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일의 엘불리 - 미슐랭★★★, 전 세계 셰프들의 꿈의 레스토랑
리사 아벤드 지음, 서지희 옮김 / 시공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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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가 보는 백조의 우아한 모습과 달리 백조들은 수면 아래서 쉴 새 없이 발을 움직인다. 이곳 엘불리의 주방에서 일하는 요리사들의 모습을 보며 백조의 발을 떠올린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테이블에 놓인 아름다운 요리를 느긋하게 즐기는 손님과 보이지 않는 주방에서 땀흘리며 음식을 만들어내는 요리사. 이 조화가 이루어낸 결과물은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한다. 그래서 늘 궁금했다. 주방을 치열한 전투의 현장에 비교하는 사람들의 말처럼, 그리고 실제로 tv등을 통해 보아온 주방의 모습처럼 실제로도 우리가 모르는 주방이란 곳이 살벌한 기운이 감도는 전쟁터와 같은지 확인하고 싶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주방, 그것도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인 엘불리의 주방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오로지 천재 셰프 페란 아드리아와 함께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대가없이 6개월이란 시간과 노력을 기꺼이 지불한 35명의 요리사들은 꿈에 대한 열정과 배움의 열망으로 가득했다. 그들이 모인 엘불리 주방의 열기가 활자를 통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 했다. 놀라운 것은 35명 안에 들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감수하면서까지 이곳에 온 이들이 초보 지망생들이 아니라 이미 알아주는 레스토랑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요리사라는 사실이었다. 이렇듯 실력있는 요리사들을 세계 각지에서 모여들게 만든 엘불리만의 매력은 무엇일까?

 

한번도 얻기 어려운 세계 최고 레스토랑 타이틀을 무려 다섯번이나 거머쥔 엘불리는 전 세계 셰프들의 꿈의 레스토랑이다. 그러나 많은 요리사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가 단지 엘불리의 타이틀 때문만은 아니다. 엘불리의 수장 페란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바로 그 자체 만으로 이곳 엘불리가 그들에게 꿈의 레스토랑인 이유다. 엘불리는 결코 평범한 레스토랑이 아니다. 언제나 새로움을 중시하는 페란의 요리철학답게 창조적인 음식이 넘쳐나고  오랜 세월에 걸쳐 엘불리에 가장 맞게 고안된 주방의 질서와 관리체계가 탄탄하게 잡혀있다. 폐란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마저도 그를 마술사 혹은 마법사로 부를 정도로 그의 요리는 늘 놀라움을 선사한다. 이런 페란의 곁에서 그의 요리를 보고 배울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커다란 혜택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많은 요리사들이 페란이 벌이는 180일간의 마법을 경험하기 위해 이곳 엘불리로 모여드는 것이리라. 마침내 수많은 지원자들 가운데 뽑힌 35인의 선택받은 이들에게 주어진 것은 하루 한끼의 식사와 좁은 숙소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평은 커녕 엘불리에서의 생활을 기꺼이 즐기던 이들이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회의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도 그럴것이 엘불리에서의 경험이 요리사로서의 경력에 도움이 될 지는 모르나 미래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 모든 이들이 바라 마지않는 곳이지만 페란의 요리철학과 자신의 생각이 맞지 않음을 깨달은 이들은 어렵게 얻은 기회를 포기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 6개월간의 실습과정을 끝마치기 전에 엘불리를 떠나기도 한다. 

 

이렇듯 생생한 엘불리 주방과 요리를 향한 열정으로 뭉친 실습생들의 모습을 보며 내 안의 꿈틀대는 열정을 느꼈다.

단 한번의 식사를 위해 1년이란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런 고객을 위해 한치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으며 최고의 요리를 선보이는 엘불리. 창조와 변화를 모토로 끊임없이 노력해가는 이들의 주방이 더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내게도 언젠가 한번쯤은 엘불리의 식탁에 앉아 페란의 음식을 맛보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어본다.

 

 

'음식은 상상하는 대로 된다. 엘불리에서 그 무언가란 바로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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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된 소년 비룡소 걸작선 19
팜 무뇨스 라이언 지음, 피터 시스 그림, 송은주 옮김 / 비룡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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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유롭게 꿈꾸기를 간절히 바랐던 어린 소년. 그 소년이 가슴 속 별을 찾아내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이 책은 20세기 가장 유명한 시인 중 한명인 파블로 네루다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한다.

