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톨로지 (반양장) - 창조는 편집이다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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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창조는 편집이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뜬금없는 창의적 인간이 나도 조금은 될 수 있다는 것에 희망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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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적 지각의 반대편에는 무주의 맹시라는 현상이 있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에만 집중하느라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게 되는 현상을 뜻한다.

 

지식-정보-자극, 에디톨로지는 이 세 가지 개념에 대한 새로운 정의에서 출발한다. 먼저 지식은 정보와 정보의 관계다. 새로운 지식이란 정보와 정보의 관계가 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창조적 사고는 이 같은 일상의 당연한 경험들에 대한 의심에서 시작된다. 이를 가리켜 러시아 형식주의의 대표적 이론가 시클롭스키는 낯설게 하기라고 정의한다. 인간의 가장 창조적 작업인 예술의 목적은 일상의 반복과 익숙함을 낯설게 해 새로운 느낌을 느끼게 만드는 데 있다.

 

인간의 의식과 행동은 도구에 의해 매개된다. 숟가락을 들면 뜨게 되어 있다. 젓가락을 손에 쥐면 집게 되어 있다. 포크를 잡으면 찌르게 되어 있고, 나이프를 들면 자르게 되어 있다. 평생토록 하루에 세번씩 뜨고, 잡는 행위를 반복하는 사람의 의식과 찌르고 자르는 행위를 반복하는 사람의 의식은 질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 서양인이 동양인에 비해 훨씬 공격적인 이유다.

 

자연과학의 기초는 실험이다. 실험의 결과가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여지려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누가 실험해도 같은 결론에 이르러야 한다는 객관성, 반복해도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신뢰성, 측정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측정했는가의 타당성, 그리고 그 결과를 일반화할 수 있는가의 표준화 및 비교 가능성이다.

 

창문은 3차원 세상을 2차원으로 재편집하는, 회화와 동일한 기능을 한다. 2차원이지만 3차원의 입체적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해야 한다.

 

좌표가 잡히지 않는 공간은 공포다. 도무지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디로 흐르느지 알 수 없는 시간은 더 큰 공포다. 공간은 발이라도 붙어 있지만, 시간은 그저 붕 떠 있다. 그래서 존재의 본질은 불안이다.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이다. 하이데거의 세계 - 내 - 존재 란 사간과 공간에 아무 대책 없이 내던져짐을 의미한다. 내던져짐을 한자로 표현하면 피투성(被投性)이다. 아무 곳도 아니고, 아무 곳에도 없다라고 하는 불안의 존재는 피투성이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 전혀 가늠할 수 없는 이 불안을 견디지 못해 인간은 여기와 지금이라고 하는 존재의 확인을 위한 좌표를 정하기 시작한다.

시간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시간을 분절화한다. 시간을 숫자로, 마치 셀 수 있는 물체처럼 만든 것이다.

반면 공간에 대한 공포는 시간에 비해 훨씬 구체적이고 감각적이다. 어느 순간부터 인류는 공간에 대한 공포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재현이다. 재현의 대부분은 3차원 공간을 2차원의 평면으로 환원시키는 방식으로 일어난다. 무한한 공간을 통제 가능한 유한한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다 .땅의 지도를 갖게 되면서 인간은 무한한 공간의 공포에서 마침내 해방된다.

 

동물이 자기 영역을 지키려는 것처럼, 인간도 자신의 사적 공간이 침해를 받았다고 느끼면 평소와는 다른 반응을 보인다. 지극히 동물적인 반응이다. 밀집된 공간에서 자신의 영역을 더 이상 지킬 수 없을 때, 새끼를 죽이고 더 이상 교미를 하지 않고 서로 잡아먹으려고 하는 것과 같은 동물들의 이상행동을 행동 싱크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싱크란 음식물 쓰레기를 받는 용기처럼 온갖 행동의 쓰레기가 모이는 것을 뜻한다.

 

사회적 경력, 학력을 제외하고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이다. 학력, 경력 없이도 자신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상당히 깊은 자기성찰이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다. 명함을 내보이지 않고 자신을 얼마나 자세하게,그리고 흥미롭게 서술할 수 있는가가 진정한 성공의 기준이다.

 

포스트모더니티의 핵심을 한병철교수는 피로사회라고 규정한다. 근대 후기의 성과 사회는 각 개인을 끊임없는 자기 착취의 나르시스적 장애로 몰아넣는다. 타인에 의한 착취가 아니라 자발적 자기 착취다. 끊임없이 발전해야 한다는 일원론적 발달과 성장에 대한 강박으로 인해 주체는 죽을 때까지 안정된 자아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런 후기 근대적 주체의 미완결적 성격은 자신을 태워버리는 번아웃과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공부는 데이터베이스 관리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아주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지금 하나도 외롭지 않으면서 풍요로운 미래를 꿈꾸는 것은 나쁜 생각이다. 뭔가 새로운 것을 손에 쥐려면, 지금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한다. 지금 손에 있는 것 꽉 쥔 채 새로운 것까지 손에 쥐려니, 맘이 항상 그렇게 불안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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