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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 2 ㅣ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 2
초(정솔) 글.그림 / 북폴리오 / 2012년 6월
평점 :
두 눈에 은하수를 머금은 어린 고양이 순대와 이제는 회색이 되어qk린 늙은 개 낭낙이. 내게도 어린 고양이가 있어서 그런지 이 사랑스런 털뭉치들이주는 기쁨과 위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평소에는 잘 들어가지 않는 네이버 웹툰을 매주 화요일 일요일 자정마다 찾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일주일 중 순대와 낭낙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이 이틀이 기다려지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낭낙이와 순대는 또다른 반려견 반려묘와도 같은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재미와 흥미 위주의 웹툰들 사이에서 유독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 개가 빛나는 이유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따스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몇 컷의 그림과 몇 줄의 글로 이렇게나 사람을 웃고 울릴 수 있다니, 이 웹툰을 만난지 벌써 1년이 훌쩍 넘었는데 아직도 매번 감탄하곤 한다.
작가의 일상을 담담히 그려놓은 것 뿐인데 그 안에서 살아숨쉬는 두 귀요미들 덕분에 작가의 일상은 매일같이 특별해 보인다. 평범한 날들에 기운을 불어넣고 우울한 날에도 주변의 공기를 바꿔놓는 반려동물들이 네모난 화면 안에서까지 우리를 위로해주는 것 같아 마냥 고맙기만 하다.
작가는 오랜시간 함께 해온 반려견 낭낙이가 많이 앓던 날 낭낙이를 오래오래 기억할 방법을 생각했다. 낭낙이가 떠난 뒤 다른 개를 키우게 될 지도 모르고 언젠가는 자식을 낳게 되거나 할머니가 되겠지만 많은 시간이 흘러도 언제까지나 잊지 않고 낭낙이를 떠올리며 울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신이 가진 가장 큰 재주로 낭낙이와의 안녕을 준비하기로 한 것이다. 말하자면 이 웹툰은 늙은개 낭낙이와의 추억을 담은 안녕의 인사인 셈이다. 다행스럽게도 낭낙이는 아직 건강하고 작가는 낭낙이를 향한 이 인사가 언제까지나 계속되기를 바란다..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고 회색이 되어버린 낭낙이. 작가는 언젠가부터 외출했다 돌아왔을 때 낭낙이가 조용히 자고 있으면 혹시나 하는 두려움을 느낀다. 열다섯 살이 넘은 낭낙이가 혹여 아무도 없는 사이 무지개 다리를 건넌게 아닌가 싶어 자고 있는 낭낙이에게 가만히 손을 올려 확인하곤 한다. 오르락내리락하는 낭낙이의 작은 숨소리를 느끼고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작가를 보며 옆에서 자고 있는 아직은 어린 내 고양이를 조심스레 쓰다듬으며 따뜻한 온기를 느꼈다. 아직은 멀게 느껴지는 이별이지만 나 역시 문득 내곁에 있는 고양이와의 이별을 떠올릴때면 가슴이 먹먹해온다. 만약에 그 순간이 생각보다 빨리 오면 어떻게 해야할지 상상만으로도 눈 앞이 아득해진다. 가끔 반려동물카페에 올라는 반려견 반려묘와의 이별이야기를 읽다보면 글쓴이의 슬픔이 내게도 전해져 눈물을 흘리게 된다. 나이가 들어 정해진 이별을 맞이한 경우는 그래도 덜하지만 예고도 없이 찾아온 이별 앞에서 무너지는 가족들의 마음이 어떨지 짐작만으로도 두렵고 아프다. 이 책에는 이렇듯 반려동물을 잃은 사람들이 깊은 슬픔과 상실감에 빠지는 펫로스 증후군이나나 동물을 키울 여건이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터무니 없이 많은 동물들을 입양해 방치하고 죽게 만드는 애니멀 호더 등과 같은 동물학대, 그리고 유기동물의 안락사 등 동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세상에는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그들은 동물과 인간의 공존을 이해하지 못한다. 유기동물을 함께 살아가야할 또다른 생명이 아니라 쓰레기봉투나 뒤지는 귀찮고 지저분한 존재로만 여기는 것이다. 왜 유기동물이 생긴 것인지.. 어째서 쓰레기 봉투를 뒤질 수 밖에 없었는지는 궁금하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은 관심밖의 일일 뿐이다. 그저 내가 사는 동네에서 내 눈앞에서 치워버리면 그뿐이다. 그들에게 유기동물이란 그런 존재다. 쥐약을 탄 음식으로 죽이고 덫을 놓아 잡아도 되는 그런 하찮은 존재...나는 늘 그것이 슬프다. 유기동물들에게 밥을 주는 일조차 이웃의 눈치를 봐야하는 현실이 안타깝고 이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작은 생명들이 너무도 안쓰럽다.
