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또는 독서에 관한 책을 좋아한다(물론 `기적의 속독법`이나 `청춘이 읽어야 할 책 베스트 20` 같은 책들을 제하고).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책`과 `독서`라는 소재에 관한 순수한 흥미가 첫째이고, 독서에 관한 이야기를 독서하고 책에 관한 책을 읽는다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폐쇄된 순환 구조가 주는 묘한 즐거움이 둘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꽤 적합했다. 같은 소재에 대한 흥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많은 책들을 들춰보았지만 제목에 낚여 주로 실패를 겪었던 나로서는 반가운 마음이었다. 고로 지난 여름 [종이책 읽기를 권함]을 읽고 실망한 경험을 이 책으로 보상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책으로 집이 기울어진 사람들, 지진과 화재로 책이 다 타버린 사람들, 책을 위해 집을 지은 사람들, 책에 주거 공간을 다 내준 사람들 등등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책에 관한 에피소드가 소탈하게 쓰여있다. 기이하다면 기이한 에피소드가 적지 않은데도 글에서 소탈함이 느껴지는 것은 저자 자신도 책 2만여 권을 품고 사는 장서가이기 때문이리라. 다른 장서가들을 인터뷰하면서 수집한 에피소드들이 저자 자신에게는 결코 유별난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도 책에 잡아먹힌 사람으로써, 자신이 속하지 않은 세계를 묘사할 때에나 느끼는 과장의 욕구를 없앨 수 있었을 것이다.

소설과 영화에나 나올 법한 장서가들의 풍경이 산뜻하게 그려진 데에는 일본스러운 겸손함과 송구스러움(?)도 한몫한다. 일본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간간이 접하는 일본의 영화와 책들이 참 그들의 음식과 닮았다고 종종 느낀다. 이 책도 낫또 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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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완전한 기적을 낳는다. 아름다운 여자의 모든 정신적 결함은 혐오감을 일으키는 대신 어떤 특별한 매력을 발휘한다. 그 결점 자체조차도 이름다운 여자에게 있어서는 사랑스런 아름다움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름답지 않으면 여자는, 만일 사랑은 받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존경은 받으려면 남자보다 스무 배나 더 현명해야 한다. (p.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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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여기서 `공부`의 의미는 조금 다르다. 한 세기 전의 신학자였던 저자에게 `공부`는 근본적으로 ˝신이 부여한 소명˝을 따라 ˝신의 그림자를 쫓아˝ 학문을 탐구하는 것이었고, 그런 그가 `공부하는 삶`을 사는 방법에 대해 일러두는 책을 쓴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서 공부를 하려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주된 부분이기에 큰 괴리는 없었다. 신학을 공부하려는 사람도 아니거니와 무교인 나에게는 자칫하면 먼 얘기로 들릴 수 있는 부분들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때에 따라 `신`이라는 단어를 `나 자신`이나 `세상` 또는 `자연`으로 바꾸어 읽으니 더 흡족스러운 가르침으로 다가왔다. 공부에 몰입하여 `신`과 직접 교통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에서 `신`이라는 단어를 저 앞서 말한 단어들로 바꾸어 읽으니 얼마나 중요한 말이 되던지.

9.7
인간인 이상 영원히 모를 테니까 다 안다고 생각하지 말 것, 부분을 전체로 착각하지 말 것, 진리를 얻기 위해 사물의 이면을 볼 것, 사물과 자연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말하고 있으므로 귀를 기울일 것 등등 마음 수련에 대한 부분은 마치 명상집 같다. 신의 뜻을 추구하는 공부에 대한 이야기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꼭 탐구의 영역을 한정하지 않더라도 명상과 공부하는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어떤 분야가 되었든 마음을 가지런히 해야 그 학문의 본뜻이 쉬이 흘러들어오기 마련이니까.

9.8
어쨌건 신학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맞지 않는 것도 꽤 있다. 신과 성별(聖別)에 대한 이야기는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데 무교로서 어쩔 수 없이 지루했다. 그리고 되풀이하는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많다.

9.8
학문 공부도 결국 인생 공부라는 것을 잊지 말 것. 그렇기에 학문을 공부하는 행위 자체가 곧 지속적인 목적이자 삶의 궁극적 의미라는 것을 잊지 말 것. 생각해보면 내게 수단으로서의 공부가 아닌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할 기회가 생긴 게 큰 축복이자 특권 아닌가. 더군다나 요즘 같은 세상에. 그러니까 쓸데없는 세상살이 걱정 끌어모아서 하지 말고,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주어진 이 특권을 감사히, 충만히 누려보자.

9.8
공부를 하는 기간동안 겪게 되는 시련들은 모두 공부로 치료하라는 말.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우울할 때, 무기력할 때, 좌절스러울 때, 외로울 때 모두 공부에 의지해 평온을 소환해 보자. 학문을 공부할 때에만 얻을 수 있는 충만함이라는 그 특정한 알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하자. 물론 말로만 쉬운 이야기지만 노력이라도.


