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하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안보윤 외 지음, 이혜연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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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기중심적인 동물이다. 코로나19가 끝나가는 지금 우리의 일상은 빠르게 회복되어 가지만 끝을 알 수 없는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이기적인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다. 보이지 않는 곳에는 저소득층과 저기술 노동자, 돌봄 노동을 떠안은 여성과 자활하지 못하는 노인,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까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은 소외되고 방치되어 왔다. 적응하지 못한다고, 우리와 다르다고 차별하고 거리를 둔 것은 왜일까?

타인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도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배려할 수는 있다. <공존하는 소설>에 실린 여러 이야기들로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의 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열악한 환경에 놓인 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며 만들어졌다.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에 실려 있는 최은영 작가의 <고백>에서는 주인공 미주가 수사가 된 옛 애인 종은에게 평생 간직하고 있었던 아픔을 이야기하면서 시작된다. 누구보다 친했던 미주, 진희 주나 세 사람은 진희의 조심스러운 고백 후 틀어지게 된다.

"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지.

그리고 그럴 수도 없을 거야.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

완벽한 신뢰를 느끼며 말했던 '무해한 사람'이란 미주의 오만에서 오는 착각이었다. 그 사람을 완벽히 알고 있다는 착각에서 오는 안도감. 성소수자였던 진희의 고백 후, 무너진 그들의 관계에서 느꼈던 안타까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자신의 비밀을 고백해야 했던 진희, 이해할 수 없었던 주나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미주의 감정이 가슴을 울렸다.

김숨 작가의 소설집 '국수'에 실려있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에서는 한파가 들이닥친 밤에 한 노인은 죽은 아내가 데리고 온 개 한 마리와 차디찬 방안에 누워있다. 가스비가 두 달이나 밀려있고 보일러도 고장이 난 상태다. 방 안에서 온기를 내뿜는 것이라고는 아내가 데리고 온 그 개뿐이지만 절대로 가까이하지 않을리라고 다짐한다. 추위에 생명이 다해 가는 노인을 구하려 온기를 나누어주려는 개의 노력에도 결국 목숨을 잃고 만다.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성격을 가진 이 노인이 아내가 데리고 온 개의 온기라도 받아들였다면 살 수 있었을까? 결국 그의 마지막을 지켜본 것은 인간이 아닌 하찮게만 생각했던 그 개였다.

"햇빛은 그의 방 창으로도 들이쳤다. 어둠과 냉기가 밤새 매몰차게 지배하던 방 안이 서서히 밝아 왔다. 개의 누렇고 가느다란 털이 그의 얼굴 위에서 떠다녔다. 천장을 향해 한껏 벌어진 그의 입은 좀처럼 다물릴 줄 몰랐다. 보온 밥솥에는 여전히 빨간 불이 들어와 있었다."

소설집 '마음에 없는 소리'에서 깊은 인상을 주었던 <공원에서>를 다시 읽게 되었다. 주인공 수진은 큰 키에 짧은 머리로 종종 남자로 오해받는다. 하지만 그녀가 느끼는 감정은 불쾌함보다는 남자로 인식되었다는 안도감이다. 최근 공원에서 한 남자에게 폭행을 당하고, 어린 시절에는 버스에서 추행을 당하며 여자로서의 삶이 만만찮음을 느끼게 되었다. 보호받아야 마땅한 자신의 상황이 유부남과 불륜 관계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과연 주위 사람들은 그녀의 편이 되어줄까? 반대로 비난하지는 않을까?

"남자로 오해당하는 건 괜찮았다. 때로는 안전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성가신 건 내가 여자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였다. 어떤 사람은 죽을 지었다는 듯 사과를 했는데 그것도 좀 웃긴 일이지만 그건 그런대로 점잖은 편이랄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조언을 했다. 머리를 기르라거나 화장을 하라거나 좀 더 여성스러운 옷을 입어 보라거나 말할 때 솔 톤을 내는 것이 좋다는 식이었다."

내게는 당연한 행동이 타인에 대한 혐오일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타인에게 약자에게 피해자에게 혐오를 드러내고 상처를 입히는 가해자 또는 공범자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사는 일상 곳곳에 공기처럼 차별과 혐오가 스며들어 있다.

모두가 평등을 바라지만, 마음만으로 평등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우리들은 서로에게 차별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고 경청함으로써 은폐되거나 익숙해져서 보이지 않는 불평등을 감지하고 개선할 수 있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평등도 저절로 오지 않는다. 불평등한 세상에서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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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문학동네 청소년 66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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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눈부시게 찬란할, 우리의 열일곱 번째 여름"

강렬한 태양의 퇴약빛.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 그 위를 지나는 나뭇잎 스치는 소리는 계곡의 휘파람 소리로 돌아와 흐르는 땀을 씻어주고, 파고드는 산바람은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날마다 조금씩 방향을 달리하며 붉은빛 고운 자태로 빛나던 저녁노을과 멀리 경부선 열차가 지나가며 남기던 아련한 기적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잔잔하다. 가슴 설레는 추억이 녹아있는 여름을 좋아한다. 이꽃님 작가의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에도 가슴 설레며 기다리던 여름의 푸르름이 담겨 있었다.

