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나를 영광과 부유함의 길로 인도하지 않았다. 사랑의 길로도....그래 아무도 나를 사랑으로 이끌지 못했다. 아니 사랑이란 것이 나의 길을 방해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나의 길을 단절시키거나 무너뜨렸을 뿐.... 이제 남아 있는 나의 삶은 마치 200개의 나뭇조각을 맞추는 퍼즐 같다. 한 조각 한 조각 맞추어서 원래의 그림을, 숲 속의 평화로운 집을 만들어야 하는.... 아, 그런데 누군가가 벌써 평화로운 풍경을 마구 흩트러 놓았다. 나는 더 이상 노란 린치 열매가 매달려 있는 지붕 조각도, 푸른 포도 조각도, 깊은 숲의 나무 조각도 찾아내지 못할 것 같다. (27-28) - P27

지금 나는 다른 걱정, 다른 일들에 얽매여 있다. 무엇보다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는 걱정, 내 춤과 노래를 금과 바꿔야 하는 일에.... 난 돈 버는 습관과 돈에 대한 여성 특유의 욕구에 참 빨리 익숙해졌다. 내가 내 생활비를 번다. 이제는 그것이 명제가 되었다. 난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서 내가 돈을 번다고 기뻐하며 되뇐다. 뮤지컬 배우이고 마임 배우이고 무희이기도 한 내가 돈을 계산하고 물건값을 깎고 흥정 하는 지독하고 성실한 상인으로 변한 것이 놀라울 뿐이다. 그것은 비록 돈 버는 재주가 없던 여자라도 자신의 삶과 자유가 전적으로 돈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금방 배우게 되는 일이다. (34) - P34

그는 대체 생각이란 걸 할까? 독서도 하고 일도 할까? ...그는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지지만 실제로는 어느 것에도 관계하지 않는 평범한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된다. 명석하지는 않지만 이해력이 빠르고 아름다운 음성에 세련된 어휘, 어린애 같은 천진난만한 미소 등 남자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의 남자, 그가 바로 내 연인인 것이다.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 그에게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을 말해 보자. 그것은 예민하고 수줍은 이들에게서 보게 되는 일종의 은근한 시선, 뭔가 추구하는 듯하면서도 때로는 아무것도 담지 못하는 시선이다.
그는 누구나처럼 여행을 했다. 그러나 그리 멀리도, 그렇게 자주도 하지 않았다. 그는 남들이 읽는 책도 읽었고 사람들과도 제법 교제를 했지만 진짜 친한 사람을 꼽으라면 세 사람도 이름을 채 대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평범함을, 자신에 대하여 아무것도 말할 게 없는 너무나도 솔직한 단순함 때문에 용서한다. (101) - P101

가엾은 뒤프랭쇼텔! 지금 속고 있는 사람은 바로 당신일 것이다. 내가 이제는 매력이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그냥 뮤직홀의 무대에 내 방식대로 칩거하는 늙은 여배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당신에게 말해 주어야 할 것이다. 아니, 나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기껏 빵, 소금, 창문, 날씨, 연극, 가족과 같은 단어들이 주류를 이루는 초보적인 문장들이 우리의 대화를 만들어 주고 있기 때문에....
(...) 가엾은 뒤프랭쇼텔, 나는 당신에게 진짜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나는 늘 나 자신의 언어, 조금은 돌연하고 계속되는 수식어로 끝날 줄 모르는 과거의 여류학자풍 언어와 또 다른 언어, 뮤지컬에서 사람들이 즐겨 쓰는 거칠고 유치하고 다채로운 언어 사이에서 망설이다가 결국 침묵을 택하고 말기에....(106) - P106