유기동물이 생긴 건 사람들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동물들은 이 도시 속에서 살아갈 길을 찾는 것뿐이다. 최종적으로는 정부 차원의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확실한 정책이 마련되기 전까지 우린 그들과 같이 살아야 한다.
어차피 한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상, 그 동물들에게 핍박과 학대만을 줄 게 아니라 따뜻한 시선과 이해심을 주는 게 낫지 않을까?
과연 길고양이 때문에 받고 있다는 그 피해가 유기견 유기묘들을 죽이면서까지 막아야 할 정도인지. 아니면 참아줄 수 있을 정도의 피해인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 무엇도 생명보다 우선이 될 수는 없다. - P.141
네이버 웹툰에 연재중인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의 두번 째 단행본에는 1권까지 연재되었던 에피소드 이후의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이미 웹툰으로 본 이야기들이지만 책으로 보는 느낌은 또 달랐다. 책은 역시 종이책으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터라 낭낙이와 순대가 페이지마다 가득한 단행본과의 만남은 설렘 그 자체였다. 역시나 공감백배인 깨알같은 재미와 눈물을 쏙 빼는 감동 스토리를 읽고 있자니 내 고양이와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추운 겨울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장갑으로도 지키지 못했던 차가운 손을 따뜻한 고양이 배를 만지며 녹이곤 했는데 나만 그런게 아닌 모양이다. 갑작스런 얼음 손의 공격에 자다가 화들짝놀라 쓰리콤보 연속 폭풍 따귀를 날린 내 고양이 못지 않게 순대도 차가운 손이 싫었는지 불쾌함이 역력한 표정으로 엄마 손을 마구 때리는 모습에 큭큭 웃음이 났다. 나는 고양이 한마리 뿐이라 거부당하면 하는 수 없이 포기하지만 작가에게는 아직 낭낙이가 있다. 사악한 미소를 머금으며 자고 있는 낭낙이 배에 쓱하고 손을 집어넣자 차가움 보다 귀찮음이 앞선 유순한 낭낙이는 이내 모른체 잠만 자는 모습을 보고 또한번 웃음이 났다. 착한 낭낙이답게 기꺼이 차가운 언니 손을 자신의 몸으로 녹여준 것 같다.
반려동물을 키우다보면 눈 앞이 아찔해지는 순간을 종종 겪곤 한다. 호기심에 열려진 문 사이로 나가버린 반려견이 보이지 않아 눈 앞이 하얘지기도 하고 사고나 병으로 아파하는 아이들을 보며 눈물을 쏟는 일도 있다. 내 경우 천만 다행으로 아직 반려묘를 잃어버리거나 크게 아픈 적은 없어 감사하고 또 감사하지만 작은 일에 놀랄 때가 많다. 어느날 외출했다 집에 돌아왔는데 멀쩡했던 고양이가 발을 제대로 땅에 딛지 못하고 옆으로 걷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철렁한 적이 있다. 걸음걸이가 이상한 것이 마비가 온건가 싶어 너무 놀라 고양이를 부둥켜 안고 어쩔줄 몰라 울고 있는데 한쪽 다리에 노란 테이프뭉치가 붙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 택배상자를 버리면서 떼어낸 테이프가 바닥에 굴러다니다 고양이 다리에 붙은 모양이었다. 순간 놀랐던 마음은 사라지고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한동안 그대로 고양이를 안고 웃었던 기억이 있다. 내 고양이는 영문도 모른 채 안겨서 버둥거리다 테이프를 떼어주니 그제서야 신나게 거실을 뛰어다녔다.
순대가 앞발에 테이프를 붙이고 절뚝거리는 모습을 보고 그때가 생각나 한참을 웃었다.
이렇듯 내 어린고양이와 늙은개에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순대와 낭낙이가 내 고양이 내 개 처럼 느껴지는 건 이런 소소한 에피소드 덕분이다. 그런가 하면 웹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작가의 에세이도 실려 있어 감동을 더한다.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동물에 관한 이야기와 오랜시간 반려동물과 함께 해온 저자의 눈으로 바라본 삶의 모습들에 나역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바람처럼 나 또한 낭낙이와 순대의 이야기가 생명과 동물에 대한 생각을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더이상 귀엽지 않아서, 늙고 병들어서, 이런 이유들로 생명을 버리는 일이 없기를....한 생명에 대한 무거운 책임의식으로 반려동물을 대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이 한권의 책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거란 작은 기대를 품어본다.
우리 주변의 작은 생명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주고 함께 공존해나간다면 지금보다 훨씬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는 아마 내 평생동안 제일 반짝반짝 빛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내가 그림을 얼마나 훌륭하게 그렸고, 얼마나 거창한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는지의 문제를 떠나, 내가 가장 사랑하는 녀석들의 이야기이고, 나와 가장 가까운 이야기인 동시에, 내가 녀석들을 얼마나 많이 사랑헸는가에 대한 고백을 담은 이야기이기도 할 테니.
만약 낭낙이와 순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그림을 그리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지금처럼 행복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 P.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