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우의 집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권여선의 『토우의 집』



  『토우의 집』은 1960∼70년대 진보적인 인사들을 간첩으로 몰아 8명을 다급히 사형시켰던 ‘인혁당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인혁당 사건은 2007년 재심에서 ‘고문에 의해 과장·조작된 것’이라는 이유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소설 속 새댁의 남편인 안덕규가 그 피해자로 그려진다. 안덕규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지는 소설에서는 제대로 묘사되지 않았으나 원통하게 '빨갱이'로 몰려 가혹한 고문을 받고, 결국에는 사형을 당하게 된다. 작가는 “그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다기보다는 국가적 폭력이 한 개인이나 가족에 미치는 상처를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작의를 밝힌 바 있다. 또, 작가의 말에서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그들의 고통은 물론이고, 내 몸에서 나온, 그 어린 고통조차 알아보지 못한다. 고통 앞에서 내 언어는 늘 실패하고 정지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 어린 고통이 세상의 커다란 고통의 품에 안기는 그 순간의 온기를 위해 이제껏 글을 써왔다는 걸. 그리하여 오늘도 미완의 다리 앞에서 직녀처럼 당신을 기다린다는 걸."

 

  소설의 배경이 되는 삼악동, 일명 삼벌레 고개는 지형적 특징을 따라 빈부격차가 나뉘는 지역이다. 아랫동네에는 부유한  사람들이, 윗동네에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살았다. 그리고 그 고갯길의 딱 중간쯤이다 싶은 곳 서로 다른 것이 서로 공존하는 곳이, 소설 속 인물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이 소설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소시민'이라 칭할 수 있겠다. 먹고 죽을래도 돈이 없네, 애들이 크니까 돈을 아껴야지, 하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아가는, 모두 비슷한 처지에서 아등바등 살아나가는 소시민들이다.

 

"순분은 두 아이를 안고 눈물을 훔치면서 원이 던진 수수께끼 같은 말을 생각했다. 눌은 놈도 있고 덜 된 놈도 있고 찔깃한 놈도 있고 보들한 놈도 있고, 그렇게 다 있다고 했지. 눌은 놈 덜 된 놈 찔깃한 놈 보들한 놈. 순분은 그게 마치 사내들에 대한 형용 같다고 생각했다. 서슬이 퍼래서 당장 빨갱이 집을 쫓아내자고 설치고 다니는 통장 박가 같은 놈은 어떤 놈일 것이며, 밤마다 불안감에 사로잡혀 새댁네를 어떻게 내보낼 수 없을까 궁리하는 자기 남편 같은 놈은 어떤 놈일까. 같은 놈일까 다른 놈일까. 눌은 놈도 덜 된 놈도, 찔깃한 놈도 보들한 놈도, 어차피 그놈이 그놈 같았다. 그러자 한없이 구슬픈 마음이 들었지만, 두 아이의 등을 번갈아 토닥이는 순분의 표정은 어스름 녘의 능선처럼 차분하고 부드러웠다."

 

  토우는 사람을 장례시킬 때 함께 묻는 토기 인형이다. 안덕규의 죽음과 더불어, 인형인 희에게 집착적인 관심을 쏟는 원이의 모습과 연결고리가 되는 비유적 표현으로 쓰인 듯하다. 또, 주술적 신앙이 삼벌레 고개에 만연해 있다는 점까지도 반영되어, 토우의 의미가 여러가지로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원이와 친하게 지내던 은철이 순식간의 사고로 인해 다리 불구가 되는 사건으로 시작해, 안덕규가 연행되고 그로 인해 새댁네가 광인이 되기까지, 비극은 끊이지 않고 우물집을 덮친다. 일단 비극이 다치고 나면, 이 힘 없는 사람들은 그 어떠한 방어도 대처도 하지 못한 채 스러진다. 생의 에너지를 모두 잃은 듯, 슬픔과 광기만이 남는다.

 

"은철도 깁스를 푼 지 얼마 안 되는 가느다란 왼 다리를 끌며 앉은걸음으로 다가와 같이 울었다. 두 아이는 각자의 서러움에 복받쳐 울었다. 애초부터 계란볶음밥 같은 건 문제도 아니었다. 어린 스파이들은 회복할 수 없이 망가진 것들 때문에 울었다. 일 년도 안 된 지난 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어서 울었다. 이 모든 일이 어린 그들에게 지나치게 억울하고 가혹해서 울었다."

 

"순분은 이것으로 다 되었다 싶었다. 미안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젠 그만 되었다 싶고 한시름이 놓였다. 눌은 놈도 있고 덜 된 놈도 있고 찔깃한 놈도 있고 보들한 놈도 있고, 그렇게 다 있는 거라는 원의 말이 떠올라 헛웃음이 났다. 박가나 통장집이나 남편이나 자기나, 알고 보면 다 거기서 거기였다. 박가가 우물집을 탐낸다는 말을 복덕방 영감으로부터 들었는데, 빨갱이가 살던 집에 빨갱이 잡는 놈이 들어와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슬렁슬렁 재미를 보면서 살든 따박따박 도리를 지키며 살든 철퇴가 떨어지면 맞아 죽는 건 똑같았다. 그러니 어떻게든 철퇴를 맞지 않는 게 장땡이었다."

 

  고통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광기 어리도록 처연하고 애처롭게. 다가온 폭력 앞에 어떠한 저항도 하지 못하고, 결국 홀로 남겨진 어린 아이들의 뒷모습이 애잔하게 느껴진다. 우물집 새댁네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지, 그 진위는 밝혀지지 않은 채 이 이야기는 마을 사람들의 수다거리로, 어쩌면 아이들을 떨게 할 무서운 괴담이 되어 마을에 남았을는지 모른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은 또 그럭저럭, 산 사람은 산 사람대로 그들의 삶을 살아간다. 그것이 희망이라면 희망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고, 언제 누구에게 닥쳐올 지 모를 끝나지 않는 비극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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