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마이너스
손아람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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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아람 장편소설,『디 마이너스』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디 마이너스』는 사회 소설이다. 하지만 모든 사건과 이야기가 주인공인 태의의 눈과 귀와 입으로부터 나온다. 미시적인 이야기다. 아주 미시적으로, 거대한 국가와 사회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이 책에 녹아있는 날카로운 유머다. 나도 인문학도다. 아니, 인문학도였다. 인문학도들이 사용하는 '우아한 논법'을 나는 잘 안다. 때로는 그 수려한 말빨에 질리기도 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시니컬함과 각자의 철학이 좋다. 책으로만 읽고 있어도, 이 주인공들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말하는지 눈에 보이는 듯하다. 그 날카로움까지도.


날카로움이 돋보이는 부분을 몇몇 소개한다.


<권력> 中

미학과에서 농활을 왔다. 겨우 마흔 명 남짓한 작은 농촌 마을이었다. 그곳에, 경수의 아버지가 방문했다. 그는 경기도 도지사였다. 마흔 명의 사람들이 잔뜩 긴장을 했고, 그의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나는 노릇하게 익어가고 있는 소고기가 신경 쓰였다. 왜 그 얄미운 인간을 위해 한우를 세 근이나 준비했단 말인가. 그걸로 도지사를 사흘 동안 배 터지게 먹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도지사를 언제 다시 본다고. 그게 바로 권력의 문제였다. 세상의 모든 지점에 무차별적으로 작용한다는 것. 권력은 혼자 높지 않고 다른 곳을 낮게 패어낸다."


<해결방법1> 中

태의는 대석 형을 따라 대우 자동차 김우중의 자택에 침입힌다. 대우 자동차는 낭떠러지 끝에서 회사를 매각하기 위해 정리해고를 감행했다. 김우중의 자택에 침입한 젊은이들은 김우중 구속, 도피 재산 환수, 구조조정 저지를 외친다. 이 때, 대석 형이 나섰다.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우리 모두가 살아남으려면 누군가는 보트에서 뛰어내려야 하지 않겠냐고. 제가 의아한 건, 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장롱에 침대까지 챙겨 들고 보트에 탔느냐는 것입니다!"


<자유시장1> 中

대학에도 신자유주의가 불어닥쳤다. 이제는 학생도 교수의 강의 내용을 평가하게 되었다. 그 성적에 따라 교수는 재임용 여부가 갈리게 될 것이었다. '띄엄띄엄의 철학자' 강정환 교수는 꼴찌를 했다. 강정환 교수는 낭만적이고 현실에 발내리지 않은 듯한 사람이었다. 그는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뽑혔을 때 새 시대를 기뻐하는 의미에서 모든 수강생에게 A+를 뿌렸다. (뿌린다는 은어적 표현을 즐겨쓴다) 수업에 참가하지 않아도, 집회가 있었다고 하면 유일하게 받아주는 교수였다. 하지만 그런 강정환 교수가 교수 평가 제도에서 서울대학교 전체 꼴찌를 차지했다. 그 결과, 강정환 교수는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더 이상 띄엄띄엄한 모습을 내비치지 않았다. 슬픈 일이다. "그 학기가 끝나고 강정환 교수는 우리 가운데 누군가에게 꼴등을 안겼다. 우리가 그에게 꼴등을 안겼듯이. 그게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었다. 우리 손으로 만들어낸 세상이었다. 세상은 꾸준히 나빠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제나 좋았던 시절만을 회상하고 있다."


