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컬렉터 1 - 양(RAM)의 시간
이혜원 지음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1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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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내면의 흐름을 중시하는 본격문학만이 문학이고 추리나 SF소설은 문학이 아닐까? 한때 추리소설에 빠진 적이 있는데, 시간 아깝게 왜 그런 책 읽느냐며 같잖게_수준 떨어진다는 뉘앙스_ 여기는 동료들이 있기도 했다. 일종의 편견이라 난 생각한다. 순수문학이든 장르소설이든 독자 자신이 그 책에서 뭔가의 만족을 얻었다면 그로써 그 책의 가치와 역할을 다한 거지 별거 있남? 클래식 애호가라 하여 대중음악 전혀 듣지 않는 거 아니잖은가. 그저 성향과 상황에 따라 순간순간 좋아하는 관점이 다를 뿐이다. 자신이 즐기는 분야가 아니라하여 다른 쪽을 비방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외곬으로 치우칠 때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을 스스로 잃어버리는 거라 여겨진다. 요즘은 통섭과 융합이 대세라지 않는가. 전문가들은 그냥 자신의 분야에 치중하면 되고, 독자들은 그저 자신이 즐기고 싶은 데로 즐기면 그 뿐! 너무 뭐라 말자.

 

결국 중요한 것은 작품성인데, 이건 장르마다 그 잣대가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SF환상소설은 어떤 기준으로 작품 평가를 해야 할까? 특별한 기준이 있는가 하여 인터넷을 서핑해 보니 별게 없다. 추리소설의 평가는 엘러리 퀸_Ellery Queen_이 만든 10가지 관점(구성, 서스펜스, 의외의 결말, 해결방법의 합리성, 문장, 성격묘사, 무대, 살인의 방법, 단서, 독자와의 대결)이라든지, 모출판사에서 자체로 만든 6가지 관점(고전의 반열, 대반전, 속도감, 캐릭터, 논리정연, 선정성) 등 어떤 잣대가 있는데, 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한 SF소설은 안보이네. 조금 난감하지만 SF소설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대략 창의성, 캐릭터, 스토리, 속도감 등이 아니겠느냐. 그래서 이번에 읽은 과학환상소설 <드림 컬렉터>는 이런 범주로 나누어 생각을 한번 해보고자 한다. _이 참에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도 SF소설의 평가기준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적용시켜 보는 것은 어떠한지..._ 

 

1. 창의적 상상력
 <드림 컬렉터>에서 이 '창의적 상상력'은 정말 인정하고 싶다. 작품의 무대도 그렇거니와 주요 소재 또한 예사롭지 않다. 미래 세계의 우주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는 것은 SF소설에서 흔하디흔한 일이나, 주 무대인 태양계 최고의 유흥 행성 '마야'는 제법 참신하고 독창적이다. 꿈의 행성이라고도 불리는 마야는 인간의 상상에 반응해서 그 사람이 상상하는 일을 실제로 겪게 되는, '모든 상상이 가능한 행성'인 것이다. 꽤 괜찮은 우주적 상상력이지 않은가. 또한 이곳에서만 가능한, 누군가의 꿈을 컬렉트(채집)하고 이를 재가공하여 수면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으로 상품화한 '힙노스'가 이 소설의 주요 주제인데, 꿈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영화 <인셉션>이 가끔씩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래도 상당히 흥미롭고 괜찮은 설정이다. 사람들은 힙노스를 통해 폭발적인 아드레날린과 유사·대리 체험의 감정적 만족을 얻는다. 별 ★★★★★

 

네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진 환상 행성 - 마야!
○ 판타소스 돔 : 란츠만 지수가 원형대로 유지되는 곳. 상상도우미들이 여러 가지 환상을 실현시켜 주는 래빗 홀이 대표적인 관광지.
아난다 돔 : 시뮬레이션의 천국으로 꿈을 ‘힙노스’해서 상품으로 만든다. 타인의 꿈을 마치 영화처럼 즐기게 되는 곳.
모피어스 돔 : 영화 촬영지로 만들어진 곳으로 불가능하게 여겨지는 특수 촬영이 이곳에서는 모두 가능하다.
닉스 돔 : 란츠만과 마야 코어의 반응을 억제시켜 놓은 곳으로 이곳에서는 환상을 실재화 할 수 없다. 쇼핑몰과 호텔, 식당, 사무실 등이 이곳에 밀집해 있다. (출판사 리뷰에서 인용)

 

