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레네 감독의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를 보는 것 같았다. 역시나 로브그리예가 이 영화의 각본을 썼다고. [질투]의 서술은 마치 파편을 나열하듯 흐르는 [지난해 마리앙바드에서]의 진행과 같다. 화자는 소멸된 채 그의 눈만 남은 듯한 문장들. 영화의 상영 시간이 지날수록 그랬던 것처럼, [질투]에서도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 `투명한` 조각들이 모여 이야기, 심상과 감정, 화자의 존재를 어슴푸레하게 형성한다. 이 특별한 스타일 덕분에 소설에는 어떤 아우라가 생긴다. 그 아우라는 독자까지 휘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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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성`은 지속적으로 자신의 탄생을 새로운, 언제나 새로운, 그 무엇으로 보고자 하는 근대의 병이디. 또한 근대성이란 오직 죽음에게만 말을 건네는, 유행하는 허상이다. (p.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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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마지막 즈음에서는 화자가 자신의 아내(A…)와 이웃이자 아내의 내연남인 프랑크가 매번 반복해 이야기하는 소설의 줄거리를 이야기한다. 내연의 관계에 있는 그 둘이 항상 소재로 삼는 소설은 실제의 것이 아니라 지어내서 한 이야기였고, 그게 그들만의 놀이였다는 것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화자의 감정과 이성이 완전히 배제된 채 말 그대로˝ 카메라의 눈˝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인상 깊다.

대화의 소재를 제공해 주는 것은 이 소설이다. 복잡한 심리적 갈등을 제외한다면 소설은 아프리카의 식민지 생활에 대한 일상적인 이야기로 돌풍에 대한 묘사, 원주민의 반란, 클럽의 이야기 등등을 담고 있다. A…와 프랑크는 코냑과 탄산수를 섞은 것을 조금씩 마셔가면서 그 소설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한다. 안주인은 음료를 세 개의 잔에 따라 나누어 주었다.
책의 주인공은 세관 관리다. 주인공은 관리가 아니라 어느 오래된 상사의 간부 사원이다. 그 회사는 질이 나빠 자칫하면 사기 행각을 벌인다. 그 회사의 사업은 대단히 훌륭하다. 주인공은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성실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는 성실하다. 그는 전임자가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상황을 다시 회복하려고 노력한다. 전임자는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 그러나 주인공에게 전임자가 있을 수 없다. 그 회사는 아주 최근에 설립되었기 때문이다. 또 사고가 아니었다. 게다가 문제가 되는 것은 선박(커다란 흰색 선박)이지 자동차가 아니다.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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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또는 독서에 관한 책을 좋아한다(물론 `기적의 속독법`이나 `청춘이 읽어야 할 책 베스트 20` 같은 책들을 제하고).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책`과 `독서`라는 소재에 관한 순수한 흥미가 첫째이고, 독서에 관한 이야기를 독서하고 책에 관한 책을 읽는다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폐쇄된 순환 구조가 주는 묘한 즐거움이 둘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꽤 적합했다. 같은 소재에 대한 흥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많은 책들을 들춰보았지만 제목에 낚여 주로 실패를 겪었던 나로서는 반가운 마음이었다. 고로 지난 여름 [종이책 읽기를 권함]을 읽고 실망한 경험을 이 책으로 보상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책으로 집이 기울어진 사람들, 지진과 화재로 책이 다 타버린 사람들, 책을 위해 집을 지은 사람들, 책에 주거 공간을 다 내준 사람들 등등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책에 관한 에피소드가 소탈하게 쓰여있다. 기이하다면 기이한 에피소드가 적지 않은데도 글에서 소탈함이 느껴지는 것은 저자 자신도 책 2만여 권을 품고 사는 장서가이기 때문이리라. 다른 장서가들을 인터뷰하면서 수집한 에피소드들이 저자 자신에게는 결코 유별난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도 책에 잡아먹힌 사람으로써, 자신이 속하지 않은 세계를 묘사할 때에나 느끼는 과장의 욕구를 없앨 수 있었을 것이다.

소설과 영화에나 나올 법한 장서가들의 풍경이 산뜻하게 그려진 데에는 일본스러운 겸손함과 송구스러움(?)도 한몫한다. 일본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간간이 접하는 일본의 영화와 책들이 참 그들의 음식과 닮았다고 종종 느낀다. 이 책도 낫또 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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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완전한 기적을 낳는다. 아름다운 여자의 모든 정신적 결함은 혐오감을 일으키는 대신 어떤 특별한 매력을 발휘한다. 그 결점 자체조차도 이름다운 여자에게 있어서는 사랑스런 아름다움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름답지 않으면 여자는, 만일 사랑은 받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존경은 받으려면 남자보다 스무 배나 더 현명해야 한다. (p.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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