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 이제 무엇으로 희망을 말할 것인가 - '88만원 세대'를 넘어 한국사회의 희망 찾기
우석훈.지승호 지음 / 시대의창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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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C급 경제학자 우석훈 교수와 인터뷰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지승호 작가의 대담이다.
우석훈 교수는 20대에게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을 부여한 경제학자다. 본인은 경제계의 인디밴드라고 하지만, 대중이 너무 많은 관심을 보여 오버밴드화 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한국은 지나치게 자본주의화 되어 가면서 모든 가치의 척도는 돈으로 매겨지고 있다. 자본주의 시대의 부작용은 승자독식의 법칙이다.
흔히 우스개 소리로 돈 놓고 돈 먹기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이 그냥 우스개 소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돈이 많은 사람이 돈을 더 많이 먹고, 돈이 없는 사람은 아예 게임 참여 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소외된 계층은 소외된 본인들의 문제라고 치부해 버리고 만다.
평균법의 함정이라고나 할까? 우리의 리더들은 더 이상 뒤쳐진 사람들을 이끌어 줄 여유가 없다.
앞을 더욱 이끌어서 전체 합을 높여 전체 평균을 높이는 것이 더욱 쉽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2의 제곱은 4지만, 1의 제곱은 1일 뿐이다. 뒤쳐진 1을 힘들게 제곱하는 것 보다는 앞서가는 2를 제곱해서 합계를 늘려가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한국은 계속해서 아파트를 짓고, 숲을 골프장으로 바꾸고, 갯벌을 매 꾸고, 재개발을 추진한다. 그 쪽이 돈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기에 경제, 언론, 정치의 기득권 세력들은 거대한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내부 결속을 공고히 한다.
예전이었으면 은퇴해서 전원 생활을 즐겨야 했을 그들은 아직도 권력의 핵심에 있으며, 현역에서 물러나더라도 자신들의 후계자를 통해서 영향력을 꾸준히 행사할 수 있다.
그래서 소위 돈 없고, 빽 없는 20대는 뭉치지 않으며 각개 격파 당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의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학교 때 선배하며 따랐던 30대들이 끌어 줄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다. 그들도 지금 40대와의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하루하루 필사적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대간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자유 경쟁을 하면 안 된다. 이것은 공정하지 않은 게임이기 때문이다. 마치 튼튼한 갑옷과 투구를 쓰고 창까지 든 전사와 팬티 한 장 걸친 맨몸에 나뭇가지를 든 전사와 싸우라고 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정한 규칙이 필요한 것이고 심판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그런 심판과 규칙은 보이지 않는다.
매번 대선 때마다 변하는 정책들로 인해서 한국은 일관성 있게 발전해 온 것이 없는 것 같다. 공생을 꾀하다가도 어느 순간 엘리트 주의로 변화하고 친환경주의를 택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개발 논리로 변하고 만다. 그래서 우리 같은 서민은 항상 롤러 코스트를 타는 느낌이다. 아마도 우리의 리더들은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을 신봉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라는 말을 더 신봉한다.
예술은 돈 앞에서 처참하게 죽었다. 우리는 책을 읽지 않으며, 순수 문학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이며, 디지털 시대에 역행하는 아날로그적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직설적이고 리얼타임으로 움직이는 버라이어티 쇼에 익숙해지다 보니, 함축적이고 다의적인 시를 읽고 해석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10대의 손자가 80대의 할머니와 대화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답답하고 의미 없는 일일 뿐이다.
그래서 세상에 예술적인 비판은 없어져 버렸다. 직설적으로 네가 나쁘다.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냐. 그것도 안되면 주먹을 쓴다.
예술인으로 산다는 것은 수도승의 자세가 필요하다. 아예 물질적인 욕심을 버리고, 평범한 가정을 꾸린다는 생각까지 버리고, 모든 인간으로서의 물질적인 욕심을 버려야 예술인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현대 시대적 흐름에 제트기를 타고 역주행하는 꼴이다. 돈이 최고의 가치인 지금 시대에서 돈을 버리고 무엇을 쫓아야 하는 것일까? 라는 가치 혼란이 온다. 헤리포터로 거대 갑부가 된 조앤 K. 롤링과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라고 노래하는 천상병 시인의 삶 중에서 과연 천상병 시인의 삶을 선택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 것일까? 어렸을 때는 과거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당연히 세상은 발전할 것이고 우리는 행복할 것이다라고 믿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나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을까? 라는 의구심이 든다. 차라리 집에 돌아가는 길에 호떡을 사 들고 가 가족들끼리 따뜻한 아랫목에서 옹기종기 모여 호호 불면서 호떡을 먹는 것이 더욱 행복하지 않았을까?
아파트라는 천공의 섬 라퓨타를 사기 위해 일평생 가족을 외면하면서 회사에 목숨 바쳐 살기 보다는 작은 텃밭이 딸린 집에서 가족과 뒹굴며 사는 것이 행복하지 않을까?
나는 한국이 덩치만 커가기 보다는 내부적으로 단단해졌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GDP 5% 상승보다는 빈민층 5% 감소가 더 자랑스럽고,
수출 몇천억불 흑자보다는 일반 가정에서 가처분 소득이 흑자가 났으면 좋겠고,
골프장에서 스프링쿨러 돌아가는 소리보다는 숲 속에서 계곡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더 값지다고 생각한다.
국회에서 고함소리 보다는 웃음이 넘쳐났으면 좋겠고, 가끔은 백만부가 팔린 시집이 생기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좌파 우파가 서로 상호 비방보다는 가끔은 서로를 잘했다고, 그것은 당신들 생각이 맞다고 인정할 수 있는 여유와 화합도 보여줬으면 좋겠다.
내가 너무 많은 희망을 가진 것일까? 나는 욕심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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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의 필살기
구본형 지음 / 다산라이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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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살기라는 단어를 국어 사전에서 찾아보니 사람을 확실히 죽이는 기술이라는 아주 무시무시한 의미 해석이 떠오른다.

