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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평점 :
추리 소설을 매우 좋아하지만, [7년의 밤]이라는 소설을 알게 된 것은 얼마 전의 일이다.
'정유정'이라는 작가는 더욱 생소했다. 이번에 [28]이라는 소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작가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고, 호기심이 증폭되며 작가의 옛 소설들을 검색해 보게 되었다. 그렇게 하여 알게된 소설이 [7년의 밤]이다.
'한번 잡으면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흡인력'
[7년의 밤]을 향한 찬사중에 가장 눈에 띄는 문장이었다. 일찍이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이나 [화차]를 읽으며, 블랙홀 처럼 빨려들어 가는 그녀의 문장력과 흡인력에 헤어나오지 못한 경험을 갖고 있는 나에게는 혹하는 찬사였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이 소설을 선택할 이유는 충분했다.
성미가 급한 나는 당장 책을 구매했고, 단숨에 읽어들였다.
역시 대단했다. 낯설고 생소한 '정유정'이라는 작가에 대한 의구심의 날을 세울 겨를도 없이, 그녀의 블랙홀 같은 문장은 나를 정신없이 빨아들였다. 그녀의 문장을 읽을때마다 나의 머리속에는 마치 잘 짜여진 뮤직비디오나 디테일한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생생한 영상이 그려졌다. 나는 어느새 내 멋데로 소설속의 인물을 현실의 배우들로 캐스팅한 뒤 플롯에 맞춰 영화 한편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 뿐이랴. 그녀의 유머감각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런 장면에서 어떻게 이런 시니컬하면서도 동시에 유머러스한 문장을 뽑아낼 수 있는지, 작가와 면대면으로 앉아 대화라도 나누고 싶은 심정이었다. 현실의 그녀는 과연 어떤 언어를 구사하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충동에.
아쉬운 것은, 오직 그것뿐이라는 것이다.
생생하고 감칠맛나는 문장력 뿐, 여타의 기술은 부족했다. (그녀는 프로 작가 일테니, 기술이라 칭해도 큰 문제는 없으리라....)
[7년의 밤]은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 집행인이었다'라는 강펀치로 시작하여, '해피버스데이'라는 엉성한 뒷걸음으로 물러난 느낌이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초반에는 허세로 가득하여 힘찬 펀치로 상대를 압도하다, 경기 5분만에 모든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그로기 상태가 되어 관중들에게 큰 재미를 안겨주지 못하고 경기장 주변을 빙빙 돌며 쓰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안타까운 복서? 그나마 이 경기를 끝까지 지켜보게 해 준것은 중간중간 재미를 안겨주는 라운드걸의 유머감각과 안타까운 복서마저도 감칠맛나게 중계해주는 해설자였다.
기대가 너무 컷던 탓일까? [7년의 밤]이라는 제목 만으로도 '7년 동안의 대서사시'를 기대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닐까? 그 기대가 무너졌기에 이렇게 아쉬움도 큰 것이리라. [7년의 밤] 속에는 [7년이라는 세월의 그렇다할 스토리]가 없었다.
우발적으로 타인의 딸을 살해하게 된 아버지와, 그로인해 지옥같은 삶을 살게된 아들. 자신의 딸을 살해 당하고 딸의 살인마와 살인마의 아들을 향해 끊임 없는 복수를 꿈꾸는 한 남자. 이렇게 멋진 등장인물을 두고, 소설은 줄곧 그들의 지나간 이야기를 지난하게 풀어내고 있다. 물론 그것이 있어야 사건의 실마리를 풀 수 있고, 이야기의 전개도 논리를 갖추는 것은 자명하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지나간 이야기에만 매달려 있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7년이라는 복수의 시간이라는 것이다. 7년이라는 복수의 시간이 결코 복수의 시간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나 하나 뿐일까? 살인마의 아들로 낙인 찍혀 이 동네 저 동네 떠돌아 다니고, 학교 조차 제대로 못다녔다는 것이 복수였다면 할말은 없다. 그렇지만 그것이 이 소설을 읽기 전에 기대했던 독자에게 안겨줄 수 있는 최상의 스토리가 아니라는 것만은 자명하다.
중간 중간의 억지 설정도 이 소설을 '대단한 스토리를 가진 소설'이라고 칭할 수 없는 방해 요소가 된다. 그야말로 긴장감이없다. 추리소설의 묘미가 무엇인가. 얼른 마지막장을 펼쳐보고 싶은 심정으로 읽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 소설은 스토리 자체가 너무 평이하다. 클라이막스가 없다. 모든 플롯이 수평선 상에 존재한다. 난투극으로 시작해서 난투극으로 마무리되는 사건의 해결방식도 너무 평이하고, 7년간의 복수를 마무리 짓게 만드는 매개체가 다름아닌 복수를 꿈꾸던 한 남자의 부인이라는 것도 우습다. 뭔가 계산적이고 치밀한 복수를 꿈꿨는데, 아하 그렇구나가 없다.
아...나 썰전 패널도 아닌데, 너무 독설만 퍼부었나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소설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평이한 스토리로 마지막 장까지 흔들림 없이 나를 이끌어 주었으므로. 분명 뭔가 다른 힘을 내포하고 있는 소설이다. '정유정'의 힘이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망설임없이 그녀의 두번째 소설을 선택하기로 마음 먹었다. [내 심장을 쏴라]를 읽고 다시 한번 그녀를 논하고 싶다. [7년의 밤]에 대한 아쉬움을 만회 해줄 것이라 내심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