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역할 - 장하준이 제시하는 '우리 모두를 위한 발전과 진보의 경제학'
장하준 지음, 황해선, 이종태 옮김 / 부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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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은 미국과의 FTA체결을 위해 협상을 벌이고 있다. FTA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미국이라는 넓은 시장을 얻는 것은 한국에게 많은 경제적 이익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또한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시장을 통한 경쟁은 불가피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의해 맺어지는 FTA는 그나마 존재하는 사회적 안전망을 무참히 파괴하고 오로지 힘을 가진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약육강식의 법칙을 조성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경제와 관련된 갈등은 비단 FTA만이 아니다. 날로 치솟는 부동산가격에 대한 논란도 존재한다. 한쪽에서는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한쪽에서는 시장의 논리에 따라 지켜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해답은 어디에 있을까.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지만 지금의 세계가 신자유주의적 경제논리에 따라서 움직여간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한국도 IMF외환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적인 개혁을 받아들인바 있다. 모든 것은 시장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것을 거스르려는 어떠한 시도도 경제를 악화시키는 어리석은 짓으로 생각되었다. 외국인 직접투자가 많이 이루어지는 국가는 성공적인 경제정책을 수행한 것으로 판단되었으며, 그것을 가로막는다고 생각되는 정부의 규제는 가능하면 없애야 하는 것이 되었다. 한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는 재임시절 외국기업을 많이 유치했다는 업적을 자신의 가장 큰 자랑으로 내세운다. 그렇다면 과연 외국인 직접 투자가 늘어나고, 규제가 줄어들고, 시장을 최고의 가치로 평가하는 이런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은 과연 성공적인 것일까. 과연 우리는 다른 대안이 필요하지 않은 것인가.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장하준 교수는 단호히 신자유주의는 결코 성공적이지도, 성공할 수도 없다고 이야기한다. 신자유주의는 학문적으로도 많은 허점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 경제활동에서는 더욱더 비참한 성적표를 받아들 수밖에 없다는 그의 주장은 신자유주의의 광풍 속에 빠져있는 우리에게 신선한 자극을 준다.

 그는 먼저 신자유주의가 오랜 학문적인 숙고에 의해 탄생한 이론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는 지적인 토대를 제공하는 신고전학파와, 정치적 영향력을 우선시하는 오스트리아 학파와의 非신성동맹을 통해 태어났다고 비판한다. 신고전학파는 오스트리아학파와의 결합을 위해 논란이 아주 적은 부분에서만 국가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태어난 신자유주의는 당연히 상당한 허점을 지니게 된다. 그들은 무엇이 사장에 대한 개입이고 무엇이 개입이 아닌지에 대한 명백한 기준을 세우지 못한다. 또한 시장은 태초부터 존재하였다는 가설에 입각한다. '잘 작동하는 시장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잘 작동하는 국가가 존재하여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그들이 주장하는 개입 없는 자유로운 시장이 사실은 상당한 수준의 개입을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는 목표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자유로이 형성된 시장가격이라는 믿음은 가격이라는 것은 원래 정치적으로 결정된 제도적 범주들의 영향을 받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신자유주의 경제의 가장 큰 지지자이면서 수혜자인 초국적 기업에 대한 분석이 이어진다. 세계화 과정에서 외국인 직접투자(FDI)의 비중이 커지고, 국적이 의미를 가지지 않는 초국적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초국적기업과 자본에 개방적인 국가가 좋은 성과를 거둔다는 주장에 대해, FDI는 몇몇 선진국에 집중되어 있으며, 기업들이 주장하는 기업의 초국적화는 사실상 그다지 빠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초국적기업의 유치가 경제적 성공의 지표로 평가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초국적 기업은 분명 국민국가의 이익을 위해 충분히 활용되어야 하지만, 해당 국가의 산업화 전략과 개별산업의 구체적인 요구에 따라 그 역할이 분명히 정의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중국의 국민차 선정 사업과 한국의 TGV선정을 예로 들며 초국적 기업에 끌려 다니는 국가들이 그들이 가진 협상력을 적극 활용할 것을 주문한다.

