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성`은 지속적으로 자신의 탄생을 새로운, 언제나 새로운, 그 무엇으로 보고자 하는 근대의 병이디. 또한 근대성이란 오직 죽음에게만 말을 건네는, 유행하는 허상이다. (p. 7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설의 마지막 즈음에서는 화자가 자신의 아내(A…)와 이웃이자 아내의 내연남인 프랑크가 매번 반복해 이야기하는 소설의 줄거리를 이야기한다. 내연의 관계에 있는 그 둘이 항상 소재로 삼는 소설은 실제의 것이 아니라 지어내서 한 이야기였고, 그게 그들만의 놀이였다는 것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화자의 감정과 이성이 완전히 배제된 채 말 그대로˝ 카메라의 눈˝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인상 깊다.

대화의 소재를 제공해 주는 것은 이 소설이다. 복잡한 심리적 갈등을 제외한다면 소설은 아프리카의 식민지 생활에 대한 일상적인 이야기로 돌풍에 대한 묘사, 원주민의 반란, 클럽의 이야기 등등을 담고 있다. A…와 프랑크는 코냑과 탄산수를 섞은 것을 조금씩 마셔가면서 그 소설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한다. 안주인은 음료를 세 개의 잔에 따라 나누어 주었다.
책의 주인공은 세관 관리다. 주인공은 관리가 아니라 어느 오래된 상사의 간부 사원이다. 그 회사는 질이 나빠 자칫하면 사기 행각을 벌인다. 그 회사의 사업은 대단히 훌륭하다. 주인공은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성실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는 성실하다. 그는 전임자가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상황을 다시 회복하려고 노력한다. 전임자는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그러나 주인공에게 전임자가 있을 수 없다. 그 회사는 아주 최근에 설립되었기 때문이다. 또 사고가 아니었다. 게다가 문제가 되는 것은 선박(커다란 흰색 선박)이지 자동차가 아니다. (1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 또는 독서에 관한 책을 좋아한다(물론 `기적의 속독법`이나 `청춘이 읽어야 할 책 베스트 20` 같은 책들을 제하고).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책`과 `독서`라는 소재에 관한 순수한 흥미가 첫째이고, 독서에 관한 이야기를 독서하고 책에 관한 책을 읽는다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폐쇄된 순환 구조가 주는 묘한 즐거움이 둘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꽤 적합했다. 같은 소재에 대한 흥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많은 책들을 들춰보았지만 제목에 낚여 주로 실패를 겪었던 나로서는 반가운 마음이었다. 고로 지난 여름 [종이책 읽기를 권함]을 읽고 실망한 경험을 이 책으로 보상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책으로 집이 기울어진 사람들, 지진과 화재로 책이 다 타버린 사람들, 책을 위해 집을 지은 사람들, 책에 주거 공간을 다 내준 사람들 등등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책에 관한 에피소드가 소탈하게 쓰여있다. 기이하다면 기이한 에피소드가 적지 않은데도 글에서 소탈함이 느껴지는 것은 저자 자신도 책 2만여 권을 품고 사는 장서가이기 때문이리라. 다른 장서가들을 인터뷰하면서 수집한 에피소드들이 저자 자신에게는 결코 유별난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도 책에 잡아먹힌 사람으로써, 자신이 속하지 않은 세계를 묘사할 때에나 느끼는 과장의 욕구를 없앨 수 있었을 것이다.

