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아들에게서 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게 법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수록 더욱 신중하게 지켜야 할 모종의 한도를 벗어나는 짓이라고 느꼈다. 따라서 아들을 나무랐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야단친 적이야 많지만, 이번만큼 호되게 꾸짖은 적은 없었다. 막 시작된 불길한 결말의 예언 같다고 할까! 아버지는 삶의 근본 감정이 모욕당한 기분이었다. 무언가 중요한 성취를 이룬 많은 남자들이 그러하듯, 그에게 삶의 근본 감정은 개인적 이익과는 동떨어진, 이른바 일반적이고 초개인적인 이익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달리 말하자면, 개인적 이익의 토대가 되는 것에 대한 진솔한 숭배였다. 그건 이익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리는 사람이 조화로운 공존과 일반적 원칙에 따르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굉장히 중요하다. 혈통이 좋은 개가 주인의 발차기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식탁 밑의 자리를 찾아드는 것은 개의 타고난 비천함 탓이 아니라 충직함과 지조 덕분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계산속이 밝은 인간도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사람과의 관계를 진정으로 깊이 받아들이는 조화로운 인간에 비하면 절반의 성공도 거두지 못하는 법이다. (21)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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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시네아스트의 야망이자 나 자신의 야망은, 전통적으로 시나리오 작가에게 귀속된 작업까지 감당함으로써 자기 작품의 온전한 작가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전능함은 장점이나 자극이 되지 못하고 종종 불편하게 느껴진다. 자신의 주제를 완전히 휘어잡고 아무에게도 설명할 필요 없이 그때그때 영감 혹은 필요에 따라 쳐내기도 하고 추가하는 작업은 사람을 취하게도 하지만 마비시키기도 한다. 이 편의가 함정이다. 자기가 쓴 텍스트라도 자기가 침범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게 안 되면 갈피를 못 잡게 되고 배우들도 감독을 따라 헤맨다. 혹은, 즉석에서 상황과 대사를 찍기로 했어도 ‘편집‘에서는 새로운 것과의 거리가 있어야 하고 글로 쓴 것의 독재는 영상으로 찍은 것의 독재로 대체되어야 할 것이다. 무작정 그때그때찍은 영상들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보다는 어떤 이야기에 맞게 영상을 구성하는 편이 쉽다. (8-9)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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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멀랜사는 또다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제 그녀의 배회는 전과는 달랐다. 이제 거친 남자들과는 절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고, 자신보다 나은 계층의 백인 남자들과 알고 지내고 싶어 안달하지도 않았다. 멀랜사는 이제 좀 더 진실한무엇인가를 원했다. 그녀에게 깊은 감동을 줄 뭔가를, 이제 그녀의 내면에 자리한 지혜와 함께 그녀 자신을 충만하게 채워줄 뭔가를, 정말로 온전하게 그녀를 채워 줄 뭔가를 갈망했다. (125, 멀랜사: 모두가 그녀일지도) - P125

제퍼슨 캠벨을 만나기 전 한 해 동안 멀랜사는 다양한 부류를 만났지만, 그들 누구에게도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냥 남자들을 만났고, 남자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냈고, 그러다 남자들을 떠났다. 어쩌면 그다음에는 좀 더 흥미로운 만남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매번 조금도 진지하지 않은 만남이었음을 깨닫게 될 뿐이었다. 그녀는 이제 뭐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고, 모두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지만, 그런 것이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그런 남자들과 어울리며 배울 것은 없음을 그녀는 깨달았다. 멀랜사는 깊이 있는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원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그런 남자를 찾았다고 확신했다. 그렇다, 깊은 가르침을 줄 수 있는 남자인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멀랜사는 이미 그가 원하던 남자임을 확신했다. (126-127, 멀랜사: 모두가 그녀일지도)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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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와 동시에 나는 그 신비스러운 곳에서 그 소위가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정말이지 너무나도 놀랐어요. 그때부터는 어릿광대가 아무리 발 뒤꿈치로 딱딱 소리를 내며 발을 굴러도 별로 재미가 없었어요. 나는 넋을 잃고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죠. 이 발견을 한 뒤로는 전보다 마음이 좀 가라앉은 듯도 했고, 어쩌면 오히려 더 불안해진 듯도 했어요. 무엇인가 좀 알고 나니까 그제서야 비로소 마치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느낌이 들더란 말이에요. 내 느낌은 옳았어요. 나는 연관성을 모르고 있었거든요! 사실은 모든 것이 이 연관성에 달려 있는데 말이에요」 (33) - P33

