편안함은 남다르다.

 

좋은 벗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통된 많은 추억, 함께 겪은 그 많은 괴로운 시간, 그 많은 어긋남, 화해, 마음의 격동.. 우정은 이런 것들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 생텍쥐페리

 

나이 든다는 것은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의 말처럼 <젊은이들의 세상에 이민 온 이방인>이 되어 버리는 쓸쓸한 일이다. 그럼에도 나보고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노다. 다시 그시절의 예민함이나 방황, 열정이 가져다주는 고통을 경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난 지금이 좋다. 세월을 거치며 단단해진 나 자신이 좋고, 세상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와 웬만한 일들은 수용할 수 있는 여유로움을 얻게 되어 편안하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 내 삶에 진정으로 중요한 게 무엇인지 볼 수 있는 눈 또한 세월이 내게 준 소중한 선물이다.

 

나이 든다는 것은 상실의 연속이다. 건강을 잃고, 직업을 잃고, 경제적인 능력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는 과정이다. 여러가지 상실 중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아마도 자존감의 상실일 것이다. 사회에서 주변으로 밀려나고, 더 이상 맡아야 할 역할이 없어진다는 것은 노인들에게 큰 상처를 준다. 그런데 이러한 상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다시금 자신의 위치를 되찾고자 욕심을 부리게 된다. 조그만 일에도 무시당하는 것 같아 버럭 화를 내고, 버릇없다며 아랫사람들을 야단치기 일쑤고, 세상이 노인을 우습게 알고 공경할 줄 모른다고 불평이 많아진다. 그런데 스스로를 젊은 사람들이 가까이 하기에 더 어려운 사람으로 만들고 만다.

 

고대 이집트 인은 죽음에 대해 멋진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거 아나? 영혼이 하늘에 가면 말이야. 신이 두 가지 질문을 했다네. 대답에 따라서 천국에 갈지 말지가 정해졌다고 하지. 인생의 기쁨을 찾았는가? 자네 인생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했는가? 대

답해 보게..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빨리 가려면 직선으로 가라

깊이 가려면 굽이돌아 가라

외나무가 되려거든 혼자 서라

푸른 숲이 되려거든 함께 서라

 

중국 현자가 물었다 학문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이렇게 답했다. "사람을 아는 일이다."

또다시 질문했다. 선은 무엇입니까? 현자가 말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걱정하는 동안 우리는 그날 누릴 수 있는 진짜 재미를 놓쳐 버리고 만다. 우리가 하는 걱정의 40퍼센트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고, 30퍼센트는 이미 일어난 일들에 관한 것이면, 22퍼센트는 아주 사소한 걱정들이고, 4퍼센트는 우리가 전혀 손쓸 수 없는 일들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나머지 4퍼센트만이 우리가 정말로 걱정해야 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데없는 96퍼센트의 걱정과 불평불만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느라 정작 오늘을 즐겁게 보내지 못하고 만다. 그에 대해 인도의 명상가 오쇼 라즈니쉬는 이렇게 말한다.

 

<삶은 경험이지 이론이 아니다. 삶에는 해석이 필요없다. 삶은 살아야 하고 경험해야 하고 누려야 하는 것이다. 매 순간 삶이 그대의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그대는 머리로 궁리하고 있다. 그대는 삶에게 말한다. 기다려라 내가 문을 열어 주겠다. 그러나 먼저 결정 내릴 시간을 달라. 삶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평생토록 삶이 그냥 왔다가 간다. 그대는 살아 있지도 않고 죽어 있지도 않은 채 다만 고달프게 질질 끌려 갈 뿐이다. 그러니 이제 그만 생각만으로 지쳐 버리는 삶에서 벗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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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톨로지 (반양장) - 창조는 편집이다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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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는 편집이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뜬금없는 창의적 인간이 나도 조금은 될 수 있다는 것에 희망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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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적 지각의 반대편에는 무주의 맹시라는 현상이 있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에만 집중하느라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게 되는 현상을 뜻한다.

 

지식-정보-자극, 에디톨로지는 이 세 가지 개념에 대한 새로운 정의에서 출발한다. 먼저 지식은 정보와 정보의 관계다. 새로운 지식이란 정보와 정보의 관계가 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창조적 사고는 이 같은 일상의 당연한 경험들에 대한 의심에서 시작된다. 이를 가리켜 러시아 형식주의의 대표적 이론가 시클롭스키는 낯설게 하기라고 정의한다. 인간의 가장 창조적 작업인 예술의 목적은 일상의 반복과 익숙함을 낯설게 해 새로운 느낌을 느끼게 만드는 데 있다.