하지만 구본형 작가는 이러한 뜻으로 필살기를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아마도 “반드시 살아 남기 위해서 필요한 기술”이라는 뜻으로 필살기를 사용했을 것이다.

매일 매일 반복되는 직장 생활에 대한 회의는 시도 때도 없이 든다. 내가 이런 더러운 꼴을 당하면서 회사에 다녀야 해! 당장 때려 치자라고 극단적으로 치닫던 마음은 가정을 지탱하기 위해 그리고 아빠 아빠를 외치며 달려드는 딸아이의 모습을 지켜주기 위해, 참자.. 꼬박꼬박 월급은 주는 데로 바뀐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40대 어느 순간에는 때려 치자라는 생각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 그 후부터는 제발 저를 내치지 말아 주세요. 라는 생각으로 바뀔 것이다.

이것이 모든 직장인들의 삶일 것이다. 아주 특별한 예외 몇 명만 제외하고는.. 그 특별한 예외에는 구본형님이 포함된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라는 문학적인 제목으로 처음 나에게 다가왔던 그는 공병호작가와 1인 기업, 변화의 리더로써 양대 산맥을 이루며 지금까지 발전해왔다.

공병호 작가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스타일이라면 구본형 작가는 감성적이고 소프트한 스타일이라고 할까?

그런데 이번에 출간한 필살기는 왠지 공병호 작가의 느낌이 살짝 드는 데 이것은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직장인의 필살기를 연마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필살기 1단계 내 업무 안에 답이 있다
필살기 2단계 누구든 이 일을 나보다 잘해낼 순 없다
필살기 3단계 집중 투자할 핵심업무를 뽑아내라
필살기 4단계 무엇에 투자해야 평생직업이 될까
필살기 5단계 필살기를 완성하는 습관의 기술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지금의 내 일을 분석해서 내가 잘할 수 있고 앞으로 발전 가능이 있는 분야를 발견하고 지속적으로 시간을 투자해서 1만시간의 법칙을 활용하여 전문가로 거듭나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다른 자기 개발 서적에서 다루었던 열정, 적성, 메가트랜드, 습관, 1만 시간의 법칙, 1인 기업가라는 키워드를 골고루 배치했다는 것뿐, 새로운 개념은 없었다.

하지만, 자기 개발 서적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나의 그릇에 따라 그 파장 효과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시킬 수는 없다. 

