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끝에서 세상에 안기다 - 암을 치유하며 써내려간 용기와 희망의 선언
이브 엔슬러 지음, 정소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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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엔슬러, 『절망의 끝에서 세상에 안기다』

 

 

이브 엔슬러는 페미니스트로, 세상의 고통받는 여성들의 삶을 똑똑히 직면하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분투하는 백인 유대인 여성이다. 특히, 그 고통의 극단에 처해있는 곳은 콩고였다. 콩고에서는 전쟁과 채굴, 도시 약탈과 함께 여성에 대한 강간이 일어난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잔혹한 강간이 행해진다. 이브 엔슬러는 이 모든 잔학 행위들이 의도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여성 강간을 전략적으로 사용해, 민족이 파괴되고 도시의 미래가 사라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전쟁과 채굴은 성적 약탈과 떨어질 수 없는 행위다. 그 결과, 콩고의 여성들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고, 가정은 파괴되며 고통의 신음을 흘리게 된다.  질(vagina)의 파괴는 미래의 파괴이자 종말이라고, 이브 엔슬러는 말한다. "물론 콩고에 도착했을 즈음 이미 나는 이 지구의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라는 전염병을 충분히 목격했다. 그러나 나는 콩고에서 몸의 종말, 인류의 종말, 세계의 종말을 목격했다. 군대와 기업은 광물을 확보하기 위해 여성 학살, 조직적 강간, 고문, 여성과 여자아이 말살을 전술로 이용하고 있었다. 여성 수천 수만 명이 자신의 몸으로부터 추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몸과 몸의 기능, 몸의 미래가 형편없이 망가졌다. 자궁과 질이 영원히 파괴된 것이다."


그녀는 '환희의 도시' 프로젝트를 통해 콩고의 여성들이 교육의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게 한다. 콩고 여성들이 외국에 나가 유학을 통해 교육을 받고, 그 결과 콩고를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 상처입고 고통받는 여성들이 '환희의 도시'에 모여 소통하고, 서로의 고통과 심리적 외상을 풀어놓을 수 있도록 한다. "여성들에게는 갈망과 꿈, 욕구와 비전이 있었다. '환희의 도시'라는 어떤 장소를, 그 개념을 생각해냈다. 그곳은 그들의 안식처가 될 것이다. 안전한 치유의 장소, 다시 기운을 차리고 함께 모이는 장소, 고통과 심리적 외상을 풀어놓는 장소가 될 것이다. 자신의 기쁨과 능력을 선언할 수 있는 장소, 스스로 지도자로 일어설 장소가 될 것이다." 환희의 도시에서 지켜져야 할 열 가지 원칙이 있다고 한다. 그 중 세 가지는, 진실을 말할 것, 구조되기를 기다리지 말 것,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을 내어줄 것,이다. 서로의 것을 주고, 받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고, 그를 통해 모두가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다. 또, 여성들이 자신의 고유한 힘과 생명력으로 고통을 회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살게 하려 하는 것이다.


전 세계 여성들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던 이브 엔슬러는 어느 날 자신의 자궁에서 암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자궁 속 암이, 이 세상의 모든 파괴당한 자궁과 연결되어있음을 확신한다. 다른 이의 고통을 '신체증상화'한 것과 같다. 상대의 고통은 나의 고통이며, 상대의 고통을 직시하고 공감할 때 그것은 나에게로 들어와 나의 것이 된다. 콩고의 아픔이 그녀의 아픔으로 자리잡은 것과 같은 이치다. 또, 자신의 암으로 인해 그녀는 자궁의 존재에 대해 더욱 명확히 인식하게 되었다. 비로소, 자신의 몸에 대해 관념적으로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브 엔슬러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몸을 가진 존재였고, 몸 안에 있었다. 몸이었던 것이다. 몸. 몸. 몸. 비정상적으로 분열되는 세포의 질병인 암은 나를 갈라놓았던 벽을 없애고 나를 내 몸 안에 내려놓았다. 콩고가 나를 세계의 몸 안에 내려놓은 것처럼."