<자유시장2> 中

"자유시장의 권리는 서로 다른 크기를 갖는다. 매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통용되는 자유의 개념에는 서로 다른 자유가 상충할 때 더 크고 강한 자유가 승리를 거둘 자유가 된다. 반면 민주적 권리는 모두 크기가 같다. 매매할 수가 없다. 불가침이다. 민주주의는 비키니를 입은 관광객과 비키니를 입은 성노동자에게 똑같은 만큼을 준다. 한 표씩만을. 그것은 민주적인 동시에 반자유적이다. 여전히 인류가 풀지 못한 자유의 딜레마. 소수가 독점할 자유가 보장되는 곳을 자유 사회라 불러야 하는가? 모두에게 공평한 자유가 강제되는 곳은 반자유 사회라 불러야 하는가?"


손아람 작가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결코 소설이 아니다"라고 썼다. 이 이야기는 실화다. 이 이야기의 시대를 살았든 살지 않았든, 혹은 살았어도 눈이 먼 채로 살았을 수도 있지만, 분명히 우리가 알아야 하고 똑바로 바라봐야 할 이야기다. 독재와 국가 폭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이 사라졌다고 낙관하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독재와 국가 폭력에 신음하고 있었다. 이 시대의 젊은 이들은 끊임없이 싸웠고, 왜 싸워야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지. 나는 왜 싸우고 있나. 누군가는 그것이 젊음의 패기라고 말한다. 하지만 엄연히 말하자면 패기 때문이 아니다. 예민함 때문이다. 다치기 쉬운 양심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차마 안 보인다고 말할 수 없는, 청춘이다.


이 책을 읽다가 10년이 흘렀다. 10년의 한국 역사가 흘렀지만, 부조리는 여전했다. 야구방망이를 들고, 화염병을 들고, 스피커를 들고 시위하며 싸우던 작중 인물들은, 그 새 이 사회에 '적응'했다. 태의는 변한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싸웠던 걸까. 우리가 맞서싸운 '세상'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었나? 우리가 '적'이라고 불렀던 것은 정말 적이었을까?   "나는 환멸을 느끼지 않았다. 이미 세상의 부조리에 무감각해졌다. 마르크스는 그것을 자본의 논리라고 불렀지만 나는 다윈이 사용한 단어가 더 와 닿는다. 다윈은 그것을 적응이라고 불렀다." 그 와중에 변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진우와 수리다. 어딘가 조금은 모자라고 부족했던 이 커플이 모두가 떠나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진우는 우리 정파가 아니라 운동권의 미래를 어깨에 걸머졌다. 전우들은 싹 전멸하거나 전장 바깥으로 달아났고, 어둑한 PC방에서 밤새워 스타크래프트 하길 즐기던 창백한 얼굴의 공대생 한 명이 홀로 남았다. 그렇게 모두에게 잊힌 채로 그는 외로운 걸음을 뚜벅뚜벅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지나간 모든 일, 그 모든 일이 진우라는 상속인 한 명을 키워내기 위한 거대한 시험이었던 셈이다. 오직 진우만이 그 시험을 통과했다. 오직 진우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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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끝에서 세상에 안기다 - 암을 치유하며 써내려간 용기와 희망의 선언
이브 엔슬러 지음, 정소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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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엔슬러, 『절망의 끝에서 세상에 안기다』

 

 

이브 엔슬러는 페미니스트로, 세상의 고통받는 여성들의 삶을 똑똑히 직면하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분투하는 백인 유대인 여성이다. 특히, 그 고통의 극단에 처해있는 곳은 콩고였다. 콩고에서는 전쟁과 채굴, 도시 약탈과 함께 여성에 대한 강간이 일어난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잔혹한 강간이 행해진다. 이브 엔슬러는 이 모든 잔학 행위들이 의도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여성 강간을 전략적으로 사용해, 민족이 파괴되고 도시의 미래가 사라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전쟁과 채굴은 성적 약탈과 떨어질 수 없는 행위다. 그 결과, 콩고의 여성들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고, 가정은 파괴되며 고통의 신음을 흘리게 된다.  질(vagina)의 파괴는 미래의 파괴이자 종말이라고, 이브 엔슬러는 말한다. "물론 콩고에 도착했을 즈음 이미 나는 이 지구의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전염병을 충분히 목격했다. 그러나 나는 콩고에서 몸의 종말, 인류의 종말, 세계의 종말을 목격했다. 군대와 기업은 광물을 확보하기 위해 여성 학살, 조직적 강간, 고문, 여성과 여자아이 말살을 전술로 이용하고 있었다. 여성 수천 수만 명이 자신의 몸으로부터 추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몸과 몸의 기능, 몸의 미래가 형편없이 망가졌다. 자궁과 질이 영원히 파괴된 것이다."


