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녀 - 전혜린, 그리고 읽고 쓰는 여자들을 위한 변호
김용언 지음 / 반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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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한 수업시간. 수업과 관계없는 들은 이야기 중 아직까지 어렴풋이나마 아직까지 기억하는 것 하나가 전혜린에 대한 이야기였다. 서울법대에 입학할 때 수학이 0점이었지만 다른 성적이 워낙 뛰어나고 법을 하는데 수학이 뭐가 필요하냐는 교수들의 의견(?)에 따라 입학할 수 있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와 어느날 갑자기 자살(?)하였다는 전설같은 스토리에 매료되어 평소에는 읽지않은 여성의 에세이(문학소년의 저자가 언급한 바로 그 삼중당 문고다)를 읽으려는 시도도 하였는데 정작 작품에는 큰 흥미를 못 가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거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이름이었는데 그녀에 대한 책이 새롭게 출간되어 다시 한 번 그녀를 알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읽기를 희망하였는데, 생각만큼은 그녀에 대해 자세한 소개가 있는 책은 아니었다. 오히려 전혜린을 위한 변명, 또는 문학소녀들을 위한 변명이라는 부제를 떠올릴 수 있을 만큼 당시의 사회상에서 자신의 꿈을 꽃피우지 못한 여성 (여성이 아닌 남녀 모두를 말해도 무방할 것 같다)을 위한 책이었다.


전혜린이 자신의 꿈을 피우지 못한 사회상을 이야기할 때 나 역시 어린시절을 그런 분위기와 문화 속에서 살아왔고 나도 모르게 유사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게 되었다.  2017년 오늘에 보면 분명 어색하고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이지만 1987년 6월항쟁 이전에는 그런 사고방식 속에 젖어 살아왔던 것 같다. 내가 평소에 그다지 생각하지 못했던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문학소년에 대한 책을 통해 깨닫게 된 사실도 특이한 경험이다.

이 책에서 전혜린의 글에 대해 새롭게 조명하는 내용은 없어 그녀의 작품에 대한 평가는 당장은 바꾸기 어렵다. 다만, 아무리 당시의 사회상이 차별이 심하고 한계도 컸다고 해도 위에서 말한 것처럼 뛰어난 머리를 가진 사람이라면 극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어린시절 너무 귀하게 자란 탓에 용기과 각성이 부족하지 않았을까하는 나름의 생각도 해본다.

이 책에서 강하게 비판하는, 젊은이들의 순수한 열정과 저항정신, 기회와 가능성을 고운 손으로 불란서 시집을 읽는 소녀라고 매도하면서 오직 자본주의적 부를 추구하던 기성세대의 모습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젊은 이들이 (문학소녀들이) 이제는 그들에게 희생되지 말고 자신들의 꿈을 키워나갈 수 있게 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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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마일리스 드 케랑갈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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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서술방식은 모든 대사를 따옴표없이 다르 문장들과 구분없이 섞어서 사용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리 특별할 것 같지 않이 이러한 서술방식이 이 소설의 내용과 맛물려서 묘한 느낌과 여운, 그리고 울림을 주는 것 같다. 또한 표지의 그림의 의미를 책을 읽기전에는 잘 몰랐는데, 감상을 적으면서 그림을 다시 살펴보니, 파도가 계속되다가 어느 순간부터 심전도(?) 그래프로 바뀌는데, 책의 등장인물 중 하나인 시몽 랭브르가 서핑을 하면서 파도를 타다가 쓰러져서 병원에서 심장의 상태를 모니터링하게 되는 상태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대략 제목을 통해서나 책소개 글들을 통해 뇌사한 사람의 장기를 다른사람에게 기증하는 내용을 소재로 담고 있는데, 위에서 언급한 대사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간결한 문장과 섞어쓰는 표현을 통해 자신의 아들이 뇌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부모가 사고를 접하면서 돌이키는 아들의 과거가 죽음과 함꼐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다시 말해서 부모가 떠올리는 아들의 과거는 온전한 형태가 아니라 파편화된 형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나 자신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어느날 갑자기 에전에 알던 동료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일이 있었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다른 사람은 잘 모르는 그 동료와 나만의 추억 (또는 과거의 일)도 함께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 책의 서술 방식이 꼭 그런 느낌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날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충격과 상처가 이 책에서사용한 표현이 정말 잘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들의 죽음만큼 강렬한 충격을 주는 것이 아들의 장기를 다른 사람에게 기증할 것에 대해 부모의 의사를 물어보는 장면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아들의 죽음을 접한 부모에게 너무 잔인한 상황이라고 생각되는데, 이러한 상황의 잔인 함도 이 책에서 사용된 표현 방법이 잘 살리고 있다고 생각된다. 살아생전 장기기증에 대해 특별한 의사표시를 하진 아들의 장기기증을 위해 아들의 성품이 너그러웠는지 아니었는지 묻는 장면이 나오는데 책을 읽는 독자입장에서도 정말 가슴이 답답해지는 상황이었다. 다른 사람의희생을 통해 새로운 삶을 얻은 사람들의 이야기나 영화는 그 동안 어느 정도 접했지만,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입장은 이책을 통해 처음 경험하는 것 같다. 생명의 소중함이나 장기기증에 대해 많은 분들이 생각할 수 있도록 읽어보시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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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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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라는 언어에 대해 문법을 체계적으로 배우지는 않을 지라도 제법 어휘를 많이 배울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언어 자체보다는 저자가 인용한 라틴어 문장에 따른 저자의 생각이 위주로 된 책이었다. 라틴어 어구를 인용하면서 나온 이야기이기에 문학, 역사, 철학 등 인문학적 성찰이 담긴 책인데, 라틴어 어구 본래의 의미보다는 저자의 생각이 중심이 되었다고 느꼈다.


