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 유쾌한 미학자 진중권의 7가지 상상력 프로젝트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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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예술, 상상력.

모두 나를 무척이나 흥분시키는 단어들이다.
내 의지로 책을 선택했다기 보다는 이 책이 날 유혹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 놀이와 예술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독자의 상상력을 끊임 없이 자극하는 책. 책을 보는 것 자체가 하나의 놀이이고, 책 속에 소개되어 있는 예술작품들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다보면 어느새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신기한 그림들을 이 책 속에 집대성 해 놓은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소개된 자료들의 진귀함과 방대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작가는 이 많은 자료들을 어떻게 긁어 모은 것일까? 오타쿠? ㅋㅋ)처음에는 설명을 먼저 읽고 그림으로 그 설명의 진가를 확인했으나, 나중에는 요령이 생겨(상상력을 자극하고픈 욕심이 생겨) 그림을 먼저 보고 과연 어떤 수수께끼가 담겨 있는 것일까 요리조리 궁리하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어떤 물건 하나를 던져주고 어린아이들에게 [무엇에 쓸 것인지]를 물어보면 수십가지의 답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어른들은 고작해야 다섯가지 정도 밖에 유추해내지 못한다고 한다. 어린이들의 무한한 상상력은 성인이 되면 다 어디로 날아가 버리는 것일까? 혹시 놀이와 예술적 감각을 외부의 힘 혹은 내부의 힘으로 억압당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확실히 어른이 되면 놀이에 서툴러진다. 노는 시간이 아까워지고, 노는 것 자체에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예술가들이 영원한 어린이로 남아 철들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상상력의 샘이 현실의 찌꺼기로 막혀버리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픈 의도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유희를 즐길 줄 아는 존재이다. 더불어 상상력이라는 값진 선물을 부여받았다. 그 값진 선물의 반의 반도 활용하지 못한 채 이미 어른의 반열에 올라 버린 그대들에게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이라는 조금은 독특한 친구를 소개해 주고 싶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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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5-11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는 방대한 정보를 야후에서 해결한다고 하던데요? 독일 야후, 프랑스 야후, 미국 야후, 한국 야후의 창을 모두 열어 놓고 있으면 찾고자 하는 정보의 대부분을 찾을 수 있다고 그러더군요. ^^

슈퍼소년 2005-05-12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홍...글허쿤요. 검색서비스 1위는 네이버 인줄 알았는데...저자는 야후매니아였군요...야후~~~~ㅋㅋ

꿈꾸는소년 2005-10-10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색의 최강자는 구글이죠 ㅎㅎ ^^;;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켄 블랜차드 외 지음, 조천제 옮김 / 21세기북스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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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이런 책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좀 더 비약적으로 말하면, 이런 책 읽을 시간에 아직도 끝까지 읽어보지 못한 내 캐논 디지털 카메라 메뉴얼을 정독하는게 낫다. 읽는 동안의 느낌은 분명 흰말 궁둥이와 백말 엉덩이의 차이일 뿐, 거기서 거기일 것이다.

내가 내 디지털 카메라의 (내 카메라 두께 보다도 더 두꺼운) 메뉴얼을 밤새 정독하고, 내 머리 속에 꾹꾹 눌러 담아 모든 조작법을 터득했다고 치자. 내 사진이 달라질까? 물론 감도 조절은 자유스럽게 할 수 있겠지. 후레쉬를 터트리고 싶지 않을땐 가벼운 터치 한번으로 해결할 수 있겠지. 그러나, 내가 찍어 낸 사진은 감도 조절과 가벼운 터치만으로 변화될 수 없다. 내 카메라 보다 더 두꺼운 줄줄이 메뉴얼 속엔 카메라를 좀 더 편리하게 조작할 수 있는 비법(?)이 소개되어 있을 뿐, 내 사진에 대한 애정은 담고 있지 못하다. 이런 책들에서 받게 되는 내 느낌이 딱 요만큼의 메뉴얼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한다면 내가 너무 비약적인 생각으로 점철된 인간인가?

