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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거리를 둔다
소노 아야코 지음, 김욱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가장 큰 점수를 주고 싶은 부분은 제목이고 그다음은 표지다. 둘이 판매에 영향을 크게 끼쳤으리라 생각될 만큼 인상적이다. 그러나 내용은 가치관이나 취향 탓인지 표지만큼 인상적이진 않다.
사실 나는 이 책의 저자 소노 아야코를 『사는 게 뭐라고』와 『죽는 게 뭐라고』의 사노 요코와 헷갈렸다. 어쩐지 읽으면 읽을수록 '이분 내가 읽었던 그분 맞나?' 싶을 정도로 이상해 뒤늦게 확인해 보니 저자를 혼동했다. 거기서부터 일단 잘못된 만남이었다. 게다가 소노 아야코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우익 인사라고 하니, 쩝....
『약간의 거리를 둔다』는 크게 4부로 구성돼 있다. 1부는 '나답게가 중요해', 2부는 '고통은 뒤집어 볼 일', 3부는 '타인의 오해', 4부는 '보통의 행복'이 제목이다. 이 책을 내게 한마디로 요약하라고 하면, 3부 끝부분에 실린 글이자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약간의 거리를 둔다'로 하겠다. 무작정 남들을 따라 하지 말고 자기다움을 찾으라는 거다. 그러면 타인에게 휘둘리거나 상처받는 일도 덜 할 거고, 남을 부러워하지도 않을 거니까.
가장 인상적인 대목 중 하나는 서너 평짜리 텃밭에 관한 일화다. 종자 박스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씨나 뿌리는데 신기하게도 쑥갓은 쑥갓대로 청경채는 청경채대로 유채는 유채로 자란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식물보다 인간이 훨씬 비겁한 게 맞는 듯하다. 아무리 청경채를 쑥갓 사이에서 기른다고 청경채가 쑥갓으로 자라지 않는데, 과연 사람은 어떤가?
이 책에 마음이 크게 동하지 않은 건, 2부 '고통은 뒤집어볼 일' 때문이다. 나는 '불운 속에서 축복을 발견할 테니 기꺼이 내게로 오라'고 말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역경을 헤쳐나가기도 벅찬데 어떻게 그 속에서 숨은 즐거움까지 찾나. 한두 번 읽고 지나가면 모를까 한 챕터가 다 이런 식인데다 사실 다른 챕터에도 군데군데 유사한 이야기가 섞여 있어 뭐랄까 지루하고 재미없는 도덕 선생님 수업을 받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이런 부류의 에세이에서 흔히 나타나는 문제점은 몇몇 유사한 이야기가 재차 중복되면서 챕터 구성이 애매해진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아까 지나간 귀신하고 똑같은 귀신이 잊을 만하면 또 등장하는 식이랄까? 이미 아까 놀랠 만큼 놀래서 이제 더 안 무서운데 아까 그 귀신이 자꾸 나타나는 느낌이다.
읽으면서 든 솔직한 심정은 아래 '적당함의 미학'으로 대신하겠다. 오늘 나의 이 '리뷰 같지 않은 리뷰'는 17년 3월의 리뷰일 뿐 혹시 다른 때 다른 마음으로 읽으면 달라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쨌거나 이 책에 위안을 받은 독자가 훨씬 많은 게 사실이고, 마음에 새기고 싶은 글귀도 분명 담겨 있다.
끝으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약간의 거리를 둔다'의 한 대목을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친다. 거리 두기는 임마누엘 칸트의 주장으로 나카지마 요시미치의 『비사교적 사교성』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이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어른인 이상 싫다고 무작정 피하거나 관계를 단절하지 말고 일정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게 좋다는 말이다.
"깊이 뒤얽힐수록 서로 성가시러워진다. 살다보면 나를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이 한둘은 나오게 마련이다. 이를 피할 도리는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지나치게 관계가 깊어져 서로에게 어느덧 끔찍할 정도로 무거워진 덕분에 문제가 생긴다. 어머니 말씀처럼 사람이나 집이나 약간의 거리를 둬 통풍이 가능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최소한의 예의인 듯싶다. - ‘약간의 거리를 둔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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