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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동학농민전쟁 ㅣ 창비아동문고 125
송기숙 지음 / 창비 / 1992년 2월
평점 :
"동학농민전쟁은 1894년 우리나라 농민들이 나라의 정치를 바로잡고 우리나라를 침략하려는 청나라와 일본 군대를 몰아내려고 했던 전쟁입니다."(5쪽)
전라 고부 군수 조병갑의 횡포에 더 이상 참고만 있을 수 없어 들고 일어난 농민들. 부패할 대로 부패하고, 무능할 만큼 무능했던 조선왕조는 자신들의 힘으로는 성난 민중들을 어찌할 수 없자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청나라와 일본을 끌어들여 전봉준(전명숙)을 앞세운 농민군을 무참히 짓밟는다. 그렇게 외세의 강력한 무기 앞에 대창으로 맞서다가 처절하게 무너진 농민군들의 저항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아픈 역사'인 동학농민전쟁이다.
이 책은 이런 우리의 슬픈 역사인 동학농민전쟁사를 경쾌하고도 명징한 풍물패들의 풍물 소리와 함께 시작한다. 그리고 이야기 전체적으로 동학농민전쟁을 밖에서가 아니라 안에서, 즉 주인공인 농민들의 눈으로 바라보며 전개하고 있다. 특히 '전쟁'이라는 큰일을 치르면서도 웃음과 해학을 잃지 않았던 민중들의 모습을 잘 살려내고 있다.
전봉준 장군과 손병희 대장이 호형호제 하기로 한 날 저녁 농민군 장막에서는 '이름 과거'라는 진기한 과거가 한 판 벌어진다. 이름 과거란 '모두 하나씩 달고 있는 자기 이름을 자랑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자로 지은 이름 말고', '순전히 우리 조선말로 지은 이름이래야 과거 볼 자격'을 주는 보도 듣도 못한 과거였다. "옛날 작두 쇠기둥에다 작두날을 꽂고 그 구멍에 지르는 그 고두쇠"처럼 요긴한 사람이 되라고 지은 정고두쇠, "정월 첫 쥐날 논두렁 불태우는 그 쥐불"이 논두렁에 까 놓은 해충들의 알을 태워버리듯이 못된 녀석들이 곁에 얼씬도 못하게 하라고 지은 전쥐불이, 무던하게 살라고 무더니, 항상 노래 부르듯 즐겁게 살라고 어아나리 등 재치있는 우리 조상들의 염원이 담긴 이름 풀이를 읽는 것도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전통적인 유교 사회의 틀에서 알콩달콩 사랑을 키우는 일동이와 옥분이의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는 자칫 지루하고 딱딱할 수 있는 역사 이야기에 가벼운 웃음과 여유를 주는 양념역할을 해준다.
이 책은 아이들을 위해 동학농민전쟁에 관해서 전봉준과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따라서 거시적인 역사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다 담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이 책을 읽고 동학농민전쟁과 조선 말기의 역사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독자들은 이이화 선생이 쓴 <이야기 한국사 18권> "민중의 함성 동학농민전쟁"을 같이 읽기를 권한다. 역사에는 '만약에"라는 가정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동학농민전쟁이 성공을 거두고 부패한 정권과 외세의 침략을 뿌리쳤다면 그 후손들은 지금보다 떳떳한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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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군들은 뒤돌아서서 물밀 듯이 달립니다. 한참 만에 관군도 공격을 멈춥니다. 들판에는 농민군 시체가 허옇게 널려 있습니다. 꼭 늦가을 무 밭에 무를 뽑아 놓은 것 같습니다. (...) "아아, 저 기관총!" 정백현 비서가 탄식을 합니다. "조정 대신 놈들아, 네 놈들은 무얼 하고 있었기에 남들이 만드는 저런 무기 하나도 못 만들었단 말이냐?" 김덕명 장군이 두 주먹을 부르르 떨며 고함을 지릅니다.(273쪽)
여태 말이 없던 전봉준 장군이 입을 엽니다."(...)임진왜란 때도 그랬고 병자호란 때도 그랬습니다. 자기들이 나라의 주인인 듯이 떵떵거리던 관속들이나 양반들이나 부자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모두 자기들 살길만 찾아 쥐구멍을 찾았습니다. 겨울이 되어야 소나무가 푸른 줄을 알듯이 이럴 때야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드러납니다. 싸웁시다. 싸우다가 우리의 피를 우리가 일하던 들판 흙에다 뿌려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 후손들한테 알려 줍시다."(292-29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