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합리화와 유일신이 종결된 사회에서 잃어버린 절대성에 대한 향수로 예언자로서의 학자, 교수자가 되지 말 것. 부유하는 근대사회에서 학자가 가져야 할 유일한 믿음과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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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이러한 운명을 당당하게 견디어 낼 수 없는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이 충고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즉 그는 흔히 그러하듯이 전향자임을 공공연하게 떠들지 말고, 차라리 소박하고 조용하게, 옛 교회의 넓고 자비로운 품 안으로 돌아가라고 말입니다. 교회 또한 그의 이러한 전향을 위해 문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그는 이 경우 어떻든 지성을 희생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것은 불가피합니다. 그가 진정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를 이 희생 때문에 나무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조건적인 종교적 헌신을 위한 그러한 지성의 희생은 소박한 지적 성실성 의무를 회피하는 것과는 도덕적으로 여하튼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회피는 자신의 궁극적 입장에 대해 명료해질 용기를 지니지 못하고, 이 지적 성실성의 의무를 나약한 상대화를 통해 벗어버리려고 할 때 나타납니다. (p. 86)

우리는 이 운명에서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즉 갈망하고 고대라는 것만으로는 안 되며 그것과는 다른 길을 택해야만 한다는 교훈, 우리의 일에 착수하여 `일상의 요구`를ㅡ인간적으로나 직업상으로나ㅡ완수해야 한다는 교훈 말입니다. (p.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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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그날 밤 이후 내가 우울증에 빠졌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나는 서서히 형성되어가고 있던 내 삶을 체념하듯 받아들이게 되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p.119)

나는 분자물리학 관련 서적을 읽고 아무도 알지 못할 이론들을 만들면서 나의 나날들을 보낼 수도 있었다. 나는 그때에도 콜린이 내게 거의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그러다 보니 나도 나 자신에 대해서 거의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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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은 자신들이 교육받은 소수에 속하며, 세상사의 방향을 지시하고 세상사를 만들어갈 권리를 신에게서 부여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지식인은 교육을 잘 받을 필요도, 특별한 지성을 갖출 필요도 없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교육받은 엘리트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이다. (p.13)

사람은 해야 할 일을 한 가지도 하지 못할 때 외로움을 느낀다. 성장하면서 역량을 모두 발휘할 때만 자신이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세상이 집같이 편안하다고 생각한다. (p.25)

조직에서 발생하는 세부적인 일에 보통 사람들이 성심껏 몰두하여 처리하는 과정에서 이들만의 독창성이 표출된다. 조직에서의 이런 지적 사고력이 과학이나 철학적 사고에서도 그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p.46)

나에게 최적의 환경이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그들의 일부라는 소속감이 없는 곳이다. (p.77)

중요한 사실은 자유의 도움으로 많은 것을 이룰 수 없는 사람들, 자유가 맞지 않는 사람들이 권력에 목말라 한다는 점이다. 자유에 대한 욕망은 전형적으로 `가진 자`의 속성이다. 이런 사람들은 `날 내버려둬. 난 스스로 성장하고 배우며 내 역량을 발휘할 거야`라고 외친다. 그렇다면 권력에 대한 욕망은 기본적으로 `가지지 못한 자`의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히틀러에게 진정한 예술가의 재능과 기질이 있었다면, 나폴레옹에게 위대한 시인이나 철학자의 소질이 있었다면, 이들 모두 절대 권력에 온 힘을 다해 매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 한마디로 말해 자유로운 환경에서 마음껏 성취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한 사람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억척을 부린다. (p.195)

행복감을 느끼는 데 글쓰기가 꼭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이런 단순한 이유로 글을 써야 한다. 내 이름이 활자화되기를 특별히 바라지도 않고 아무에게도 빚진 것이 없다. 나는 그저 꾸준히 생각하고 쓸 뿐, 그 결과 생기는 부산물은 제 스스로 알아서 가도록 내버려둔다. (p.192)

활기찬 사회는 사회 구성원이 장난감에 마음을 쏟고 생필품보다는 사치품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는 곳이다. 독선적인 도덕주의자들은 이런 사회를 욕하겠지만, 아이들이나 예술가나 생필품을 필요로 하는 것 이상으로 사치품을 원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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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글쓰기 방식은 벤야민 역사철학의 중심 테마인 역사 서술과 인식의 문제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 벤야민의 유물론적 역사기술은 "역사의 대상을 역사적 흐름의 연속성으로부터 떼어내는 작업"이다. 그것은 역사의 "서사시적 요소"를 포기하고 연구의 대상이 되는 시대를 "물화된 역사의 연속성"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시대의 균질성을 폭파"한다. 그에게 "구성은 파괴를 전제하며" 그 역도 또한 진실이다. 이러한 파괴의 작업이 왜 필요한 것인가? 그 이유는, 사료가 언제나 특정한 역사철학적 전제들에 의해 이미 전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선행하는 구조를 해체하지 않는다면, 역사를 인식하고 서술한다는 것은 늘 역사에서 승리한 자들의 시선과 논리로 이미 구축된 역사 이해를 강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혁명적 역사서술은 이러한 연속성의 외관을 파괴하여 역사적 사물들을 역사철학적 전제들로부타 탈환하고, 해방된 사료를 새롭게 해석하고 배치함으로써 지나간 사건들을 역사적 지금(Jetzt)의 정치적 맥락에서 재구성하고자 한다. (p. 183-184, 6장 파상력이란 무엇인가? II. 파괴, 폐허,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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