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3단어로 - 내일 당장 대화가 되는 초간단 영어법
나카야마 유키코 지음, 최려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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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그토록 오랜 시간 공부했지만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이유와 그 해결책을 담은 책이라고 생각된다. 나를 비롯해서 영어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영어로 생각하고 바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우리말로 생각하고 그 말을 번역하면서 영어가 자연스럽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기는 하지만 그 해결책은 찾지못하고 있었는데, 이 책의 제목과 간단한 소개를 보자마자 목욕탕에서 부력의 원리를 발견한 아르키메데스처럼 유레카라고 외칠 정도로 흥분되었다.


이 책의 핵심은 거의 모든 의사소통을 주어+동사+목적어 형태로 구성할 수 있고, 그 속에서도 동사 활용을 능숙하게 하는 것이 영어 구사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주요한 동사의 활용방안을 소개한 3장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반하여 우리는 말은 명사를 위주로 의사 소통을 하는 언어인데 이를 그대로 번역하면서 어색한 영어를 하게 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책 이후의 내용은 기본 문형에서 시제, 조동사, 분사 등을 활용하면서 의미를 풍부하게 하는 내용인데 학창시절에 접했던 문법책과 거의 유사한 내용으로 새로운 내용이 거의 없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3장의 내용을 더 알차게 (좀 더 다양한 동사와 그 활용을 소개해 주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더욱 도움이 되지않았을까 생각된다.) 그 중에서도 would, could, should가 모든 의미에서 가정법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은 이 들 조동사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추가적으로, 가능하면 be동사의 사용을 줄이라는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영어를 처음 배울 때 be동사를 배우는 바람에 다른 동사는 잘 몰라도 be동사는 잘 알고 친숙하여 저절로 많이 사용하는 편이 되었는데,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였다.

영어로 말할 기회는 없지만 논문 등을 쓰기위해 글을 쓸 경우는 약간 있는데, 우리말 문어체를 쓰는 습관 때문인지 수동태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연구에 대한) 방법론을 설명할 경우는 주어가 애매하다는 (또는 사람을 주어로 하는 것이 오히려 불편할 수 있다) 등의 이유로 수동태 사용이 허용되기도 하지만, 다른 부분은 능동태를 쓰는 것을 장려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다른 부분에서도 수동태를 여전히 많이 써왔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동사의 활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잘 쓸 수 있게 된다면, 논문 등의 영문글쓰기에도 간단한 문장 형식의 능동으로 잘 쓸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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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위대한 여정 - 빅뱅부터 호모 사피엔스까지, 우리가 살아남은 단 하나의 이유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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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교수의 많은 저작은 그 분의 고대 언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어떤 개념이나 단어에 대한 어원과 그 속에 숨어 있는 옛 사람들의 지혜를 이야기해서 다른 책에서 배울 수 없는 새로운 지식이 많아서 다른 인문학 관련 책과는 차이가 있고 책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일종의 빅 히스토리 서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기존의 빅 히스토리가 담고 있는 과학적, 천문학적 접근과 유사하게 시작하지만 그 의미를 해석하는 과정에서는 역시 저자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나면서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이 책의 제목은 인간의 위대한 여정이지만 책의 내용은 오히려 인간이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들을 어떻게 보고 해석하는 방법을 발전시켜 왔는가에 대해 논하는 책이라고 평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책 초반에 나온 아인슈타인의 말은 이 책의 주제를 말하고 있다.

- 저의 삶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거은 삶의 신비를 묵상하는 것일입니다. 우리가 희미하게 아는 우주의 놀라운 구조에 대해숙고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자연 안에 드러난 우주에 관한 지식의 아주 작은 일부라도 이해하려고 겸손하게 노력하는 일입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인류가 세상의 존재를 보는 시각 중 하나는 '존재의 거대한 사슬'인데, 이는 우주의 질서가 신에 의해 계층적으로 정해져 있고, 하나의 거대한 사슬이 이 모든 것을 결합시킨다는 것으로 이러한 시각은 그 후의 과학혁명에서 종의 분류를 비롯하여 계속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인류가 자신과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을 구분하여 보는 시각이다.