시골의 푸르름과 활기가 담겨 있는 정주군이라는 가상의 마을을 배경으로 듣고 싶지 않아도 타인의 마음이 들리는 유찬과 평생 엄마와 둘이서 살아오며 유도를 하고 있는 지오. 이 두 사람의 시선으로 번갈아 전개된다. 화재로 부모님을 잃은 유찬과 어머니와 자신은 아버지에게 버려진 거라며 스스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지오는 운명처럼 서로를 만나면서 각자가 가지고 있던 고유의 아픔을 꺼내놓는다.

같은 반이 된 지오와의 만남에 유찬은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주의 마음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고요가 찾아오게 된다. 자신을 괴롭히던 마음의 소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지오에게 호기심을 느낀 유찬은 지오 역시 자신과 같은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호기심이 아닌 다른 감정으로 바뀌게 됨을 느끼게 된다.

"고요가 찾아온다. 갑작스러운 고요에 멈칫, 곧이어 귀에서 삐- 이명이 울려온다. 온갖 소음들로 섞여 있던 공간은 침묵 속에 "미안."이라는 그 아이의 선명한 목소리만 남는다. 그 짧은 순간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영원같이 느껴져 그 아이가 내 옆을 스쳐 가고, 다시 소음이 들려오기까지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p24

서울에서 정주의 번영읍으로 전학 온 지오는 평생 얼굴 한번 보지 못했던 아버지와 만나게 되지만 무려 경찰의 모습으로 마중 나온 아버지의 모습에 더욱 증오하게 된다. 같은 반 유찬과의 첫 만남에 유찬이 떨어뜨린 에어팟을 밟아 부러뜨리게 되면서 유찬과의 인연이 시작된다.

"그깟 마음 좀 들린다고 다 아는 것처럼 굴지 마. 마음? 네가 들린다는 마음이 얼마나 가벼운 줄 알아? 사람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어. 하루는 조금 괜찮았다가, 그래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었겠지 이해해 보려고 했다가, 또 하루는 미칠 것처럼 화가 나 죽겠다고."p57

유찬의 화재 사건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숨겨진 진실과 자신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이야기로 각자의 아픔과 마주하며 극복하게 되는 그들. 길을 잃지 않는 것, 방황하지 않는 것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현명한 방법이긴 하지만 길을 잃는 것 또한 길을 찾는 방법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었다.

서로를 닮아 가고, 서로를 투영하고, 그런 서로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가 있어 불행의 어느 순간 앞에서도 괜찮아지기 위해 용기를 내고 오늘의 불행을 견딘다. 평범한 일상을 이어나가 '니가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최선의 말을 하게 하는 그 존재로부터 위로받고 보호받는 것이다.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아픔을 마주하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어주는 작은 위로들. 작가는 그런 따뜻함을 써 내려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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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상실 - 해결되지 않는 슬픔이 우리를 덮칠 때
폴린 보스 지음, 임재희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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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되지 않는 상실과 대면할 때 우리는 비로소 나아갈 수 있다.

2년 전 갑자기 전 직장의 선배가 세상을 떠났다. 불과 며칠 전에도 함께 잔을 기울이던 선배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와의 술자리에서도 극단적 선택을 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를 아는 많은 지인들, 친구들, 그리고 그의 아내까지 그의 죽음으로 얻은 크나큰 상실감으로 장례식장은 우울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잔인한 배움이다. 상실감이 짙으면 짙을수록 다음 상실감이 찾아왔을 때는 덤덤해하는 자신을 보게 될 테니까.

선배를 떠나보내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은 젊은 시절부터 불행에 가까웠던 그의 환경과 함께 보낸 우울한 시간들, 평탄치 못했던 우여곡절의 가족사, 그리고 그들과 함께 엮어냈던 삶의 여러 애환들이 작은 물방울처럼 내 가슴에 모여들고 있었다. 그런 작은 슬픔들이 모여서 어느 순간 가슴 복받쳐 올라 참지 못해 눈물을 보였던 그날은 상실감을 난 아직도 기억한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의 죽은 몸을 눈으로 직접 봐야 상실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실종자 가족들은 죽음에 대한 그러한 검증을 통과한 적이 없으므로 부재나 존재에 대한 그들의 인식 변화 과정에서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한다." p62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상실이라는 개념은 누군가, 어떤 무언가가 사라진 상태를 뜻한다. 저자가 말하는 모호한 상실이란 죽음과 실종 등의 이유로 곁에 없지만 여전히 함께 있는 것 같은 상실감을 느끼거나 분명히 실체가 보이는데 곁에 없는 것 같은, 말 그대로 모호한 상실감을 뜻한다.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입양아가 느끼는 단절과 고립, 알츠하이머, 정신질환, 디아스포라가 느끼는 문화의 차이 등 모두 모호한 상실에 속한다. 우리의 삶 바로 옆에 존재하는 이 슬픔들은 어쩌면 너무 당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침묵해왔다.