 

네프탈리는 누구보다 공상하기를 좋아하는 소년이다. 비록 허약한 몸 때문에 방안 창문으로 바깥 세상을 구경해야하는 날이 더 많았지만 무엇도 네프탈리의 상상을 멈출 수는 없었다. 사실 네프탈리의 공상과 꿈을 방해하는 것은 허약한 몸이 아닌 바로 소년의 아버지였다. 자식의 편에서 아이들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응원하기보다는 자신의 뜻을 강요하기만하는 아버지의 강압적인 태도로 인해 네프탈리는 마음껏 꿈꿀 수 있는 자유를 갈망한다. 이는 네프탈리의 형 루돌프 역시 마찬가지였다. 루돌프의 노래에 대한 꿈과 재능은 번번히 아버지에 의해 짓밟히고 이런 권위적인 아버지의 모습에 아이들은 점점 두려움을 느낀다.

 

네프탈리의 아버지에게 꿈은 현실을 방해하는 쓸모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노래를 잘 부르거나 글을 잘 쓰는 건 칭찬 받아야 할 일이 아니라 부끄러운 일이라 여기는 그는 늘 자신의 생각만을 고집하며 현실적인 잣대로만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 이런 네프탈리의 아버지를 편협한 시각을 가진 어른이라 비난하기에 앞서 지금의 어른들은 어떤 모습인가 생각해봤다. 과연 아이의 말에 진정으로 귀를 기울이는 어른들이 얼마나 될까? 네프탈리의 순수함에 감동받기보다는 어리석음으로 치부하는 그의 아버지처럼 많은 어른들이 영악하고 약삭빠르지 못한 아이들을 질타한다. 현실을 살아가는데 순수함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아이들의 놀림과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자신의 꿈을 키워 나간다. 사람들 앞에서는 늘 주눅들어 더듬더듬 말하지만 글로는 누구보다 또박또박 자신의 의견을 펼칠 수 있는 네프탈리는 올란드 삼촌이 운영하는 신문사일을 도우며 점차 성장한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잘못된 행동도 서슴치않는 어른들과 달리 약자의 편에서 옳다고 생각되는 일을 행하는 정의로움을 배우고, 완력 앞에서도 결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굳은 심지를 다진다. 네프탈리는 끝내 아들의 꿈을 지지할 수 없는 아버지를 위해 파블로 네루다라는 가명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파블로 네루다의 시는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별이 되었다.

 

그는 어떤 환경에서도 글을 썼다.

코딱지만 한 방에서 살 때도, 먹을 것을 살 돈이 거의 다 떨어지고 너무 추워서 아버지의 망토와 마마드레의 담요에 대고

절이라도 하고 싶었을 때도, 친구 하나 없이 자기 안에 깊이 빠져들 때도, 실연을 당했거나 다른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때도,

대학에서의 정치나 자기 나라의 정치에 동의하지 않을 때도 글을 썼다.

그는 썼다. 이름은 바꾸었지만 그의 역사는 그와 함께, 그의 글쓰기로까지 갔다.

P.344~345

 

아이들의 꿈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밤 하늘을 빛내는 별이 아이들에게로 날아오는 순간 아이들은 저마다의 꿈을 가슴에 품는다.

아이들에게 있어 꿈은 돈을 많이 벌거나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게 아니다. 그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뿐이다. 어떤 아이는 노래를 할 때 가장 행복하고, 또 어떤 아이는 상상 속에 빠져 글을 쓰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느낀다. 아이들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돈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그렇기 때문에 부자가 되는 것만이 가치있는 꿈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이 단순한 진리를 어른들은 알지 못한다. 아니, 모른척 한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어른들에게 있어 꿈은 별이 아니라 현실이다. 사회적으로 명망있는 직업을 갖기를 소망하는 부모,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여기는 부모를 무조건 틀리다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이의 꿈을 존중하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힘껏 응원해줄 수는 없을까.

 

오로지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주기를 바라는 어른들의 틈에서 아이들이 잃어가고 있는 것은 어쩌면 꿈만이 아닐 것이다.

할 수있다는 자신감과 꿈을 위해 흘리는 땀방울의 가치, 세상과 부딪히는 용기... 인생에 있어 무엇보다 소중한 이 모든 것들이 어른들의 욕심으로 멀어져가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금 생각해보며 강압과 통제가 아닌 이해와 격려로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저마다의 별을 찾아가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어떻게 정부가 자기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글로 썼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체포할 수 있을까?

모든 작가들은 정부의 믿음만을 전달해야 한단 말인가? 작가가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면 반역자로 간주될 수도 있단 말인가?

두 가지 관점이 한 개의 관점보다 더 낫지 않은가?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들이 스스로 마음을 정할 수 있게 해 주는 편이 더 낫지 않은가?