불 켜진 창 너머로 가는 비가 하얀 가루처럼 검은 도로 위로 흩뿌린다. 고백건대, 이 남자가 내일 다시 오는 것을 허락하면서 나는 그를 친구나 연인으로서가 아니라 누군가 내 삶과 나라는 존재를 바라봐 주는 구경꾼이 있었으면 하는 내 탐욕스러운 갈망에 넘어간 것이다. 어느 날 마르고가 내게 말한 적이 있다. "그 누군가의 앞에서 살고 있다는 허영심을 포기하려면 얼마나 늙어야 할까!" 라고. 하지만 고백건대 몇 주 전부터 이런 정열적인 구경꾼의 존재에 내심 흥미를 가지지 않았던가? (142) - P142

아직 끝내지 못한 편지. 내가 그토록 사랑하고 싶어 했던 사랑하는 침입자. 나는 당신을 너그럽게 용서합니다. 이제 나는 물러납니다. 당신은 그저 슬픔으로 내 편지를 읽기만 하면 될 겁니다. 당신은 얼마나 치욕적인 대면과 값비싼 희생이 따르는 논쟁을 피하게 된 것인지를 잘 모를 거예요.
난 당신을 버리고 당신이 아닌 다른 모든 것을 선택합니다. 나는 당신이란 사람을 진즉에 알았고 지금도 알고 있어요. 모든 것을 준다고 하면서 실은 모든 것을 독점하는 자가 바로 당신이 아니던가요? 당신은 나와 삶을 같이 나누자고 했죠. 삶을 함께 나누는 것, 그것은 결국 당신의 몫을 인정한다는 것이겠지요. 행동 하나하나에, 생각 한순간 한순간마다 당신을 인정하고 반쪽이 된다는 것 아니겠어요? 하지 만 왜 하필 당신이던가요? 모든 사람에게 거부했던 일을....
(...)
나는 도망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알지요. 내가 아직 당신을 떠난 것이 아니라는 걸. 자유롭게 떠돌면서도 나는 때때로 당신이라는 벽의 그늘을 그리워할 테지요. 얼마나 여러 번 나는 당신이라는 사랑의 버팀대로 돌아와서 쉬고, 상처받고 싶어 할는지요? 얼마나 오랫동안 당신이 줄 수 있는 길고 긴, 갑자기 멈추었다 다시 불꽃을 피우는 관능의 날개를 그리워할는지.... 스러졌다 다시 피는 꽃처럼, 피가 온 몸으로 솟구쳐 흐르며 백단향과 갓 벤 풀 냄새가 진동하는 기쁨도…. 아! 당신은 오랫동안 내 길 위의 꺼지지 않는 하나의 갈증으로 남아 있을 겁니다.
나무에 매달린 과일처럼, 멀리 흘러가는 물처럼, 그리고 내가 스쳐 지나가는 행복한 작은 집처럼 나는 당신을 두고 두고 갈망할 테지요... 그리고 내 욕망이 헤매는 곳곳마다 내게서 꽃잎처럼 떨어져 나간 내 수많은 그림자들을 남겨 두고 다니겠지요. 고향의 골짜기에 있는 온기 있는 푸른 돌 위에 하나, 햇빚이 안 드는 골짜기의 습한 구덩이에 하나, 새와 돛, 바람, 파도를 쫓아다니는 것 하나 이렇게 말이죠. 아 마 당신에게는 가장 끈질긴 놈이 달라붙을 거예요. 쾌락이 시냇물 속 풀잎처럼 흔들리는 물결 같은 것이.... 그러나 시간이 가면 그것도 다른 그림자들처럼 녹아 없어질 테고 내 걸음이 멈추고 마지막 작은 그림자조차 스러지게 되면 결국 나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을.... (294-297) -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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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양장)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2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은 유전과 환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고, 인간의 자유 또한 제한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인간에겐 그 조건에 대해 자기 입장을 취할 자유가 있다.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빠져 헐떡이며 허우적거릴 때, 그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으로 가는 길을 제시해준다. 그의 이례적인 삶 자체가 사례가 되어 그의 메시지가 거부감 없이, 깊이 파고든다.

삶의 의미를 구현하는 것이 인간의 능력. 순간순간 각자의 그것을 찾는 것이 삶 자체. 인간은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일체의 정답은 없으나, 각자 구성해낸 의미가 삶 자체이고, 행복이다. 고통, 죄, 죽음 속에서도.