보통의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상태가 분명한데도 정상이라 고집하고 자신의 논리를 믿는 것이 상실감을 동반한 고유한 특징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정상의 형태는 사람마다 다르며 어쩌면 그것은 괴상함보다 더 개인적인 관념인지 모른다. 자신의 조금이라도 초기 증상을 눈치채고 있다면 전문가의 상담을 받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상실은 슬픔을 내포한다. 결국 우리는 죽음과 마주하게 될 것이고, 각자 육체의 고독 속에 갇혀 있으며, 시간은 흘러가고, 지나간 날들은 다시 똑같이 되풀이되지 않는다. 상실은 무력한 세상의 첫 경험이며 평생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 오랜 연구와 여러 임상 경험을 통해 저자는 우리의 일상과 공존하는 상실을 자신의 경험과 환자와의 상담, 문학작품 등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상실과 마주하며 대처하는 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모호한 상실은 다양한 이름들과 모습들로 생물학적이고 사회적인 이유들로 어디에나 존재해 왔다. 이 책 <모호한 상실>은 상실감의 대표적인 범위를 모두 담으려 애썼다. 인간이 겪는 상실감을 모두 담을 수 있는 책은 없지만 대표적인 예와 대처법을 보여 줌으로써 모호한 상실감에 시달리는 이들의 해방을 도울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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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이 온다 창비교육 성장소설 10
이지애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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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빠가 죽었대요. 엄마는 원래 없고 내가 죽으면 누가 올까 해서요."

그동안 부모 없는 인생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지금껏 자신을 희생하신 부모님 덕에 어렵지 않은 인생을 살 수 있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는 부모가 당연한 전제처럼 있었다. 부모 때문에 행복하든 불행하든 말이다. 지금은 그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부모라는 말을 쓰기 전에 망설이고 주춤하게 된다.

부모라는 말 뒤편에 감춰진 고아라는 말을 떠올린다. 유년 시절 그룹홈에서 등교하던 친구의 이상하리만큼 밝은 성격을 생각하면 어쩌면 그 녀석 나름의 아픔을 감추고 있었던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부모에게 버려지거나 부모의 죽음으로 혼자가 되어 버린 아이들은 어디에서 생활하게 되는 것일까?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건강한 신생아의 경우 입양을 원하는 국내외의 가정에 보내진다. 그리고 3세 이상 18세 미만의 아이들 대부분이 학대, 이혼, 부모 사망, 수감 등의 이유로 각지의 고아원이나 그룹홈이라고 불리는 시설에서 자립할 때까지 공동으로 생활하게 된다. 18세가 되면 그룹홈에서 대부분 독립하여 생활하게 된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부모 곁에서 자란 아이들보다 뒤처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완벽이 온다>는 학대받고 부모에게 버림받아 그룹홈에서 함께 생활했던 민서, 해서, 솔이 자립하게 되고 사회의 역경을 마주하면서 서로를 의지하며 더 가족다운 삶을 살아갈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상처받은 그녀들이 진정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경제적 지원뿐일까? 그녀들이 대변하는 상처받은 이들이 진정 원했던 것은 아마도 주위의 관심과 애정이 아닐까.

애정을 필요로 하고 누군가를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모습일 것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애정과 의존, 그리고 불안한 마음을 갖는 것은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간이기에 꼭 필요하고 중요한 정서적인 요인들이 잘 채워지지 않은 유년 시절을 보내게 되면 좋지 않은 환경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아기가 태어날 때 누군가 그 어머니 손을 잡아 주었는가와 그렇지 않았는가, 세상이 모두 등을 돌렸을 때 어깨를 두드려 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는가와 없었는가는 하늘과 땅 차이다. 무너지는 슬픔 속에서 어색하게나마 누군가를 안아 주었다면, 그 사람의 생의 온도는 달라졌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오래전에 시작되어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이야기이다. 민서와 해서, 솔 등 소설 속 인물들이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삶의 어느 순간에서 누구나 민서가 될 수 있고 민서에게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민서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 맺고 살아가기를, 그럴 수 있는 기화를 자주 만나기를 소망한다. P213 [작가의 말]