또 다른 하나는 저자가 이야기하는 이타주의인데, 이 생각이 인류를 현재의 위치까지 도달할 수 있게 해 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 후반부에 상당히 많은 지면을 통해  구석기 시대 동굴의 벽화를 소개한다. 알타미라 동굴의 들소를 비롯하여 쇼베동굴, 라스코 동굴의 벽화는 그 표현이 매우 세밀하고 정확하여 수많은 시간을 들여 관찰하고 그림을 그렸음을 알 수 있고, 또한 그림을 그린 사람은 사냥 등의 생업에서 해방되어 그림을 전문적으로 그렸다는 것도 추정할 수 있다. 어두운 동굴에서 남겨진 그림으로부터 저자는 인류가 이러한 동물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관찰하고,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그들을 사냥해야만 한다는 사실에 대해 죄의식을 가지고 그 대상에 대해 용서를 빌고 반성하였음을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자신만을 위해 살지않고 다른 존재들을 생각하고 그 입장 대해 교감하는 존재가 됨으로써 현재의 위치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농업의 발달로 종교가 시작될 수 있었다는 기존의 생각을 뒤집어, 인류가  (타인이나 다른 동물 등의 존재와 교감하는) 종교활동을 하면서 농업이 시작될 수 있었고 현재의 문물까지 이룰 수 있었다고 해석한다. 다시 말해서,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존재도 생각하는 존재이기에 인류문명이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볼 떄 이 책에서 가장 좋은 부분은 책 마지막의 에필로그이다. 이 책에서 이야기한 인류의 자신과 다른 존재에 대한 성찰을 의미를 단테와 휘트먼 등을 비롯한 인물의 글로 다시 정리하는데 이 책의 주제가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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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소녀 - 전혜린, 그리고 읽고 쓰는 여자들을 위한 변호
김용언 지음 / 반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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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한 수업시간. 수업과 관계없는 들은 이야기 중 아직까지 어렴풋이나마 아직까지 기억하는 것 하나가 전혜린에 대한 이야기였다. 서울법대에 입학할 때 수학이 0점이었지만 다른 성적이 워낙 뛰어나고 법을 하는데 수학이 뭐가 필요하냐는 교수들의 의견(?)에 따라 입학할 수 있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와 어느날 갑자기 자살(?)하였다는 전설같은 스토리에 매료되어 평소에는 읽지않은 여성의 에세이(문학소년의 저자가 언급한 바로 그 삼중당 문고다)를 읽으려는 시도도 하였는데 정작 작품에는 큰 흥미를 못 가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거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이름이었는데 그녀에 대한 책이 새롭게 출간되어 다시 한 번 그녀를 알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읽기를 희망하였는데, 생각만큼은 그녀에 대해 자세한 소개가 있는 책은 아니었다. 오히려 전혜린을 위한 변명, 또는 문학소녀들을 위한 변명이라는 부제를 떠올릴 수 있을 만큼 당시의 사회상에서 자신의 꿈을 꽃피우지 못한 여성 (여성이 아닌 남녀 모두를 말해도 무방할 것 같다)을 위한 책이었다.


전혜린이 자신의 꿈을 피우지 못한 사회상을 이야기할 때 나 역시 어린시절을 그런 분위기와 문화 속에서 살아왔고 나도 모르게 유사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게 되었다.  2017년 오늘에 보면 분명 어색하고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이지만 1987년 6월항쟁 이전에는 그런 사고방식 속에 젖어 살아왔던 것 같다. 내가 평소에 그다지 생각하지 못했던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문학소년에 대한 책을 통해 깨닫게 된 사실도 특이한 경험이다.

이 책에서 전혜린의 글에 대해 새롭게 조명하는 내용은 없어 그녀의 작품에 대한 평가는 당장은 바꾸기 어렵다. 다만, 아무리 당시의 사회상이 차별이 심하고 한계도 컸다고 해도 위에서 말한 것처럼 뛰어난 머리를 가진 사람이라면 극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어린시절 너무 귀하게 자란 탓에 용기과 각성이 부족하지 않았을까하는 나름의 생각도 해본다.