처음부터 삐딱한 마음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어?
누가 열정을 가지고 싶지 않나, 현재의 여건이 그런 걸 어떻게 해.
매일매일 2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쉬운 줄 아시나, 야근에 접대에 말은 쉽죠.
이런 마음을 가지고 이 책을 본다면, 이 책에서 새롭게 얻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 진정으로 지금의 나를 바꾸어 보고 싶은 마음이 있고, 내일은 달라지고 싶다면, 다른 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업무를 분석하는 툴과 미래 모습 상상하기 등을 통해서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40대는 낙타와 같다. 두 개의 혹을 등에 짊어 지고 사막을 건너는..
나는 그 두 개의 혹을 내가 부양해야 할 가족과 꿈을 잃고 의무와 책임으로 앞으로 걸어가야 하는 나 자신으로 해석했다.
낙타는 사막의 가운데서 쓰러진다. 그리고 낙타는 결심을 해야 할 순간이 되었다.
사자가 되어 힘차게 달릴 것인가? 아니면 거침 숨을 몰아 쉬며 다시 힘들게 일어나 터벅터벅 절뚝거리며 낙타로서 사막을 계속 걸어갈 것인가?  

나는 사자가 되는 상상을 즐겁게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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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의 역습, 그리드락
마이클 헬러 지음, 윤미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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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드락의 사전적인 의미는 다음과 같다.

교차점에서 발생하는 교통정체, 즉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을 말하는 것으로, 지나치게 많은 소유권이 경제활동을 오히려 방해하고 새로운 부의 창출을 가로막는 현상을 의미한다.

아무리 의미를 곱씹어 봐도 많이 어렵다.

저자 마이클 헬러는 이야기의 시작을 이집트 운하에서 시작한다. 운하에는 각 지역마다 요금 징수소가 산적해 있다. 지금처럼 입구에서 입장권을 한 번 받으면 끝인 데, 운하를 지나갈 때 마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요금을 달라고 하는 꼴이다. 그러면 결국 우리는 이런 말을 하게 된다. “더러워서 내가 안 쓰고 말지”

이렇게 쓰면 아주 효과적인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소유권을 주장해서 결국 소비자들이 짜증나서 사용을 포기하게 만드는 현상을 그리드락으로 나는 쉽게 이해하기로 했다.

미국 작가들은 서부 개척시대를 가진 문화적 특성인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단어를 만들고 그것을 브랜드화하는 데 모든 책의 페이지를 활용한다.

귀납법의 대가들이라고 할까? 그리드락도 마찬가지의 구성이다.

1. 경제계에서 그리드락이라는 것을 내가 발견했다. 나는 이를 소유의 역습 – 그리드락이라고 명명하겠다.
2. 내 말을 뒷받침하기 위해 수 많은 책들과 사례들을 끄집어 낸다. – 이것들을 봐. 내 말이 사실이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잖아.
3. 내 말을 실천하기 위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 이렇게 하면 나처럼 성공할 수 있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 웰 보엔의 불평없이 살아보기, 샘 고슬링의 스눕, 데니엘 코일의 탤런트코드 모두 동일한 구성이었다.

그래서 미국 작가들의 책은 제목과 책 뒤 표지에 나와있는 광고 카피만 봐도 책의 반을 본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들었다.

반면 동양 문화의 책들은 마음을 적시는 이야기를 실컷 하고 마지막에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다.
합리성으로 본다면 서양식 구성이 효과적이다. 책의 제목과 맨 뒤의 카피 문구로 이 책을 읽어야 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논리적인 글이기에 가슴속에서 불끈 불끈 끌어오르는 감정은 느끼지 못한다. 마치 잘 구성된 논문을 대하는 기분이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은 소유의 역습이라는 문구를 보고 뭔가 무소유의 정신 또는 최소한 나의 충동구매를 제어할 수 있는 뭔가를 기대하고 였다.
하지만 이 책은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공유재화하는 것이 좋은가? 사유화하는 것이 좋은가? 라는 거시적인 정책에 관한 이야기였으며,
작가는 공유재에서 나타나는 남용이라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사유화를 진행하는 데 그에 대한 또다른 부작용으로 소유권이 쪼개겨서 결국 그것을 통합하는 비용이 엄청나게 발생하여
자원의 활용을 아예 포기해 버리는 미활용이 경제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소라고 역설하고 있었다.
그러한 예로는 특허권으로 인해 개발을 포기하는 신약, IT기술과 쪼개진 소유권이 너무 복잡해서 이를 통합할 수 없는 통신 스펙트럼, 러시아의 상가 등이 있겠다.