그녀는 '환희의 도시' 프로젝트를 통해 콩고의 여성들이 교육의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게 한다. 콩고 여성들이 외국에 나가 유학을 통해 교육을 받고, 그 결과 콩고를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 상처입고 고통받는 여성들이 '환희의 도시'에 모여 소통하고, 서로의 고통과 심리적 외상을 풀어놓을 수 있도록 한다. "여성들에게는 갈망과 꿈, 욕구와 비전이 있었다. '환희의 도시'라는 어떤 장소를, 그 개념을 생각해냈다. 그곳은 그들의 안식처가 될 것이다. 안전한 치유의 장소, 다시 기운을 차리고 함께 모이는 장소, 고통과 심리적 외상을 풀어놓는 장소가 될 것이다. 자신의 기쁨과 능력을 선언할 수 있는 장소, 스스로 지도자로 일어설 장소가 될 것이다." 환희의 도시에서 지켜져야 할 열 가지 원칙이 있다고 한다. 그 중 세 가지는, 진실을 말할 것, 구조되기를 기다리지 말 것,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을 내어줄 것,이다. 서로의 것을 주고, 받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고, 그를 통해 모두가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다. 또, 여성들이 자신의 고유한 힘과 생명력으로 고통을 회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살게 하려 하는 것이다.


전 세계 여성들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던 이브 엔슬러는 어느 날 자신의 자궁에서 암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자궁 속 암이, 이 세상의 모든 파괴당한 자궁과 연결되어있음을 확신한다. 다른 이의 고통을 '신체증상화'한 것과 같다. 상대의 고통은 나의 고통이며, 상대의 고통을 직시하고 공감할 때 그것은 나에게로 들어와 나의 것이 된다. 콩고의 아픔이 그녀의 아픔으로 자리잡은 것과 같은 이치다. 또, 자신의 암으로 인해 그녀는 자궁의 존재에 대해 더욱 명확히 인식하게 되었다. 비로소, 자신의 몸에 대해 관념적으로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브 엔슬러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몸을 가진 존재였고, 몸 안에 있었다. 몸이었던 것이다. 몸. 몸. 몸. 비정상적으로 분열되는 세포의 질병인 암은 나를 갈라놓았던 벽을 없애고 나를 내 몸 안에 내려놓았다. 콩고가 나를 세계의 몸 안에 내려놓은 것처럼."


이브 엔슬러는 여성의 질에 난 누공을 들여다본다. 가혹한 성 행위로 인해 여성의 질에 누공이 생기면, 오줌을 가릴 수 없게 된다. 그녀는 콩고 여성의 질에 난 누공을 통해 인류의 누공을 본다. "그것을 보고 하늘을, 하늘의 세포막과 그 오존층에 뚫린 구멍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은 '구멍 내는 기술자'가 되었다. 총알로 낸 구멍, 드릴로 뚫은 구멍, 상처를 주어 낸 구멍, 탐욕과 강간으로 만든 구멍. 표면이나 신체기관을 보호하도록 되어 있는 세포막에 난 구멍. 태양의 자외선이 지구 표면에 이르지 않도록 막아 지구를 보호하는 오존층에 생긴 구멍. 기존의 질병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DNA에 변형을 일으켜 피부암이 증가하도록 만든 구멍. 정신적 외상 때문에 우리 기억에 생긴 간극으로서의 구멍. 온전함과 완전함, 충만함의 가능성을 파괴하는 구멍. 이 여성의 남은 삶을 결정해버릴 구멍. 소변이나 대변을 참을 수 없게 되고 성관계를 망치거나 아주 힘들게 만들, 아기를 가질 가능성을 약화하고 고통스러운 수술을 몇 번이나 받아야 하지만, 그런데도 고칠 수 없을지 모르는 구멍. 마스크를 쓰고 가운을 입은 채 거기 서서 나는 내가 갑자기 숨을 멈췄음을 알았다. 이 여성의 질은 미래의 지도였고, 나는 나 자신이 세계의 구멍 속으로, 내 안의 구멍 속으로, 아빠가 밀고 들어와서 내가 길을 잃었을 때 생긴 구멍 속으로 추락하고 있다고 느꼈다."


