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괴물지.엠블럼, 중세의 지식과 상징 - 중세의 지식과 현대의 세계를 연결하는 '브리지(Bridge)'
최정은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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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는 참으로 알 수 없는 세계다. 서양 역사의 중간 단계이면서도 전혀 다른 세계처럼 느껴진다.

특히 중세가 낯선 이유는 중세인들은 우리들과는 전혀 다른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최정은의 중세이야기가 바로 낯선 중세인의 생각을 다루고 있다.

중세의 낯섦은 특히나 세계를 하나의 시각으로 바라보려고 하지 않고 다층적으로 바라보고자 한데서 기인한다. 심지어 그들은 하나의 사물이나 사건을 양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최정은의 중세에 대한 시각은 그리 다층적이거나 양가적이지 않은 듯 하다. 만약 이 책이 다층적이라면 아마도 그것은 중세가 아닌 최정은의 세계에 대한 인식이 다층적인 것은 아닌가 싶다.

그녀의 다른 책 "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에서는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를 재미 있게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은 중세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중세를 말하고 있지는 않다.

물론 그런 까닭은 중세가 암흑의 세계가 아님을 중세가 어느 시대보다도 활기 찬 시기였음을 보여주고자 했다는 데 있다. 심지어 그녀가 볼 때 천년전 중세의 생각은 단절되지 않고 지금도 작동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상당히 미래적인 공각기동대를 이야기하고 블레이드 러너를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아쉬움이 있다. 그런 그녀의 생각 때문에 중세의 지식과 상징을 더욱 중세적으로 읽지 못한 듯.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중세를 통해 본 현대적인 철학적 단상처럼 느껴진다.

거기에서 그녀의 재미 있는 중세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는 즐거움이 어느 덧 우울함으로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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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 - 인간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매트 리들리 지음, 김한영 옮김, 이인식 해설 / 김영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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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결정해야하고 학교만 졸업하면 없을 것 같은 시험은 끊임없이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하지만 그런 세상의 일을 몸으로 부대끼고 살아가야 하는 게 우리의 인생이다. 그런 삶에서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내 의지 만으로 내 인생을 개척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인간을 설명하기 위한 담론의 하나로 본성과 양육(nature and nurture)은 무수히 많은 논쟁과 이야기를 생산하였다.

하지만 시시각각 너무나 빨리 변해가는 세상, 그래서 벤야민은 마술쇼(phantasmagoria)라고 했을까? 우리의 오감의 경험은 세상을 이해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 못하고 우리의 이성은 세상이 가하는 스트레스에 폭발하기 일보직전. 그래서 더 이상 본성과 양육의 논쟁은 무대 뒤로 숨어들어갔다.

이런 상황이 유전자 지도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고 다시금 본성과 양육이 무대에서 자신만의 방백을 한다.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전적으로 선천적이지도 전적으로 후천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유전자 지도는 우리 자신에 대한 앎의 지평을 넓히고 그 과정에서 새롭게 인간의 본성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킨다. 너무나 지쳐 버린 이성에게 몸은 말한다. 우리의 몸에 대해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지라고.

최근 황우석 교수의 연구는 이런 맥락에서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앎을 확대시킨 큰 일이다. 하지만 괴테의 파우스트처럼 절대적인 진리의 갈망과 접근이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지는 않는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생각하는 것은 내 몸처럼 타인을 대하는 것, 그리고 그 타인에 대한 사랑이 부메랑처럼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황 교수의 연구는 절대적 진리에의 희구인가 인간에 대한 사랑의 발로인가? 너무나 어려운 문제에 봉착해 있다. 하지만 이 질문은 피해서는 안되는 그리고 피할 수도 없는 답변을 요구한다.