 한미FTA의 주요의제인 동시에 신자유주의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적재산권에 대한 그의 태도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식을 뒤엎는다. 저작자의 노고를 보상하고, 창작의지를 고취시키는 제도라는 특허제도에 대한 환상은 사실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선진국들의 후진국에 대한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보아도 선진국들은 오히려 특허제도가 구비되지 못하였을 때, 발전을 이루었으며, 현재도 특허제도는 창조적 발명에 그다지 인센티브를 부여하지 못하며, 승자독식을 구도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지금의 지적재산권제도와는 다른 선진국의 '사다리 걷어차기'를 피할 수 있는 개도국만의 기준, 저렴하면서도 대규모의 기술이전이 가능할 것 등을 주장한다.

 저자는 이외에도 선별적 산업정책의 필요성, 공기업에 대한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비난 등을 살펴보며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허구성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그는 공정하다고 믿어지고 있지만 사실 공정할 수 없는 시장의 자율성이라는 신화를 규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으로 끊임없이 국가를 강조한다. 사실 그의 신자유주의 비판이 가능한 것도 국가주도의 경제라는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애초에 시장이라는 것도 국가의 개입이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며, 우리가 지금 국가개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아동노동의 금지, 장기매매의 금지, 최저 임금의 보장 등도 사실은 철저한 국가개입의 산물이기에 국가의 개입을 반대하는 주장은 사실 불가능한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국가에 대한 커다란 믿음은 특히 국가에 의한 엄청난 폭력을 경험한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불안감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사실에 저자도 국가의 폭력을 전혀 개입시키지 않은 유럽의 사회적 조합주의적 개입 등을 이야기하며 국가의 개입은 필연적으로 불법적인 폭력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국가의 개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가능한 대안은 국가의 개입을 인정하면서도 그러한 국가를 철저히 감시하는 민주적인 정치제도일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이미 세계적인 헤게모니를 장악한 이때 장하준의 도발적인 비판과 대안은 우리에게 분명 유익한 논란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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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6-11-30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봤습니다.^^ 일목요연하네요...책들이 몇 권 쌓여 있어서 올해 넘겨야 볼 수 있을 듯 한데 ..님의 리뷰로 살짝 열어본 듯 합니다.
 
일상사로 보는 한국근현대사 - 한국과 독일 일상사의 새로운 만남
이상록 외 지음 / 책과함께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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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역사란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일이 아닌 그 중에 현재의 인간생활에 있어 커다란 의미를 지닌 일’이라는 정의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에는 커다란 전제가 깔려 있다. 역사를 살필 때에는 정치, 경제적으로 커다란 의미를 가지는 사건만을 주목하여야 하며, 그 외의 역사를 바꿀만한 힘이 없는 인간들의 일상은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인식은 필연적으로 정치, 경제에 있어서의 커다란 변화를 이끌었던 몇몇의 지도자 중심의 역사를 만들어낸다.

 ‘일상사’는 바로 이러한 역사인식을 뛰어넘기 위한 시도로 평가 될 수 있다. 정치사, 사회사 중심의 역사를 탈피해 정치, 사회와는 별로 상관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일상의 여러 모습들이 ‘일상사’의 연구주제이다. 이러한 ‘일상사’의 역사인식은 그동안 역사의 무대에서 무가치하게 평가되었던 많은 인간들이 주목받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몇몇 사람이 중심이 되는 ‘위로부터의 역사’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역사’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역사’는 특히 한국 근현대사의 적용에 있어 주목할 만한 효과를 가진다. ‘민족구성원’모두가 일본의 지배 하에서 신음하고 살았다는 민족중심의 역사를 벗어던지고 나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국가를 빼앗긴 설움과는 전혀 상관없이 살았던 수많은 피지배층의 일상이 드러난다. 모든 국가구성원이 국가의 근대화를 위해 헌신하거나, 아니면 독재정권의 몰락을 위해 싸웠던 민주화세력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으로 이해되었던 권위주의 정권시기도 일상사의 시각에서는 다르게 해석된다. 하지만 일상사는 이러한 새롭고 획기적인 면과 함께 상당히 위험한 역사인식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는 취지는 역사학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윤리적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구조적이지 못하고 체계가 없다는 비판도 함께 받고 있다.