2. 캐릭터
사람들이 꾸는 꿈을 수집해서 다른 사람들이 그 꿈을 즐길 수 있도록 힙노스로 만드는 S급 드림 컬렉터 '야신 카갈리스키'가 이 소설의 메인 캐릭터이다. 큰 키, 짧은 은발과 구릿빛 피부, 기분 나쁜 회색 눈을 가진 일명 '귀신 눈깔'이라 불리는 남자. 한 때 램스필드사 힙노스 개발 수석연구원. 습관적으로 담배를 끼고 살며, 그의 허리춤에 체인으로 연결된 합금 담뱃갑, 그 맨 오른쪽 구석에 부적같이 여기는 담배 하나. 그의 비밀무기(?)이다. 나는 이 야신에게서 '솔로몬 케인'을 떠올린다. 책의 전개와 그 이미지가 엇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이 야신에 대응하는 변혁의 인물은 '카이야 레만', 래빗 홀의 에이스 상상 도우미로 "그는 몽마 같았고, 어떤 의미에선 괴물이었다". 자신의 강력한 꿈 파장을 이용해 마야의 신이자 교주가 되고자 하는 초능력자. X맨의 메그니토를 연상해 본다. 그런데 카이야의 캐릭터는 야신에 비해 너무 조촐하다. 적어도 배트맨의 조커 정도는 되어야 책이 재미있을 것인데...
나머지 인물은 그저 조연에 불과하다. 별★★★☆

 

등장인물
야신 카갈리스키 : 드림 컬렉터. 별명은 귀신 눈깔. 30대 초반. 가장 탁월한 드림 컬렉터. 은발에 검은 스웨이드 재킷을 즐겨 입는 헤비 스모커.
 타소 : 닉스 돔 살류트 거리에 있는 타로 점집 ‘라다’의 주인. 드림 컬렉터들을 거느린 사업주이기도 하다. 20대 후반으로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절세미인. 
카이야 레만 : 검은 머리에 창백한 얼굴의 아랍계 외모를 지닌 의문의 사나이. 교통사고 이후에 꿈을 꿀 수 없게 되었다. 자신이 꾸어서 팔아먹은 꿈들을 다시 찾아달라고 야신에게 의뢰를 한다.
데르크 아데만 : 마야 행성을 컨트롤 하는 소브컴의 책임자. 감색 슈트에 갈색 머리의 개성 없는 얼굴의 소유자. 철두철미한 실무형이지만 고지식한 사람은 아니다.
재스퍼와 오닐 : 라다 소속의 드림 컬렉터들. 재스퍼는 쓸데없이 명랑하고, 오닐은 전직 프로그래머로 고지식하다.
첸 타이샨과 줄리 캠벨 : 램스필드 소속의 연구원들로 부부 사이. 줄리는 천재로 괴팍하고 첸은 그 비위를 맞추며 살아간다. 첸은 어느 날 램스필드의 연구 자료를 들고 사라져버린다. 줄리는 그를 찾기 위해 야신을 찾아오게 되는데... (출판사 리뷰에서 인용)

 

3. 스토리(구성, 플롯)와 속도감
뛰어난 배경 설정에도 불구하고 스토리 전개는 밋밋하다. 카이야의 존재를 살짝 등장시키고 그의 은밀한 동선에 사건을 붙여 종국적으로 마지막 대결로 이르기 까지 긴장감이나 숨겨둔 복선, 은근한 암시 이런 거 하나도 없다. 기승전결의 전(轉,전환)이 없으니 그저 맹~할뿐... 단편적 사건들 속에 카이야가 있음을 살짝 보여주고 있으나 극적인 위기가 없으니 중간이 지루하였다. 정교한 스토리 속에 주인공이 '위기'와의 대결을 통해 변화할 때_무협지에서도 주인공이 기연을 얻어 거듭나지 않나_ 독자는 소설 속으로 더 몰입하게 되는데, 이 소설은 이런 맛이 약하다. 한마디로 전체를 얽는 얼개(플롯)가 허술하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무엇보다 치명적인 것은 작가의 필력이다. 꿈속에 트라우마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인지 마치 해리성 장애를 가진 정신분열환자의 글을 읽는 듯하다. 그러니 재미보다는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몰입이 잘 안된다. 당연히 읽는 속도가 떨어지고 재미도 없어진다. 만약 두 권으로 이루어진 <드림 컬렉터>의 일정 부분을 버리고 좀 더 타이트하고 유려하게 재구성한다면? 제법 우수한 SF소설로 자리매김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매우 아쉽다. 별 ★★

 