네프탈리는 대답할, 옹호할, 싸워야 할 긴급한 필요성을 가슴 가득 느끼며 일어서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

P.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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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상점 - 100년 혹은 오랜 역사를 지닌 상점들의 私的 이야기
김예림 지음 / 생각을담는집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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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권으로 파리의 골목을 여행할 수 있다?! 이 책 파리상점은 바로 그런 불가능을 가능케 했다. 사실 파리 여행이라고 하면 에펠탑과 개선문, 노트르담 성당 혹은 베르사유 궁전이나 루브르 박물관과 같이 많이 알려진 곳들을 찾게 마련이다.

이렇다보니 파리의 풍경을 담은 여행 서적들 역시 명소나 음식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러나 이 책은 달랐다.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파리를 방문한 이들이 한번쯤 들러볼 만한 곳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런 차이점이 이 책을 흔하디 흔한 여행서적들 사이에서 돋보이게 했다. 한마디로 희소가치가 있는 여행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리상점이란 제목 그대로 이 책은 파리 곳곳에 자리한 오래된 상점들을 소개하고 있다. 비록 일반인에게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오랜 역사와 전통을 그대로 지닌 곳이라 진정한 파리를 느낄 수 있는 곳들이 대부분이었다. 친절한 설명과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내는 사진이 함께 실려 책을 읽을 수록 더욱 가보고 싶어졌는데 그 중에서도 1854년에 만들어진 세계적인 홍차브랜드 마리아쥬프레르에 관한 글이 인상적이었다. 150년의 역사를 지닌 이 브랜드는 파리에 총 세 개의 지점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저자가 찾은 매장은 가장 먼저 세워진 마레 지점과 꾸와레 지점이었다. 사무국장 무슈코엔과의 만남을 위해 찾은 꾸와레 지점에서 저자가 선택한 차는 로즈 디말라야라고 하는 장미향의 차였다. 이 차가 재배되는 근처 어느 곳에도 장미나무가 없는데 이런 장미향이 나는 차가 생산되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한 저자가 몇차례 직접 재배지를 찾아 확인해보았지만 결국 이유를 알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히말라야의 장미라는 뜻을 지닌 호즈 디말라야라는 이름이 붙었다니 직접 마셔볼 수는 없었지만 어쩐지 장미향이 가득 퍼지는 차의 맛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이밖에도 파리의 와인을 맛볼 수 있는 오제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초콜릿가게 라봉보니에르를 비롯해 파리의 미식가들이 즐겨찾는다는 식료품가게까지 하나같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상점들이 파리의 멋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또 하나, 프랑스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치즈일 것이다. 그런 프랑스 치즈의 살아있는 전설로 일컬어진다는 앙드루에는 다양한 치즈의 종류만으로도 나를 놀라게 했다. 그도 그럴것이 치즈라고 하면 노란치즈와 피자치즈 밖에 모르는 무지한 내게 무려 200가지가 넘는 치즈들을 매일 구비해놓는다는 앙두르에는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 골목 초입에 자리한 이 가게는 100년 이상 파리지앙에게 치즈를 공급해왔다고 하는데 앙두르에가 입점한 건물을 파리시에서 유물로 지정했다니 그 역사를 짐작케 했다. 오래 숙성할 수록 깊고 진한 맛을 내는 치즈처럼 앙두르에 역시 오랜 시간동안 지켜온 가게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라 보였다.  


파리의 오래된 상점들을 둘러 볼 수록 우리나라는 이런 전통과 역사를 간직한 오래된 가게가 많이 사라지고 없는 듯 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가게가 백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며 그곳을 찾는 이들을 변함없이 맞아준다니..얼마나 뜻깊은 일인가 싶어 부러운 한편, 우리나라의 전통있는 상점들도 궁금해졌다.

이 책을 통해 전통을 중시하는 프랑스 국민들의 사고방식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는데 언젠가 파리를 찾는다면 알려진 곳들도 좋지만 골목에 위치한 파리의 상점들도 지나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숨어있는 보물창고 같은 파리의 상점들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오랜시간 지켜온 그들의 문화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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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백화점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20
알렉스 쉬어러 지음, 김호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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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에서 지내는 일상은 어떨까? 그냥 잠시 잠깐 머무는게 아니라 먹고 자고 씻는 모든 일을 백화점에서 해결하는 생활 말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없는게 없는 백화점에서 산다면 그야말로 풍요롭고 재미날 것 같겠지만 그건 리비의 어린 동생 앤젤린에게나 해당되는 철없는 생각이다. 백화점이 문을 닫은 후 아무도 없는 깜깜한 백화점에 숨어산다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인내와 모험심을 요하는 스릴만점의 생활이었다. 

