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백화점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20
알렉스 쉬어러 지음, 김호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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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에서 지내는 일상은 어떨까? 그냥 잠시 잠깐 머무는게 아니라 먹고 자고 씻는 모든 일을 백화점에서 해결하는 생활 말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없는게 없는 백화점에서 산다면 그야말로 풍요롭고 재미날 것 같겠지만 그건 리비의 어린 동생 앤젤린에게나 해당되는 철없는 생각이다. 백화점이 문을 닫은 후 아무도 없는 깜깜한 백화점에 숨어산다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인내와 모험심을 요하는 스릴만점의 생활이었다. 

 

리비는 여동생 앤절린과 엄마 이렇게 셋이서 일정한 거주지 없이 떠돌며 살고 있다. 아빠는 유전으로 돈을 벌러 가셨다고 하고 엄마는 자신에게 집시의 영혼이 깃들어 방랑벽이 있다는 둥 철없는 이야기를 하기 일쑤다. 엄마가 발바닥이 근질거린다고 말한 날은 어김없이 세 모녀가 이사를 가는 날이다. 그날도 리비의 엄마는 커다란 여행가방을 꾸린 채 두 딸을 데리고 어디론가 향한다. 그들이 도착학 곳은 다름아닌 백화점. 리비의 엄마는 폐점시간이 15분 밖에 남지 않았는데  침대를 사야한다며 리비와 앤젤린을 데리고 침대 매장으로 들어간다. 똑똑한 리비는 엄마의 행동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불안하기만 하다. 역시나 리비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리비의 엄마는 애초부터 침대를 살 목적이 아니라 백화점에서 살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었다. 그날부터 세 모녀의 황당한 백화점 생활기가 시작된다.

 

도대체 어떻게 백화점에서 몰래 지낼 수 있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겠지만 이들의 삶을 엿보니 가능할 법도 해보인다. '지어낸 이야기니까 가능한거야' 라고 말한다면 현실에서는 더 소설같은 일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길 바란다. 게다가 작가는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마치 백화점에서 살아본 사람마냥 상세하게 묘사한다. 비록 백화점에 몰래 숨어사는 신세지만 여기에도 나름의 원칙이 있고 규칙이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절대 백화점의 물건을 탐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불가피하게 잠깐 빌려야할 경우에는 샘플용으로 나와있는 제품을 사용한 후 다시 원래 자리에 돌려놓는다. 음식 역시 유통기한이 지나 폐기처분할 음식만 찾아 먹는다.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이 없을 때는 판매하는 음식을 먹되 음식 값 대신 청소로 대가를 지불한다. 이런 원칙을 세우고 지키는 걸 보니 리비의 엄마가 생각만큼 개념이 없지는 않은 모양이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이 문닫힌 백화점에 도대체 어떻게 들어갈 수 있냐고 묻는다면 이 역시 생각보다 간단하다. 발상의 전환이라고 해야하나, 들어가는 게 아니라 나오지 않는 것이다. 폐점시간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백화점에 들어가 직원들이 모두 퇴근할 때까지 화장실에 숨어있으면 끝이다. 아침에는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다시 화장실에 들어가 있다 개점을 알리는 방송을 듣고 나오면 그 뿐이다. 물론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언제 어디서나 미처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이 생기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알람 맞추기를 깜빡하고 잠이 들어 매장 직원들이 출근할 때까지 텐트 안에서 잠이 든 적도 있고, 한밤중에 들이닥친 청소용역업체 직원들과 경비아저씨에게 들킬 뻔한 아찔한 순간을 겪기도 한다. 무엇보다 리비 가족을 불안에 떨게 하는 건 바로 백화점 도어맨 콧수염 아저씨다. 그도 그럴것이 매일같이 아침 저녁으로 백화점을 드나드는 수상한 세 모녀를 의심하지 않는게 더 이상하다. 그것도 폐점이 가까운 시간에 들어왔던 이들이 다음날 개점 시간에 나가는 모습을 본다면 누구라도 눈치를 챌 수 밖에 없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위험천만한 순간에도 리비 엄마의 특유의 뻔뻔함을 넘어선 당당함은 빛을 발한다. 놀라운 순발력으로 위기를 모면하던 이들에게 또한번 예기치 못한 위험이 닥친다. 백화점에 도둑이 든 것이다.신고를 하자니 그동안 백화점에서 지낸 일들이 걸려 이러지도 러지도 못하는 곤란한 상황.과연 리비 가족은 어떤 결단을 내릴까?

 

책을 읽는 내내 리비 엄마의 무책임함과 대책없음에 화가 났던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엄마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리비가 걱정을 떠안고 있었고 정작 엄마는 리비의 걱정에도 아랑곳 않고 나중에 생각해보자는 말로 문제를 회피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리비 엄마의 심정도 이해가 갔다. 제자식도 버리는 일이 빈번한 요즘, 팍팍한 현실에 굴하지 않고 두 딸과 떨어지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자 그녀의 선택을 마냥 비난할 수는 없었다. 잘못된 판단이었음은 분명하지만 위험한 동네에서 딸을 키우고 싶지 않아 새 보금자리를 얻기 전까지 차라리 백화점에 숨어 살기를 선택한 것이 살아가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한 리비와 앤젤린에게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백화점에서 사는 동안 마치 시골쥐와 서울쥐에 나오는 서울쥐처럼 깜짝깜짝 놀라긴 했어도 누구도 해보지 못한 최고의 경험을 했음은 분명하니 말이다.

책을 덮고난 후 어쩌면 지금도 백화점 어딘가에서 직원들이 퇴근하기를 기다리는 이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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