애정이 담겨 있지 않은 책, 인간 내면의 깊이를 고찰하지 못한 책, 책을 덮고 나서도 아무런 여운이 남지 않는 책, 그저 설명하고, 어떻게 해 보라 하고, 지극히 일반적인 서술로 훈계하는 듯한 책. 매력 꽝이다.

매력은 꽝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쓸데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얼마나 (이 책보다 더) 매력없는 인간인지 통렬히 깨달았으니까. 나 처럼 칭찬에 인색한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분명 내 눈에는 부러운 것 투성인데 (내게 부럽다는 느낌은 칭찬하고 싶다는 느낌과 대략 비슷하다.) 그 부러움을 밖으로 표출하는 것이 쉽지 않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말은 아껴야 제맛이지' '우리 사이 말 안해도 다 알지?' 이런 말들로 위로하고 넘어 가기엔 나란 인간은 너무 뻣뻣한 부류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든데, 내가 만약 고래 한마리를 키운다면 칭찬에 목마른 그 고래는 신나는 행진곡이 나와도 세상에서 가장 찌뿌둥한 표정으로 고독한 씨가 한 대를 태우고 있지나 않을런지 .--;

자, 보이지 않는 고래 한마리를 키우자. 그리고는 당대 최고의 춤꾼으로 만들어보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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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이스라엘
랄프 쇤만 지음, 이광조 옮김 / 미세기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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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니즘....

 

.오.니.즘.

이 짤막한 말장난 아래 탄생된 극악 무도한, 마치 악마의 사주라도 받은 듯한 시오니스트들의 팔레스타인 정복기는 '잔인하다'라는 말 조차 무색하게 만든다. 누가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 했던가? 누가 인간을 지구상의 가장 고결한 생물체라 했던가....인간의 잔인성은 냉혈동물의 그것보다 훨씬 무서운 요소다. 그것은 '잔인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미 깊이 깨닫고 난 후에 치러지는 의식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를 탈출한 유태인들은 시오니즘을 국가 건설의 토대로 삼고 그들이 당한 수모를 고스란히 뱉어냈다. 그것이 복수가 되었건, 약속된 땅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이 되었건 간에 이 모든 일련의 행위가 무조건 적인 폭행이라는 수단 아래서 자행되었다는 점에서 식민주의와는 또 다른 비난성이 엿보인다. 그들의 목표는 단순히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착취와 약탈이 아닌, 분산, 해체, 혹은 완벽히 씨를 말리는 학살을 통해 제거해 버리는 데 주 목적이 있었다. 때문에 폭행과 폭력은 공식 정책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의식 속에는 외부의 무력은 필수적이라는 강한 믿음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잘못된 믿음의 정당성 아래 갖은 고문과 비인간적인 처벌이 가해졌다. 고문의 내용은 실로 끔찍하기만 하다. 구타와 감금은 어쩌면 그들에겐 고문의 딱지를 붙이기조차 힘든, 그저 일상의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책 속에 제시된 예 중에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아버지와 딸의 고문 현장이었다. 그들은 남자든 여자든 주로 성기(性器)고문을 자행했는데, 남자들에게는 성기에 볼펜 심을 쑤셔 넣거나 고환 사이에 구슬을 넣고 쥐어 짜는 형식의 고문이 가해졌다. 여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딸의 질 속으로 커다란 막대기가 쑤셔 들어간다. 그것도 모자라 아버지에게 딸을 강제 성폭행 하도록 강요한다. 개, 돼지만도 못한 행위라고 할 밖에 달리 적절한 어휘가 떠오르지 않는다.

시오니즘은 어떠한 사상도 국가를 지탱하는 버팀목도 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정상세포에 반발하는 무분별한 암세포와도 같이 미친 분자일 뿐이다. 그렇다고 미친 국수주의라 표현할 수도 없다. 시오니스트들 사이에도 배반이 자행되었기 때문이다. 암세포의 또 다른 암세포이다. 그들은 나치와의 협력도 주저하지 않으며, 다윈의 진화설에라도 감동 받은 양 젊고 탁월한 시오니스트들의 구출에만 목매달았다. 헝가리의 유태인들은 대부분 희생되어야 했고, 그렇게 내버려 졌다. 맹목적인 국수주의도 민족주의도 그 무엇도 아니다. 대체 무엇으로 표현해야 한단 말인가.

