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된 희망
폴리 토인비 지음, 이창신 옮김 / 개마고원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지은이: 폴리 토인비

 

언제부터 인가 희망 이라는 단어가 곧이 곧 대로 들리지 않는다. 그 안에 감추어진 무수한 속성들이 희망이라는 밝은 빛을 등지고 어둡고 우울한 왈츠를 추고 있다. 아니, 이제는 그 어둡고 우울한 왈츠가 더 크게 부각되어 온다. 희망을 품고 절망을 노래하는 대다수의 노동자들에게 어쩌면 희망은 태어날 때부터 거세되어진 희미한 상처 자국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영국 [가디언(Guardian)]의 칼럼니스트이자 방송인, 저널리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는 폴리 토인비가 자신의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써 내려간 거대한 보고서이다. 영국은 우리나라에서 복지제도 및 정책의 많은 부분을 모델로 삼고 있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유럽국가 중 정부의 사회 복지비 지출이 가장 낮고, 빈공층의 비율 또한 매우 높은 나라이다. 신분(?)을 위장한 채 빈민층에 뛰어 든 저자의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평등하고 계급 없는 사회가 얼마나 허황된 논리인지 담담히 밝히고 있다. 단순 노무의 열악한 환경, 계약직에 대한 횡포,  아무렇지도 않게 임금을 착취해 가는 용역회사, 실 생활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복지 및 지원 정책 등. 희망을 미끼로 한 거대한 낚시바늘에 꿰인 채 터무니 없는 정책에 놀아나고 있는 노동자들의 실상이 낱낱이 파헤쳐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내내 직접 현장에 뛰어든 저자마저도 빈곤층을 동정의 대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것은 마치 선거철만 되면 평소엔 눈길 한번 주지 않던 환경미화원을 자처하고 나서 역겹게 팔을 걷어 부치고 위선적인 땀을 흘리며 후레쉬 세례를 받고 있는 후보자들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동정은 상하관계의 정립에서부터 비롯된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노동을 천시하는 사상뿐이다. 당장 수 많은 환경미화원들이 집단 파업을 자처하고 나섰을 때가, 당장 수 많은 국회 위원들이 집단 파업을 자처하고 나섰을 때보다 몇 갑절의 그 중요성이 부각됨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국회 위원들이 처진 배를 깔고 앉아 이래라 저래라 입으로 국정을 더럽히는 동안 환경 미화원들은 실질적인 정화에 몸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노동은 천시당하며 임금은 터무니 없다. 미디어의 묘사도 별반 다를 건 없다. 빈곤층의 실상을 다루며 도와주세요를 외칠 뿐 그들의 노동의 가치에는 관심이 없다. 이 책에서는 종종 빈곤층의 따뜻한 마음 혹은 그들의 유대감등이 강조되곤 하는데 그들을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있다면 굳이 이런 묘사는 필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직접 겪어 보지도 않고 펜만 굴려나간, 그래서 결국엔 심파조로 호소하는 책들 보다는 훨씬 믿음직한 책이었다. 월등히 높은 임금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노조 성립이나 자신들의 권리주장엔 더욱 적극적이다.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낮은 임금에 허덕이며 그만큼의 대우를 받고 있지 못하는 이들에겐 권리주장의 여력이 없다. 어쩌면 희망을 누릴 권리는 상위 소득 몇 퍼센트 안에만 있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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