정신이 신체를 지배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브 엔슬러는 파괴당한 여성들의 삶과 공존했고, 자신의 어린 시절에 겪은 성적 파괴의 경험을 직면했다. 그녀가 스스로 지닌 성적 파괴의 트라우마 때문에 콩고의 여성들의 고통에 더욱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위의 인용된 부분에서처럼, 이브 엔슬러는 콩고 여성의 질에 난 누공에서 자신의 구멍을 체험하고, 더 나아가 인류의 구멍을 체험했다. 아픔 속에서 또 다른 아픔을 발견하고, 세계의 불합리성을 직면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고통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이브 엔슬러는 자신의 병을 통해 궁극적으로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데 성공했다. 동생 루와의 관계를 회복했고, 어머니를 떠나보냈고, 아버지에 대한 상처의 기억을 극복했다. 그녀는 자신의 개인적 질병과 또 그것에 대한 극복을, 세계 인류의 문제와 그것에 대한 극복과 또 한번 결부시켰다. 학대와 강간, 유린의 기억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 인간, 한 여성으로서 지닌 굳센 생명력으로 상처를 뛰어넘고 서로를 포용하며 함께 상처를 치유해갈 공간에 대해, 희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2의 바람은 뭔가를 갖게 되거나 얻거나 사거나 획득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 당신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주고, 받은 것의 두 배를 주는 것이다. 당신에게 다가오는 것은 지금까지 알아왔던 무엇과도 다르다. 당신이 죽는 일, 내가 죽는 일은 다른 것과는 무관하지만 필연적이고 불가피하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라. 죽음은 우리의 끝이 아니다. 무관심이 끝일 것이다. 떨어져 나가는 것이 끝일 것이다. 부수적 피해, 즉 군사작전으로 발생하는 민간인의 인적 물적 피해와 극지에서 녹아내리는 만년설, 끝없는 기아, 대규모 강간, 말이 안될 정도의 재산이 끝일 것이다. 동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강의 일부임을 아는 사람들로부터 변화는 생겨날 것이다. 당신의 질병을 이겨내고 싶다면 아픈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라. 배고픔을 잊고 싶다면 친구에게 먹을 것을 줘라. 세균을 걱정해서 약초를 산더미처럼 쌓아놓은들 그것이 당신을 구하지 못할 것이고, 화려한 집과 담으로 둘러싼 마을도 당신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위의 인용된 부분에서, "동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강의 일부임을 아는 사람들로부터 변화는 생겨날 것이다." 라고 말한 대목이 가슴에 와 꽂혔다. 이브 엔슬러야말로 자신의 삶과 자신의 질병이 인류 모든 여성의 삶이자 질병이라는 것을 체험했고, 또 그것을 위해 맞서 싸웠다. 나의 인생 또한 그러기를 바란다. 대학 강의에서 들은, 관념적으로 존재하는 타인의 고통이 아니라, 또 다른 나의 고통을 똑 바로 바라보고 함께 아파할 수 있기를. 내가 가진 것을 내놓고, 받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내놓을 사람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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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행복 플러스 - 행복 지수를 높이는 시크릿
댄 해리스 지음, 정경호 옮김 / 이지북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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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저자는 미국 ABC 뉴스의 저명한 앵커이자 리포터인 댄 해리스다. 댄은 자신에 일에 대해 의욕과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 언제라도 자신이 경쟁에서 밀려나고 거리에 나앉을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상상에 시달리며 불안해한다. 그 불안은 때때로 아주 심각해졌고, 그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해 그는 마약에 의존하게 된다. 그 결과 댄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자신의 머릿속에 들려오는 '개망나니'같은 부정적인 목소리에 굴복당하며 허우적거린다.