저자가 라틴어 수업을 서강대에서 진행한 내용을 책으로 담았지만, 저자의 기독교에 대한 생각이 매우 합리적이고 세속적 (종교에 치우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이어서 무척 놀라운 느낌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케사르의 것은 케사르에게 신의 것은 신에게>와 <만일 신이 없더라도> 파트였다. 일반적인 교회의 설교에서는 이 책에서 나온 것과는 다른 내용으로 이 어귀를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중세의 정교일치사회에서 시민사회와 종교사회로 구분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 어구의 시대적 배경은 서기 30년 정도로 중세보다 훨씬 전이라서 성경에서의 실제 의미는 저자의 이야기와 다를 것으로 생각되지만, 현재의 시민사회에서는 분명히 추구해야할 개념이지만 종교와 관계있는 수업에서 이런 내용을 강의하고 책으로 펴냈다는 사실이 무척 인상적이다.

이러한 개념은 그 다음 <만일 신이 없더라도>에서 더욱 발전된다. (신에 대한 존재를 100% 신뢰한다고 하더라도) 성경의 내용이 신이나 예수의 말을 직접 기록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말이나 사실을 접한 것을 스스로의 관점을 통해 기록한 내용이라 엄밀히 말해서 100% 신의 말씀이라고 볼 수 없고, 그를 기록한 사람들의 생각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신이 아닌 사람의 생각이 언제나 100% 옳다고 할 수 없을 수도 있으므로, 사회가 돌아가는 원칙을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신뢰할 수 있는 합리성을 기초로 사회를 구성한 것이 서구사회의 '세속성'의 기초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많은 일을 겼으면서 보다 성숙해지고 진보하였지만 아직까지 인물이나 조직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기존의 보수정권, 독재정권의 가장 큰 문제점도 시스템보다 인물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누가 리더가 되더라도 제대로 발전할 수 있도록 국가,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무척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우리사회도 Etri Deus non daretur (만일 신이 없더라도)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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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소설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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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뉘엘 카레르의 <러시아 소설>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르포문학이라는 사전정보도 있었기에 러시아의 풍광이나 문화, 분위기에 대한 묘사가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였는데, 러시아라는 나라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작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책을 중간 정도 읽으면서 내 나름대로는 이 책이 무엇을 이야기하는 지 알 수 있게 되었는데 (구체적으로 작가 자신에 대해서), 이 생각이 작가가 이 글을 쓴 목적 또는 의도와 같은 지는 확실하지 않다.

 

작가는 제2차 세계대전 말엽에 포로가 되어 러시아 오지의 정신병원에 갇혀 50년을 보냈다가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헝가리 남자에 대해 취재할 기회를 얻게 되고, 그가 50년간 갇혀있었던 러시아의 코텔니치라는 곳을 방문할 기회를 얻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작가는 50년간 말이 안 통하는 타국에서 생활한 그 남자의 삶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그 이유는 그의 외조부나 어머니도 조국인 러시아를 떠나 프랑스에 살면서 그 사람만큼은 아니지만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의 문제나 문화적인 단절감으로 인한 고통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단절로 인한 고통의 삶은 작가까지 이어져서 타인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고 이기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 것으로 느껴진다.

 

타국살이와 언어단절에 의한 외로움과 고통이 이 소설을 이끄는 한 축이라면 나머지 한 축은 작가의 사랑이야기인데 읽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서로의 감정이나 생각이 잘 전달되지 않는 기이한 형태인 것도 고통스러웠지만, 작가가 보이는 사랑의 모습이 일방적이고 너무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괴로웠다. 작가는 여주인공 소피를 정말로 사랑하는 지, 그저 유희나 욕망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닌 지, 상대방이의 감정이나 생각은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만 고집하면서 혼자서만 사랑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중간에 나오는 작가가 소피를 위해 썼다는 단편소설은 내가 보기에는 너무 가학적이고 파렴치하다고 느꼈다.)

