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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 - 마침내 드러나는 위험한 진실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지식갤러리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Inside WikiLeaks:
My Time with Julian Assange at the World's Most Dangerous Website
전 대변인이자 2인자가 최초로 공개하는 위키리크스와 비밀문서의 실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웹사이트, 위키리크스.
지난해 12월 말 튀니지에서 노점상을 하던 한 20대 청년이 머리에 기름을 붓고 자살했다.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지만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과일 노점상을 했던 그는 노점 단속에 나선 경찰에 의해 과일 수레가 부서지고, 과일마저 압수당하자 주정부 청사 앞에서 목숨을 끊었다. 이것이 이른바 '재스민 혁명'으로, 한 청년의 죽음이 2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장기 집권해온 대통령의 독재를 끝내는 데 있어 촉매제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런데 이 사건의 배후에는 단지 튀니지의 심각한 실업난과 빈부격차만 있던 것이 아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굳게 잠겨 있던 대통령 일가의 부정축재에 대한 진실의 상자가 열렸다. 누구에 의해서? 바로 위키리크스에 의해서다.
당연히 튀니지뿐만 아니다. 미 정부의 입장에서도 위키리크스 또는 줄리안 어샌지(Julian Assange)는 그저 곤욕스럽기만 한 대상이 아니라, 영화로 치면 반드시 죽여야 한다며 따라다니는 전문 킬러가 따라 붙는 희생자 또는 영웅쯤 되지 않을까 싶다. 지난 17일 영국의 텔레그라프(Telegraph)는 2008년에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일본 원전의 내진기준이 낙후돼 있다며 대규모 지진이 발생할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는 점을 폭로했다. 물론 이번에도 위키리크스의 도움이었다.
이 책은 위키리크스(WikiLeaks)의 대변인으로 초창기 멤버이자 소위 2인자로 불려오던 다니엘 돔샤이트 베르크가 직접 밝히는 위키리크스의 내부 비밀과 실체를 담고 있다. 대체 워싱턴포스트가 지난 30년간 해온 것보다 더 많은 특종을 3년 만에 생산해냈다는 위키리스크의 정체는 무엇이며, 대체 그 은회색의 머리칼을 가진 중년 남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책은 이른바 '2인자'로 불리며 갖은 설움과 고초를 겪어야만 했던 다니엘 돔샤이트 베르크의 1인자 줄리안 어샌지에 대한 토로에 가깝다. 그런데 문제는 '2인자'라는 꼬리표 그 자체다. 다시 말하면, 어샌지는 죽어서더라도 1인자의 이름으로 기억될 것이며, 돔샤이트 베르크도 마찬가지로 죽어서라도 2인자로 기억될 거라는 말이다. 실제로 이 책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자들은 줄리안 어샌지에 대한 다니엘 돔샤이트 베르크의 대응 - 일례로 둘 사이의 소소한 대화나 채팅까지 드러낸 것 -에 대해 탐탁지 않게 여긴다. 개인적으로는 바로 이 점이 흥미로웠다. 2인자가 1인자에 관한 객관적 진실이든 험담이든 공개적으로 늘어놓았으나, 대중에게는 그러한 부정적인 측면보다도 1인자의 마력 그 자체가 더 크게 어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설사 2인자의 주장이 100 퍼센트 옳다고 해도, 이미 세상의 많은 이들이 줄리안 어샌지를 좋아하고, 또 일부에서는 그를 마치 체 게바라라도 되는 것처럼 영웅시하기까지 하니, 2인자의 주장이 쉽게 설득력을 얻기는 어려워 보인다.
2인자가 오로지 객관적 사실(처럼 들리는 내용)만을 최대한 담담한 어조로 공개한다면 모르겠지만, 다니엘은 지난 세월 자신이 쏟아 부은 열정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한 처우와 관심, 그리고 무엇보다도 줄리안 어샌지에 대한 부당함과 억울함을 덜 효과적인 방법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둘 사이에 이루어진 대화를 읽고 있으면 마치 '초딩'들의 대화라도 되는 것처럼(예를 들어, 어샌지가 그에게 주었다던 '눈에 거슬리는 태도 리스트'라던 가는 정말 황당하다) 상당히 유치하기까지 해서, 오히려 위키리크스 본연의 목적과 의도, 그리고 그 상징성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도 한다. 위키리크스의 기능과 그것의 파괴적인 영향력을 아끼고 좋아해온 이들에게 바로 그 점은 불편하게 느껴질 것이 틀림없다. 둘이 격의 없이 나눈 대화까지도 세상에 모두 공개해버린 그의 노력은 세상 어딘가에서는 한낱 '2인자의 넋두리' 또는 '치졸한 배신자의 값싼 변명'으로 치부될 여지가 있다. 세상은 미화된 영웅을 원하지, 결점 가득한 일반인의 '영웅짓거리'를 원하지 않을 테니까.
아울러 2인자가 바라보는 1인자의 모습이라는 것이 애당초 그 시작부터가 자칫하면 부당함에 대한 마땅한 고발이 아니라 자격지심으로 내비칠 수 있는 핸디캡을 안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2인자가 1인자와 함께 하던 울타리를 박차고 나와 동일한 컨셉의 대상(오픈리크스)을 만들었다는 점과, 둘 사이의 관계와 감정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자세하게 기술한 점 자체가 고운 시선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들 거란 우려가 든다. 진실이야 어찌됐건 일단 어샌지가 스웨덴에서 성폭행 사건에 연루됐다는 점과 젊다 못해 어린 여성을 밝힌다는 점 등은 어샌지에게 치명적일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전반적으로 부당함이나 부패에 대한 고발이라기보다는 '가십'을 전달하는 것처럼 느껴져 그마저 파장이 약할 것도 같다.
아무쪼록 다니엘 돔샤이트 베르크가 오픈리크스를 계기로 2인자라는 꼬리표를 던져 버리고 진정한 1인자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자신이 오픈리크스에 대해 소개한 것처럼, 딱 그렇게만. '오픈리크스는 깨어있는 인프라구조다. 우리는 구조적으로 일하는 엔지니어다. 우리는 결코 스스로를 미디어스타나 세계 구원자로 여기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너무 밋밋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느냐다. (p.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