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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발, 왼발 ㅣ 비룡소의 그림동화 37
토미 드 파올라 글 그림, 정해왕 옮김 / 비룡소 / 1999년 9월
평점 :
아이들에게 가족의 사랑이 무엇인지 아주 명확하고도 명쾌하게 일깨워주는 책, <오른발, 왼발>. 어렸을 때에는 3대가 한 집에 사는 것이 아주 일반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농촌이 고향인 우리 집과 우리 마을에는 아이부터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한데 어울려 살았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3대가 한 집에 모여 사는 것은 '대단한 일'이 되었고, 할머니들은 단순히 손주들의 보모가 된 지 오래이다.
가족의 사랑에 관한 아이들 책을 보면 대부분이 부모와 자식들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주변인으로 전락했다. 예전에는 집안의 예절교육과 대소사를 관장하던 어른의 지위를 상실한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일반적인 책들과 달리 할아버지와 손자의 관계 속에서 가족의 진한 사랑을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높은 칭찬을 해주고 싶다.
할아버지의 이름 보브에서 따온 '보비'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태어난다. 아이는 크면서 할아버지에게서 걸음마를 배우고, 맨 처음 한 말도 보브였고, 할아버지와 블록 쌓기 놀이를 하며 즐겁게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뇌졸증으로 쓰러져 말도 웃음도 기억도 잃어버리고 만다. 병원에 입원한 할아버지와 떨어져 지낸 지 석 달이 지난 어느 날 할아버지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만 보브에게는 할아버지가 영 낯설다. 그런데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던 할아버지는 보비를 만나면서 조금씩 몸과 기억이 되돌아오고 결국 보비의 노력으로 할아버지는 보비와 함께 걸음마를 시작하게 된다. 예전에 걸음마를 배우던 손자에게서 이제는 할아버지가 걸음마를 배우게 된 것이다.
짧지만 아주 강렬한 여운을 주는 작품이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할아버지를 대하던 아이의 놀라던 모습은 누구라도 쉽사리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의 힘은 그 무엇도 이겨낼 수 있게 해준다는 상투적인 표현이 이 책에는 아주 적절한 표현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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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할아버지는 보비에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어요. 그러나 그 목소리는 무시무시하게 들렸습니다. 보비는 얼른 방에서 도망쳐 나왔지요. 보비가 소리치며 말했어요. "엄마! 할아버지가 괴물처럼 소리를 내요." 엄마가 말했습니다. "보비야, 병이라 어쩔 수 없단다." 보비는 할아버지가 앉아 계신 방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할아버지 얼굴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어요. "할아버지, 도망가려고 했던 게 아니에요. 무서워서 그랬어요. 미안해요." 보비가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