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 이야기 5 - 오월쟁패, 춘추 질서의 해체 춘추전국이야기 (역사의아침) 5
공원국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춘추전국이야기》가 어느새 춘추시대의 마지막 즈음을 달리고 있다. 4권 <정나라 자산 진짜 정치를 보여주다>까지는 중원을 중심으로 한 북방의 논리에 의해 역사를 풀어왔다면, 이번에 읽은 5권 <인간의 복수 VS 역사의 복수 와신상담>은 남방의 초-오-월의 패권 다툼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시기 권력 다툼에 여념이 없었던 북방의 강국 진나라와 제나라를 밀어내고 오나라와 월나라는 춘추의 마지막 패권을 차지하지만, 이들의 다툼은 예(禮)의 질서를 기반으로 한 춘추시대의 종말과 함께 "성을 점령하면 성을 도륙내고, 들판에 뼈가 널려도 수습하지 못하는 시대"라는 전국(戰國)시대의 도래를 맞이한다. 춘추와 전국을 나누는 기준으로 여러 이견이 있으나 남북패권의 종말에 의한 정치사적 견해가 타당하게 와 닿는다. 춘추는 남북의 초강대국 진(晉)과 초(楚)에 붙은 일군의 국가가 패를 나누어 대결하는 패권체제였다고 할 수 있는데, 오나라의 합려가 초나라를 넘어뜨리자 춘추시대의 질서는 균형을 잃고 해체수순을 밟는다. 이어 월이 패자(覇者) 오를 넘어뜨림으로써 패권 자체가 유명무실하게 된 것이다. 5권은 이렇게 남북 역전, 강남의 시대를 다루고 있다.

 

초나라를 무너뜨린 이면에는 초평왕에게 아버지와 형을 잃고 복수의 칼을 가는 오자서, 어장검(魚腸劍)으로 유명한 자객의 원조 전설제, 손자병법의 손무, 오랑캐 땅의 '문명인'이며 오나라의 설계자 합려의 조합 시너지효과가 있었다. "승리 속에 패배의 조짐이 있고 패배 속에 역전의 조짐이 있다"고 했던가. 오나라는 힘과 기교로 일대의 강국 초나라를 넘어뜨렸지만 아직 덕으로 차지할 실력은 없었나 보다. 오나라의 내분과 초나라의 대반격으로 다시 물러서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마치 대하드라마처럼 책의 2/3 정도까지 펼쳐진다. 나머지 1/3은 춘추전국 시대의 드라마틱한 일화 중에서도 가장 백미라 할 수 있는 오-월 쟁패의 이야기이다. 월왕 구천에게 아버지 합려를 잃은 오왕 부차와, 부차에게 패해 노비처럼 살다가 화려하게 복수한 월왕 구천의 숙명적인 만남은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와 함께 오월동주(吳越同舟), 동병상련(同病相憐), 토사구팽(兎死狗烹), 회계지치(會稽之恥), 상산사세(常山蛇勢) 등의 여러 고사를 낳았고, 초한이나 삼국의 쟁패에 못지않은 영원불멸의 전설 같은 이야기로 오늘까지 이렇게 전해지게 된다.

 

구천이 부차의 손에 들어왔을 때 부차는 내우와 외환을 모두 해결했다고 착각하고 중원을 모색하지만, 구천에게는 범려와 문종이란 재사가 있었다. 구천은 복수의 열정으로 부차의 똥을 먹을 정도지만, 부차는 자만으로 오나라의 국체라 할 수 있는 오자서를 자결하게 한다. 그 사이 구천은 쓸개를 핥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월나라의 부흥을 위해 부국강병에 전력을 다하는데, 인구가 국력인 시대의 인구 늘리기 정책이 흥미로웠다. 핵심은 아이를 낳으면 국가가 책임지고, 젊은이가 죽으면 국가가 같이 슬퍼한다는 것이다. 출산은 물론 어린이 복지에도 힘을 기울여, 홀아비·과부·병자·극빈자 가정의 아이들은 관에서 거둬들여 키우는 등 가히 전면적인 아동복지정책을 펼친다. 우리나라도 요즘 많이 낳기 정책을 펼치는데 과연 어느 정도 장기적 안목으로 지속적 지원을 강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번에 보육제도가 또 바뀌던데 그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을 뿐이다. 구천은 그렇게 10년간 사람을 키우고 다음 10년간은 군사훈련으로 군사력을 강화하여 드디어 부차를 잡고 오-월 쟁패의 막을 내리게 된다.