 

이러한 일방적이고 비정상적인 연애가 제대로 될 리 없으니 소피는 떠나고 작가는 홀로 남았다. 그 즈음 작가가 코텔니치에서 만난 아냐라는 여인이 그녀의 아기 레프와 함께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곳을 다시 방문하다. 사건의 이유나 범인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 없이 장례식이 치러지는데, 그녀 역시 그 곳 태생이 아닌 외국출신으로 외로운 삶을 살았다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 이후 작가는 어머니에게 자신의 과거와 단절하겠다는 뉘앙스의 편지를 쓰면서 이야기가 끝나게 된다.

 

작가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50년간 타국에 갇혀 살았던 남자에 대해 알게 되면서 어렴풋이나마 자신 내부의 외로움(자신의 사랑이 비정상적이고 이기적이고 일방적이었던 원인)의 근원을 알게 되었고, 완전히 같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비슷하게 타국생활을 한 여인의 죽음을 보면서 그 외로움을 떨쳐내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하게 되는 것으로 나 이해했다. 내 생각이 옳다면 작가가 새롭게 맞이할 삶이나 사랑은 예전보다는 일방적이지는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아름다운 것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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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지기 전에 - 1차 세계대전 그리고 한반도의 미래
김정섭 지음 / Mid(엠아이디)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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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지기 전에>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이전의 유럽의 정세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과 제1차 세계대전의 진행과정 및 교훈을 다룬 책이다. 전쟁 자체보다는 전쟁 이전의 각 나라의 정세에 대해 보다 자세하게 다루었는데 그 이유는 이 시기 유럽의 정세를 21세기 현재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며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의 정세와 비교하고 우리나라의 외교 방향에 대한 지혜를 얻기 위함이다.

 

1차 세계대전은 제2차 세계대전에 비해서 제대로 된 정보나 지식이 많지 않은 듯하다. 나 자신도 사라예보에서 발생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 암살사건으로 촉발되었다는 정도 이외에는 아는 것이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전쟁의 발발 원인이었던 암살사건 이전 황태자 루돌프가 연애문제로 자살하면서 성격이 보다 급진적인 동생이 황태자 자리를 이어받아 자살사건이 업었으면 세계역사가 바뀌었을 지도 모른다는 후일담도 있고, 모든 면에서 부러울 것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 황제 집안에서 운명의 장난처럼 자살이나 암살 등으로 비극적으로 삶을 마친 사람들이 많은 것 등도 기억에 남는다.

 

케네디나 링컨의 암살사건 만큼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정확한 내용은 몰랐던 황태자 부부의 암살사건의 전개과정을 보면 무척 기가 막힌다. 암살의 일차시도가 미수에 그친 상황에서 더 이상의 위협은 없으리라는 그릇된 판단으로 무리한 일정을 따르다 암살범의 바로 앞까지 황태자 부부가 갔다가 어이없이 죽게 되는 과정을 보면 정말 기가 막히고 이런 사건 이후 수십, 수백만 명의 사람이 생명을 잃어버리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세르비아 청년의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에 대한 오스트리아의 응징으로 전쟁은 시작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전쟁의 주요한 흐름에서 오스트리아나 세르비아에 대한 내용은 사라지고, 독일과 주위 국가들과의 전쟁 (, 전쟁의 시작과는 무관한 나라들 간) 만 남는다. 왜 전쟁을 시작한 나라와 그 이후의 주요한 전쟁을 치루는 나라가 달라지는가? 정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학창시절 역사과목을 통해 배운 지식으로는, 제국주의의 발달에 따른 식민지 쟁탈경쟁이 심화되면서 세계대전으로 발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세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시점에서는 식민지 체제가 이미 상당히 굳어진 상태였기에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보고, 비스마르크 퇴진 이후 외부로의 진출로 독일의 외교전략이 바꾼 것과 독일의 군사 전략이 (러시아와 프랑스 방어전략 등을 고려하여 마들어진) 슐리펜 계획에 고정되어 주위 여건이 변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그 전략을 고집한 것, 그리고 이러한 군사전략에 대해 민간인들은 어떠한 반대나 수정도 하지 못하고 끌려갔다는 사실 등을 세계대전의 주요 원인으로 보고 있다.

 

저자도 언급했듯이 현재의 한반도 주위여건이 세계 1차대전 이전과 닮은 부분이 꽤 있다. 외부 팽창을 꾸준히 꾀하는 일본과 중국,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미사일 발사 및 핵무기 실험을 계속하는 북한 등. 이 와중에 조금이나마 희망적인 사실은 우리나라가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민간인들의 군부에 대한 통제가 강화된 것과 꾸준히 주변국가들과 대화를 유지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는 민간인들의 군부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했고, 주변국가들과의 대화 채널도 끊어져서 정말로 제1차 세계대전과 미슷한 상태였기에, 어떠한 우연하고 엉뚱한 사건으로 인하여 전쟁발발 가능성이 높았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서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느낌을 받았고, 그렇기에 외교무대에서 우리나라가 한반도 주변문제에서 우리가 주인임을 꾸준히 인식시키면서 대화하는 자세를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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