마찬가지로 매트 리들리 또한 새롭게 본성과 양육의 문제를 유전자 지도와 함께 재조명하였다는 점에서 그리고 여전히 본성과 양육은 인간을 이해하는 데 여전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시켰다는 점에서 중요하고 훌륭하다. 하지만 황교수의 연구에서 제기된 질문이 리들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본성과 양육의 문제가 앎에 대한 추구인지 인간애에서 출발하고 있는지? 하지만 리들리는 그에 대해서는 안타깝게도 말하고 있지 못한 듯하다. 그래서 약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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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 바로크 시대의 네덜란드 정물화, 아르테마 003
최정은 지음 / 한길아트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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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운 일상을 보내기에 그림에 관련된 책만큼 좋은 것이 없다. 거의 매 페이지마다 실려 있는 그림 때문에 빽빽한 문자가 주는 중압감을 어느 정도는 벗어날 수 있으면서도 흔히 '교양'이라는 것을 쌓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여러 모로 독자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하지만 이 책이 주는 재미와 즐거움은 단순히 그림의 나열에 있지는 않다. 이 책의 그림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화가의 그림들이 아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돌아다니면 흔히 볼 수 있는, 하지만 지금 21세기 한국에 있는 우리는 드물게 접할 수 있는 그림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고 매우 낯설기도 하지만 그 그림들은 당시 네델란드 또는 유럽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으로, 내가 지금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일상을 보내듯이, 당시 유럽인들은 어떤 방식으로 그들의 일상을 보내었는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즉 이 책에 실려있는 그림들은 유명한 화가의 주관적인 심리 상태와 개인사 그리고 그림의 형식적인 특징을 보여준다기보다는 당시 유럽인들의 집단적인 생각과 삶을 보여준다.

지금처럼 문자 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심지어 대다수 사람들이 문맹이었던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전달하는 데 그림은 적절한 방식의 하나였을 것이다. 즉 저자가 지적하고 있듯이 당시 유럽인들은 말할 수 없는 것들을 그림이라는 언어를 통해서 말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 그림들을 통해 그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나아가 당시 유럽의 연대기적 역사가 아니라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이면서도 당시 유럽인들의 심층에 자리잡고 있던 말할 수 없던 것들을 읽을 수 있다.

특히 저자가 보여주는 그림의 시대는 봉건시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는 사회였다는 점에서 서양에 대한 지평을 새로운 방식으로 넓혀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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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좌파와 우파 살림지식총서 1
이주영 지음 / 살림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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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와 우파'라는 제목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가끔씩 돌출하고 있는 레드 컴플렉스를 바로 연상시킨다. 게다가 어느 정도 미국 또는 미국의 역사에 알고 있는 독자가 본다면 미국에 진정한 '좌파'가 있는가?라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심지어 20세기 미국의 역사를 채 100페이지도 안되는 지면에서 말한다는 것 자체가 이 책의 가치를 더욱 의심스럽게 한다. 그렇지만 책의 저자가 국내에서는 누구나 인정하는 미국사에 관한 전문가라는 점 때문에 약간은 망설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순간 그런 의심과 망설임은 사라진다. 분명 미국에는 엄밀한 의미에서 좌파는 없다. 하지만 지난 미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미국은 크게 두 축으로 전개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진보적인 성향을 지닌 집단과 보수적인 성향의 집단으로. 이 글의 저자는 이런 맥락에서 상징적인 의미에서 좌파와 우파라는 제목을 달았다. 또한 이런 제목을 달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짧은 지면으로 20세기 미국의 역사를 설명하기에는 이 보다 적절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편, 어떤 의미에서 이 책은 짧은 지면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즉 저자는 미국의 역사를 크게 좌파와 우파라는 두 축의 상호관계에 의해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미국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건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함으로써 큰 줄기만 있는 앙상한 나무가 아니라 나뭇잎이 무성한 나무를 제시하고 있으며 독자는 이 책을 통해 미국에 관한 많은 열매를 딸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한 숨에 읽어내려가면서, 20세기 미국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즉 미국에 관한 인지도(cognitive mapping out)를 그리는 데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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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 인종의 문학으로 본 미국의 문화
김봉은 지음 / H.S MEDIA(한신문화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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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 후반부터 많은 미국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미국 문화(학)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대한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 책 또한 과거 미국의 주변에 머물러 있던 인종 다시 말해 주로 인디언과 흑인의 문학을 복구하고자 하는 움직임의 하나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논의하고 있는 많은 문제는 피할 수 없겠지만 필자의 미국에서의 개인적 경험과 결부되어 있다는 인상을 떨쳐 버릴 수 없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최근 일어나고 있는 미국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국내에서 발간된 미국에 대한 많은 저작들 중에서 몇 안되는 새로운 미국의 이해를 강조하고 있다는 데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특히 초기 미국 문학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고 있던 인디언 문학을 소개하고 있다는 데서 그러하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는데, 최근 다양한 시각에서 미국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한 마디로 통합과 단일성을 강조하는 '용광로'가 아니라 '샐러드 접시'로 대변되는 다양성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런 다양성이 실제로는 최근의 일이 아니라 미국의 식민지 개척 당시부터 존재해 온 것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는 새롭게 미국 문학을 이해하는 그 출발점은 현대의 미국이 아니라 오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임을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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