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초의 대여행기 왕오천축국전 두레아이들 고전 읽기 1
강윤봉 지음, 정수일 감수 / 두레아이들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하고 있는 <실크로드와 둔황: 혜초와 함께하는 서역기행>展에서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없는 귀한 보물이 전시되고 있다. 역사 시간에 혜초 하면 왕오천축국전, 왕오천축국전 하면 혜초 하고 조건반사식으로 외웠던, 그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원본이 그것이다.

그런데 혜초는 어떤 사람이고, <왕오천축국전>은 어떤 책이었던가? 하다 못해 <왕오천축국전>을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그걸 가르쳐주는 선생님도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제목이 여섯 글자니까 두 자씩 끊어서 읽었던 기억밖에는 없다. 그런데 이번에 <실크로드와 둔황>展을 보고, 또 이 책 <혜초의 대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을 보고서야 우리가 참 무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 '1300년만의 귀향'이니, '세계 최초 대중 전시'니, '우리나라 국보급 보물'이니,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인'이니 하는 이야기들이 그저 전시와 책을 위한 홍보용 문구가 아님을 깨달을 수 있다.

<혜초의 대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은 한 마디로 "어린이를 위한 <왕오천축국전>"이다. 고전이면서 접근하기 어려운 <왕오천축국전>을 읽기 쉽게 풀어서 다시 쓴 책이다. 그런데 아이들보다도 청소년이나 어른들(특히 선생님들)에게 더 필요한 책이 아닌 듯싶다. 원본의 내용이 상당 부분 인용되고 있는 것도 그렇지만, 사진 등의 자료가 넘칠 듯 풍부하다. 그래서 고전을 읽고 있는데, 마치 그 현장을 여행하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요즘 서점가에 넘치는 여행서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8세기 통일신라 사람인 혜초는 16살의 어린 나이에 부처의 가르침을 찾아 당나라로 떠난다.(당시 신라에서 불교를 배우려면 모두 당나라로 갔다고 한다.) 당나라에서 그는 인도 출신 승려 금강지라는 스승을 만나, 그의 권유로 다시 인도(책의 제목에 나와 있는 '천축'은 인도를 가르키는 옛 이름이라 한다)로 구법 여행을 떠난다. <왕오천축국전>은 이렇듯 혜초 스님이 '다섯 나라로 이루어진' 천축(인도)을 723년부터 727년까지 여행하고 남긴 기록이라는 뜻이라 한다. 그러니까 책 제목을 애써 끊어 읽는다면 "왕(往), 오천축국(五天竺國), 전(傳)" 정도가 되지 않을까.(커다란 의문 하나가 해소된 기분이다.)

<왕오천축국전> 원본이 발견되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이제 많이 회자되고 있으니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혜초 스님은 중국을 떠나 바닷길로 인도로 가 바이샬리라는 곳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그가 처음 만나는 것은 알몸으로 다니는 '외도(불교 이외의 종교를 받드는 이)'였다. 부처의 가르침을 좇아 인도까지 왔는데 불교도가 아닌 이교도부터 만난 것이다. 그런데 혜초는 이교도라고 무시하거나 외면하지 않는다. "맨발에 알몸이다. 외도는 옷을 입지 않는다."(35쪽) 책이 시작되는 첫 부분도 이러하다. 혜초의 이런 면은 책의 뒤로 갈수록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심지어 이슬람 등 이교도들이 사는 지역에도 서슴지 않고 들어가 그들의 생활, 문화, 역사, 경제 등의 모든 것들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아마도 혜초를 '우리나라 첫 세계인'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러한 혜초 스님의 '열린 마음'과 '소통하려는 의지' 때문이 아닐까. 

아무튼 혜초는 이곳을 시작으로 때로는 남천축의 찌는 듯한 무더위와 싸우면서, 때로는 히말라야 산맥을 지나며 "아무리 몸을 웅크려도 옷깃으로 스며드는 칼바람과 냉기를 막을 수가 없"(70쪽)는 북천축의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면서 다섯 천축을 둘러본다.

혜초는 때로 자신이 다녀오지 않은 곳에 관한 기록도 남겼다. 히말라야 산맥의 크고 작은 나라들과, 당나라로 돌아오면서 들은 안국(부하라), 강국(사마르칸트) 등 아랍 동쪽의 나라들에 관한 이야기가 그것들이다. 혜초는 자신이 다녀온 곳과 다녀오지 않은 곳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명확하게 구분을 했다고 한다. 후손들이 헷갈리지 않게 배려한 것은 아닐까.  