그런데 이러한 예는 모두 나의 실생활과 관련이 크지 않아, 마음에 딱 와닿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러한 이론을 실제로 활용하기 위해 나는 형이하학적인 예를 찾아 대입하기로 했다.
그리드락이란? 소유권자가 너무 많아서 자원이 방치되는 현상
그리드락의 사례
1) 경매 아파트 – 세입자와 담보를 잡고 있는 채권자, 그리고 만약 이 집주인이 조직깡패의 사채까지 빌렸다면, 이 물건은 경매에 붙여져도 아주 낮은 가격에 붙여질 것이고, 이해 관계자가 더 많다라는 소문이 돌면 왠만한 사람이라면 구입을 포기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파트는 제 값도 하지 못하고 돈으로 환산도 되지 못해 여러 사람이 그냥 권리만 주장하는 상태가 될 뿐 아파트라는 자원이 효과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게 된다.
2) 아이디어 – 회사에서 일개 사원이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행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윗 상사를 설득시켜야 하고 이것이 만약 다른 부서의 지원 (재무팀의 자금, 기술팀의 기술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하면, 각 부서를 설득시켜야 한다. 하지만 같은 월급을 받고 일하면서 누가 나서서 이런 생고생을 하겠는가? 잘 되면 어차피 상사가 가로챌 것이고, 잘못되면 다 내책임이 될 것이 자명한데.. 그리고 다른 부서의 업무 권한을 침범이라도 하는 날이면 각 팀에서 또 들고 일어설 것이다. 그래서 우리 아랫 것들은 새로운 일은 추진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위에서 시키는 것만 하려고 한다. 이는 아랫 사람들의 싱싱한 아이디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그리드락이다.
3) 가정에서 – 잔인한 이야기라고 손가락질 할 지도 모르지만, 아이의 이야기에 대입해보자. 먼저 아이를 엄마 아빠가 공유재로 생각한다면, 엄마 아빠는 자기의 일을 더 시키는 데 주력할 것이다. 엄마라면 가정일을 도우라고 할 테고, 아빠라면 자기의 구두를 닦거나,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데 주력할 것이다. 아니면 밖에 나가서 어린 나이부터 돈을 벌어 오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가난한 나라에서는 돈을 버는 아이들이 많다. 그들은 아이들을 남용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엄마 아빠가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고, 아이가 아주 예쁘거나, 머리가 명석해서 후에 자신의 삶에서 많은 도움이 되게 싶다면 아이를 자기가 데려가기 위해서 필사의 노력을 경주한다. 상대방 보다 값비싼 장난감을 사주겠노라고, 최고의 교육을 시키겠다고, 각자 아이에게 상대방보다 더욱 높은 조건을 제시할 것이다. 이것이 사유화의 문제점인 비용의 상승이다. 그런데, 아이가 문제아의 소질이 다분하고, 밥 값만 축내게 생겼다. 그러면 엄마, 아빠는 서로의 책임으로 떠넘기기 시작한다.
이것이 반공유재화 되는 것이고 이것의 부자용은 아이의 재능을 사장시키는 미사용이다. 우리는 아이라는 미래의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그리드락이라는 책을 끝까지 읽는 것에는 많은 인내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새로운 시각 하나를 알게 되었다.
마치 새로운 눈을 하나 더 얻었다고 할까?
매일 매일 나는 하나의 사물을 보면서 그리드락이 존재하는 지 살펴보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이 책에 대한 평가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수동적으로 읽고 지나친다면 재미없는 책이 될것이고 조금이라도 실생활에 응용한다면 흥미로운 책이 될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빵빵 터지는 책은 절대 아님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나는 솔직한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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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눕 - 상대를 꿰뚫어보는 힘
샘 고슬링 지음, 김선아 옮김, 황상민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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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눕

