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이기호 지음 / 마음산책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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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가족이 등장하는 TV 예능프로그램을 책으로 읽으면 이런 느낌일까?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둘, 아직은 공주님이 되는 게 꿈인 어린 딸, 남편보다 여덟 살이나 어리지만 너무나 듬직한 슈퍼우먼 아내, 그리고 아내 옆에서 능글美를 폭발하는 이기호 작가까지 이 집 식구는 모두가 '러블리'하다. 웃음이 빵 터질 만큼 엉뚱하거나, "MSG 친 게 아니고, 진짜 이렇게 말했다고요?"라고 묻고 싶을 만큼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허를 찌르거나, 아니면 어째 "바보처럼 보이는" 답변 (예를 들어, 이기호 작가가 아버지에게 "슈퍼 파워"를 외치던 대목. 내가 다 부끄러웠지만 가장 재미있고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까지 총망라한다.  




이기호 작가의 글에는 꼭 들어 있는 요소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재미다. 부담 없고, 가식 없고, 꾸밈없는 글에 키득거리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가 끝나 아쉬움이 들 때가 많다. 다른 하나는 마지막 한 방이다. 아무리 작가라지만 이 짧은 분량으로 어떻게 이렇게 울고 웃기나 궁금해서 한번은 시선을 붙드는 문장을 계속 뚫어져라 쳐다봤다. 사실 뜯어보면 그렇게 멋들어진 말도 아니고, 세상 처음 보는 말도 아니다. 옷으로 치면, 비싼 브랜드도 아니고, 실험적인 디자인도 아니고, 그냥 대문짝만하게 '세일'이라는 문구가 달린 '인터넷 최저가' 옷을 대충 골라 입고 나왔는데 그게 그렇게 강력할 수가 없는 거다. 웃기는 건 정말 웃기고, 코끝을 찡하게 하는 건 정말 콧물을 닦아내야 할 정도로 코끝을 찡하게 한다. 재주다.   




예능 프로그램이라면 '랜선이모'를 불러 모을 만한 세 아이는 사랑스럽고, 능글미에 '허풍+엄살+허당미'라는 귀한 쓰리콤보까지 장착한 이기호 작가는 40대에 어울리지 않는 귀여움(?)을 독차지한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인상을 남기는 건 멋짐이 폭발하는 아내다. '이런 마인드여야 결혼해 살겠구나' 싶을 만큼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멘트를 불쑥 남기는 건 일도 아니다. 남편에게 감동을 주려고 태어나기라도 한 듯 그녀는 '시크한 듯 보이나 말도 안 되게 감동적인' 발언과 행동을 늘 준비한다. 마감에 쫓기는(실제로는 마감기한을 넘긴) 작가 남편을 위해 거짓말을 해 가며 혼자 아이를 낳는가 하면, 몇 해씩 자투리 돈을 모아 만든 목돈을 시아버지 병원비로 투척하고, 악보도 볼 줄 모르면서 첼로를 배우고 싶다는 "로맨틱이라 쓰고 허황된이라 말할 꿈"을 꾸는 남편을 위해 냉큼 첼로를 사다 주고 초등 4학년 학생들이 배우는 초급반에 넣어주는 아내라니! 어머니는 강하다. 그러나 아내도 슈퍼 울트라 급으로 강하다.

  

 


더위마저 오락가락하는 요새 같을 때 편하게 누워 읽기 좋은 책으로, 읽다 보면 오래전에 찍은 가족사진이라도 한번 꺼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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