학살의 현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레바논에 정착한 팔레스타인들에게 까지 손을 뻗어 경제적 파괴는 물론이요, 체포(자의적 판단에 의해 개인을 구금할 권리?)와 자백이 강요되었다. 피는 피로 물들어 갔고, 그 이면에는 이미 제국주의의 달콤함을 맛 본 강대국들의 야욕이 숨어 있었다. 미국의 지원정책은 중동 지역에 대한 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속내를 어김없이 들어냈고, 시오니즘의 팽창과 함께 미국 세계 지배 전략의 핵심요소도 붉어져 갔다.

 

미쳤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이 모든 일련의 사태들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고스란히 장식하고 있다. 무엇을 위한 행진곡인지, 이제는 목적도 방향도 잃은 듯 보인다. 어쩌면 작은 불씨 하나로 시작되었을지 모를 잔인한 비극의 굴레가 극단적 민족주의와 함께 강대국들의 야욕과 함께 얽히고 설켜 무고한 난민의 희생과 또 다른 대량학살의 장을 부추기고 있다. 대체 무엇으로부터 비롯되는 것들인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이 모든 인간의 잔인성은 대체 무엇으로부터 기인되는 코미디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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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된 희망
폴리 토인비 지음, 이창신 옮김 / 개마고원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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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폴리 토인비

 

언제부터 인가 희망 이라는 단어가 곧이 곧 대로 들리지 않는다. 그 안에 감추어진 무수한 속성들이 희망이라는 밝은 빛을 등지고 어둡고 우울한 왈츠를 추고 있다. 아니, 이제는 그 어둡고 우울한 왈츠가 더 크게 부각되어 온다. 희망을 품고 절망을 노래하는 대다수의 노동자들에게 어쩌면 희망은 태어날 때부터 거세되어진 희미한 상처 자국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영국 [가디언(Guardian)]의 칼럼니스트이자 방송인, 저널리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는 폴리 토인비가 자신의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써 내려간 거대한 보고서이다. 영국은 우리나라에서 복지제도 및 정책의 많은 부분을 모델로 삼고 있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유럽국가 중 정부의 사회 복지비 지출이 가장 낮고, 빈공층의 비율 또한 매우 높은 나라이다. 신분(?)을 위장한 채 빈민층에 뛰어 든 저자의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평등하고 계급 없는 사회가 얼마나 허황된 논리인지 담담히 밝히고 있다. 단순 노무의 열악한 환경, 계약직에 대한 횡포,  아무렇지도 않게 임금을 착취해 가는 용역회사, 실 생활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복지 및 지원 정책 등. 희망을 미끼로 한 거대한 낚시바늘에 꿰인 채 터무니 없는 정책에 놀아나고 있는 노동자들의 실상이 낱낱이 파헤쳐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내내 직접 현장에 뛰어든 저자마저도 빈곤층을 동정의 대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것은 마치 선거철만 되면 평소엔 눈길 한번 주지 않던 환경미화원을 자처하고 나서 역겹게 팔을 걷어 부치고 위선적인 땀을 흘리며 후레쉬 세례를 받고 있는 후보자들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동정은 상하관계의 정립에서부터 비롯된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노동을 천시하는 사상뿐이다. 당장 수 많은 환경미화원들이 집단 파업을 자처하고 나섰을 때가, 당장 수 많은 국회 위원들이 집단 파업을 자처하고 나섰을 때보다 몇 갑절의 그 중요성이 부각됨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국회 위원들이 처진 배를 깔고 앉아 이래라 저래라 입으로 국정을 더럽히는 동안 환경 미화원들은 실질적인 정화에 몸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노동은 천시당하며 임금은 터무니 없다. 미디어의 묘사도 별반 다를 건 없다. 빈곤층의 실상을 다루며 도와주세요를 외칠 뿐 그들의 노동의 가치에는 관심이 없다. 이 책에서는 종종 빈곤층의 따뜻한 마음 혹은 그들의 유대감등이 강조되곤 하는데 그들을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있다면 굳이 이런 묘사는 필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직접 겪어 보지도 않고 펜만 굴려나간, 그래서 결국엔 심파조로 호소하는 책들 보다는 훨씬 믿음직한 책이었다. 월등히 높은 임금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노조 성립이나 자신들의 권리주장엔 더욱 적극적이다.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낮은 임금에 허덕이며 그만큼의 대우를 받고 있지 못하는 이들에겐 권리주장의 여력이 없다. 어쩌면 희망을 누릴 권리는 상위 소득 몇 퍼센트 안에만 있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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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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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정민