그는 방송에서 아찔한 실수를 저지르거나, 마약에 취한 밤을 보내는 둥 외줄을 타듯 위태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댄은 영리한 사람이었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그는 가까스로 해결책을 찾아나간다. 맨 처음 그에게 도움이 된 것은 정신과의사 브로트만 박사와의 상담이었다. 브로트만 박사는 반드시 마약을 끊을 것을 강권했고, 한달에 몇 번씩 상담을 진행함으로써 댄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댄의 정신적 지주이자 대선배인 피터 제닝스의 제안에 따라 종교 취재 방송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댄은 원래부터 불가지론자, 곧 신의 영역을 인간이 인식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취재가 계속될 수록 종교 영역이나 명상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 그 결과, 댄은 다양한 종교에 깊은 흥미를 갖게 되었고, 특히 명상에 궁금증을 갖고 심층 취재를 시작한다.


댄은 마음 수련, 불교, 명상에 대해 합리적인 입장에서 접근해들어간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의 과학적 근거나 효과는 무엇인가?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순리에 따르는 것과, 실제로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것 간의 괴리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사건, 사고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하는 등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댄은 자기 자신을 매우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사람이라 칭하고 있다. 그런 그조차도, 명상을 훈련할 수록 자신의 삶이 보다 안정되고 편안해짐을 느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종교와 명상의 '신비주의적' 요소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고, 늘 비판적인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이런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종교나 마음 수련에 대해 너무 큰 부담감을 갖지는 않게 한다. 결국, 독자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선에서의 조언을 스스로 원하는 만큼만 취사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목적인 듯 하다. 아주 영리하다. 그에 딱 걸맞는 챕터의 제목이 있다. 10장, "나의 유익을 위한 명상 수련". 고로, 당신의 유익에 맞게, 합리적인 선에서 명상의 장점만을 얻으라는 것이 이 책의 메시지다.



댄 해리스와 그의 조언자들이 제시하는 몇몇 충고들을 살펴보자.


첫째, 에크하르트 톨레는 댄에게 이렇게 제안한다.

"내면의 평화를 이룬 다음에도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하는 겁니다." 여태까지와는 달리 힘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였다. "현재의 순간을 적이 아니라 친구로 만들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의 순간을 일종의 장애물로 간주하고 살아갑니다. 다음 순간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 할 장애물 말이지요. 그러니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겁니다."


둘째, 마크 엡스타인의 소개로 참석하게 된 불교 명상 세미나에서는 이러한 내용이 제시된다.

"마음을 다스리는 수련을 통해 우리는 털어버리려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집착하려 하지도 않는 상태에서 자기혐오라는 감정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그 감정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해방감'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감정들을 오히려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야 한다는 그의 얘기에 나는 잠시 혼란스러웠다. 보통 사람들의 반응과는 정반대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부대끼면 여유가 닿는 대로 쇼핑을 한다든지 뭔가를 먹는다든지 혹은 이런저런 약물을 복용한다든지 해서 일단 그 괴로움으로부터 멀어지려 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다르마에서는 "유일한 출구는 헤쳐 나가는 방법뿐"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나를 덮쳐오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그 속으로 뛰어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마크의 충고는 이렇다. 이 책의 내용 중 나의 마음에 가장 와닿는 내용이다.