이 책에서 강하게 비판하는, 젊은이들의 순수한 열정과 저항정신, 기회와 가능성을 고운 손으로 불란서 시집을 읽는 소녀라고 매도하면서 오직 자본주의적 부를 추구하던 기성세대의 모습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젊은 이들이 (문학소녀들이) 이제는 그들에게 희생되지 말고 자신들의 꿈을 키워나갈 수 있게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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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마일리스 드 케랑갈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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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서술방식은 모든 대사를 따옴표없이 다르 문장들과 구분없이 섞어서 사용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리 특별할 것 같지 않이 이러한 서술방식이 이 소설의 내용과 맛물려서 묘한 느낌과 여운, 그리고 울림을 주는 것 같다. 또한 표지의 그림의 의미를 책을 읽기전에는 잘 몰랐는데, 감상을 적으면서 그림을 다시 살펴보니, 파도가 계속되다가 어느 순간부터 심전도(?) 그래프로 바뀌는데, 책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시몽 랭브르가 서핑을 하면서 파도를 타다가 쓰러져서 병원에서 심장의 상태를 모니터링하게 되는 상태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략 제목을 통해서나 책소개 글들을 통해 뇌사한 사람의 장기를 다른사람에게 기증하는 내용을 소재로 담고 있는데, 위에서 언급한 대사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간결한 문장과 섞어쓰는 표현을 통해 자신의 아들이 뇌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부모가 사고를 접하면서 돌이키는 아들의 과거가 죽음과 함꼐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다시 말해서 부모가 떠올리는 아들의 과거는 온전한 형태가 아니라 파편화된 형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나 자신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어느날 갑자기 에전에 알던 동료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일이 있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다른 사람은 잘 모르는 그 동료와 나만의 추억 (또는 과거의 일)도 함께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 책의 서술 방식이 꼭 그런 느낌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날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충격과 상처가 이 책에서사용한 표현이 정말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들의 죽음만큼 강렬한 충격을 주는 것이 아들의 장기를 다른 사람에게 기증할 것에 대해 부모의 의사를 물어보는 장면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아들의 죽음을 접한 부모에게 너무 잔인한 상황이라고 생각되는데, 이러한 상황의 잔인 함도 이 책에서 사용된 표현 방법이 잘 살리고 있다고 생각된다. 살아생전 장기기증에 대해 특별한 의사표시를 하진 아들의 장기기증을 위해 아들의 성품이 너그러웠는지 아니었는지 묻는 장면이 나오는데 책을 읽는 독자입장에서도 정말 가슴이 답답해지는 상황이었다. 다른 사람의희생을 통해 새로운 삶을 얻은 사람들의 이야기나 영화는 그 동안 어느 정도 접했지만,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입장은 이책을 통해 처음 경험하는 것 같다. 생명의 소중함이나 장기기증에 대해 많은 분들이 생각할 수 있도록 읽어보시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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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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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라는 언어에 대해 문법을 체계적으로 배우지는 않을 지라도 제법 어휘를 많이 배울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언어 자체보다는 저자가 인용한 라틴어 문장에 따른 저자의 생각이 위주로 된 책이었다. 라틴어 어구를 인용하면서 나온 이야기이기에 문학, 역사, 철학 등 인문학적 성찰이 담긴 책인데, 라틴어 어구 본래의 의미보다는 저자의 생각이 중심이 되었다고 느꼈다.


저자가 라틴어 수업을 서강대에서 진행한 내용을 책으로 담았지만, 저자의 기독교에 대한 생각이 매우 합리적이고 세속적 (종교에 치우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이어서 무척 놀라운 느낌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케사르의 것은 케사르에게 신의 것은 신에게>와 <만일 신이 없더라도> 파트였다. 일반적인 교회의 설교에서는 이 책에서 나온 것과는 다른 내용으로 이 어귀를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중세의 정교일치사회에서 시민사회와 종교사회로 구분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 어구의 시대적 배경은 서기 30년 정도로 중세보다 훨씬 전이라서 성경에서의 실제 의미는 저자의 이야기와 다를 것으로 생각되지만, 현재의 시민사회에서는 분명히 추구해야할 개념이지만 종교와 관계있는 수업에서 이런 내용을 강의하고 책으로 펴냈다는 사실이 무척 인상적이다.

이러한 개념은 그 다음 <만일 신이 없더라도>에서 더욱 발전된다. (신에 대한 존재를 100% 신뢰한다고 하더라도) 성경의 내용이 신이나 예수의 말을 직접 기록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말이나 사실을 접한 것을 스스로의 관점을 통해 기록한 내용이라 엄밀히 말해서 100% 신의 말씀이라고 볼 수 없고, 그를 기록한 사람들의 생각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신이 아닌 사람의 생각이 언제나 100% 옳다고 할 수 없을 수도 있으므로, 사회가 돌아가는 원칙을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신뢰할 수 있는 합리성을 기초로 사회를 구성한 것이 서구사회의 '세속성'의 기초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많은 일을 겼으면서 보다 성숙해지고 진보하였지만 아직까지 인물이나 조직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기존의 보수정권, 독재정권의 가장 큰 문제점도 시스템보다 인물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누가 리더가 되더라도 제대로 발전할 수 있도록 국가,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무척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우리사회도 Etri Deus non daretur (만일 신이 없더라도)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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