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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히틀러와 처칠, 리더십의 비밀
앤드류 로버츠 지음, 이은정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국가의 기강이 흔들리면 흔히들 리더십의 부재를 그 원인으로 꼽는다. 현 정권의 위태로운 상황을 포퓰리즘 정치의 부작용이라 비난하며, 군사 독재 시절의 강력한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과연 전체를 이끌어가는 리더십의 본질은 강인한 카리스마에 있는 것일까? 억압과 강요에 의한 주도가 대중 선동이나 인기에 영합하는 것 만큼이나 큰 부작용이 따름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히틀러와 처칠. 이 두 사람은 생김새 만큼이나 서로 다른 리더십을 보인다. 굳이 빗대어 표현하자면, 히틀러는 베일에 쌓인 얼음과 같이, 처칠은 이웃집에 사는 참견하기 좋아하는 아줌마(?) 같이.
이 책은 ‘위기를 극복 하는 CEO 의 리더십’이라는 가제 아래, 히틀러와 처칠의 리더십의 비밀이 저자의 눈을 통해 생생히 묘사되고 있다. 요즘 우리네 서점에 넘쳐 나는 ‘리더십’관련 서적들은 현 정권의 위기를 극복해보고자 하는 마지막 발악일지도 모르겠다. 그 수많은 서적들 중 한 권이라는 점에서 희소 가치는 떨어질지 몰라도 2차 세계대전이라는 극명한 위기 상황을 겪은 두 인물의 대조를 통해 바라본 ‘리더십’의 비밀은 평전을 읽는 것과는 또 다른 흥미진진한 읽을 거리 임에는 분명했다. 중간중간 들려주는 뒷 얘기들이 오히려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면 내가 이책의 의도를 너무 왜곡한 것일까? --;
카리스마 넘치는 매서운 눈매. 유태인 대량 학살의 장본인. 완벽한 퍼포먼스. 독재를 통한 전권 장악. 무조건적인 충성 강요 등. 히틀러에게 따라 붙은 수식어는 인간적인 면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마치 독재로 프로그램된 로보트처럼 말이다. 그의 강력한 카리스마는 거울을 보고 표정 하나하나까지 수 백번 연습하여 탄생한 대중의 심금을 울리는(?) 연설과 베일에 쌓인 사생활(마치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신처럼) 그리고 철저한 자기관리에 있었다. 늘 검소한 차림을 잊지 않았고, 맨 살을 보이기 꺼려했으며(이미지 실추라 믿고 있었다.) 심지어 그의 콧수염까지도 몇 번의 이미지 작업을 통해 탄생한 것이다. 이렇듯 그의 카리스마는 철저히 이미지 작업에 의존하고 있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번 각인된 이미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법칙을 일찍부터 깨달았던 것일까. 또한 유태인이라는 공공의 적을 두고 온 독일 국민을 하나로 만들었다. 집단 속의 ‘왕따’가 오히려 집단의 결속력을 다지는데 한 몫을 담당한다는 말도 있듯이 ‘유태인 말살’이라는 교집합을 통해 대중을 선동해 나갔던 것이다. 그는 왜 그토록 유태인을 증오하게 되었을까. 유태인 창녀에게 매독이 옮았다느니 대학 입시에서 그를 무참히 떨어뜨린 교수가 유태인이었다느니 여러 가지 설이 있기는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결속을 위한 피조물이 필요했던 것 같다.
반면 처칠의 리더십은 지극히 인간적인 면이 강조 되었다. 그는 세세한 부분까지 꼼꼼히 참견했고, 조소의 대가였으며, 대중 앞에 나가 연설하기 보다는 라디오 연설을 선호했고(처칠에겐 혀 짧은 소리가나는 콤플렉스가 있었다 함. 처칠과 최지우의 함수관계는?--;) 언제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우스꽝스러운 모자와 현란한 색상의 의상, 피지는 않지만 늘 입에 물려 있는 씨가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시의 적절하게 발휘되는 그의 유머감각은 또 하나의 무기가 되었다. 처칠이 히틀러에 반해 적절한 판단력을 발휘한 점이 있다면, 무조건 적인 충성을 강요하기 보다는 의견이 맞지 않더라도 능력 위주의 인사를 단행한 점, 이것 저것 참견하던 태도를 바꾸고 구성원 각자에 맡긴, 이른바 임무형 전술을 사용한 점이라 할 수 있겠다.
내겐 아직도 리더십의 그림이 확실이 그려지지 않는다. 집단에는 꼭 리더가 존재해야만 하는가 하는 회의감에 미약한 집단 알레르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춘 리더라 할지라도,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리더라 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받아들이는 입장의 태도의 문제인 것 같다. 처칠이 독일의 지도자였다면 그의 리더십이 작용할 수 있었을까? 반대로 히틀러가 영국의 지도자 였다면? 확실한 답은 모르겠지만 고개가 갸우뚱 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시국의 운을 잘 타고나는 것도 리더십 발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위기 상황에 처하면 국민 전체가 집단 최면에 걸리기도 쉬울 것이고, 지도자의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큰 파문을 일으키기도 쉬울 것이다. 나쁜 지도자로 낙인 찍히건, 좋은 지도자로 낙인 찍히건 그들에게는 모두 확고한 비전과 자신감이 있었다는 데에서 지금의 내 모습을 많이 반성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책 마지막 장은 리더십과는 상관없이 처칠을 비난하는 이들에 대한 구차한 변명들로 일색 되어 있어 읽기 거북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한 국가의 지도자의 덕목을 확실한 대조군을 통해 재조명해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