 

리비는 여동생 앤절린과 엄마 이렇게 셋이서 일정한 거주지 없이 떠돌며 살고 있다. 아빠는 유전으로 돈을 벌러 가셨다고 하고 엄마는 자신에게 집시의 영혼이 깃들어 방랑벽이 있다는 둥 철없는 이야기를 하기 일쑤다. 엄마가 발바닥이 근질거린다고 말한 날은 어김없이 세 모녀가 이사를 가는 날이다. 그날도 리비의 엄마는 커다란 여행가방을 꾸린 채 두 딸을 데리고 어디론가 향한다. 그들이 도착학 곳은 다름아닌 백화점. 리비의 엄마는 폐점시간이 15분 밖에 남지 않았는데  침대를 사야한다며 리비와 앤젤린을 데리고 침대 매장으로 들어간다. 똑똑한 리비는 엄마의 행동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불안하기만 하다. 역시나 리비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리비의 엄마는 애초부터 침대를 살 목적이 아니라 백화점에서 살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었다. 그날부터 세 모녀의 황당한 백화점 생활기가 시작된다.

 

도대체 어떻게 백화점에서 몰래 지낼 수 있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겠지만 이들의 삶을 엿보니 가능할 법도 해보인다. '지어낸 이야기니까 가능한거야' 라고 말한다면 현실에서는 더 소설같은 일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길 바란다. 게다가 작가는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마치 백화점에서 살아본 사람마냥 상세하게 묘사한다. 비록 백화점에 몰래 숨어사는 신세지만 여기에도 나름의 원칙이 있고 규칙이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절대 백화점의 물건을 탐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불가피하게 잠깐 빌려야할 경우에는 샘플용으로 나와있는 제품을 사용한 후 다시 원래 자리에 돌려놓는다. 음식 역시 유통기한이 지나 폐기처분할 음식만 찾아 먹는다.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이 없을 때는 판매하는 음식을 먹되 음식 값 대신 청소로 대가를 지불한다. 이런 원칙을 세우고 지키는 걸 보니 리비의 엄마가 생각만큼 개념이 없지는 않은 모양이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이 문닫힌 백화점에 도대체 어떻게 들어갈 수 있냐고 묻는다면 이 역시 생각보다 간단하다. 발상의 전환이라고 해야하나,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나오지 않는 것이다. 폐점시간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백화점에 들어가 직원들이 모두 퇴근할 때까지 화장실에 숨어있으면 끝이다. 아침에는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다시 화장실에 들어가 있다 개점을 알리는 방송을 듣고 나오면 그 뿐이다. 물론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언제 어디서나 미처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이 생기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알람 맞추기를 깜빡하고 잠이 들어 매장 직원들이 출근할 때까지 텐트 안에서 잠이 든 적도 있고, 한밤중에 들이닥친 청소용역업체 직원들과 경비아저씨에게 들킬 뻔한 아찔한 순간을 겪기도 한다. 무엇보다 리비 가족을 불안에 떨게 하는 건 바로 백화점 도어맨 콧수염 아저씨다. 그도 그럴것이 매일같이 아침 저녁으로 백화점을 드나드는 수상한 세 모녀를 의심하지 않는게 더 이상하다. 그것도 폐점이 가까운 시간에 들어왔던 이들이 다음날 개점 시간에 나가는 모습을 본다면 누구라도 눈치를 챌 수 밖에 없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위험천만한 순간에도 리비 엄마의 특유의 뻔뻔함을 넘어선 당당함은 빛을 발한다. 놀라운 순발력으로 위기를 모면하던 이들에게 또한번 예기치 못한 위험이 닥친다. 백화점에 도둑이 든 것이다.신고를 하자니 그동안 백화점에서 지낸 일들이 걸려 이러지도 러지도 못하는 곤란한 상황.과연 리비 가족은 어떤 결단을 내릴까?

 

책을 읽는 내내 리비 엄마의 무책임함과 대책없음에 화가 났던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엄마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리비가 걱정을 떠안고 있었고 정작 엄마는 리비의 걱정에도 아랑곳 않고 나중에 생각해보자는 말로 문제를 회피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리비 엄마의 심정도 이해가 갔다. 제자식도 버리는 일이 빈번한 요즘, 팍팍한 현실에 굴하지 않고 두 딸과 떨어지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자 그녀의 선택을 마냥 비난할 수는 없었다. 잘못된 판단이었음은 분명하지만 위험한 동네에서 딸을 키우고 싶지 않아 새 보금자리를 얻기 전까지 차라리 백화점에 숨어 살기를 선택한 것이 살아가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한 리비와 앤젤린에게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백화점에서 사는 동안 마치 시골쥐와 서울쥐에 나오는 서울쥐처럼 깜짝깜짝 놀라긴 했어도 누구도 해보지 못한 최고의 경험을 했음은 분명하니 말이다.