'문제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라는 명상 수련 지침은 어떤 물리적인 행동도 취하지 말라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인식이 반드시 수동적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당하게 분노해야 할 때는 분노를 표출해야 한다. 다만 그 방법이 극단적이어서는 안 될 일이다. 마음을 다스리는 수련의 의의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 수련을 통해 우리의 의식 체계 속에 일종의 완충지대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자극이나 생각이 그 완충지대를 통과하는 동안 우리는 '반발'이 아니라 '반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된다. 머릿속에 생각이 피어오르는 자체를 통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생각들 때문에 헛되이 고민하며 살아간다.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생각들을 처리하는 방법 뿐이라는 사실을 깨우치고 올바른 방법에 따라 수련에 정진하면 그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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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개 1~3 세트 - 전3권
강형규 지음 / 네오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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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쓸개.

제목이 좀 섬짓하다. 표지에 실린 사진조차 너무 강렬해서, 섬짓한 기운이 더한 느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만화 그림체가 아주 강렬하고 대범하다. 한 마디로, 남성적인 만화다. 인물들의 눈빛은 아주 매섭고 독해서 마치 한 편의 느와르 영화 속에 살아 숨쉬는 연기파 배우들을 보는 기분이었다. 이 만화는 중국에서 건너온 어마어마한 양의 금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어디서 온 금괴인지는 알려주지 않지만 장물인 것은 확실한, 수많은 금괴를 손에 얻기 위해 치열한 싸움이 펼쳐진다.


주인공 쓸개는 해정과 길학수 사이에서 난 아들이다. 길학수는 본래 선량하고 욕심이 없는 성실한 청년으로 묘사된다. 그는 작은 천 가게에서 일하다, 중국 무역 사업에 뛰어들게 되면서 금괴 사업에 연루된다. 학수는 윗 사람의 명령으로 금괴를 운반하기 위해 중국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해정을 만난다. 해정은 금괴 작업의 명목상 대리인으로, 표면적인 주인으로서 금괴를 운반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조선족 여자다. 학수는 해정과 애정 관계를 맺고, 금괴에 대해 서서히 알게 된다. 금괴에 주인이 없다는 것을 알고, 금괴에 대한 욕심은 점점 커져갔다. 학수는 점점 악마처럼 변해갔다. 금괴를 갖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태세였다. 해정은 그런 학수를 보며 두려움에 싸였고, 급기야 금괴를 갖고 혼자 배를 타고 한국으로 도망친다. 해정은 기적적으로 마오수라는 남자를 만나, 그의 아내가 되어 한국에 숨어 살게 된다. 금괴는 딱 한 개만을 팔고 그 돈으로 구석진 마을에 가게를 차렸다. 해정은 아주 현실적이면서도 치밀하고 단호한 여성으로, 나름대로 아주 지혜로운 인물이다. 금괴를 다 팔면 어떻겠냐는 남편 마오수의 말에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그 금 다 팔면 꼬리가 길어져… 그라믄 잡힙네다. 잡히믄… 죽소. 남은 금은 잊으시라요." 마오수는 해정을 사랑했기에, 금괴에 대한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나름대로 평화로운 세월을 보낼 수 있었을 법 했으나 길학수가 자신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해정은 어린 쓸개와 남편 마오수를 두고 떠난다. 자신이 없으면 그나마 안전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마오수의 아들로서, 평생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가게 안에만 숨어살았던 쓸개는 어느덧 어른이 되고, 마오수의 유언으로 인해 금괴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 금괴를 처리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위험천만한 스토리가 시작된다. 해정의 말이 이 만화의 핵심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 금 장물이요. 우리가 훔친 기라고. 위험한 금이라 여서는 돈 구실도 못 해먹어. 더욱이 조선족이 이 많은 금을 가지고 있다 하믄… 누가 인정해주갔어? 남이 인정 안하는 금은 그냥 돌이디."


