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올림 8
이경화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 : 나

지은이 : 이경화

출판사 : 바람의 아이들


십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트랜스젠더니 커밍아웃, 동성애란 말이 지금처럼 공공연히 오르내리지는 못했었다. 요즘은 세계적으로도 동성애코드가 유행이지만 여전히 소수집단에 속할 수밖에 없는 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거워진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다양성을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다양성을 여러 가지로 풀이할 수 있겠지만 그 중 으뜸이 ‘나와 다름’일 것이다.

나와 다르다는 것을 존중해주는 것은 사실 어른인 나도 제대로 못할 때가 많이 있다.

아이들의 톡톡 튀는 개성을 인정해 주지 못하고 잔소리하며 보통의 평범한 아이로 자라기를 바란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나와 다른 성격이 용납되지 않아 마음고생을 하는 경우도 많이 일어난다. 이뿐인가. 우리 모두 예비 장애자라고 할 수 있음에도, 몸이 불편한 이들을 장애인이라고 부른다.

어찌어찌 사춘기를 지나 성인이 된 성적소수자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자. 너무 복잡해질테니. 나에게 당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막연히 불안해지는, 아이들의 고민에 집중해보기로 한다.


며칠 전 5살짜리 늦둥이 아들놈이 아침에 어린이집으로 데려다 주는 차안에서 “난 여자가 좋아, 여자가 되고 싶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쿵쾅 거렸다.

“에이~ 넌 남자로 태어났잖아. 남자가 어떻게 여자가 되니?“ 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 넘기기는 했다.


남아선호사상이 조금 수그러든 요즘에는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 여자아이들이 대세를 이룬다. 점점 와일드해지는 여자아이들과는 반대로 남자아이들은 본성적으로 타고나는 과격함이 줄어들어 여성화 되어가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요즘은 양성평등이라는 주제로 남자애들도 똑같이 여자애들처럼 바느질에 요리에, 인형놀이도 자유롭게 시킨다.


아들래미는 우리 나이로 5살, 만으로는 3세 유아반에 속한다. 이때는 서서히 성별 구분 없이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하는 나이이다. 남아들은 블록, 공룡, 자동차가 주 관심사이고, 여아들은 인형놀이, 소꿉놀이가 주 관심사이다 보니 자연스레 성별끼리 나뉘어 지게 되는 것 같다. 아들 반에는 유독 이쁜 여자애들이 많은데, 남자아이들하고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애써 위안을 삼는다. 곱상하게 생겨 ‘꽃미남’이라는 별명을 달고 다니는 아들놈의 입에서 ‘여자가 되고 싶다’는 말이 나오니, 어찌 무심히 넘길 수가 있을까?

미리부터 지나친 기우(?)를 하는 것은 아마도 나에게 보수적 성향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고3 남학생인 정현의 성적정체성을 찾아가는 다소 특이한 성장소설이다.

고1 학기 초에 내성적인 현이와 달리 활발하고 재주많은 한 아이가 눈에 들어오고, 둘은 죽이 맞아 친하게 지낸다. 이건 우정이다.

빼빼로데이에 그 친구가 정성스럽게 포장을 한 종이가방을 가져 왔고, 친구들에게 “아주 소중한 사람에게 주려고 가져왔다”고 한다. 친구들은 그동안 숨겨두었던 여자친구가 누구냐고 궁금해하고, 그 얘기를 듣던 현이는 가슴이 뻥 뚫리는 허전함에 어쩔 줄을 모른다. 이건 사랑의 시작이다.

하교길에 현이의 집까지 바래다 준 그 친구는 종이가방을 내민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현이에게’라고 적혀있는 카드와 함께. 현이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 너무 좋아 어쩔 줄을 모른다.


하얀 눈이 운동장을 가득 덮은 어느 날 스탠드에 현이와 친구는 나란히 앉아있었다. 그 애와 함께 앉아있다는 사실 때문에 새하얀 눈이 더 눈부셔 보이고, 자율학습 종이 울렸는데도 일어나자고 할까봐 조바심을 친다. 그때 차가운 현이의 손 위로 따뜻하게 포개지던 그 애의 부드러운 손, 온몸에 전율이 일고 세포들이 하나하나 살아서 춤을 추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성은 완벽하게 작동을 해서 순간적으로 “변태새끼, 저리 꺼져!”라는 말을 내뱉고 만다.

그 일을 계기로 현이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구토와 두통에 시달리다 정신과 상담을 받게 된다.

의사의 눈에서 번쩍 불꽃이 일면서, 설마하던 눈빛이 확신으로 바뀌며 망설임의 빛이 보이던 날, 경멸과 혐오스러움이 언뜻 스쳐 지나가던 날, 현이는 정신과 상담을 그만두었다.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와 이혼을 한 어머니는 뒤늦게 임신사실을 알고 고뇌 끝에 동생을 낳기로 결정을 한다. 예쁜 여동생이 태어나고 나서, 어머니는 현이에게 할 말이 없느냐고 묻는다. 현이가 어릴 때 이미 성적 지향성을 눈치 채고 있었지만, 이 사회에서 동성애자로 사는 것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스스로 말하기 전까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현이의 친구 상요가 자살을 하고 고1때처럼 다시 아파하며 몸무림치는 현이를 보며, 엄마는 아들을 잃지 않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며 현이를 끌어안는다.


일단, 현이는 엄마에게 성공적인 커밍아웃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앞날은 얼마나 힘이 들지...

자신의 성적 지향성을 깨닫게 되고, 성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나>를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