어떤 이유에서든 자식을 버린다는 그 무책임은 사회의 손가락질을 받아 마땅하다. 그런 짓을 저지른 부모가 마음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러나 해마다 자식을 버리는 부모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다.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며 자녀의 양육의 책임을 제대로 해내기 어려운 처지에 있다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만든 소중한 자식만큼은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마음가짐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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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위로 - 카페, 계절과 삶의 리듬
정인한 지음 / 포르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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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손님 중에서 나에게 대뜸 부럽다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마도 카페 이름이 '좋아서 하는 카페'이기 때문이지 싶다. 그런 손님들은 대개 나를 좋아하는 일을 하며 여유롭게 사는, 팔자 좋은 사람을 생각하는 것 같다. 카페 밖 풍경도 제법 그럴듯하다." - 프롤로그

따끈한 커피 한 잔에 마음이 놓이고 꼭 막혔던 가슴이 열린다. 커피 애호가는 아니지만, 감정의 변화가 생길 때면 언제나 향이 좋은 커피가 그리워진다. 그런 커피향이 좋아서 언젠가 카페 창업을 꿈꿨지만 먼저 창업한 주위 친구와 지인의 폐점 소식에 현실의 벽을 실감하며 뒤돌아섰다. 그래서인지 카페를 본업으로 둔 사람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부럽기도 하고 염려되는 마음이 가슴 한구석에 스며든다.

율하 카페거리에서 '좋아서 하는 카페'를 운영하며 글을 쓰고 있는 정인한 작가의 <커피의 위로>는 담백한 문체로 카페의 희로애락을 풀어냈다. 10년 이상의 시간을 카페에 바치며 느낀 카페의 전반적인 노하우와 가게를 이어나가기 위한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 그리고 바리스타 겸 사장으로서 겪게 되는 고충을 엿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게를 운영하면서 만난 여러 인연들과의 만남과 이별 속에서 느끼는 아쉬움과 상실감은 내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새로 오는 이에게 가벼운 마음보다는 조금은 무거운 마음이 더 좋지 싶다. 레시피를 공유하는 것보다 우리의 태도를 납득시키고 공유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 카페의 내부자가 늘어갈수록 카페를 둘러싼 껍질 같은 것이 조금씩 얇아지는 느낌이 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비한 것은 없어지고 어떻게 보면 본질인 장사꾼의 모습만 남게 될까 걱정된다." -p47

나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위해 보내는 시간은 갖고 있던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 아닌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기꺼이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긴 시간 집중하며 연마하는 일이고, 그러므로 그건 내가 좋아하는 것을 긴 시간 동안 지킬 힘을 만들기 위해 섭취해야 할 영양소 같은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의 다음에 오는 것은 행동과 실천이다. 상황과 사정에 따라 시작의 방법은 달라지겠지만, 첫 마음의 온도를 지키며 천천히 나아가고 싶다는 저자의 작은 바람이 따뜻하게 다가왔다.

일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새로운 신입 사원을 맞이할 때도 온전히 진실 자체로 그 사람을 대하였던가, 상대의 배경이나 처지를 저울질하지는 않았는지. 그러나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 보아도 내 합리화가 우선시 된다. 누군가,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인연을 만나기를 소원할 뿐이다. 감성에 빠진 내가 때때로 현실성이 떨어지는 얘기를 하더라도, 사회윤리와 관습에서 벗어난 얘기를 하더라도 그럴 수도 있지 뭐. 인간이니까,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면 얼마나 좋을까. 독백하듯 모든 비밀을 털어놓고도 돌아서서 그 말을 괜히 했어,라고 후회하지 않아도 될 사람, 옳고 그르다는 판단으로 나를 심판하지 않을 사람. 그런 사람 한 명만 나와 같이 일할 수 있다면 군중 속의 고독 같은 건 느끼지 않을 것 같다.

청년에서 아저씨가 되고, 이십 대에서 삼십 대가 되고, 그리고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살아온 이때. 나잇살에 붙은 군살은 굳은살로 바뀌어 단단해지고 있다. 불안함은 초연함으로 바뀌고, 유약함은 유연함으로 바뀌어 간다. 누가 뭐라 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며 감사이자 목표인 나이를 나는 지나고 있다. 여전히 꾸미지 않은 얼굴로, 가벼운 옷차림에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서.

있어야 할 것이 있고, 찾으면 다 있는 풍요. 엉키지 않고, 끊기지 않고 순조로이 돌아가는 일상. 용도에 맞는, 역할에 맞는 것들이 착하게 자리를 지켜 주는 안정감. 질릴 때쯤 새로운 것을 맛보게 해주는 설렘. 그런 여벌의 것들이 있다는 여유와 사치에 감사한다. 지금 이대로 조금의 여유를 간직한 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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