아무튼 그렇게 오천축은 물론 아프가니스탄의 카불(계빈), 이란(페르시아), 아랍(대식)까지 문명 탐험을 계속한다. 그리고 아랍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이번에는 처음 왔던 바닷길이 아닌, 사막과 하늘 높이 닿은 산을 넘는 힘들고 고달픈 육로를 택해 당나라로 돌아온다. 이는 또 다른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종교에 의지한 순례 여행길이라고는 하지만, 요즘처럼 편하게 다니는 여행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그 머나먼 길을 다녀왔다는 게 기적처럼만 느껴진다. 혜초는 그러한 기적과도 같은 여행을 해내고, 아름다운 여행기까지 기록했으니, 우리가 혜초에게서 겨레의 강인함과 뿌듯함을 느끼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혜초는 그렇게 오랫동안 여행을 하면서 음식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설마 등짐에 4년 동안 먹을 음식을 짊어지고 다니지는 않았을 테고.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면 어떻게 음식을 해결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오천축국 사람들은 외출할 때 양식을 갖고 다니지 않아도 가는 곳마다 구걸만 하면 먹을 것이 생긴다."(58쪽) 예상은 했지만, 이러한 정보도 빼놓지 않고 기록한 혜초는 훌륭한 순례자이자 여행가였던 것 같다.

이 책에는 또 다른 재미있는 내용도 있다. "혜초는 방문했던 국가의 힘이 얼마나 강성한지를 코끼리 숫자로 자주 나타냈다. 코끼리를 소유하려면 코끼리를 기르는 데 필요한 넓은 농지와 초지,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50쪽) 당시 국가들간의 전쟁도 "코끼리가 적고 병력도 적은 줄을 스스로 알면 곧 화친을 청하고 해마다 세금을 바"쳤다(50쪽)고 한다. 코끼리는 군사력의 척도이자 승전의 필수요소였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올 정도지만 어찌보면 지금 시대 사람들보다 당시 이들이 더 현명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처럼 전쟁까지 불사하면서 '치킨게임'을 하는 사람들보다는 말이다.

혜초는 그렇게 구법 순례 여행을 마치고, 당나라로 돌아와 당시 한창 성행하고 있던 밀교를 위해 한평생을 바친다. 금강지와 불공 스님의 제자로, 중국 밀교의 대승으로. 그리고 다시 신라로 돌아오지 못하고 중국 오대산의 건원보리사라는 곳에서 입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곳이 어디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는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제 우리들의 앞에 놓인 숙제인 듯하다. <왕오천축국전>도 원래 3권짜리라고 한다. <일체경음의>라는 책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단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원본'은 이 3권짜리 책을 줄여놓은 책이란다.

"달 밝은 밤에 고향 길을 바라보니 뜬 구름은 너울너울 고향으로 돌아가네.(중략) 누가 소식 전하러 계림(신라)으로 날아가리."(63쪽) "차디찬 눈이 얼음까지 끌어모으고 찬바람 땅이 갈라져라 매섭게 부는구나.(중략) 과연 저 파미르 고원을 넘을 수 있을는지."(123쪽) 때로는 고향에 대한 그림울을, 때로는 눈앞에 놓인 역경과 시련을 멋진 시로 승화시킨 혜초의 풍부한 감수성을 엿볼 수 있는 책 <왕오천축국전>. 이 <왕오천축국전>을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쓴 <혜초의 대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은 행복과 자부심을 가져다주는 책이다. 내용이 다소 어렵고 낯설 수 있으나, 어렵기만 한 고전을 이렇게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큰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올 겨울 자녀들과 1300년 전에 혜초가 걸었던 그 '모험'과도 같은 길을 함께 걸어보며 혜초의 발자취를 느껴보는 건 어떨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야기 동학농민전쟁 창비아동문고 125
송기숙 지음 / 창비 / 199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학농민전쟁은 1894년 우리나라 농민들이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고 우리나라를 침략하려는 청나라와 일본 군대를 몰아내려고 했던 전쟁입니다."(5쪽) 

전라 고부 군수 조병갑의 횡포에 더 이상 참고만 있을 수 없어 들고 일어난 농민들. 부패할 대로 부패하고, 무능할 만큼 무능했던 조선왕조는 자신들의 힘으로는 성난 민중들을 어찌할 수 없자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청나라와 일본을 끌어들여 전봉준(전명숙)을 앞세운 농민군을 무참히 짓밟는다. 그렇게 외세의 강력한 무기 앞에 대창으로 맞서다가 처절하게 무너진 농민군들의 저항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아픈 역사'인 동학농민전쟁이다. 

