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의 신비 - 존 뮤어가 들려주는
존 뮤어 지음, 김용호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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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난 1998년 영월의 ‘동강댐’은 개발논리로 댐 건설을 밀어붙일 것인지, 자연생태계를 보전하는 쪽으로 갈 것인지의 설왕설래로 2000년 전면백지화되기까지 온 나라가 들끓었다. 세계적인 민간환경운동단체인 시에라클럽은 1999년 미셸 페로 국제담당 부회장이 내한하여 김대중 대통령에게 습지보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댐 건설 중단을 촉구하는 편지를 전달하여 ‘동강의 생태계보전지역 지정’에 일조를 하였다.

<녹색의 신비>는 바로 이 시에라클럽을 창립한 자연보전주의자 존 뮤어의 유년~청년 시절 기록이다.


존 뮤어는 1838년 스코틀랜드 던바에서 태어나 열한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 위스콘신 주로 이민을 왔다. 스코틀랜드에서 곡물 도매상을 하다 미국으로 이주하여 농부로 변신한 아버지는 기독교 사상에 깊이 심취되어 있어 매우 엄격한 청교도적 분위기에서 3남4녀의 대가족을 이끌었다. 특히 맏아들인 존에게는 더욱 엄격하여 미국에서 농장을 개간하면서, 키도 자라지 못할 정도로 일을 많이 시켰다고 술회한다.


그가 자연보호주의자로 인생의 길을 틀어버린 계기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어렸을 적부터 야생의 들판과 동물이 있었던 환경과 자연에서 뛰놀면서 자연스레 아름다움과 신비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장난꾸러기였던 유년시절에 트인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눈은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활짝 피었다. 존의 말을 빌리자면 “... 우리는 모든 자연의 수업을 좋아했다. 자연은 매질이 아니라 매력으로 그 수업에 열중하게 했다...   어린 마음, 어린 나뭇잎, 꽃, 동물, 바람, 시냇물, 호수 모두가 경쾌하고 즐겁게 뛰며 우리와 함께 기뻐했다! ...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놀랍고 신기해서 배고플 때나 아버지에게 매를 맞을 때를 제외하고는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

존은 고된 농장일을 하면서도 자연을 관찰하고, 자연에서 인간의 친구로서 동물에 대한 참 지식을 얻고, 동물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으며 틈틈이 스케치를 하였다.


황새목에 속하는 아비는 겨울새로서 몸길이가 평균 63cm 되는 큰 새에 속한다. 어느 날 아비를 잡게 된 존은 자랑스레 집으로 가져가 부엌난로 앞에 내려놓았다. 아비는 마치 박제된 새처럼 미동도 않고 앉아 있었는데, 집에서 기르던 늙고 노련한 고양이는 자신의 영역을 침입한 손님을 그냥 놔둘 리 없었다. 이리저리 침입자를 탐색하는 고양이에게 미동도 않고 있던 아비는 커다란 부리로 순식간에 기회를 포착하여 두 눈 사이 이마를 정통으로 쪼았다. 이제껏 당당한 제왕이었던 고양이는 추운 겨울, 부엌에서 도망가고자 안간힘을 쓰다가 구석으로 들어가 무서운 침입자를 노려보며 상처를 쓰다듬고 핥았다.

‘이 물고기처럼 생긴 불한당 자식! 내가 뭘 어쨌다고 나한테 이러는 거야? 다리도 없고 코만 긴 비정한 놈 같으니라고!’ 이런 강렬한 경험을 보면서 존은 모든 동물에게 존재하는 인간적 속성을 알 게 되었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나그네 비둘기들은 남쪽으로 어마어마한 무리를 지어 먹이를 구하러 내려오곤 한다. 이때를 기다려, 농부들은 돼지떼를 배 불리는 절호의 기회로 이용했다. 해질 무렵 새들이 내려앉아 쉬는 숲에서 숨어서 기다리다 비둘기들이 내려앉으면 막대기를 휘두르고, 총을 쏘아 비둘기를 잡는 것이다.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비둘기들은 계속해서 날아오고 밤새도록 비둘기 사냥잔치가 벌어진다. 새벽녘이 되어서야 새들은 다른 방향으로 이동을 하여 아침이 되면, 날 수 있는 모든 것은 하늘에서 사라져버린다.

인간들의 비둘기 대사냥이 끝나면 늑대니 여우, 독수리 등이 전리품을 약탈하여 뒤풀이를 벌인다. 방법은 더욱 악랄해져서 사냥꾼들은 수천 에이커에 이르는 나무들을 모두 베어내고 그물을 이용하여 잡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드넓은 숲도 황폐해지고 번식지를 잃어버린 새들도 줄어들었다.


존 뮤어는 미국으로 11살 때 온 이후로 학교는 다니지 않고 농장 개간하는 일을 도와야만 했다. 큰 불평 없이 농장일과 자연관찰에 빠져 지내던 존은 15세쯤 되었을 때 공부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커졌다. 아버지는 농장 일을 계속 한다는 조건으로 독학을 허락했다. 존은 독학으로 대수학, 기하학, 삼각술, 문법 등을 공부하였다. 아버지는 완고하여 저녁에 식구들이 잠자리에 들면 무조건 존도 같이 따라야 한다고 하였다. 책을 읽고 싶으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하라는 완고한 아버지 덕에 존은 더욱 공부하고 싶은 의욕이 불타올랐다. 어느 날 아침, 기상나팔 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벌떡 일어나 촛불을 켜보니 새벽 한시였다.

“다섯 시간은 내 것이다! 다섯 시간이라는 많은 시간이 다 내 것이다!”

그는 자기의 인생에서 이 추운 겨울날 다섯 시간을 가졌을 때만큼 황홀하고 기뻤던 적이 없었다고 술회한다.

그는 새벽을 이용하여 작은 송곳, 펀치, 컴퍼스 등을 직접 만들고 그것을 사용하여 자동조절 제재 톱, 기압계, 나무 시계 등 많은 발명품을 고안하였다. 그는 의사 또는 발명가가 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으로부터 메디슨 시에서 ‘주박람회’가 열리니 참가해보라는 말을 듣고 존은 독립의 결단을 내린다.

아버지는 독립하는 데는 이의가 없었으나, 돈은 보내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동안 모았던 용돈 15달러를 가지고 그는 세상 속으로 나왔다.

발명품을 박람회에서 전시를 계기로 알게 된 사람의 조언으로 위스콘신대학의 문을 두드린다. 대학에 다니는 내내 주경야독하고 여름방학에는 밀밭에서 노동을 하는 힘든 환경이었지만, 그는 열정을 잃지 않았다. 대학에서 그는 정규과정을 듣지 않고 자신이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과목들을 골라 들었다. 수학, 화학, 물리학, 그리이스어, 라틴어, 식물학과 지질학의 강의를 들었는데, 이때 알게 된 식물학과 지질학은 그의 평생의 학문이 되었다.


평생을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자연을 위해 살았던 존 뮤어가 친근하면서도 자상하게 들려주는 유년시절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나 자신이 마치 그 속에서 그 장면을 보고 느끼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자신의 꿈을 좇아 인생을 살았던 그의 모습은 우리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어 줄 것이다.

“나는 지금 어릴 적 내 꿈을 좇아 살고 있는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는가?”

진지하게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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