 

밥 먹는 것 조차 잊은 채 무언가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는 이들에게 미쳤다라는 한 마디로 그들의 벽(癖)을 비하 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들의 올곧은 주인 된 삶마저 비하 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은 저 먼 발치서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데, 벽(癖)에 빠진 사람들은 제 세상 속에서 시간을 멈춘 채 나름의 즐거운 삶에 도취되어 있다. 세간은 그들을 도태되었다 한다. 도태를 무릅쓰고 미칠 수 있는 삶. 그 위험한 도전의 터널 끝에는 속세에 물든 이들은 결코 이해 할 수 없는 몇 갑절의 미친(及)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책은 총 3부로 나뉘어 마니아들의 삶을 흥미롭게 관철하고 있다. 제 1부 벽에 들린 사람들에서는 꽃에 미친 김덕형 벼루에 미친정철조 를 비롯하여 책만 읽던 바보 이덕무 뛰어난 재주를 갖고도 세상과 만나지 못한 서문장에 이르기까지 당대 내놓으라 하는 미친놈(?)들의 숨은 이야기가 재미있는 예문과 함께 펼쳐진다. 세상은 재주 있는 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뛰어난 재주를 갖고도 실리에 밝지 못한 이들에게 세상의 문은 성장을 방해하는 올가미와 같았다. 제 2부 멋진 만남에서는 맛난 만남을 통해 서로에게 빛이 된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특히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박지원척독(尺牘)-지금의 엽서에 해당하는 짧막한 편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시간이 없어서 짧게 쓴 편지라기 보다는 작품성을 의식해 제작된 글이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긴 미사여구를 곁들인 치졸한 문장들에 일침을 가하듯 짧지만 정곡을 찌르는 그의 날카로운 문체에 감탄이 절로 난다. 특히 몇 번을 곱씹어 봐야 비로소 그 온전한 뜻을 이해할 수 있는 풍자와 촌철살인이 깃든 그의 문장은 단문이라기 보다는 예술에 가까웠다. 제 3부 일상 속의 깨달음에서는 사소한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예리한 관찰력으로 그 본질을 꿰뚫는 고수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목민심서]의 저자로 근엄한 사상가로만 알려져 있던 정약용의 그림자 놀이에 관한 글은 흥미의 차원을 넘어 일종의 작은 충격이었다. 하찮게 지나쳤을 그림자 하나에도 기이함을 발견해 내는 그의 예리함에 실학자의 위대한 면모가 비춰져 온다.

 

책에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벽(癖)이 없는 내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무언가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워 했던 적이 있었던가? 끈질기게 붙잡고 앉아 마침내 이루어 낸 적이 있었던가? 질책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미치지(狂) 못 해 미치지(及) 못 한 내 자신을 반성의 늪으로 몰아 넣었다. 노력 없이 욕망만 앞 선 삶은 불평과 후회의 연속일 뿐이다. 20대에 꼭 해야 할 일과 같이 재미도 없고 뻔하기만 한 책들 보다는 개인적으로는 이런 책 한 권이 훌륭한 자극제가 된다. 자, 자극제 복용도 마쳤겠다, 이제부터는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무언가에 미치는 일만 남았다. 목표는 미친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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