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에 관하여 - 비판적 성찰의 일상화
강남순 지음 / 동녘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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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미투 운동 (#MeToo Movement)을 비롯해, 흑인 아동 모델에게 논란을 일으키고도 남을 문구(Coolest monkey in the jungle)가 적힌 티셔츠를 입힌 H&M에 분노한 유명인들의 발언이 시선을 끌고 있다. 『배움에 관하여』는 일상에서 하도 빈번히 일어나는 탓에 무뎌져 있었는지 모르는 외모 차별·성차별·나이 차별·학력차별·계층 차별·인종차별 등의 다양한 폭력과 차별에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를 알려준다.




이 책은 미국 신학대학원에서 현대철학과 신학을 가르치는 강남순 교수가 작년에 발표한 에세이로 '배움-비판적 성찰-일상'이라는 세 개의 키워드를 풀어 하나로 연결한다. 그런데 왜 배워야 하는가? 나와 내가 몸담고 살아가는 세계를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다. 강남순 교수는 진정한 배움은 단순한 정보의 축적이 아닌 비판적 성찰의 과정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하며, 타자와 자신을 억압과 차별적 구조에 방치하지 말자고 한다. 왜? 자크 데리다의 말대로 '무관심은 인류에 대한 범죄의 시작'이니까.  



강남순 교수는 '어찌하다 보니' 매우 다양한 운동에 개입하면서 살아왔다고 말한다. 


성차별은 물론 흑인 인종차별, 미국 원주민 (소위 Native American) 차별, 성소수자 차별, 그리고 홀로코스트 문제를 다루는 모임 등 다양한 종류의 변혁운동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게 되는 계기가 많았다. p. 199



강 교수가 자신과 성, 인종, 성적 성향, 종교 등이 같지 않더라도 이처럼 다양한 변혁 운동을 지지하고 개입하는 데는 두 가지 까닭이 있다. 첫째, 그 차별과 억압이 특정 집단에만 향한 것이 아니라 '인류에 대한 범죄와 차별'이기 때문이고 둘째, 인간의 이기성은 설사 동질성을 나눈다 해서 그 의도가 자기 이득과 공공선의 확장을 균형적으로 모색하는 데에 언제나 순수하게 작동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강 교수는 앨리스 워커의 소설 『컬러 퍼플』의 한 구절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지요."를 인용해, 누군가 '저편'에서 차별받고 있는 것은 결국 '이편'의 삶도 일그러져 있음을 의미한다며 '함께 실존 co-existence'을 강조한다. 




보다 나은 세계에 대한 희망이라는 말이 퇴색한 것처럼 들리는 시대다. '모든 것이 잘 될 거야'라는 상투적인 희망의 약속이나 위로의 말도 때에 따라서는 오히려 고문처럼 느껴진다고도 지적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절망이나 회의주의에 빠져 있을 수만도 없다. 저자의 말대로 다양한 불평등의 구조와 문제에 대한 예민성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 하고, 불완전한 삶의 조건들 속에서 '당당한 명랑성'으로 자신의 고유한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희망이 제자리를 이탈해 방황하는 이 시대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좌절하고 금수저 타령을 비롯해 노오력이니 헬조선이니 자조 섞인 신조어를 양산해왔던가. '당당한 명랑성'이라,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가질 수 있다면, 마음 한가득 갖고 싶은 말이다. 자크 데리다가 죽기 3일 전에 작성했다는 장례식 조사의 한 구절처럼 '언제나 삶을 사랑하고 생존하여 살아냄을 긍정하는 것을 멈추지 않기' 위해.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구원받으라는 청년들이 글쎄 미국의 강 교수 집까지 찾아갔었다고 한다. '구제 불능의 선교열'이라고 일갈하며 '당신들도 제도화되고 교리화된 종교가 양산한 복합적 문제의 희생자'라 부르고, 관광객과 선물가게로 뒤덮인 프라하 카를교에 설치된 예수상이 지나치게 상업화되었다고 지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찾아보니 이미 한참 전에 배타적 교단 주의 병폐를 극복하지 못한 한국 기독교의 폐해를 지적하는 책(『페미니즘과 기독교』)을 낸 바 있다. 



구원이란 특정한 종교에 소속되어 있다거나, 특정한 종교적 교리를 믿는다고 선언하고 암송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종교란 죽어서 천당에 가게 해주거나 모든 일을 잘 되게 하고 물질적 축복을 가져오게 하는 '구원 클럽'이 아니다. p. 42  



마지막 5장 '감히 스스로 생각하라'에서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보이는 여러 문제점을 다룬다. 예를 들어, 지나치게 상품화된 인문학과 스스로의 멘토가 되려고 노력하기보다 '멘토'를 찾는 요구를 경계하고, 남성과 비장애자, 이성애자가 독점한 한국 교회와 한국말과 호칭에서 나타나는 위계 주의적 딜레마 등을 지적한다. 특히 학교에서 가까운 학생이나 동료 교수가 강 교수에게 "How are you?"라고 물으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 질문에 답을 할 텐데, 그대는 이 답을 들을 최소한 30분의 시간이 있는가?"라고 답한다던 대목이 인상적이다. 아니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여러분들은 나에게 살아 있는 텍스트 living text'라 말하며 어떤 차별이나 편견도 없이 개개인의 '얼굴'을 봐주는 교수에게라면, 제법 잘 어울리는 말이다. 




사족_

그동안 쓴 수백 편의 글을 모아 세심하게 읽고 추리고 분류했다지만, 앞에 나온 내용과 상당히 유사한 내용이 뒤에 다시 나오는 경우가 더러 있다. 확실히 그 점은 옥에 티지만, 다른 책도 보고 싶게 하는 그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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