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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욱 찾기
전아리 지음, 장유정 원작 / 노블마인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책을 아직 읽지 않은 경우,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돼 있으니 유의하세요.)
책이 묻는다. ‘당신의 첫사랑을 기억하십니까?’라고.
당신이라면 무어라 대답하겠는가?
이제는 먼 옛날처럼 느껴지는 그 옛날 아이러브스쿨이란 사이트가
엄청난 괴력을 발휘하던 때가 있다. 그 엄청난 인기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사회인이 되어 바쁘게 살던 우리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과거
그 시절의 친구들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아니었나? 게다가 어디 친구뿐인가?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첫사랑도 찾을 수 있을지 모르는데 말이다.
과연 묻고 싶다. 첫사랑을 기억하냐는 질문에 뜨끔하지 않을 사람이 있냐고.
첫사랑이 누구냐는 질문에 선뜻 얼굴 하나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지 않을
사람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 12월 한겨울, 그것도 크리스마스를 코 앞에
둔 시점에 이쯤하면 질문이 참 도발적이다. 첫사랑을 기억하냐는 질문에
나 역시 대뜸 "물론이고 말고"라고 대답하며 내심 이 책과의 조우를 기다렸다.
결론부터 말하면, 뮤지컬로 보려다가 번번이 기회를 놓쳤던 이 작품을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접해서인지 내 예상을 많이 빗나갔다.
그런데 대체 김종욱이 누군가? 출판사에서 기획편집자로 일하는
여주인공 효정이 인도에서 만난 남자가 바로 김종욱이다.
오지에서 만난 인연이니만큼 더 없이 애틋하고 달콤하지만,
그 인연의 끈이 짧으니 이를 어쩐다! 친구 결혼식 뒤풀이에 가서 효정은
우연히 성재를 만나고 그와 함께 자신의 첫사랑 김종욱을 찾아 나선다는 내용이다.
솔직히 나는 여주인공의 심리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김종욱을 향한 그녀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효정처럼 나 역시 ’영원히 남는다는 걸 무섭다’고 생각하고, ’추억도 적당한 때가
되면 소멸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일까?
나이를 먹어갈 수록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게 참 어렵고 또 그래서 신기하기만 하다. 그래서인지
사랑 앞에서 지나칠 정도로 머뭇거리기만 하는 효정의 태도에 고개가 갸우뚱 해진다.
머뭇거리기만 할 게 아니라 그냥 마음이 말하는 대로 사랑하면 안 되나 싶은 마음이다.
그토록 사랑했고 아직도 못 잊겠다는 그 남자를 어떻게서든 찾아내고 싶다면서도
"인연이면 어떻게든 만날 줄 알았죠. 이젠 너무 늦었어요”라는 그녀의 마음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성재가 효정에게 말한다.
"해볼 수 있는 데까지는 노력해 보고, 그 다음에 인연 타령해요.
운명이고 자시고를 떠나서 그게 사랑에 대한 자세예요." (p. 242) 성재의 말이
내 심정을 대변한다. 사랑이란 것도 노력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거니까.
김종욱을 다시 만나도 인도에서와 똑 같은 감정을 가질 수 있는지
겁이 난 효정은 자신에게 다가온 성재에게 “난 누굴 만날 준비가 안 됐어요.”라며
경계를 두기 바쁘다. 그러나 성재는 첫사랑은 그대로 두고 둘이서 새로 사랑하잔다.
단지 효정뿐만이 아니다. 성재인들 첫사랑을 잊을 수 있을까?
누구에겐들 애틋하지 않은 첫사랑이 어디 있으며, 영화처럼 기가 막힌 사연이
없는 첫사랑이 어디 있을까? 누구나 쉽사리 잊지 못하는 것이 첫사랑이다.
성재의 말대로 굳이 잊으려 하지 말고, 첫사랑은 첫사랑대로 두고 기억이 나면
기억이 나는 대로,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가끔씩 떠올려 보면 되지 않을까?
잊으려 애를 쓰면 애를 쓸 수록, 그 기억은 점점 더 오래 가고 점점 더
깊어질 것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의든 타의든 당사자의 왜곡되고
변질된 기억이 겹겹이 쌓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난 내 김종욱이 내 첫사랑이라서 좋았고, 고마웠어요.”
가슴 깊이 묻어둔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려 보라던 이 책은, 첫사랑보다는
지금 현재의 사랑에 더 충실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과연 첫사랑이 무엇인지
새삼 생각해보게 만든다. 누군들 안 그렇겠냐 마는 첫사랑은 어머니만큼이나
애틋한 대상이 아닐까? 다른 모든 것을 차치하고 온전히 사랑에만 충실했던,
그리할 수 있었던 자기 자신을 언제 또 보았단 말인가? 게다가 대개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하듯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아쉬움과 미련이 더 해져,
오랜 시간이 흘러서도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건 아닐까? 그때 그 시절 그곳에서
만나고 헤어진 첫사랑의 기억, 아마 생을 통틀어 가장 순수했을 순간에 대한
오랜 그리움과 동경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을 것 같다.
말 그대로 첫사랑이란 게 다 그런 거 아닐까?
첫사랑이란 건 조금씩 덜 익거나 부서진 구석이 있기 마련이라
그 모자란 부분 속에 환상을 채워 넣을 수 있다. (본문 중에서)
영화를 보고 책과 비교해서 리뷰를 써야 더 좋을 텐데,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다.
영화 사이트에 가서 검색해보니 기본적으로 남녀 주인공의 직업이 변했다.
효정의 직업은 뮤지컬 감독으로, 성재의 직업은 여행사 영업사원으로.
영화평을 보니 영화도 괜찮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