금괴의 존재를 알게 된 사람은 모두 금에 대한 욕망을 품게 된다. 그 중 금에 대해 비정상적일 정도로 집착하는 사람은 길학수인데, 눈 앞에서 금을 놓쳤다는 과거의 패배감까지 더해져 그 욕망이 광기에 이를 정도다. 하지만 만화 속 인물 중에서도 금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인물이 두 명 존재한다. 바로 주인공 쓸개와 이정환이다. 먼저 주인공 쓸개의 경우 현실감도, 물욕도 없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는 물질에 대한 욕망보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겠다는 욕망이 더 큰 인물이다. 어쩌면 쓸개야말로 비현실적이고 '영웅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러한 예외성은 쓸개가 자신의 평생을 혼자만의 방에 갇혀 지냈다는 예외적인 배경 설정으로 인해 개연성있게 설명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부분은 이정환에 대한 내용이다. 이정환은 길학수의 수하에 있지만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어했고, 쓸개의 계획을 전폭적으로 도와 길학수를 무너뜨린다. 하지만 그가 어떤 마음으로 길학수에게서 벗어나고 싶어했는지, 왜 금에 대해서는 어떠한 욕심도 갖지 않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더 필요하리라는 생각을 한다. 만화책 세 권 분량 안에 모든 설명과 인물 묘사를 담기에는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약간의 아쉬움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것은 굵고 강렬한 표현력이다. 망설임이 느껴지지 않는 대담한 표현력, 그리고 그로 인한 흡입력이 이 만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속도감 있게, 빨려 들어가듯 몰입해서 읽었으리라 생각한다. 평소 느와르물이나 범죄물을 좋아하지 않던 나 또한 이 만화를 읽으며 스릴감을 느꼈고, 아주 몰입해서 읽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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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의 집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권여선의 『토우의 집』



  『토우의 집』은 1960∼70년대 진보적인 인사들을 간첩으로 몰아 8명을 다급히 사형시켰던 ‘인혁당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인혁당 사건은 2007년 재심에서 ‘고문에 의해 과장·조작된 것’이라는 이유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소설 속 새댁의 남편인 안덕규가 그 피해자로 그려진다. 안덕규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지는 소설에서는 제대로 묘사되지 않았으나 원통하게 '빨갱이'로 몰려 가혹한 고문을 받고, 결국에는 사형을 당하게 된다. 작가는 “그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다기보다는 국가적 폭력이 한 개인이나 가족에 미치는 상처를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작의를 밝힌 바 있다. 또, 작가의 말에서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그들의 고통은 물론이고, 내 몸에서 나온, 그 어린 고통조차 알아보지 못한다. 고통 앞에서 내 언어는 늘 실패하고 정지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 어린 고통이 세상의 커다란 고통의 품에 안기는 그 순간의 온기를 위해 이제껏 글을 써왔다는 걸. 그리하여 오늘도 미완의 다리 앞에서 직녀처럼 당신을 기다린다는 걸."

 

  소설의 배경이 되는 삼악동, 일명 삼벌레 고개는 지형적 특징을 따라 빈부격차가 나뉘는 지역이다. 아랫동네에는 부유한  사람들이, 윗동네에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살았다. 그리고 그 고갯길의 딱 중간쯤이다 싶은 곳 서로 다른 것이 서로 공존하는 곳이, 소설 속 인물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이 소설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소시민'이라 칭할 수 있겠다. 먹고 죽을래도 돈이 없네, 애들이 크니까 돈을 아껴야지, 하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아가는, 모두 비슷한 처지에서 아등바등 살아나가는 소시민들이다.