 ‘일상사’는 일제시대를 겪었던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나치의 지배를 겪었던 독일에서 먼저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이 책도 독일의 일상사 연구 성과와 한국의 일상사 연구 성과를 교류하자는 차원에서 추진된 학술회의 결과물이다. 식민지시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점은 양국의 공통된 관심사이다. 허영란은 친일과 저항이라는 도식에서 벗어나 ‘근대’를 열망했던 식민지 조선의 사람들 일상을 살펴보고, 식민지는 일본이 패망하명서 끝나버린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이 식민화 되었고 그 영향은 일본의 정치적 영향력보다 훨씬 더 오래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私刑을 주제로 한 장용경의 글에서도 일상생활에 스며든 식민주의를 고찰한다. 私刑이 갈수록 줄어들고 그에 대한 논란도 줄어든 것은 근대성의 가장 핵심이 되는 사유재산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에 대한 논란이 줄어드는 것은 일본인의 사유재산에 대해서 식민지 조선이 그만큼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상사연구가 그동안의 역사인식을 바꿀 획기적인 기획이 될지, 아니면 역사인식에 있어서의 작은 일탈에 해당할지는 아직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이 책이 일상사에 대한 해답을 전해주지는 못하지만, 한번쯤 일상을 통해 역사를 바라볼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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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방과 제국, 한미관계의 두 신화 - 8.15에서 5.18까지
박태균 지음 / 창비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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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근 현대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미국의 존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미국을 한국을 도와준 은인의 나라로 인식하거나, 아니면 한국의 내정에 끊임없이 간섭해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은 부정적인 나라로 인식하거나 간에 미국은 한국에게 있어 결코 배제할 수 없는 국가이다. 따라서 지난 역사동안 한국과 미국이 맺은 관계를 살펴보는 것은 한국의 일그러진 근 현대사를 살펴보는 것인 동시에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한국과 미국의 관계에 방향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저자는 먼저 대한민국과 미국의 관계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광복이후를 서술한다. 일반명령 제1호를 통해 밝혀낸 한국의 독립에 관련된 미국의 입장은 미국이 일본에 핵폭탄을 투하함으로써 전쟁을 끝내고 한국에 독립을 가져다주었다는 일반적인 인식을 뒤집는다. 미국은 결코 한국의 독립운동세력에게 일본을 항복을 받을 권리를 주지 않았다.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서의 위치를 가질 뿐이지 결코 승전국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논리에 따라 전후 일본과 한국의 운명을 결정지은 쌘프런씨스코 강화조약에서도 결코 한국은 승전국의 지위를 가지지 못했다. 이후에도 미국의 대한정책은 사실 우리가 갖고 있는 인식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밝힌다. 한국에 민주주의를 심었다는 미국이 한국의 수반을 미군정이 임명하는 행정위원회의의 위원이 선출하게 하는 정책을 추진했었다는 사실은 미국이 그 당시 한반도에 행했던 정책들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 밖에도 미국의 입맛에 맞는 우익에게 권력을 부여하기 위해 행했던 다양한 정책들은 한국의 현대사에 있어 작용했던 미국의 힘을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이렇게 어지러웠던 해방이후에 있어 미국의 입김은 거의 한국의 운명을 좌지우지 했다. 하지만 저자는 우익의 신탁통치 반대운동으로 인해 미국의 정책이 바꾸었던 사례를 통해 미국의 힘만을 강조하는 이전의 연구 성과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주변부의 힘이 중심부의 정책'을 바꿀 수 있음을 주장한다.