이 책은 이런 우리의 슬픈 역사인 동학농민전쟁사를 경쾌하고도 명징한 풍물패들의 풍물 소리와 함께 시작한다. 그리고 이야기 전체적으로 동학농민전쟁을 밖에서가 아니라 안에서, 즉 주인공인 농민들의 눈으로 바라보며 전개하고 있다. 특히 '전쟁'이라는 큰일을 치르면서도 웃음과 해학을 잃지 않았던 민중들의 모습을 잘 살려내고 있다.  

전봉준 장군과 손병희 대장이 호형호제 하기로 한 날 저녁 농민군 장막에서는 '이름 과거'라는 진기한 과거가 한 판 벌어진다. 이름 과거란 '모두 하나씩 달고 있는 자기 이름을 자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자로 지은 이름 말고', '순전히 우리 조선말로 지은 이름이래야 과거 볼 자격'을 주는 보도 듣도 못한 과거였다. "옛날 작두 쇠기둥에다 작두날을 꽂고 그 구멍에 지르는 그 고두쇠"처럼 요긴한 사람이 되라고 지은 정고두쇠, "정월 첫 쥐날 논두렁 불태우는 그 쥐불"이 논두렁에 까 놓은 해충들의 알을 태워버리듯이 못된 녀석들이 곁에 얼씬도 못하게 하라고 지은 전쥐불이, 무던하게 살라고 무더니, 항상 노래 부르듯 즐겁게 살라고 어아나리 등 재치있는 우리 조상들의 염원이 담긴 이름 풀이를 읽는 것도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전통적인 유교 사회의 틀에서 알콩달콩 사랑을 키우는 일동이와 옥분이의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는 자칫 지루하고 딱딱할 수 있는 역사 이야기에 가벼운 웃음과 여유를 주는 양념역할을 해준다.  

이 책은 아이들을 위해 동학농민전쟁에 관해서 전봉준과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따라서 거시적인 역사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다 담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이 책을 읽고 동학농민전쟁과 조선 말기의 역사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독자들은 이이화 선생이 쓴 <이야기 한국사 18권> "민중의 함성 동학농민전쟁"을 같이 읽기를 권한다. 역사에는 '만약에"라는 가정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동학농민전쟁이 성공을 거두고 부패한 정권과 외세의 침략을 뿌리쳤다면 그 후손들은 지금보다 떳떳한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지 않았을까. 

*** 

농민군들은 뒤돌아서서 물밀 듯이 달립니다. 한참 만에 관군도 공격을 멈춥니다. 들판에는 농민군 시체가 허옇게 널려 있습니다. 꼭 늦가을 무 밭에 무를 뽑아 놓은 것 같습니다. (...) "아아, 저 기관총!" 정백현 비서가 탄식을 합니다. "조정 대신 놈들아, 네 놈들은 무얼 하고 있었기에 남들이 만드는 저런 무기 하나도 못 만들었단 말이냐?" 김덕명 장군이 두 주먹을 부르르 떨며 고함을 지릅니다.(273쪽) 

여태 말이 없던 전봉준 장군이 입을 엽니다."(...)임진왜란 때도 그랬고 병자호란 때도 그랬습니다. 자기들이 나라의 주인인 듯이 떵떵거리던 관속들이나 양반들이나 부자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모두 자기들 살길만 찾아 쥐구멍을 찾았습니다. 겨울이 되어야 소나무가 푸른 줄을 알듯이 이럴 때야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드러납니다. 싸웁시다. 싸우다가 우리의 피를 우리가 일하던 들판 흙에다 뿌려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후손들한테 알려 줍시다."(292-29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툭 그림책 보물창고 2
요쳅 빌콘 그림, 미샤 다미안 글,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04년 8월
평점 :
절판



책을 고르는 기준은 기준이 될 수 있는 것들 가운데 하나가 ‘호기심’이 아닐까. 제목이나 표지 등이 풍기는 호기심. <아툭>은 그런 책 가운데 하나이다. 먼저 제목부터가, 읽기에 따라서 참 투박한 말이 되기도 하고 정겨운 말이 되기도 하는 묘한 느낌이 있다. 그래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그림책인데 표지는 왜 이렇게 어두운 걸까? 본문의 그림은 좀 나으려나 하는 기대감으로 들춰보지만, 웬걸! 본문의 그림도 어둡고 무겁기는 매한가지다. 그래도 책에 대한 호기심은 사그라지지 않아 본문을 읽어 내려간다.