스눕(snoop)의 뜻을 영어 사전에서 찾으면 기웃거리다, 염탐한다는 뜻이다. 샘고슬링은 타인의 침실, 타인의 소지품, 타인의 모습을 보면 그 사람에 대해서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정리하여 스눕이라는 말을 붙였고 그러한 행동을 스누핑이라고 이름 붙였다.
예를 들어 책상 위가 깨끗하다. 그러면 그는 정리를 잘하는 사람이고 성격은 깔끔하고 계획적이고, 치밀한 사람이라고 유추하는 것이다.
친구 집에 놀러가 책장을 기웃거린다. 책의 정리 상태는 양호하나 크기별로 정리했다던지, 한글 순서, 영어 순서로 정리했다던지, 장르별로 정리했다던지 하는 일련의 법칙을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는 자유 분방한 성격이며, 책의 종류가 다양하다면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다라고 유추하는 것이다.
프로파일링 기법처럼 사물을 통해 사람을 알아가는 것, 그것이 샘고슬링이 주장한 스눕이다 .
하지만, 난 이 책을 읽으며 샘고슬링이라는 사람이 그리고 미국이라는 사회가 참 멋진 사회라고 엉뚱한 생각을 했다. 샘고슬링의 이론은 전반적으로 우리가 평소 느꼈던 새로울 것 없는 것들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깔끔한 양복을 입은 사람이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사람보다는 보수적일 것이며, 계획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스케쥴러를 꺼내 약속 시간을 확인한다면 우리의 생각은 더욱 확실해지게 된다. 그런데 샘고슬링은 현명하게도 스누핑 이론에서 발 하나는 살짝 뺀다. 예외가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 양복을 입은 사람이 원래는 자유 분방한 사람인데 그날 면접이 있어서 그 날만 그렇게 입은 것이었다. 라는 .. 그래서 샘고슬링은 스누핑을 할 때 주의할 사항으로 그 사물이 그 사람을 대표할 수 없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하며, 그 사물이 다른 사람의 부탁으로 잠시 보관하고 있었을 가능성 등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명심하라고 한다.
그럼 뭐지? 나는 강한 실망감을 느낀다. 그것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점쟁이랑 다른 게 무엇일까?
근심 어린 얼굴로 점쟁이 앞에 앉은 중년의 남자를 보며 점쟁이는 말한다. <사업이 잘 안돼?> 아니 좀 더 노련한 점쟁이라면 <먹고 사는 게 힘들구나!> 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점쟁이는 좀 더 용기를 내 말할 것이다. <올해는 계속 어려울 것이야. 그런데 조그만 버티면 내년에는 빛이 들어오는 구나!>

최근 읽은 책 중에 말콤 글래드웰이 지은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가 떠오른다. 말콤 글래드웰은 파일링 기법에 의구심을 드러내며 그들은 다의적이고 포괄적인 말을 주로 사용하며, 항상 변명할 구석을 만들기 위해 예외사항을 둔다고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오늘 아침 뺑소니 사고를 저지른 범죄자는 아주 어리거나 아주 늙었거나 아니면 예외적으로 일반적인 성인일 수 있다. 남성일 가능성이 크지만 다소 다혈질인 여성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것을 스눕에 적용해 보면 이런 식이다.
경차를 타는 저 사람은 검소하거나 실용적인 성격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차를 빌려서 타고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므로 부자일 수도 있다.

자기의 속도 모르는 데 다른 사람을 알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더군다나 그것을 그 사람이 가진 사물로 알아간다는 것은 더욱더 불가능한 일이다.
샘고슬링의 이론은 오랜 세월 누적된 데이터를 가지고 일반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스눕이라는 이론을 전혀 쓸모없는 것이라고 매도할 의도는 없다.
단지, 스누핑을 통해 사람을 다 알 수 있다는 식의 착각에 주의하자는 것이다.

