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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 - 인간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매트 리들리 지음, 김한영 옮김, 이인식 해설 / 김영사 / 2004년 9월
평점 :
살아간다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결정해야하고 학교만 졸업하면 없을 것 같은 시험은 끊임없이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하지만 그런 세상의 일을 몸으로 부대끼고 살아가야 하는 게 우리의 인생이다. 그런 삶에서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내 의지 만으로 내 인생을 개척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인간을 설명하기 위한 담론의 하나로 본성과 양육(nature and nurture)은 무수히 많은 논쟁과 이야기를 생산하였다.
하지만 시시각각 너무나 빨리 변해가는 세상, 그래서 벤야민은 마술쇼(phantasmagoria)라고 했을까? 우리의 오감의 경험은 세상을 이해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 못하고 우리의 이성은 세상이 가하는 스트레스에 폭발하기 일보직전. 그래서 더 이상 본성과 양육의 논쟁은 무대 뒤로 숨어들어갔다.
이런 상황이 유전자 지도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고 다시금 본성과 양육이 무대에서 자신만의 방백을 한다.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전적으로 선천적이지도 전적으로 후천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유전자 지도는 우리 자신에 대한 앎의 지평을 넓히고 그 과정에서 새롭게 인간의 본성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킨다. 너무나 지쳐 버린 이성에게 몸은 말한다. 우리의 몸에 대해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지라고.
최근 황우석 교수의 연구는 이런 맥락에서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앎을 확대시킨 큰 일이다. 하지만 괴테의 파우스트처럼 절대적인 진리의 갈망과 접근이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지는 않는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생각하는 것은 내 몸처럼 타인을 대하는 것, 그리고 그 타인에 대한 사랑이 부메랑처럼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황 교수의 연구는 절대적 진리에의 희구인가 인간에 대한 사랑의 발로인가? 너무나 어려운 문제에 봉착해 있다. 하지만 이 질문은 피해서는 안되는 그리고 피할 수도 없는 답변을 요구한다.
마찬가지로 매트 리들리 또한 새롭게 본성과 양육의 문제를 유전자 지도와 함께 재조명하였다는 점에서 그리고 여전히 본성과 양육은 인간을 이해하는 데 여전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시켰다는 점에서 중요하고 훌륭하다. 하지만 황교수의 연구에서 제기된 질문이 리들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본성과 양육의 문제가 앎에 대한 추구인지 인간애에서 출발하고 있는지? 하지만 리들리는 그에 대해서는 안타깝게도 말하고 있지 못한 듯하다. 그래서 약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