 

"순분은 두 아이를 안고 눈물을 훔치면서 원이 던진 수수께끼 같은 말을 생각했다. 눌은 놈도 있고 덜 된 놈도 있고 찔깃한 놈도 있고 보들한 놈도 있고, 그렇게 다 있다고 했지. 눌은 놈 덜 된 놈 찔깃한 놈 보들한 놈. 순분은 그게 마치 사내들에 대한 형용 같다고 생각했다. 서슬이 퍼래서 당장 빨갱이 집을 쫓아내자고 설치고 다니는 통장 박가 같은 놈은 어떤 놈일 것이며, 밤마다 불안감에 사로잡혀 새댁네를 어떻게 내보낼 수 없을까 궁리하는 자기 남편 같은 놈은 어떤 놈일까. 같은 놈일까 다른 놈일까. 눌은 놈도 덜 된 놈도, 찔깃한 놈도 보들한 놈도, 어차피 그놈이 그놈 같았다. 그러자 한없이 구슬픈 마음이 들었지만, 두 아이의 등을 번갈아 토닥이는 순분의 표정은 어스름 녘의 능선처럼 차분하고 부드러웠다."

 

  토우는 사람을 장례시킬 때 함께 묻는 토기 인형이다. 안덕규의 죽음과 더불어, 인형인 희에게 집착적인 관심을 쏟는 원이의 모습과 연결고리가 되는 비유적 표현으로 쓰인 듯하다. 또, 주술적 신앙이 삼벌레 고개에 만연해 있다는 점까지도 반영되어, 토우의 의미가 여러가지로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원이와 친하게 지내던 은철이 순식간의 사고로 인해 다리 불구가 되는 사건으로 시작해, 안덕규가 연행되고 그로 인해 새댁네가 광인이 되기까지, 비극은 끊이지 않고 우물집을 덮친다. 일단 비극이 다치고 나면, 이 힘 없는 사람들은 그 어떠한 방어도 대처도 하지 못한 채 스러진다. 생의 에너지를 모두 잃은 듯, 슬픔과 광기만이 남는다.

 

"은철도 깁스를 푼 지 얼마 안 되는 가느다란 왼 다리를 끌며 앉은걸음으로 다가와 같이 울었다. 두 아이는 각자의 서러움에 복받쳐 울었다. 애초부터 계란볶음밥 같은 건 문제도 아니었다. 어린 스파이들은 회복할 수 없이 망가진 것들 때문에 울었다. 일 년도 안 된 지난 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서 울었다. 이 모든 일이 어린 그들에게 지나치게 억울하고 가혹해서 울었다."

 

"순분은 이것으로 다 되었다 싶었다. 미안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젠 그만 되었다 싶고 한시름이 놓였다. 눌은 놈도 있고 덜 된 놈도 있고 찔깃한 놈도 있고 보들한 놈도 있고, 그렇게 다 있는 거라는 원의 말이 떠올라 헛웃음이 났다. 박가나 통장집이나 남편이나 자기나, 알고 보면 다 거기서 거기였다. 박가가 우물집을 탐낸다는 말을 복덕방 영감으로부터 들었는데, 빨갱이가 살던 집에 빨갱이 잡는 놈이 들어와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슬렁슬렁 재미를 보면서 살든 따박따박 도리를 지키며 살든 철퇴가 떨어지면 맞아 죽는 건 똑같았다. 그러니 어떻게든 철퇴를 맞지 않는 게 장땡이었다."

 

  고통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광기 어리도록 처연하고 애처롭게. 다가온 폭력 앞에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하고, 결국 홀로 남겨진 어린 아이들의 뒷모습이 애잔하게 느껴진다. 우물집 새댁네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지, 그 진위는 밝혀지지 않은 채 이 이야기는 마을 사람들의 수다거리로, 어쩌면 아이들을 떨게 할 무서운 괴담이 되어 마을에 남았을는지 모른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은 또 그럭저럭, 산 사람은 산 사람대로 그들의 삶을 살아간다. 그것이 희망이라면 희망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고, 언제 누구에게 닥쳐올 지 모를 끝나지 않는 비극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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