9.8
끊임없는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이며 결단을 내린 지난 시간을 잠시 잊고 있었다. 막상 용기를 내어 새로운 결정을 실천하려 하니 소심함이 솟구쳐 기회비용에 마음을 뺏긴 채 오들오들 떨면서 손톱만 물어뜯고 있었다. 이 책이 그 마음의 먼지를 후,하고 불어주었다. 얕은 먼지 아래에 가려진, 아직 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토대를 보여주었다. 참, 나는 성공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공부하고 싶어서 공부하려는 거였지. 왜 나부터도 스스로에게 효용의 질문을 하고 있었을까. 그러니 부정적인 답이 나오고 불안했던 건데. 세간의 물결에 쉬이 휩쓸리는 나를 잡아주고, 심지어 앞으로 휩쓸리지 않는 방법까지 조곤조곤 세세히 알려주었으니 이제 나만 잘 살아보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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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6
초반부의 트위터에 관한 날카로운 이야기가 흥미롭다. 타임라인에 쉴새없이 열거되는, 자신들도 존재한다고 발버둥치는 트윗들. 나도 그랬다. 사회학자의 책이건만 곳곳을 지날 때마다 잠시간 심리학 책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외부적인 현상들을 이야기를 하는데 꼭 인간 내부를 꿰뚫는 느낌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공허한 마음으로 일말의 사유없이 행했던 외면의 행동과 내면 사이의 빈 거리를 통찰과 논리로 채워나가고 있다. 해석하고, 생각하며 자연스레 나에 관한 나만의 결정을 내리고 있다. 다만 책에서 제일 먼저 추천사가 나오는데, 이 글을 쓴 장석주가 책의 내용을 정리·요약하고 인상적인 부분들을 인용하는데다 주된 메시지까지 다 스포해버려서 본문으로 들어가서는 김이 좀 샌다.

8.29
번역이 구리다. 다른 블로그에서 ˝아마추어 번역가를 데려다 만든 쓰레기 번역˝이라는 말을 봤는데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불어 책장을 넘길 때마다 띄어쓰기 오류를 발견하는 일이 매우 쉬웠고, 심지어 조사의 누락(!), 행방 불명의 글자 누락도 발견한 게 합해서 다섯 번 이상이다. 외래어 표기도 이미 국립국어원에서 용례에 올려둔 단어가 있는데도 별다른 일러두기 없이 맘대로 괴상하게 써놨다. 엉성한 번역과 편집부의 완성도 낮은 업무까지 콤보를 이룬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번역본 교정, 교열 연습을 해야한다면 이 책으로 연습하면 된다. 번역자 두 명, 편집자 네 명의 이름이 올라가 있는데도 이 책을 꼼꼼히, 애정어리게 매만진 손길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마감일에 맞춰서 페이지를 휙휙 대충대충 넘기고 넘기며 작업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느 출판사와 다름 없이 책의 완성도를 기준으로 삼지 않고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시점을 기준으로 책을 만든 것인지. 안타깝다.

9.5
어떤 큰 주제 아래에서 정기적으로 기고한 수십 편의 칼럼이라면, 특히 그 기고처가 대중적인 곳이라면 주제가 얼마나 광범위하든 후반부로 갈수록 결국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인 그 이야기를 하게 되는 법인가 보다. 총 44편의 편지 중 30번째 정도에 와서는 조금 지쳤다. 결국 `유동하는 근대 사회`의 `유연성`과 `불확실성` 속에서 불안해하며 이전에 겪어본 적 없는 세상을 겪어야 하는 우리는, 비관적 전망이 이러이러한 것들로 적지는 않지만, 미래를 현재로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이기에 좌절만 하지말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 위기에서든, 가족의 붕괴에서든, 인스턴트화된 인간관계에서든, 예측할 수 없이 하루가 멀다하고 바뀌는 유행과 성공의 기준에서든.

9.6
불행하지 않은 고독과 행복한 게으름을 마음 속에 꾹꾹 눌러 담고 찬양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이 시대에 뒤처지게 하는 것으로 보이는 고독과 게으름을 분석하며 불안함 없이 애정할 수 있었다. 크게 새롭지는 않은 담론들을 가벼운 사회학적 분석으로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잘 정연된 관념적 얼개로 현대 사회에서 방황하는 인간을 설명해주는 게 꼭 이성적인 친구가 토닥여주는 위로처럼 느껴졌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대신 이걸 읽는 게 훨씬 나으리라는 사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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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에 관해 말하자면, 때로는 대중이 자극을 주기도 하지만 대개는 정신을 방해하고 주의를 흐트러뜨린다. 거리에서 몇 푼 주우려다가는 자신을 망치고 말 것이다. 이런 것들보다 더 필요한 것은 열정적인 고독이다. 그 고독 안에서는 하나의 씨앗이 백 개의 낱알을 맺고, 충만한 태양빛이 모든 땅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기 때문이다.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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