북쪽 멀리 알래스카에 사는 아툭(아, 아이의 이름이구나!)은 다섯 살 된 선물로 아빠가 썰매개 한 마리를 주자, 개에게 타룩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둘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아툭은 타룩이 얼른 자신의 썰매를 끌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아버지의 사냥 여행에 떠나는 썰매개들 무리에 타룩을 끼워 보낸다. 하지만 타룩은 늑대에게 잡아먹히고 만다. 복수심이 가득해진 아툭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차례차례 받으면서 누구보다 용감하고 누구나가 두려워하는 사냥꾼이 된다. 그리고 마침내 늑대를 찾아 타룩의 복수를 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아툭의 마음은 왠지 더 허전해진다. 자신에게 닥친 죽음보다 처음 알게 된 친구인 밤하늘의 ‘별’과의 공감을 더 소중하게 여겼던 늑대의 마지막 모습에 아툭은 무언가를 깨닫는다. 그리고 외롭게 홀로 피어 있는 꽃에게 다가가 꽃의 친구가 되어주기로 한다. 이야기를 읽고 나니 마음이 참 무거워진다. 그래서 그림이 어둡고 무거웠구나.

아툭을 보면, 어떠한 계기가 사람을 180도 바꾸어놓을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것이 복수 같은 잘못된 마음에서 시작된다면 얼마나 비참한 결말을 겪게 되는지도 말이다. 아툭은 용감한 사냥꾼으로 성장하지만, 그의 주위에는 친구가 없다. 외로운 삶을 살아간다. 그것은 생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별을 친구로 삼았던 늑대와 다를 바 없다. 아툭은 마음속에서 자신을 갉아먹으며 기생했던 ‘복수심’이 사라진 뒤에야 그러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싫어하고, 질투하는 마음은 누구나 한 번쯤 갖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과거 자신의 모습은 지우고 싶은 모습으로 남을 뿐이다. 자신 말고는 아무도 모를 것이라 생각하지만, 대개가 그릇된 마음은 겉으로도 드러난다.

<아툭>은 이렇듯, 요즘 같은 무한경쟁 시대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외롭고 상처받은 아이들, 자신밖에 모르는 아이들, 무작정 앞으로만 달릴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좋은 책이 될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누군가를 밟고 일어서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아툭은 ‘복수’라는 끔찍한 경험을 통해 친구의 소중함과 외로움의 고통을 깨닫지만, 우리 아이들은 이보다 더 용감하고 멋진 방법으로 이러한 소중한 것들을 깨달았으면 한다. 그것은 바로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베푼 ‘용서’와, 마더 테레사가 나누어주었던 ‘사랑’이다. 누군가를 용서하는 힘, 이것이 진정한 용기이고, 이것을 베푸는 사람이 진정 용감한 사람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엇이든 삼켜버리는 마법상자 모두가 친구 7
코키루니카 글.그림, 김은진 옮김 / 고래이야기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보여주자 여섯살 된 딸이, 먼저 혼자 읽고 나더니 환하게 웃으며 내뱉었다.

"엄마, 아빠! 하하. 내가 싫어하는 건 뭐든 다 삼켜버려!!"

밥 먹을 때 싫어하는 반찬 억지로 먹는 게 싫었던 것일까, 모든 걸 양보해야 하는 동생이 싫었던 것일까, 아님 싫어하는 반찬 주고 동생에게 양보하라고 하는 엄마 아빠가 싫었던 걸까... 아무튼 이 책이 자신이 원했던 것을 대신 이루어주는, 뭐랄까, 대리만족 같은 것을 우리 딸에게 주었던 거 같다. 무지 좋아했다.

그래서 서운한 생각이 들어 다시 물었다. 다 삼켜버려서 좋으냐고. 그러더니 머뭇거린다. 대답을 고르는 건지, 엄마 아빠의 입장을 생각하는 건지, 책 뒷부분에서 발생하는 예기치 못했던 것을 생각한 건지... 그러더니 그래도 다 삼켜버리는 건 왠지 아쉬웠나 보다. 그래도 엄마랑 친구들은 있었으면 좋겠단다.

아이를 웃고 울게 하는 이 책. 책의 마무리가 왠지 좀 어색하고, 무언가 해결하지 못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아이에게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들어 준 것 같아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