 

인간의 의식과 행동은 도구에 의해 매개된다. 숟가락을 들면 뜨게 되어 있다. 젓가락을 손에 쥐면 집게 되어 있다. 포크를 잡으면 찌르게 되어 있고, 나이프를 들면 자르게 되어 있다. 평생토록 하루에 세번씩 뜨고, 잡는 행위를 반복하는 사람의 의식과 찌르고 자르는 행위를 반복하는 사람의 의식은 질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 서양인이 동양인에 비해 훨씬 공격적인 이유다.

 

자연과학의 기초는 실험이다. 실험의 결과가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여지려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누가 실험해도 같은 결론에 이르러야 한다는 객관성, 반복해도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신뢰성, 측정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측정했는가의 타당성, 그리고 그 결과를 일반화할 수 있는가의 표준화 및 비교 가능성이다.

 

창문은 3차원 세상을 2차원으로 재편집하는, 회화와 동일한 기능을 한다. 2차원이지만 3차원의 입체적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해야 한다.

 

좌표가 잡히지 않는 공간은 공포다. 도무지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디로 흐르느지 알 수 없는 시간은 더 큰 공포다. 공간은 발이라도 붙어 있지만, 시간은 그저 붕 떠 있다. 그래서 존재의 본질은 불안이다.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이다. 하이데거의 세계 - 내 - 존재 란 사간과 공간에 아무 대책 없이 내던져짐을 의미한다. 내던져짐을 한자로 표현하면 피투성(被投性)이다. 아무 곳도 아니고, 아무 곳에도 없다라고 하는 불안의 존재는 피투성이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 전혀 가늠할 수 없는 이 불안을 견디지 못해 인간은 여기와 지금이라고 하는 존재의 확인을 위한 좌표를 정하기 시작한다.

시간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시간을 분절화한다. 시간을 숫자로, 마치 셀 수 있는 물체처럼 만든 것이다.

반면 공간에 대한 공포는 시간에 비해 훨씬 구체적이고 감각적이다. 어느 순간부터 인류는 공간에 대한 공포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재현이다. 재현의 대부분은 3차원 공간을 2차원의 평면으로 환원시키는 방식으로 일어난다. 무한한 공간을 통제 가능한 유한한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다 .땅의 지도를 갖게 되면서 인간은 무한한 공간의 공포에서 마침내 해방된다.

 

동물이 자기 영역을 지키려는 것처럼, 인간도 자신의 사적 공간이 침해를 받았다고 느끼면 평소와는 다른 반응을 보인다. 지극히 동물적인 반응이다. 밀집된 공간에서 자신의 영역을 더 이상 지킬 수 없을 때, 새끼를 죽이고 더 이상 교미를 하지 않고 서로 잡아먹으려고 하는 것과 같은 동물들의 이상행동을 행동 싱크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싱크란 음식물 쓰레기를 받는 용기처럼 온갖 행동의 쓰레기가 모이는 것을 뜻한다.

 

사회적 경력, 학력을 제외하고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이다. 학력, 경력 없이도 자신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상당히 깊은 자기성찰이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다. 명함을 내보이지 않고 자신을 얼마나 자세하게,그리고 흥미롭게 서술할 수 있는가가 진정한 성공의 기준이다.

 

포스트모더니티의 핵심을 한병철교수는 피로사회라고 규정한다. 근대 후기의 성과 사회는 각 개인을 끊임없는 자기 착취의 나르시스적 장애로 몰아넣는다. 타인에 의한 착취가 아니라 자발적 자기 착취다. 끊임없이 발전해야 한다는 일원론적 발달과 성장에 대한 강박으로 인해 주체는 죽을 때까지 안정된 자아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런 후기 근대적 주체의 미완결적 성격은 자신을 태워버리는 번아웃과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공부는 데이터베이스 관리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아주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지금 하나도 외롭지 않으면서 풍요로운 미래를 꿈꾸는 것은 나쁜 생각이다. 뭔가 새로운 것을 손에 쥐려면, 지금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한다. 지금 손에 있는 것 꽉 쥔 채 새로운 것까지 손에 쥐려니, 맘이 항상 그렇게 불안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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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아프리카 - 정해종의 아프리카 미술기행
정해종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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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아프리카에 대해서 막연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라는 걸..

