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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 바로크 시대의 네덜란드 정물화, 아르테마 003
최정은 지음 / 한길아트 / 2000년 7월
평점 :
품절
한가로운 일상을 보내기에 그림에 관련된 책만큼 좋은 것이 없다. 거의 매 페이지마다 실려 있는 그림 때문에 빽빽한 문자가 주는 중압감을 어느 정도는 벗어날 수 있으면서도 흔히 '교양'이라는 것을 쌓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여러 모로 독자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하지만 이 책이 주는 재미와 즐거움은 단순히 그림의 나열에 있지는 않다. 이 책의 그림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화가의 그림들이 아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돌아다니면 흔히 볼 수 있는, 하지만 지금 21세기 한국에 있는 우리는 드물게 접할 수 있는 그림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고 매우 낯설기도 하지만 그 그림들은 당시 네델란드 또는 유럽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으로, 내가 지금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일상을 보내듯이, 당시 유럽인들은 어떤 방식으로 그들의 일상을 보내었는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즉 이 책에 실려있는 그림들은 유명한 화가의 주관적인 심리 상태와 개인사 그리고 그림의 형식적인 특징을 보여준다기보다는 당시 유럽인들의 집단적인 생각과 삶을 보여준다.
지금처럼 문자 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심지어 대다수 사람들이 문맹이었던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전달하는 데 그림은 적절한 방식의 하나였을 것이다. 즉 저자가 지적하고 있듯이 당시 유럽인들은 말할 수 없는 것들을 그림이라는 언어를 통해서 말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 그림들을 통해 그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나아가 당시 유럽의 연대기적 역사가 아니라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이면서도 당시 유럽인들의 심층에 자리잡고 있던 말할 수 없던 것들을 읽을 수 있다.
특히 저자가 보여주는 그림의 시대는 봉건시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는 사회였다는 점에서 서양에 대한 지평을 새로운 방식으로 넓혀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