삶에 대한 근본적인, 그 어려운 질문에 꽤나 울림이 큰 답이 담겨 있는 책. (23.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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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거리는 자기 자신의 역사라는 징역형으로부터 도망쳐 열린 운명이라는 가능성으로 들어온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22) - P22

생각해보면, 나는 어떤 것에는 ‘네‘라고, 또 어떤 것에는 ‘아니요‘라고 말하다 보니 어느새 혼자 살게 되었다. 대답하는 일 자체가 선택이라는 것을 나는 결코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내 대답에는 오직 내가 중대하게 관심을 가졌던 한 가지만이 강렬한 영향을 끼쳤다. 나는 외로움을 두려워하게 되는 일을 경계했다. 고독한 노년의 공포에도 몸을 사리지 않으면서 일과 사랑 같은 삶의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일이 내게는 중요하게 느껴졌다.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너무도 터무니없이 싼 값에 팔아넘기는 여자들이 너무 많다고 나는 주장했다. 그러니까 그 불안에 저항하는 일은 내게 정치적 견해 비슷한 것이었다. 그 입장을 쉽게 취할 수 있었다. 그문제를 나는 초보적인 수준으로만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66-67)

나는 ‘결혼에 반대하며‘라는 제목으로 격렬하게 결혼을 비판하는 글 한 편을 썼다. 그 글에서 나는 우리가 결혼하는 이유는 자아를 발견하는 모험을 하거나 내면의 삶을 공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원초적인 종류의 감정적 위안을 얻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그 위안에는 편협한 태도, 고독을 대하는 데 있어서의 미숙함, 몇 년씩 꺼내지 않고 지나가는 내면의 자아에 대한 어려운 질문 같은 것이 따라온다. 외로움을 두려워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나는 주장했다. 두려움에 맞서 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두려움 속으로 들어가 두려움과 함께 살아가면서 두려움을 제압해야 한다. 나는 사랑이나 가정에서의 친밀감 없이 지내는 것은 사실 반만 살아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관대하게 인정했지만, 결론에서 지금 우리는 스스로에게 진실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만나 하나가 된다는 근거 없는 믿음은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 그 사실을 자각한 채 살아가는 일이 삶의 과업이다. 외로움을 이겨낼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외로움이 죽음을 초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배울 수는 있다. 그런 앎은 힘이 되고, 동맹이 되고, 무기가 된다. (7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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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날카로우며 가벼운 듯 무거운 에세이. 간만에 갈증 나지 않는 에세이를 읽었다. 현실과 경험을 떠드는 수다 밑에 깔린 통찰력이 그녀의 텍스트를 흩날리지 않도록 잘 붙잡아준다. 많은 철학자들이 사랑하는 도시 산책 에세이의 꽤나 쉬운 버전이랄까?