 

아프리카에는 많은 부족들과 많은 문화가 있다는 것을.. 편견을 버리고 공부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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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복지와 진보는 흑인을 비롯한 비백인들의 땀과 시체 위에 세워진 것이다. - 프란츠 파농

 

세계가 만일 100명이 사는 마을이라면 15명은 비만이고, 12명은 기아에 시달리 고 있다. 세계 인구는 대략 65억명이다. 엄청난 숫자다. 이 엄청난 숫자를 100명으로 감안해서 지구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일본의 사회운동가인 이케다 가요코가 쓴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 3'은 지구에 사는 사람들이 먹고사는 현실을 다루고 있다. 한편 놀랍고, 한편 가슴이 아프다. 세계가 만일 100명이 사는 마을이라면 이들 중 먹고 싶은 것을 골라먹으며 살 수 있는 사람은 16명에 불과하다. 이들 중 41명은 하루 세 끼를 모두 먹지 못 한다. 조금 더 들여다보자. 100명 중 33명의 집에는 냉장고가 없고, 40명은 집 안에 취사시설이 없으며, 16명은 깨끗한 물을 구하지 못한다. 100명 중 37명은 아직도 땔감으로 밥을 해먹고, 100명 중 70명은 이런저런 영 양부족 상태에 있다. 먹고사는 환경은 수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구상에서 평균 수명이 가장 긴 일본의 여성들은 85년을 살지만,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사람들의 수명은 50세 이하다.
물론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고사는 문제에 관한 한 상위 20% 안에 든 다. 늘 불평하면서 삶을 영위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지구상에서 행복한 20%에 든다는 이야기다.
상위 20명이 먹는 고기나 우유, 버터의 양을 10%만 줄이면 영양이 부족한 17명 을 구할 수 있다. 부자나라 사람들이 오래 살기 위해 건강보조식품을 사먹는 돈을 식량이 부족한 나라에 보태주면 11명이 굶지 않을 수 있다. - 세계가 만약 100명의 마을이라면

 

그리스 조각상들이 얼굴이 삐딱하다는 것은 바로 옆에서 벌어지고 인간들의 상황이나 어떤 국면들을 바라봄, 즉 인간들의 세계에 대한 관심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일 것이다. 반면 아프리카의 조각상들이 뚫어지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건, 고단한 현실적 삶의 공간을 넘어 초자연적이고 절대적인 신의 세계에 이르고자 하는 의지와 욕망의 반영이거나, 신 또는 조상의 거룩한 손길이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사찰이나 교회에서 절대적이고 신성한 존재를 마주 대할 때, 옆을 힐끔거리지 않고 항상 정면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성스러움은 항상 정면으로 오는 것이다.

 

쇼나 조각가들은 수백 년 전 그들의 조상이 도구를 내려놓았던 바로 그곳에서 도구를 집어든 것처럼 보인다.

 

아프리카 문화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다. 신과의 관계, 인간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 등을 떠나서는 나는 존재할 수 없다. 이러한 관계를 예술로 승화시킨 아프리카인들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영혼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부시먼들에게 문명은 사회를 통합하고 유지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며,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하지도 못한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최소의 물질이 최대의 행복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나그네에게 괴나리봇짐 말고 또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소유물을 축적하는 순간부터 나그네의 인생은 고달파진다. 짊어지고 가야 할 게 많아지니까. 말하자면 부시먼들은 아주 까마득한 시절부터 사하라 이남을 떠돌아온 아프리카의 나그네 부족이었다. 부시먼들은 야생 열매를 발견하면 씨앗이 될 만큼은 반드시 남겨 놓고, 벌집을 발견하면 꿀을 딸 만큼 큰 것이 아니면 건드리지 않으며, 사냥이나 채집 활동은 그날 먹을 만큼의 양 이상은 절대 들고 귀가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반건조지대의 우물가로 목을 축이러 오는 짐승들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조상 대대로 지켜왔다고 한다. 그들은 이웃이나 다른 부족과 갈등이 있어도 절대로 싸우는 일이 없다. 모든 문제는 할아버지가 그랬고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둥그렇게 둘러앉아 대화를 풀어가는 것이 유일한 해결 방법이다. 따라서 부시먼의 역사에는 내세울 만한 전사도 전리품도 없다. 늘 이동하므로 뛰어난 건축물도 없고, 체계적인 종교가 없으므로 성전도 경전도 있을 리 없다. 심지어는 무덤에도 돌 몇 개가 놓일 뿐, 무덤을 다시 찾아오는 법도 없다. 그들은 다만 자연의 법칙 안에서, 자연과 더불어, 자연의 일부로 가장 간소한 삶을 살아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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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 나를 사랑하게 하는
이무석 지음 / 비전과리더십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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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수 없는 것 가질 수 없는 것에 속상해 하지 말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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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일류 대학에 가야만 성공하는 것이 아니야.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자기 잠재 능력을 발휘하면서 살면 되는 거야.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들이야.