미국의 힘과 한국의 정치상화에 의해 탄생한 이승만정부와 미국의 관계는 '원조'를 둘러싼 이해관계로 해석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미국 국무부의 케넌이 주장한 공산주의를 막기 위한 경제, 심리적 봉쇄라는 측면에서 한국에 대한 경제적인 원조가 시작되었다고 보고 이러한 원조를 받기위해 국가의 군사지휘권 등을 유엔에 넘긴 이승만 정부를 파악한다. 북진통일 주장 등을 통해 겉으로는 민족주의적인 색채를 드러내는 듯이 보였지만, 사실은 국가의 경제와 안보를 미국의 손에 넘겨버린 이승만 정부는 결국 지금까지 이어지는 불평등한 한미관계의 원인으로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 반하는 정책으로 이승만을 제거할 계획까지 세워놓았지만, 미국은 결국 이승만을 대체할 지도자를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이승만의 권력을 유지시킨다. 결국 이승만은 4.19혁명으로 권력을 잃는다. 하지만 뒤를 이은 윤보선 정부는 군대를 앞세운 박정희의 쿠데타로 무너지고 만다. 저자는 이 부분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윤보선 정부가 쿠데타를 막을 의지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군대지휘권을 가진 미국이 쿠데타를 진압하지 않은 것은 개입을 하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사실은 쿠데타 세력을 용인한 것이 아닐까. 또 한국의 전체병력에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박정희의 세력이 손쉽게 쿠데타에 성공한 것은 직간접적인 미국의 지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미국의 자료가 충분히 공개되어있지 않아서 진실은 확인할 수 없지만, 저자는 충분히 수긍이 가는 의심을 통해 박정희의 쿠데타에 미국이 개입되어 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러한 의심은 미국의  대한정책에 이론적인 기반과 함께 직접 정책에도 참여했던 로스토우의 주장과 함께 더욱 증폭된다. 공산주의를 막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성장이 우선시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일시적인 민주주의의 유보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는 경제성장을 위해서 전근대사회에서 자유로우며, 젊고 혁신적인 장교 그룹에 주목했다. 한국에서 박정희가 그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한국적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유신도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미국은 결국 박정희의 쿠데타를 용인한다. 하지만 이때부터도 미국과 한국의 관계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큼 순탄치 않았다. 북한에 대해 끊임없이 도발하는 한국의 정부와 끊임없이 갈등하고 한일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심지어 박정희에게 권력을 집중시키기 위해 김종필의 제거계획까지 세우게 된다. 결국 미국의 이러한 정책을 통해 박정희는 모든 권력을 자신의 손안에 집중시킨다.

베트남 파병을 둘러싼 한국과 미국 간의 갈등은 권력을 독점한 박정희와 미국이 겪는 갈등을 단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엄청난 제정적자로 주한미군을 줄이고자 했던 미국과 정권유지를 위해 그런 정책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박정희는 베트남에 전투병을 파병하겠다는 제안을 하게 된다. 전투병이 필요했던 미국과 외화벌이와 정권유지를 위해서는 얼마든지 희생할 젊은이가 있었던 한국의 이해관계가 만나 엄청난 수의 젊은이가 파병되었지만 결국 한국이 원했던 미국과의 동등한 외교관계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이렇게 끊임없이 이어진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박정희 정부가 끝나고 전두환 신군부가 들어설 때도 어김없이 의문을 남긴다. 지금까지도 의문으로 남은 미국에게 과연 광주사태의 책임이 있는가의 문제에서, 한국의 민주화세력을 결코 신뢰하지 못했던 미국의 입장까지 한미관계에서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은 많다.

