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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눕 - 상대를 꿰뚫어보는 힘
샘 고슬링 지음, 김선아 옮김, 황상민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5월
평점 :
스눕
스눕(snoop)의 뜻을 영어 사전에서 찾으면 기웃거리다, 염탐한다는 뜻이다. 샘고슬링은 타인의 침실, 타인의 소지품, 타인의 모습을 보면 그 사람에 대해서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을 정리하여 스눕이라는 말을 붙였고 그러한 행동을 스누핑이라고 이름 붙였다.
예를 들어 책상 위가 깨끗하다. 그러면 그는 정리를 잘하는 사람이고 성격은 깔끔하고 계획적이고, 치밀한 사람이라고 유추하는 것이다.
친구 집에 놀러가 책장을 기웃거린다. 책의 정리 상태는 양호하나 크기별로 정리했다던지, 한글 순서, 영어 순서로 정리했다던지, 장르별로 정리했다던지 하는 일련의 법칙을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는 자유 분방한 성격이며, 책의 종류가 다양하다면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다라고 유추하는 것이다.
프로파일링 기법처럼 사물을 통해 사람을 알아가는 것, 그것이 샘고슬링이 주장한 스눕이다 .
하지만, 난 이 책을 읽으며 샘고슬링이라는 사람이 그리고 미국이라는 사회가 참 멋진 사회라고 엉뚱한 생각을 했다. 샘고슬링의 이론은 전반적으로 우리가 평소 느꼈던 새로울 것 없는 것들이었다.
우리는 누구나 깔끔한 양복을 입은 사람이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사람보다는 보수적일 것이며, 계획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스케쥴러를 꺼내 약속 시간을 확인한다면 우리의 생각은 더욱 확실해지게 된다. 그런데 샘고슬링은 현명하게도 스누핑 이론에서 발 하나는 살짝 뺀다. 예외가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 양복을 입은 사람이 원래는 자유 분방한 사람인데 그날 면접이 있어서 그 날만 그렇게 입은 것이었다. 라는 .. 그래서 샘고슬링은 스누핑을 할 때 주의할 사항으로 그 사물이 그 사람을 대표할 수 없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하며, 그 사물이 다른 사람의 부탁으로 잠시 보관하고 있었을 가능성 등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명심하라고 한다.
그럼 뭐지? 나는 강한 실망감을 느낀다. 그것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점쟁이랑 다른 게 무엇일까?
근심 어린 얼굴로 점쟁이 앞에 앉은 중년의 남자를 보며 점쟁이는 말한다. <사업이 잘 안돼?> 아니 좀 더 노련한 점쟁이라면 <먹고 사는 게 힘들구나!> 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점쟁이는 좀 더 용기를 내 말할 것이다. <올해는 계속 어려울 것이야. 그런데 조그만 버티면 내년에는 빛이 들어오는 구나!>
최근 읽은 책 중에 말콤 글래드웰이 지은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가 떠오른다. 말콤 글래드웰은 파일링 기법에 의구심을 드러내며 그들은 다의적이고 포괄적인 말을 주로 사용하며, 항상 변명할 구석을 만들기 위해 예외사항을 둔다고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오늘 아침 뺑소니 사고를 저지른 범죄자는 아주 어리거나 아주 늙었거나 아니면 예외적으로 일반적인 성인일 수 있다. 남성일 가능성이 크지만 다소 다혈질인 여성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것을 스눕에 적용해 보면 이런 식이다.
경차를 타는 저 사람은 검소하거나 실용적인 성격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차를 빌려서 타고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므로 부자일 수도 있다.
자기의 속도 모르는 데 다른 사람을 알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더군다나 그것을 그 사람이 가진 사물로 알아간다는 것은 더욱더 불가능한 일이다.
샘고슬링의 이론은 오랜 세월 누적된 데이터를 가지고 일반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스눕이라는 이론을 전혀 쓸모없는 것이라고 매도할 의도는 없다.
단지, 스누핑을 통해 사람을 다 알 수 있다는 식의 착각에 주의하자는 것이다.
<나에게>
책에는 두 가지의 분류가 있다. 하나는 읽으면 읽을수록 기대가 생기는 책, 다른 하나는 읽으면 읽을수록 기대가 떨어지는 책.
나에게 이 책은 후자에 가까웠다. 거대 유력 기관의 추천도서로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면 사람들이 지닌 소지품을 보고 그 사람의 심리 상태를 알 수 있는 능력자가 될 것 같았던 착각은 책의 전반부에서 급속히 식어갔다. 스눕은 단지 우리가 그냥 사소하게 지나쳐 가는 주위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었다.
하지만 소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역발상으로 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스눕을 당하는 존재로서 이 책을 활용하기로 했다.
내 방을 둘러 보았다. 우선 순서 없이 꽂혀져 있는 책들과, 들어갈 곳이 없어 방바닥에 높게 탑을 이루고 있는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샘고슬링에 의하면 이러한 사람들은 계획적이지 않고, 자유분방한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책장들의 책들을 크기에 맞게 정리한다. 그럼 나는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그리고 책상 위를 본다. 책상에는 아내와 유빈이와 같이 찍은 사진이 있고, 행운의 2달러가 있으며, 집안 화목을 강조하는 한자 성어가 적힌 액자가 있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이 내가 무척 가정적인 사람으로 판단할 것이며, 행운의 2달러를 소중히 여기는 로맨티스트라고 생각하기를 바란다.
그러면서도 조금 답답한 기분이 든다. 내 자신을 무장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내 방까지도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꾸며야 한다는 것과 내 물건들로 내가 판단되어 진다는 생각 때문이다.
당분간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기는 어려울 것 같다.
<유빈에게>
유빈이도 커서는 자기만의 판단 사고를 가지게 되겠지. 그것은 말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행동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집안 배경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샘고슬링 박사님처럼 소유물에 의한 것일 수도 있어.
그런데, 소크라테스 할아버지라면 이러한 말을 했을 거 같아. <남을 판단하기 전에, 너 자신을 먼저 알라고>
난, 남에 대해서는 잘 판단하려고 하면서, 자신에 대해서는 전혀 판단하지 않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돼.
그들은 모든 잘못의 원인을 남에게서 찾아. 너의 고집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라던가 너의 성급함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라고 하지. 자신의 잘못은 전혀 없는 거야. 그리고 남의 일은 쉽게 보이지. 자기가 하는 일만 세상에서 제일 어렵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느끼지.
스눕이라는 책을 통해서 내가 느낀 것은 사소한 소유물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그것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라는 것과 타인의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라는 것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