 

자존감이란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다. 사람들은 두 가지 면에서 자신을 평가한다.

1. 자기 가치감 :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다. 나는 남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이고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다.라고 평가할 때 일어나는 감정이다.

2. 자신감 :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나는 유능한 사람이다. 내게 맡겨진 일을 잘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자신감이 있어야 사업도 시작할 수 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신감이 없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증에 잘 빠진다. 자신은 무능력하기 때문에 노력해 봤자 별 수 없다는 상태가 무기력의 상태다.

 

우리 아버지는 쓸모없는 연탄재 같은 분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내가 있기 위해서 연탄재 아버지도 필요했구나...

 

내가 정신과 의사로서 환자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현실을 인정하십시오이다. 현실을 부정하고 회피할 때 노이로제도 생기고 정신 질환도 생기기 때문이다. 정신적으로 쇠약한 사람일수록 현실을 부정하거나 회피한다.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가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아 많이 좋아졌구나하고 안도한다.

 

선천적으로 태어난 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조건들이다. 그런데 이런 선천적 조건 때문에 생긴 열등감이 모든 열등감의 60%를 넘는다.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조건 떄문에 열등감을 느낀다면 답답한 일이다.

내가 남들보다 더 잘날 필요는 없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인생을 내 나름대로 살 뿐이다.

 

남이 가진 재산이나 탤런트를 부러워하고 좌절감을 느끼는 것이 열등감이다. 반면에 자기 탤런트를 키우는 것이 효과적인 열등감 극복법이다. 남의 손의 소과는 더 붉게 보인다.는 속담도 있다. 그러나 내 손 안에 있는 사과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키우는 사람은 높은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다.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 는 영국 속담이 있다. 실직에 병까지 얻으면 큰 불행이다. 이럴 때일수록 새벽 산책도 하고 규칙적인 생활로 건강관리를 해야 한다.

 

의처증은 하나의 정신 질환이다. 열등감 때문에 생기는 병이다. 의처증 환자들은 신앙처럼 하나의 믿음을 갖고 있다. 그것은 아무도 나 같은 인간을 사랑할 리 없어라는 믿음이다.

 

대중 앞에 노출되었을 때 왜 공포증을 느끼게 될까? 환자들의 생각을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사람들 앞에서 나는 분명히 실수할 거야. 그러면 나의 못난 행동을 보고 사람들은 손가락질하고 비웃고 무시하겠지. 그 창피함과 모욕감을 나는 견딜 수 없어. 그리고 내게 실망한 사람들은 나를 떠나 버릴 텐데.. 버림 받은 내 몰골은 얼마나 비참하고 볼썽사나울까.. ===> 그러나 이것은 상상일 뿐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강박 성격자는 어떻게 해서라도 주도권을 쥐려고 한다. 주도권을 빼앗겼다고 생각되면 엄청난 분노가 터져 나온다. 자기는 항상 옳고 신중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성취감이 모여서 자신감이 된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서 성취감을 느끼고 성취감을 통해서 자신감이 생긴다. 그러나 자신감이 없는 엄마는 아이에게 놀 시간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아이는 자신감 없는 아이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낮은 자존감은 대물림된다. 아이를 믿어 주고, 자율적으로 놀게 해 주는 엄마가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 주는 좋은 엄마다.

 

자존감 = 성공 (success) / 욕심 (need)

즉 분모인 욕심을 줄이거나 분자인 성공을 증가시키면 자존감은 올라간다.

자존감을 회복하려면 망설이지 말고 무언가 행동으로 옮기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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