 

오자서, 합려, 부차, 구천, 범려, 문종 등이 펼치는 원한과 복수의 대하드라마는 구천의 승리로 막을 내리지만, 저자는 여기서 궁극적 승자는 누구인가? 묻고 있다. 오나라를 누른 월나라는 잠시 승자의 기분을 만끽하지만 장강 이북의 땅을 다스릴 능력이 없었고, 월나라가 물러가니 초나라가 슬금슬금 서쪽을 치고 나온다. 결국 오-월 쟁패의 어부지리는 모두 초나라가 가져갔다. 여기서 저자는 범려와 문종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오자서, 백비, 범려, 문종. 이 역사의 인물이 모두 초나라 사람이라는 거다. 오-월 싸움은 모두 이들 초나라 사람들이 주도했고, 오-월의 싸움이 끝나자 초나라 본토인이 슬그머니 서쪽으로 나오며 그 땅을 차지하기 시작했다는 해석. 이 부분은 한 번도 생각 못했던 영역이다. 어쨌거나 장부들의 야망과 복수, 그 빛과 그림자를 조명한 오광월영(吳光越影)은 이렇게 사그라졌다. 2인자였던 오자서와 문종은 자기 군주에게 죽었고, 초 자서는 아랫사람에게 죽었다. 부차도 구천도 결국 오래 부귀영광을 누리지 못한다. 책의 부제처럼 인간사 복수가 낳은 역사의 복수는 크게 보면 그저 허망한 일 일뿐이다.

 

몇 가지 자투리 생각을 정리하면서 마무리를 해야겠다. 첫째, 이 책에서 전에 인식하지 못했던 배움이 있었는데 합려와 부차의 운하 건설이 그것이다. 합려는 태호와 장강을 연결시키는 작업을 마무리했고 장강과 회하를 연결시키는 작업은 아들 부차가 마무리했다는 사실은, 운하하면 수양제로 고착화된 얕은 지식을 부끄럽게 하였다. 오나라와 북방의 다툼은 뜻하지 않게 중국에 남북 대운하라는 선물을 준 셈이다. 둘째,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41부작 중국 드라마 <와신상담, The Great Revival>을 떠올렸는데, 부차의 마음을 사로잡는 경국지색 미인 서시(西施)의 이야기는 야사(野史)라 그런지 그냥 간단하게 이름만 나올 뿐이라 조금 아쉬웠다. 또한 구천의 죽음도 드라마처럼 장엄한 결말이 아니라 얼굴을 가리고 목을 맸다고 되어있어 조금은 실망(?)이다. 야사를 섞어 엮어가는 <와신상담>은 흥미롭기는 하나 드라마는 그저 드라마일 뿐이라는 생각도 했다. 셋째,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떠날 때를 알고 떠날 수 있었던 범려에 대한 생각이다. 오자서와 범려는 비범한 능력으로 충성을 다하나, 오자서는 충언의 대가로 죽임을 당하고 범려는 살아남았다. 오늘날 직장인의 처세로도 연결해 볼 수 있는 영원한 문제이다.

 

이렇게 춘추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그런데 이 <춘추전국이야기>가 5권에서 표지의 포맷이 바뀌었다. 깔끔해진 것은 맞는데 시리즈 책은 일체화도 중요하다. 좋던 나쁘던 12권까지 계속 같은 포맷이었으면 좋았을 거란 생각을 해본다. 이왕 바뀐 것. 나머지 책은 표지를 통일하였으면 한다. 그리고 책 속의 사진이 너무 어둡게 나와 있으나마나한 경우가 많았다. 컬러로 내기 힘든 사항이겠지만 명암을 조절하여 조금더 밝게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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