에필로그1. 부제에 관하여...
<드림 컬렉터> 1권의 부제는 '양(RAM)의 시간'이고, 2권은 '신(SHELL)의 주인'이다. 아~ 애매하고도 쌈빡하다. 저자는 두 권이나 되는 책에 프롤로그나 에필로그 또는 후기 하나 적지 않았다. 도대체 부제가 뜻하는 바가 뭘까? 사전적으로 풀 수 없는 문제이지만 책 속에 힌트가 있을 것이기에 머리를 싸매 본다. 정말 저자에게 묻고 싶다. 어쩔 수 없이 나름의 잣대를 들이대어 본다. _저자의 의도와 달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_

 

○ 양(RAM)의 시간 : Ram은 말 그대로 숫양을 뜻한다. 이 소설의 주된 소재인 꿈과 숫양은 얼른 매치가 되지 않는다. 나는 여기서 토머스 해리스의 스릴러 소설 <양의 침묵>을 떠올린다. 이 소설에서 양은 주인공 클라리스 스탈링을 괴롭히는 유년의 트라우마이다. <드림 컬렉터>에서 카이야가 제공하는 환상은 고객의 다양한 트라우마를 교묘히 건드리며 그의 사도로 변모시킨다. 스탈링이 자신을 괴롭히는 양의 울음소리를 멈추려고 엄청 노력한 것처럼, 아난다 돔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자 힙노스를 찾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양은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의 은유가 아니겠느냐. '양의 시간'이 바로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_이거 너무 혼자 내닫는 거 아냐?_ 

 

○ 신(SHELL)의 주인 : Shell에 신(神)의 의미가 숨어 있었던가? 그렇지 않다. 그러면 왜 저자는 신을 Shell이라 표기했을까? 번역서도 아닌데 난해하다. 나는 여기서 그저 셀의 기본적 의미인 껍데기, 뼈대, 겉모습으로 이해를 하고 만다. 마야에서 카이야가 벌인 일은 단순한 교주 이상이었다. 오랫동안 공을 들여 꿈을 배포해서 사람들을 포섭했고, 그들에게 환상과 꿈을 공급함으로써 자신의 신도로 만들었으며, 천사를 부활시키라는 감정적이고 종교적인 목표를 꿈으로 줌과 동시에 환상사고로 충성과 능력을 입증하면 사도가 될 수 있게 하였고, 신도가 아닌 사람들에게 까지 마야에 뭔가 대단한 존재가 있다고 믿게 하였다. 카이야가 마야에서 신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하더라도 신의 영역은 결국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조개껍데기 같은 4개의 돔(shell)에 불과할 뿐이다. 인간은 원래 스스로를 속이게 만들어졌을까? 환상이 사람들의 도피처가 된다면 마야의 주인은 과연 누구일까? 저자는 간단한 듯이 글을 풀어가지만 나에게는 어렵기만 하다.

 

에필로그2. 이 소설의 한계에 관하여...
○ 욕설 : 좇나, 씨발, 빨대, 갈구다... 이런 비속어가 들어가야만 캐릭터의 속성을 잘 표현했다고 할까? 참으로 안타까운 부분이다. SF소설의 자리를 스스로 10대층에 얽어매는 사고가 아닌가. 장길산이나 임꺽정에도 욕설이 난무하지만 저급하다고 여기지 않았는데, 이 소설에서는 소설의 수준을 스스로 낮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인터넷 소설이 아닌 이상 이런 욕설은 작가의 문학적 필력을 저평가하게 되는 요인이 아닐까.  

 

○ 필력 : 이 소설은 곳곳에서 저자의 지적 수준과 상상력이 상당함을 드러내고 있으나 이걸 작품성으로 연결시키는 문장력은 별로... _작가에겐 조금 미안하구먼..._ 이런 점에서 소설가 김탁환과 뇌과학자 정재승이 만나 쓴 <눈먼 시계공>처럼 협업도 좋은 방안이지 싶다. 다소 무례한 발언 같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소설을 조금 스피드하게 읽을 수 있도록 버릴 것은 버리고 플롯을 다시 짠다면, 어쩌면 저자의 상상력이 세계무대에서도 통할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수준 높은 짜임은 아무래도 젊은 정통문학가들이 한 수 높은 듯...

 

생각해 봐야 할 부분(출판사) 
1권 185쪽. 나이 차가 많이 지는 : '많이 나는'이 맞지 않을까. '많이 지는'이라고 하는 지역도 있긴 하나보다~ 라고 생각은 하지만……. 
1권 405쪽. 몽마 게 새어 들어오는 : 문법적으로 '게'의 사용이 틀린 게 아닌데……. 참 어색.
2권 108쪽. 아닌 것이야, 저회도 알죠 : 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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