저자는 더 이상의 연구는 자료가 공개되지 않아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연구를 마친다. 결론에서 자신이 과거의 한미관계를 연구하는 목적은 '학습효과'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대한 정책을 집행하는 미국의 경우 과거의 사건에서 많은 교훈을 얻고 실제로 정책을 입안하는데 있어 적용하는데 한국의 경우 그러한 '학습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과거의 일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미국과 벌이고 있는 다양한 사건들에서도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베트남 파병의 교훈을 전혀 '학습'하지 않고 내려진 이라크 파병 결정, 미국과의 여러 경제적 관계를 파악하지 못하고 진행되고 있는 한미FTA의 문제, 한국의 여러 정치상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군사지휘권문제의 역사적 경험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정치쟁점화만 되고 있는 전시작전권 환원문제는 모두 그러한 예인 것이다.

모든 역사는 역사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결국 역사가 가지는 의미를 파악함으로써 지금 우리가 서있는 현실에 어떤 영향을 주기 위해서인 것이다. 이렇게 파악한다면 한미관계의 '학습효과'를 목적으로 하는 박태균의 이 책은 역사가 가지는 의미를 훌륭하게 전달하고 있다.


 * 이 책을 통해 기록을 중요성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어떠한 기록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기억을 보존하는 일이며, 그러한 기억을 통해 역사가 탄생하고 역사를 통해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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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는 바꿔야 할 거짓말 인터뷰 특강 시리즈 3
김동광, 정희진, 박노자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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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거짓을 말하며 살아간다. 지각에 대한 변명으로 사고가 났었다고 거짓말을 하고, 만나기 싫은 사람을 피하기 위해 선약이 있다고 둘러댄다. 이렇게 남에게 하는 거짓말이 있는가 하면, 자기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도 있다. 자기와의 약속을 수없이 어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거짓말이 개인적인 차원의 것이라면 사실 문제될 것이 없다. 정작 문제는 우리가 거짓말이라고 느끼지도 못하는 사회적인 거짓말이다.

 한겨레21의 주제로 열린 이번 강연의 주제는 바로 '21세기에는 바꿔야 할 거짓말'이다. 거짓말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경험의 가진 7명의 강사가 참여하였다. 강연 내용이 물론 좋지만, 좀처럼 한자리에서 만나기 어려운 지식인들을 한꺼번에 만나는 것도 이 책을 만나는 큰 기쁨 중의 하나이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인간의 정신을 연구하는 자신의 직업에 근거해 사람에 대한 대표적인 거짓말을 설명한다. 사람이란 것은 다양한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 아버지이면서, 아들이고, 회사원이면서 학생일 수도 있다. 이렇게 한사람은 다양한 면모가 뒤섞여서 이루어진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정혜신은 사람을 자기가 가지는 편견에 따라 인식하는 편협함에서 벗어나자고 주장한다. 한사람이 가지는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은 모두 그 사람이 가지는 성향이며, 그것들을 모두 인정해야만 어떠한 사람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는 어차피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모여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사람을 인식하는 것에 있어서의 거짓말은, 우리 사회가 거짓말을 권하게 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아닌가 싶다.

 김동광의 과학에 대한 강연은 우리가 과학에 대해서 가지고 있었던 환상을 어느 정도 없애는데 기여한다. 인문 사회과학과 다르게 일반인의 접근이 거의 불가능한 영역이었던 자연과학에 있어  일반인이 참여하는 논의가 충분히 가능하며, 그것은 건전한 과학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그의 주장은 온 나라는 거짓말의 소용돌이에 몰아놓은 황우석 사태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신성한' 과학이라는 거짓에 가려 어느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못했고, 그 과학이 '심지어' 국익에까지 도움이 된다는 거짓에 속아 온 나라가 열광했던 황우석 사태는 통제 없는 과학이 얼마나 위험한 거짓말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역사학자 박노자와 한홍구의 강연은 우리가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역사가 사실은 '만들어진'역사였다고 말해준다. 고구려와 백제, 신라는 한민족이었다는 전제 자체가 근대적인 민족국가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역사라는 것은 사실 역사가 처음부터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당사자의 이해관계가 충실히 반영된 산물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렇다면 '그들'의 역사가 아닌 '우리'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거짓말을 의심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김두식은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사회의 구조를 살핀다. 거짓말이라고 느끼지는 못하고 잘못이라고 느끼지도 못하면서 하고 있는 거짓말이 상당히 많으며, 그런 거짓말은 결국 우리 사회가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사회가 되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그는 그런 사회를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해 기존의 권력에 도전하며 '왕따'가 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야기 한다. 비록 지금은 남들과 다르다고,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받겠지만 결국 그런 사람들로 인해 사회의 거짓말이 조금씩 드러난다는 것이다.