<나에게>
책에는 두 가지의 분류가 있다. 하나는 읽으면 읽을수록 기대가 생기는 책, 다른 하나는 읽으면 읽을수록 기대가 떨어지는 책.
나에게 이 책은 후자에 가까웠다. 거대 유력 기관의 추천도서로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면 사람들이 지닌 소지품을 보고 그 사람의 심리 상태를 알 수 있는 능력자가 될 것 같았던 착각은 책의 전반부에서 급속히 식어갔다. 스눕은 단지 우리가 그냥 사소하게 지나쳐 가는 주위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었다.
하지만 소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역발상으로 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스눕을 당하는 존재로서 이 책을 활용하기로 했다.
내 방을 둘러 보았다. 우선 순서 없이 꽂혀져 있는 책들과, 들어갈 곳이 없어 방바닥에 높게 탑을 이루고 있는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샘고슬링에 의하면 이러한 사람들은 계획적이지 않고, 자유분방한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책장들의 책들을 크기에 맞게 정리한다. 그럼 나는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그리고 책상 위를 본다. 책상에는 아내와 유빈이와 같이 찍은 사진이 있고, 행운의 2달러가 있으며, 집안 화목을 강조하는 한자 성어가 적힌 액자가 있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이 내가 무척 가정적인 사람으로 판단할 것이며, 행운의 2달러를 소중히 여기는 로맨티스트라고 생각하기를 바란다.
그러면서도 조금 답답한 기분이 든다. 내 자신을 무장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내 방까지도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꾸며야 한다는 것과 내 물건들로 내가 판단되어 진다는 생각 때문이다.
당분간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기는 어려울 것 같다.

<유빈에게>
유빈이도 커서는 자기만의 판단 사고를 가지게 되겠지. 그것은 말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행동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집안 배경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샘고슬링 박사님처럼 소유물에 의한 것일 수도 있어.
그런데, 소크라테스 할아버지라면 이러한 말을 했을 거 같아. <남을 판단하기 전에, 너 자신을 먼저 알라고>
난, 남에 대해서는 잘 판단하려고 하면서, 자신에 대해서는 전혀 판단하지 않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돼.
그들은 모든 잘못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아. 너의 고집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라던가 너의 성급함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라고 하지. 자신의 잘못은 전혀 없는 거야. 그리고 남의 일은 쉽게 보이지. 자기가 하는 일만 세상에서 제일 어렵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느끼지.
스눕이라는 책을 통해서 내가 느낀 것은 사소한 소유물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그것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라는 것과 타인의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라는 것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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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 없이 살아보기 - 삶의 기적을 이루는 21일간의 도전
윌 보웬 지음, 김민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불평없이 살아보기>

사람들은 가끔 불평을 하기 시작해서 종종 불평을 하게 되고, 결국에는 항상 불평을 한다.
작가는 이런한 불평쟁이들에게 이제는 그만!! 이라고 강하게 소리친다. 그리고 불평을 그만 두는 방법으로 보라색 불평 금지 밴드를 제안한다. 원리는 간단하다.
한 손에 보라색 밴드를 차고 생활한다. 그러다 자기가 불평한 사실을 자신이 깨닫거나, 타인이 지적해 주면 보라색 밴드를 다른 손으로 옮겨 찬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다. 목표는? 불평없이 살아가기 21일이다.
작가도 원래는 불평없이 살아가는 착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한다. 아니 오히려 불평쟁이 쪽에 가까웠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불평이 불평을 낳는 다는 것과 불평을 하면 생각이 부정적으로 되고 생각이 부정적이 되면 삶의 자세가 부정적으로 된다는 것을 꺠닫고 불평을 멈추는 21일 작전에 들어간다.
그리고 얻어 낸 결론은 다음과 같다.
불평은 자기에 대한 변명일 뿐이다. 불평의 원인은 "바로 나"임을 알아야 한다.