이브 엔슬러는 여성의 질에 난 누공을 들여다본다. 가혹한 성 행위로 인해 여성의 질에 누공이 생기면, 오줌을 가릴 수 없게 된다. 그녀는 콩고 여성의 질에 난 누공을 통해 인류의 누공을 본다. "그것을 보고 하늘을, 하늘의 세포막과 그 오존층에 뚫린 구멍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은 '구멍 내는 기술자'가 되었다. 총알로 낸 구멍, 드릴로 뚫은 구멍, 상처를 주어 낸 구멍, 탐욕과 강간으로 만든 구멍. 표면이나 신체기관을 보호하도록 되어 있는 세포막에 난 구멍. 태양의 자외선이 지구 표면에 이르지 않도록 막아 지구를 보호하는 오존층에 생긴 구멍. 기존의 질병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DNA에 변형을 일으켜 피부암이 증가하도록 만든 구멍. 정신적 외상 때문에 우리 기억에 생긴 간극으로서의 구멍. 온전함과 완전함, 충만함의 가능성을 파괴하는 구멍. 이 여성의 남은 삶을 결정해버릴 구멍. 소변이나 대변을 참을 수 없게 되고 성관계를 망치거나 아주 힘들게 만들, 아기를 가질 가능성을 약화하고 고통스러운 수술을 몇 번이나 받아야 하지만, 그런데도 고칠 수 없을지 모르는 구멍. 마스크를 쓰고 가운을 입은 채 거기 서서 나는 내가 갑자기 숨을 멈췄음을 알았다. 이 여성의 질은 미래의 지도였고, 나는 나 자신이 세계의 구멍 속으로, 내 안의 구멍 속으로, 아빠가 밀고 들어와서 내가 길을 잃었을 때 생긴 구멍 속으로 추락하고 있다고 느꼈다."


정신이 신체를 지배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브 엔슬러는 파괴당한 여성들의 삶과 공존했고, 자신의 어린 시절에 겪은 성적 파괴의 경험을 직면했다. 그녀가 스스로 지닌 성적 파괴의 트라우마 때문에 콩고의 여성들의 고통에 더욱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위의 인용된 부분에서처럼, 이브 엔슬러는 콩고 여성의 질에 난 누공에서 자신의 구멍을 체험하고, 더 나아가 인류의 구멍을 체험했다. 아픔 속에서 또 다른 아픔을 발견하고, 세계의 불합리성을 직면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고통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이브 엔슬러는 자신의 병을 통해 궁극적으로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데 성공했다. 동생 루와의 관계를 회복했고, 어머니를 떠나보냈고, 아버지에 대한 상처의 기억을 극복했다. 그녀는 자신의 개인적 질병과 또 그것에 대한 극복을, 세계 인류의 문제와 그것에 대한 극복과 또 한번 결부시켰다. 학대와 강간, 유린의 기억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 인간, 한 여성으로서 지닌 굳센 생명력으로 상처를 뛰어넘고 서로를 포용하며 함께 상처를 치유해갈 공간에 대해, 희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2의 바람은 뭔가를 갖게 되거나 얻거나 사거나 획득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 당신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주고, 받은 것의 두 배를 주는 것이다. 당신에게 다가오는 것은 지금까지 알아왔던 무엇과도 다르다. 당신이 죽는 일, 내가 죽는 일은 다른 것과는 무관하지만 필연적이고 불가피하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라. 죽음은 우리의 끝이 아니다. 무관심이 끝일 것이다. 떨어져 나가는 것이 끝일 것이다. 부수적 피해, 즉 군사작전으로 발생하는 민간인의 인적 물적 피해와 극지에서 녹아내리는 만년설, 끝없는 기아, 대규모 강간, 말이 안될 정도의 재산이 끝일 것이다. 동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강의 일부임을 아는 사람들로부터 변화는 생겨날 것이다. 당신의 질병을 이겨내고 싶다면 아픈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라. 배고픔을 잊고 싶다면 친구에게 먹을 것을 줘라. 세균을 걱정해서 약초를 산더미처럼 쌓아놓은들 그것이 당신을 구하지 못할 것이고, 화려한 집과 담으로 둘러싼 마을도 당신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위의 인용된 부분에서, "동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강의 일부임을 아는 사람들로부터 변화는 생겨날 것이다." 라고 말한 대목이 가슴에 와 꽂혔다. 이브 엔슬러야말로 자신의 삶과 자신의 질병이 인류 모든 여성의 삶이자 질병이라는 것을 체험했고, 또 그것을 위해 맞서 싸웠다. 나의 인생 또한 그러기를 바란다. 대학 강의에서 들은, 관념적으로 존재하는 타인의 고통이 아니라, 또 다른 나의 고통을 똑 바로 바라보고 함께 아파할 수 있기를. 내가 가진 것을 내놓고, 받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내놓을 사람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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