 탈북자 출신의 김형덕은 조선에 대한 거짓말을 이야기한다. 핵실험 발표로 전 세계가 분주해진 이때에 김형덕의 강연은 특히 머리에 남는다. 그는 북한사회를 우리 사회와는 조금 다른 사회로 '이해'해줄 것을 부탁한다. 북한의 인권문제는 물론 비판받아야 하지만 북한의 극심한 경제적 요건이라는 장애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절대 개선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이 계속되어야 하고, 극심한 경제제재는 풀려야한다는 그의 주장은 북핵문제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우리의 언어 속에 담겨있는 권력의 문제를 제기하며 거짓말에 대한 담론을 이끌어낸다. 우리가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결코 순수하지 않으며, 그 언어를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의 이해관계를 철저히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언어의 문제는 남녀 간의 문제, 성적 소수자의 문제, 장애인의 문제로 확대된다. 그들을 규정하는 시각 속에는 그들은 '정상인'과는 다른 특이한 사람들로 보려는 주류 권력의 이해관계가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그녀는 소수자의 언어로 말할 것을 주장한다. 다양한 관점을 하나로 포장하기 보다는 서로 다른 관점이 어우러지는 사회에 대한 희망이 엿보이는 강의가 아닌가 싶다.

 인도의 평화운동가 프라풀 비드와이는 두 가지 관점에서 인도에 대한 거짓말을 이야기한다. 명상의 나라, 구도자의 나라 인도라는 허울에서 벗어나 그곳에도 결코 신성하거나 특별하지 않은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라는 설명에 인도를 특별하게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혹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을 본받은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또 세계적인 공업국가 인도라는 허울에 가려진 빈민문제는 여전히 인도가 해결해야할 경제적 난제가 산적한 국가이며 세계 여러 나라에 공통적으로 퍼져있는 신자유주의적인 빈부격차의 문제를 생각해 보게 된다.

 거짓말이라는 주제로 여러 강의를 수록하였지만 그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주제는 어떤 사실을 왜곡해서 전해주는 전형적인 거짓말에 대한 경계라기보다는 다양한 관점으로 읽힐 수 있고, 똑같은 말이라고 해도 이해관계에 따라 참이 될 수도 있고, 거짓이 될 수도 있는 것에 대해 이것이 유일한 진실이고 참이라고 강요하는 사회의 거대한 권력에 대한 의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의 강연은 특정한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거짓말을 의심하기 위한 적절한 처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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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용어 바로쓰기
박명림, 서중석 외 지음 / 역사비평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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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일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단어는 결코 아무런 의미 없이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그 일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시각을 그가 사용하는 단어가 단적으로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특히나 역사적인 사건을 가리키는 단어의 경우, 역사를 바라보는 관찰자의 시각은 물론 역사를 기억하고 재구성하려는 의지까지도 함께 내포한다. 따라서 올바른 역사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역사를 올바르게 파악하고, 그 역사가 영향을 미치는 현재에 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필수적인 선결과제가 된다. 이런 의미를 가진 '역사용어 바로쓰기'를 위해 각 분야의 역사학자가 글을 쓰고 그 글이 한권의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는 것은 굉장히 반가운 일이다. 물론 현재 쓰이고 있는 역사용어 중에 극히 일부분만을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이 책을 시작으로 역사용어에 대한 전반적인 비판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역사용어를 바로 쓴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지만, 역사용어를 사용하는 학문의 정확성을 높힌다는데 일차적인 의의를 지닌다. 학문을 어떤 것에 대해서 개념을 잡고, 그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사유를 전개하는 것으로 파악한다면, 용어를 바로 쓰는 것은 학문의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민족문학, 민족주의 문학이라는 거의 비슷해 보이는 개념의 차이를 자세하게 설명한 하정일의 논문, '순수문학'이라는 순수해 보이는 단어의 숨은 뜻을 파헤친 한수영의 글을 이러한 목적을 달성한다. 그들의 글을 통해 학문적으로 자주 쓰이는 용어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어떠한 글을 쓰거나 읽을 때 더욱 정확한 용어 사용이 가능할 것이다.

