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차단
제바스티안 피체크.미하엘 초코스 지음, 한효정 옮김 / 단숨 / 2015년 2월
평점 :
절판
사건이 흘러가는 긴박감이 나를 죄어온다. 이야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 또한 매우 흥미진진하다. 덕분에 5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아주 빠르게 끝낼 수 있었다. 가장 뛰어난 부분은 린다가 그녀의 스토커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이다. 마치 그 스토커가 지금 내 집 어딘가에 살아숨쉬고 있을 것 같은 불안감이 들 정도다. 첫 부분은 읽을 때에는, 린다라는 여자가 너무 큰 트라우마로 인해 강박증과 과대망상에 시달리는 줄만 알았다. 그녀가 정말 제정신인지 아닌지를 궁금해하며 의심해가며 그녀의 두려움을 함께 느꼈다. 아주 생생하게 말이다.
스토리는, 과거의 한 판사가 성폭행범에게 내린 너무 '관대한 판결'에 대한 보복을 둘러싸고 일어난다. 그 보복을 통해 보여주려고 했던 결과 뿐 아니라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까지 초래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피해자 두 아동의 아버지들은 두 아동을 성폭행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들었던 범인 사들러에게 주어진 터무니 없이 작은 형벌과, 그로 인한 결과에 대해 폭로한다. 그 폭로의 수단으로 주인공인 헤르츠펠트를 이용한 것이다. 그 핵심은, 헤르츠펠트 스스로가 자신을 피해자의 아버지와 똑같은 상황에 처해보게 하는 것이었다. 피해자 가족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이 범죄 사건 처리가 얼마나 부조리하고 원통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고 적나라하게 들여다보이도록 했다.
"그렇다면 자네 스스로 이미 잘 알고 있겠군. 보복에 눈이 먼 분노가 어디로 이끌 수 있는지 말일세, 스벤. 퇴벤은 해서는 안 될 관대한 판결로 그녀 남편을 거짓으로 고발했던 그 여성에게 복수했네, 혹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그런 일이 가능한 사회에 대해서 복수했던 것이네. 하지만 자네는 우리 가족을 파괴했어. 내가 자네 딸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낄 만한 짓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말일세." (p. 345)
"희생자를 범인으로 만드는 전체 시스템이 문제인 것이오."
슈빈토프스키가 설명했다.
"그것은 모든 실종자 신고접수와 함께 수색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과도한 업무를 감당해야 하는 경찰의 문제이고. 아동강간범보다 탈세범을 더 엄하게 처벌하는 사법 당국의 문제이고. 내가 소유하고 있던 불법 카지노에 대해서는 나를 독방에 처넣고 싶어하면서, 성폭행범들에게는 그들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발견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즉시 감옥 밖에서 노역할 기회까지 줄 것을 권고하는 심리학자들의 문제이기도 하오. 그리고 당연히, 이른바 법치국가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법의학 기관의 문제이기도 하오. 거기서 하는 일이란 게 결국에는 범인에게나 유용한 것이고, 희생자들을 두 번 벌하는 거나 다를 바 없소." (p. 360)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최고의 자기방어 기회를 주도록 하는 것이 우리 헌법의 고귀한 원칙 중 하나입니다."
"좋습니다. 그리고 그 유죄였던 사람 중 한 번이라도 성폭력범이나 아동 살해범이 있었습니까?"
"서류를 먼저 검토해봐야……"
"서두르세요, 안조르게 박사님. 독일 최고의 형사변호인이라면, 좋은 기억력을 가지고 계실 겁니다. 성폭력이나 아동 학대에 관련된 사건이 단 하나라도 있었습니까?"
"제 생각에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어차피 그런 사건은 무죄판결을 얻어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단지……."
"……진실을 세상에 알리고 정의는 계속 그의 갈 길을 간다는 믿음을 쌓아갔겠죠. 저도 압니다."
헤르츠펠트는 어떤 혐오감의 내색도 없이 말했다. 어떤 반감도 없이. 그리고 안조르게를 비난하지도 않았다. 그 또한 언젠가 똑같이 처신했다. 그의 딸이 납치되기 전까지는.
그는 경기 규칙을 충실히 따랐고 시스템을 신뢰했다. 진실을 제대로 판단할 줄 아는 심판이 있다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믿음이 상황을 어디로 이끌었단 말인가? 사들러는 우스울 만큼 짧은 기간 후에 다시 풀려났고, 또 다른 가족이 불행의 늪으로 미끄러졌고 결국엔 완전히 망가져버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했다. (p. 47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