신경증적인 인간 혐오나 무조건적인 인간애 같이 어느 한쪽에 매몰되지 않은 저자가 도시와 관계, 타인과 자기 자신을 이리저리 관찰한다. 자신의 내면도 엄중한 시선으로 해체시키는 투명한 용기 덕분에 그녀에게서 위로를 얻는다. 그녀처럼 도시에 혼자 사는 여자로서, 그녀의 이야기가 내게 괜찮다고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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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에 대하여)
서로에게 심취한 두 사람의 관계는 1년 반 남짓 지속됐다. 이후 콜리지는 증폭된 혼란에 내면을 잠식당한 반면, 워즈워스의 내면에는 자부심이 거의 확고하게 자리 잡으면서, 두 사람이 서로에게 몰두하던 시간도 끝이 났다. 2년 가까이 유지돼 온 각자의 모습, 서로에게서 온전한 기쁨을 만끽하던 두 사람은 이제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다고 서로를 알기 전의 상태로 돌아간 것도 아니었다. 서로의 존재 속에서 자기 최선의 자아를 느끼는 게 더는 불가능해졌을 뿐이다.
자기 최선의 자아. 이는 몇백 년간 우정의 본질을 정의할 때면 반드시 전제되는 핵심 개념이었다. 친구란 자기 내면의 선량함에 말을 건네는 선량한 존재라는 것. 치유의 문화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이런 개념은 얼마나 낯선가! 오늘날 우리는 서로 최선의 자아를 긍정하기는커녕 그것을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우정이라는 결속을 만들어내는 것은 오히려 우리 자신의 감정적 무능-공포, 분노, 치욕을 인정하는 솔직함이다. 함께 있을 때 자신의 가장 깊숙한 부끄러움까지 터놓고 직시하는 일만큼 우리를 가까워지게 만들어주는 것도 없다. 콜리지와 워즈워스가 두려워했던 그런 식의 자기폭로를 오늘날 우리는 아주 좋아한다. 우리가 원하는건 상대에게 알려졌다는 느낌이다, 결점까지도 전부. 그러니까 결점은 많을수록 좋다. 내가 털어놓는 것이 곧 나 자신이라는 생각, 그것은 우리 문화의 대단한 착각이다. (28)

(남자와의 관계에 대하여)
나는 두 눈이 가늘어지며 심장이 식어가는 걸 느꼈다. 처음으로 그러나 마지막은 아니었다ㅡ남자들은 나와는 다른 종이라는 자각을 했다. 철저히 분리된 이질적인 종. 나와 내 연인 사이에 보이지 않는 얇은 막 같은 게 드리워진 것만 같았다. 욕망이 침투할 만큼 성기되, 인간적 유대는 어룽거리게 보일 만큼 불투명한 막. 내겐 그 막 너머에 있는 사람이 현실 같지 않았고, 나도 그에게 그런 것 같았다. 그 순간 남자랑 잘 일이 평생 다신 없대도 상관없었다.
물론 나는 그 뒤로도 그들과 잠자리에 들었지만 저 남자와 헤어진 뒤에도 수없이 사랑하고 다투고 황홀감을 맛보았지만-보이지 않는 그 미묘하게 버성긴 괴리의 기억이 늘 나를 따라다녔고, 떠올리고 싶지 않을 때에도 떠올랐다. 나를 사랑한다면서도 자기가 인격체라고 느끼는 데 필요한 것이 내게도 필요하다는 사실은 납득하지 못하는 남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그 막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훗날, 내가 보이지 않는 막이라는 표현을 쓰면 그런 경험에 대한 분석은 저마다 제각각일지언정-무슨 얘긴지 단박에 알아듣는 여자들을 알게 됐다. 늘 그런 식이죠, 그들은 대부분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 여자들은 전부터 쭉 그래왔던 그 방식과 이미 화해를 한 상태였다. 나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내게는 그 일이 매트리스 스무 장 아래 깔린 완두콩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내 영혼을 쑤셔대는 통에 도저히 배겨낼 수가 없었다. (38-39)