책을 덮고난 후 어쩌면 지금도 백화점 어딘가에서 직원들이 퇴근하기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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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모험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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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나 사람이나 첫인상이 중요하기는 마찬가지다.

내용만 좋으면 됐지 표지가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다. 표지가 별로 인상적이지 않으면 선뜻 읽을 마음이 들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단순히 표지만 보고 책을 고르지는 않지만 일단 표지가 예쁘면 눈길이 가고 한번이라도 집어들어 내용을 살펴보게 된다. 물론 내키지 않는 마음을 뒤로하고 읽고나서는 고르길 잘 했다 싶은 경우도 많긴 하지만 일단 표지가 마음에 들면 독서욕구가 몇배는 더 강해지는 듯 하다. 이 책이 그러했다. 책을 받아든 순간 아기자기한 표지와 삽화가 실린 속지가 딱 내 취향이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해졌다. 설레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는 순간 나를 반긴 목차는 책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높였다. 짖지않는 개라는 제목은 궁금증을 자아냈고 푸른 빛살, 버찌 맛 등의 제목은 달달하면서도 로맨틱한 분위기를 풍겨 표지만큼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있지 않을까 두근거렸다. 게다가 제목에 한국이 들어간 에세이도 눈에 띄어 요시다 슈이치가 한국을 배경으로 풀어낼 이야기는 무엇일지 어서빨리 읽고 싶었다.

 

이렇듯 부푼 가슴을 안고 책을 펼쳐들었건만... 책장을 넘길수록 기대감은 의아함으로 변했다. 12편의 단편과 11편의 에세이로 이루어진 이 책에 담긴 글들이 의미하는 바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첫번째 이야기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는 공감을 느끼며 기분좋게 읽었지만 두번 째 이야기부터는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아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다. 물론 억지로 의미를 파악하고 이해하려 들면 작가가 왜 여기서 이야기를 끝마쳤는지 짐작은 가능했지만 그래도 뭔가 얘기를 하다 만 것 같아 영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나중에는 그러려니 하고 다음이야기로 넘어갔으나 처음에는 인쇄가 잘못되어 뒷장이 짤린 건 아닌가 싶어 책장을 뒤적거리고 페이지수를 다시 확인하기도 했다. 그렇게 연신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단편을 모두 읽고 나서 에세이로 접어들어서야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느낄 수 있었다.

 

기내 잡지에 연재된 글을 모은 책이라 이야기의 대부분이 여행과 관련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연인과 이별한 후 홀로 여행을 떠난 여인의 짤막한 이야기나 작가가 직접 경험한 여행지에서의 일화등이 실려있는데 단편에 비해서 에세이는 비교적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단편이라 하기에도 너무나 짧은 너댓페이지 가량의 글들이라 소설이라기 보다는 작가가 이야기를 구상하기 위해 끄적거린 일기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동안 장편소설에 너무 길들여진 탓일까. 어중간하게 여기서 끝내지 말고 마무리를 조금 더  지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내내 들었단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야기 속에서 소소한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바로 단편과 에세이에서 모두 심심치않게 한국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만난 배려가 몸에 밴 한국 청년들에 관한 일화나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경험한 자원봉사자들의 열기를 비롯해 즐거웠던 한국의 뒷풀이 문화 등 간간히 등장하는 이야기들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 요시다 슈이치가 가진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알 수 있게 해 괜스레 마음이 뿌듯해졌다.

  

책 소개에서 작가의 민낯과 화장한 얼굴을 두루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라는 글을 읽었는데 이 부분에는 그다지 동의할 수가 없었다. 확실히 꾸미지 않은 민낯처럼 담백한 글이 대부분이었고 마치 맛이 없는 음식을 먹은 기분이었다. 여기서 맛이 없다는 건 뱉어내고 싶은 맛이란 뜻이 아니라 니맛도 내맛도 아닌 말그대로 아무 맛도 없는 음식을 말한다. 밍숭맹숭해서 대체 무슨 맛인지 모르겠는 간이 덜 된 심심한 음식처럼 수록된 12편의 단편들 중 몇편을 제외하고는 기억에 남질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첫인상에 대한 기대감을 채워주지 못한 표지는 선명했으나 내용은 어렴풋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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