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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ㄱ ㄴ ㄷ ㅣ 비룡소 창작그림책 7
박은영 글.그림 / 비룡소 / 1997년 4월
평점 :
어린 아들이 요즘 글자 깨치느라 신이 났다. 한마디로 재미를 붙였다. 길을 걷다가도 건물에 걸린 간판이나 홍보물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그래서 어디를 가도 시간이 배로 걸리는 것 같다. 아침에 신문을 볼라치면 어느 결엔가 옆에 와서 훼방(?)을 놓는다. 읽어달라는 책도 부쩍 늘었다. 그냥 두면 집에 있는 책을 모두 가져올 태세다.
제 누나가 읽던 이 책도 이전까지는 그냥 엄마 아빠가 읽어주면 가만히 '보는' 그림책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책을 뚫어져라 보기 시작하더니, 며칠 새 이 책에 나오는 글자들을 몇 글자 빼고는 뜨덤뜨덤 읽는다. 큰애도 이 책을 흥미롭게 보더니 둘째놈도 똑같다. 아이들이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
먼저 예쁜 기차라는 매개물을 통해 재미있게 씌어진 스토리 때문인 듯하다. 아이들은 책장을 넘기며 기차가 출발해서 들을 지나고 터널을 지나고 다리를 지나는 등 끊임없이 새롭게 이어지는 여행을 직접 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 같다. 게다가 기차의 여행의 종착지는 출발지이다. 아이들에게는 이보다 안정적이고 편안한 여행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엄마 아빠가 들려주는 그림책이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읽는 책으로 바뀌어간다.
둘째, 본문에 사용된 글자들이 아이들이 익히기 쉬운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인 듯하다. 글자를 깨치는 아이들은 받침 낱말들을 힘들어한다. 그런데 이 책에는 받침 낱말들이 그리 많이 나오는 것 같지 않다. 다른 책들에 비해(물론 유아들을 상대로 하는 책들이 이런 점을 고려하고 있기는 하겠지만). 그래서 아이들이 '나도 읽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그림이 어딘가 불안정해 보이면서도 편안해보인다는 점이다. 자세히 보면 오히려 불안정해보인다기보다 정돈된 모습이다. 아이들이 낯설어하지 않는 스타일이고.
아무튼 요즘 아들이 이 책을 읽으며 재미있는 기차 여행과 함께 글자를 알아가는 재미를 만끽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