■ 나에게
나는 불평이 많은 사람일까? 적은 사람일까? 솔직히 차마 불평이 없다고 이야기하지는 못하겠다. 그것은 뻔한 거짓말이니까.
그런데 심각하게 반성해야 겠다고 느낀 점은 나이를 먹어가면 갈 수록 불평이 더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10대일때는 부모님의 고정관념을 불평했었고, 공부하는 기계를 만드는 한국 사회를 원망했었고, 맘껏 놀지 못하게 하는 엄마의 잔소리가 싫었고, 최신형 컴퓨터를 사주지 못하는 아버지의 넉넉하지 못함이 싫었다. 그러다 20대가 되어서는 젊음을 군대에서 보내야하는 한국의 특수성이 싫었고,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과 점점 좁아지는 취업문이 짜증스러웠다. 그리고 빽없고 부유하지 못한 가문이 아쉬웠다. 30대가 되서는 시킬 줄만 알지 할 줄 아는 거는 하나도 없어보이는 직장 상사의 뻔뻔함이 싫고, 책임을 떠넘기는 아랫직원이 얄밉고, 학교 졸업 후 연락이 없다가 자기 결혼하다고 전화하는 친구가 얄밉고, 명절에 막히는 고속도로에 답답하고, 돈 많이 벌어오라는 아내의 잔소리에 움찔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날이 늘어나는 불평들, 곰곰히 생각해보면 불평은 나의 책임 회피 수단이고, 천재 지변에 의한 사고처럼 나에게 주어지는 면죄부 같은 것이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되는 데, 주위 환경이 이래서 못한거야>라는 식의 자존심 지키기, <나는 다 잘했는 데 다른 팀원이 못해서 그런거야>라는 식의 우월감 표시하기, <왜 나한테만 자꾸 시켜요. 같은 월급 받는 데>라는 식의 억울함 표시하기였다. 그렇게 해서 남는 것은? 물론 없다. 잠시 마음이 편안해 지기는 하지만, 발전적인 모습은 전혀 없다. 마치 담배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이 책을 통해 나 역시 불평없이 살아보기에 동참해보기로 한다. 집을 나서자 마자 불평거리 투성이다.
왜 문 앞에 지저분하게 광고물을 붙이는 거야!! --> 그냥 손으로 광고물을 뗘서 버린다.
차는 왜 이렇게 막혀!! --> 원래 지금 시간은 막히는 거야, 아님 조금 더 일찍 집을 나서시던가요..
현황 파악해서 보고서 내일까지 만들 겄이라는 부장 지시에 자기가 좀 해보던가요. 자기는 항상 놀다가 정리 보고서에 빨간펜만 할 줄 알면서 --> 저 사람도 불쌍한 사람이야. 승진하고 싶어서 그렇게 노력하는 데 인정 못 받잖아. 집산다고 대출 받은 것은 얼마고! 저 사람도 밥 먹고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니 이해하자. (이것도 불평인지는 잘 모르겟다.)
(와이프) 월급 인상 없어? --> 저도 많이 받고 싶어요.
위의 이야기는 빙산의 일각, 나는 사사건건 불평을 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긍정적인 말로 바꾸고, 모든 원인을 나에게서 찾고, 변명 보다는 자기 반성을 하는 것으로 불평을 줄이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지만, 아직 난 하루에도 수십번 보라색 밴드를 옮겨 차고 있다. 나약한 인간인지라..


■ 유빈에게
아직은 말을 못하는 너이기에 불평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물론 머리 속으로 엄마는 젖을 왜 안줘? 기저귀는 왜 빨리 빨리 안 갈아줘, 더워 죽겠네.. 라는 불평을 하고 잇는 지는 모르지만, 작가가 마음 속으로 하는 불평은 괜찮다고 했으니 너는 성공적으로 불평없이 살아가고 있는 거라 할 수 있겠지.
그래서 너의 모습이 그렇게 밝은 지, 그 밝음이 주위 사람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곤 해.
하지만, 너도 말을 배우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인간 관계, 조직 사회에 놓이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불평을 쏟아 내겠지. 그 중에는 아빠에 대한 불평도 어느 순간 부터는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겠지.
하지만 유빈아. 불평은 자기 자신에 대한 면죄부고 책임 회피고 비겁한 행동이라는 사실은 기억해 주길 바래.
불평을 하기 전에 먼저 자기의 잘못은 없었는 지 자기 반성을 해보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불평하기 시작하면 이 세상은 모든 것이 불평 덩어리란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뀌는 것은 무엇인데?
아빠에 대해 뒤에서 불평한다고 난 변하지 않아. 나한테 직접 이야기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아. 오히려 짜증만 내는 너를 아빠는 나무랄지도 몰라. 그러니 불평을 하기전에 당사자에게 논리적으로 이런 거는 바뀌었으면 해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논리를 먼저 가졌으면 해. 물론 가장 좋은 것은 불평 불만을 안 가지는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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