소설과 영화에나 나올 법한 장서가들의 풍경이 산뜻하게 그려진 데에는 일본스러운 겸손함과 송구스러움(?)도 한몫한다. 일본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간간이 접하는 일본의 영화와 책들이 참 그들의 음식과 닮았다고 종종 느낀다. 이 책도 낫또 같은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름다움은 완전한 기적을 낳는다. 아름다운 여자의 모든 정신적 결함은 혐오감을 일으키는 대신 어떤 특별한 매력을 발휘한다. 그 결점 자체조차도 이름다운 여자에게 있어서는 사랑스런 아름다움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름답지 않으면 여자는, 만일 사랑은 받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존경은 받으려면 남자보다 스무 배나 더 현명해야 한다. (p. 27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9.6
여기서 `공부`의 의미는 조금 다르다. 한 세기 전의 신학자였던 저자에게 `공부`는 근본적으로 ˝신이 부여한 소명˝을 따라 ˝신의 그림자를 쫓아˝ 학문을 탐구하는 것이었고, 그런 그가 `공부하는 삶`을 사는 방법에 대해 일러두는 책을 쓴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서 공부를 하려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주된 부분이기에 큰 괴리는 없었다. 신학을 공부하려는 사람도 아니거니와 무교인 나에게는 자칫하면 먼 얘기로 들릴 수 있는 부분들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때에 따라 `신`이라는 단어를 `나 자신`이나 `세상` 또는 `자연`으로 바꾸어 읽으니 더 흡족스러운 가르침으로 다가왔다. 공부에 몰입하여 `신`과 직접 교통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에서 `신`이라는 단어를 저 앞서 말한 단어들로 바꾸어 읽으니 얼마나 중요한 말이 되던지.

9.7
인간인 이상 영원히 모를 테니까 다 안다고 생각하지 말 것, 부분을 전체로 착각하지 말 것, 진리를 얻기 위해 사물의 이면을 볼 것, 사물과 자연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말하고 있으므로 귀를 기울일 것 등등 마음 수련에 대한 부분은 마치 명상집 같다. 신의 뜻을 추구하는 공부에 대한 이야기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꼭 탐구의 영역을 한정하지 않더라도 명상과 공부하는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어떤 분야가 되었든 마음을 가지런히 해야 그 학문의 본뜻이 쉬이 흘러들어오기 마련이니까.

9.8
어쨌건 신학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맞지 않는 것도 꽤 있다. 신과 성별(聖別)에 대한 이야기는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데 무교로서 어쩔 수 없이 지루했다. 그리고 되풀이하는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많다.

9.8
학문 공부도 결국 인생 공부라는 것을 잊지 말 것. 그렇기에 학문을 공부하는 행위 자체가 곧 지속적인 목적이자 삶의 궁극적 의미라는 것을 잊지 말 것. 생각해보면 내게 수단으로서의 공부가 아닌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할 기회가 생긴 게 큰 축복이자 특권 아닌가. 더군다나 요즘 같은 세상에. 그러니까 쓸데없는 세상살이 걱정 끌어모아서 하지 말고,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주어진 이 특권을 감사히, 충만히 누려보자.

9.8
공부를 하는 기간동안 겪게 되는 시련들은 모두 공부로 치료하라는 말.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우울할 때, 무기력할 때, 좌절스러울 때, 외로울 때 모두 공부에 의지해 평온을 소환해 보자. 학문을 공부할 때에만 얻을 수 있는 충만함이라는 그 특정한 알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하자. 물론 말로만 쉬운 이야기지만 노력이라도.


9.8
끊임없는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이며 결단을 내린 지난 시간을 잠시 잊고 있었다. 막상 용기를 내어 새로운 결정을 실천하려 하니 소심함이 솟구쳐 기회비용에 마음을 뺏긴 채 오들오들 떨면서 손톱만 물어뜯고 있었다. 이 책이 그 마음의 먼지를 후,하고 불어주었다. 얕은 먼지 아래에 가려진, 아직 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토대를 보여주었다. 참, 나는 성공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공부하고 싶어서 공부하려는 거였지. 왜 나부터도 스스로에게 효용의 질문을 하고 있었을까. 그러니 부정적인 답이 나오고 불안했던 건데. 세간의 물결에 쉬이 휩쓸리는 나를 잡아주고, 심지어 앞으로 휩쓸리지 않는 방법까지 조곤조곤 세세히 알려주었으니 이제 나만 잘 살아보면 될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