(운명적인 남성에 대한 환상에 대하여)
나는 여전히 엄마의 딸이었다. 엄마가 원판이면 나는 현상본이었지만, 어쨌든 우린 둘 다 거기에 있었다. 결국엔 혼자였다. 제짝이 아닌 사람과 함께.
도러시아나 이저벨이 그랬듯 나 역시 엉뚱한 남자를 짝으로 착각할 운명이었다는 걸, 제럴드와 헤어지고 몇 년이 지날 때까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가 달려왔던 이유가 그거였는데. 그런 데 골머리를 썩이지 않았더라면 다들 무언가 쓸모 있는 과업을 찾느라 짝을 찾네 마네하는 문제 따위는 쭉 잊고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잊지 않았다. 결코 잊은 적이 없었다. 도무지 찾을 길 없는 진정한 짝이 인생의 화두가 됐고, 그런 사람의 부재는 모든 걸 정의내리는 경험이 됐다.
공주와 완두콩에 관한 동화를 이해하게 된 건 그 무렵이었다. 공주가 그동안 찾아다닌 건 왕자가 아니라 완두콩이었다. 스무 겹 매트리스 밑에 깔린 완두콩의 존재를 느끼는 순간, 바로 그때가 정의를 내리는 순간이다. 지금껏 이 길을 걸어온 이유, 거기서 확인하게 된 사실 불경스런 불만이 삶을 끝없이 가로막으리라는 것―그것이 바로 이 여정의 의미임을.
우리 엄마가 그랬다. 엄마는 그런 남자가 없다는 사실에 시름하느라 긴 세월을 보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강박적 갈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우리 모두―도러시아와 이저벨, 엄마와 나, 동화 속 그 공주―가 그랬다. 갈망이야말로 우리를 매혹하고 우리에게서 가장 깊은 관심을 끌어내는 힘이었다. 과연 체호프식 삶의 정수라고 할 수 있었다.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리도 없는것 때문에 긴긴 막이 세 개나 흐르도록 한숨짓는 그 모든 나타샤를 생각해보라. 답도 없는 딜레마를 늘어놓고 있으면 엉뚱한 남자들만 우르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제럴드와 나는 끝없이 대화를 나누고 나누고 또 나누는 나타샤와 의사 같았다. 나타샤가 나누는 매혹적인 대화 이면에는 어마어마한 수동성이 자리 잡고 있고, 의사는 이를 더 두드러져 보이게 만든다. 어쩔 수 없이 나타샤와 의사는 헤어져야만 한다. 둘은 그저 서로를 곁에 둔 채 피차 어느 정도만 마음을 쓸 뿐이니까. (71-73)

(우정 없는 욕망의 남녀관계에 대하여)
문제는 우린 친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우정 없이, 우리는 황야에 외따로 머물렀다.
나는 세상 사람 모두가 알면서도 늘 잊고 지내는 게 무언지 깨달아가기 시작했다. 성적으로 사랑받는 것은 실제 자기 자신으로서 사랑받는 게 아니라 서로의 내적 욕망을 자극하는 능력으로 사랑받는 것이란 걸. 매니가 욕망했던, 내게 할당됐던 그 권력이 오래가지 않으리라는건 기정사실이었다. 누군가를 영원토록 매혹할 수 있는 건 오직 사람의 머릿속 생각이나 영혼의 직관뿐인데, 내가 품은 그것들을 매니는 사랑하지 않았다. 물론 싫어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사랑한 것도 아니었다. 매니에겐 그런 것들이 필요치 않았다. 이렇게 누군가와 감각으로만 연결된다는 건, 결국 내가 나 자신에게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내던져져서, 취약해지다 못해 곧 자기회의에 빠져죽어갈 거라고 느끼게 된다는 걸 의미했다. (128-129)

(2년간 사랑과 이상에 모든 걸 쏟아붓고 문득 칼같이 귀족적 기득권의 삶으로 돌아간 변호사에 대하여)
생각이 날락 말락했다. 이 모든 게 연상시키는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있는 거 같은데? 다음 순간 생각이 났다. 애슐리 윌크스를 보고 있었구만. 감수성도 발달했고 자유로운 기질도 있는 사람이지만, 자기 영혼을 향해 묻기보다는 일정한 삶의 방식에 제 발로 얽매임으로써 타고난 성향을 마비시켜버린 남자.
로저 뉴먼은 잠시나마 제인 브라운과 사랑에 빠져 빈민가에서 일하는 동안 열정이란 걸 몸소 겪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을 뿐이었다. 머리가 비상한 사람이었으므로 저 아랫동네에서 벌어지는 일을 죄다 겪어보고 깨치는 것도 나쁠 것 없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도 한낱 일시적인 조사의 일환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었다.
동행한 변호사와 늦은 밤 파크애비뉴를 따라 걷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헨리 제임스가 쓸 얘기지 이디스 워튼은아니네. 워튼은 자유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었지만, 제임스는 아무도 자유를 원하지 않는 걸 알았으니까. (15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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