특정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이미 그 용어를 사용하고자 하는 사람의 이해관계를 받아들인 것이다.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는 단어는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파악하려는 사람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결과이다. '광주 민주화 운동'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폭동'으로 불려졌다. 그렇다면 사실 같은 사건을 가리키는 다른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정치적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친일'이라는 단어와 '협력'이라는 단어를 설명하고 개인적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친일'보다 제국주의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파악하는 '협력'을 사용하자고 주장하는 이기훈의 글은 단순히 역사용어를 다시 쓰자는 학문적인 주장이 아니라 '친일파'의 문제가 정치적 이슈가 되는 시점에 '친일파'의 정의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정치적인 주장을 담은 글로 읽힌다. 해방 공간의 대립문제가 현재까지 첨예한 정치적 이슈가 되는 상황 하에 이 시대의 문제를 다룬 글도 필연적으로 정치적인 의미를 지닌다. 반탁을 했던 우익과 찬탁을 했던 좌익이라는 도식을 허구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박태균의 글은 좌우파의 첨예한 대립을 다시 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6.25'라는 단어를 버리고 '한국전쟁'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을 주장하는 박명림의 글은 '한국전쟁'에 대한 전반적인 시각을 교정할 것을 주문한다. 전쟁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는다는 것은 비단 역사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한반도 평화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그의 글은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가장 적극적인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의 역사와 현재 왜곡되어 사용되고 있는 실상을 논한 임대식의 글은 직접적으로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현재의 극우세력들에게 비판을 가한다.

역사를 가리키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강제로라도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 사용되고 있는 역사용어는 역사를 기억하는 사회의 시각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위안부', '정신대', '공창', '성노예'라는 단어의 사용을 비교 분석한 강정숙의 글을 '위안부'문제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을 보여준다. 외국 국가명의 사용을 분석한 김희교의 글은 외국을 바라보는 우리의 이중적인 잣대를 비판한다.

역사용어를 올바르게 사용한다는 것의 의미를 몇 가지로 나누어 보았지만 사실 책이 담고 있는 모든 글은 학문적, 정치적, 사회적 의미 등을 함께 가지고 있다. 한수영의 글이 지적하고 있듯이 결코 '순수'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없다. 정치적 의미를 아무리 부인하더라도 역사의 영역에서 결코 비정치적인 것은 존재할 수 없으며, 완벽하게 정치적인 의미만을 갖는다고 말하더라도 그것이 엄밀한 학문적 검증을 받지 않는다면 허울뿐인 레토릭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학문, 정치적으로 활발하게 사용된다고 하더라도 사회 구성원들에게 의미 있는 용어로 사용되지 않는다면 죽은 용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역사용어 바로쓰기>는 우리가 별생각 없이 사용하는 역사용어가 사실은 엄청나게 다양한 이해관계를 수반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누구나 한번쯤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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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그늘 2006-10-01 0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대로 읽으셨군요. 전 아직 띄엄띄엄 보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