마리아네 역시 한동안은 자신을 속일 수 있었다. 그녀는 그의 생생한 행복감을 그와 함께 나누었다. 아, 단지 이따금씩 질책의 차가운 손이 그녀의 심장을 스쳐가지만 않았더라면 좋으련만! 빌헬름의 품에 안겨 있을 때에도, 그의 사랑의 날갯죽지 밑에서 비호를 받고 있을 때조차도 그녀의 심장은 가책을 느껴야 했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혼자 있게 되어, 그의 열정이 그녀를 두둥실 떠올려 놓은 구름 위로부터 떨어져 내려와 자신의 처지를 의식할 때면, 그녀의 꼴은 참담하기 짝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천박한 혼란 속에 살면서 자신의 상황을 기만하거나 아니면 차라리 그걸 모르는 척하고 지내는 동안에는, 그래도 경박한 태도가 그녀에게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에는 그녀가 겪는 사건들이 그저 개별적인 현상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쾌락과 짜증이 번갈아 왔고, 굴욕은 허영을 통해, 그리고 궁핍한 생활은 순간적인 풍요를 통해 보상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필요와 습관을 어쩔 수 없는 삶의 법칙이라고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었으며, 그 덕분에 그토록 오랫동안 모든 불쾌한 감정들을 그때그때 하루하루 애써 떨쳐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 가엾은 아가씨는 얼핏얼핏 자신이 보다 높은 세계로 넘어왔다고 느끼게 되었고, 마치 위에서 내려다보듯이 광명과 기쁨의 세계로부터 자신의 황량하고 타락한 생활을 굽어보게 되었으며, 욕망만 자극시킬 줄 알았지 그와 동시에 사랑과 존경심을 불러일으킬 수 없는 여자란 얼마나 비참한 동물인가를 실감했고, 겉으로나 속으로나 아무것도 나아진 것이 없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녀에게는 자신을 똑바로 일으켜 세울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의 내부를 둘러보아도 정신은 텅 비어 있고, 마음은 기댈 곳이 없었다. 사정이 이렇게 처량하면 처량할수록 그녀는 더욱더 집요하게 연인에게 매달렸다. 아니, 그를 잃어버릴 위험이 하루하루 다가옴에 따라 열정도 나날이 더욱 커져만 갔다. (54-55) - P54

하지만 그는, 처음 그녀를 찾아가던 때에 이따금 그녀의에서 만났던 여느 배우들의 행동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쉽게 자기의 평소 생각과 일치시킬 수는 없었다. 빈둥거리며 일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자기네들의 직업과 목표에 대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그들이 어떤 극작품의 문학적 가치에 관해 이야기하고, 옳건 그르건 간에 그것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언제나 이 작품이 히트를 칠까? 이것이 인기 있는 작품인가? 얼마나 오래 공연할 수 있을까? 몇 회나 공연될 수 있을까?> 하는 따위의 질문이나 대개 이와 비슷한 언급들뿐이었다. 그런 다음에는 대개 화살이 감독한테로 돌아가, 출연료를 너무 적게 준다거나이런저런 배우에게 특히 공정하지 못하다고 비난하다가 이윽고ㅎ화제는 관객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은 옳은 배우에게 갈채를 보내는 적이 거의 없다고 한탄하고, 독일 연극계가 날로 개선되고 있다. 배우가 그 업적에 따라 점점 더 높은 대우를 받고는 있지만, 정말 충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등의 말이 나왔다. 그러고 나서는 카페나 술집 얘기가 무성해져서,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으며 동료 모씨가 얼마나 빚졌는지, 그래서 봉급에 서 얼마씩이나 떼여야만 하는지가 화제에 올랐고, 들쑥날쑥한 주당 출연료 액수와 경쟁 극단의 간계에 관해서도 얘기가 되다가 끝에 가서는 결국 관객이 큰 관심을 가져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다시금 문제되었으며, 국민과 세계 인류의 교양 형성에 미치는 연극의 영향도 잊혀지지 않고 언급되었다. (91-92) - P91

"... 우리는 깊은 생각 없이 방황하고 달콤한 우연에다 우리의 운명을 내맡겼다가는 나중에 그렇게 신념 없이 흔들리면서 살아온 인생의 결과에다 신의 섭리라는 이름을 붙이곤 하지요. 그러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경건하다고 믿는 것이지요" (109) - P109

"... 행복과 환락을 향해 치닫고 있는 세상 사람들을 보라구! 그들의 소망, 노력, 돈은 쉴새없이 무엇인가를 뒤쫓고 있지. 그런데 무엇을 뒤쫓고 있지? 그것은 시인이 이미 자연으로부터 얻은 것이지. 즉, 이 세상을 즐기는일, 다른 사람 속에서 자기 자신을 공감하는 일, 그리고 종종 화합이 안 되는 많은 사물들과 조화를 이루며 함께 살아가는 일이지.
무엇이 사람들을 불안하게 할까? 그것은 바로 그들이 자신의 개념들을 사물들 자체와 일치시킬 수 없기 때문이고, 향락이 그들의 손아귀에서 슬쩍 빠져 달아나 버리기 때문이며, 소망했던 것이 너무 늦게 오기 때문이며, 달성하고 성취한 모든 것도 인간의 욕망이 애초에 기대했던 만큼 그렇게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지. ..." (127)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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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생래가 수줍은 사내였는지 모른다. 과대한 몸짓 과대한 변설, 발이 땅에 붙어 있지 않은 그 많은 자칭 타칭의 독립지사 영웅들, 권필응의 수줍음은 그러나 영웅심에 대한 강한 제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며 항상 환상을 배제하며 정확하고 적확하게 사고를 집중시킬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상대적으론 그 정확함으로 하여 그를 환상하게 된다. 믿게 된다. 불가사의한 힘을 느끼게 한다. (305)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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