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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모험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3월
평점 :
책이나 사람이나 첫인상이 중요하기는 마찬가지다.
내용만 좋으면 됐지 표지가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다. 표지가 별로 인상적이지 않으면 선뜻 읽을 마음이 들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단순히 표지만 보고 책을 고르지는 않지만 일단 표지가 예쁘면 눈길이 가고 한번이라도 집어들어 내용을 살펴보게 된다. 물론 내키지 않는 마음을 뒤로하고 읽고나서는 고르길 잘 했다 싶은 경우도 많긴 하지만 일단 표지가 마음에 들면 독서욕구가 몇배는 더 강해지는 듯 하다. 이 책이 그러했다. 책을 받아든 순간 아기자기한 표지와 삽화가 실린 속지가 딱 내 취향이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해졌다. 설레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는 순간 나를 반긴 목차는 책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높였다. 짖지않는 개라는 제목은 궁금증을 자아냈고 푸른 빛살, 버찌 맛 등의 제목은 달달하면서도 로맨틱한 분위기를 풍겨 표지만큼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있지 않을까 두근거렸다. 게다가 제목에 한국이 들어간 에세이도 눈에 띄어 요시다 슈이치가 한국을 배경으로 풀어낼 이야기는 무엇일지 어서빨리 읽고 싶었다.
이렇듯 부푼 가슴을 안고 책을 펼쳐들었건만... 책장을 넘길수록 기대감은 의아함으로 변했다. 12편의 단편과 11편의 에세이로 이루어진 이 책에 담긴 글들이 의미하는 바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첫번째 이야기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는 공감을 느끼며 기분좋게 읽었지만 두번 째 이야기부터는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아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다. 물론 억지로 의미를 파악하고 이해하려 들면 작가가 왜 여기서 이야기를 끝마쳤는지 짐작은 가능했지만 그래도 뭔가 얘기를 하다 만 것 같아 영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나중에는 그러려니 하고 다음이야기로 넘어갔으나 처음에는 인쇄가 잘못되어 뒷장이 짤린 건 아닌가 싶어 책장을 뒤적거리고 페이지수를 다시 확인하기도 했다. 그렇게 연신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단편을 모두 읽고 나서 에세이로 접어들어서야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느낄 수 있었다.
기내 잡지에 연재된 글을 모은 책이라 이야기의 대부분이 여행과 관련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연인과 이별한 후 홀로 여행을 떠난 여인의 짤막한 이야기나 작가가 직접 경험한 여행지에서의 일화등이 실려있는데 단편에 비해서 에세이는 비교적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단편이라 하기에도 너무나 짧은 너댓페이지 가량의 글들이라 소설이라기 보다는 작가가 이야기를 구상하기 위해 끄적거린 일기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동안 장편소설에 너무 길들여진 탓일까. 어중간하게 여기서 끝내지 말고 마무리를 조금 더 지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내내 들었단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야기 속에서 소소한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바로 단편과 에세이에서 모두 심심치않게 한국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서 만난 배려가 몸에 밴 한국 청년들에 관한 일화나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경험한 자원봉사자들의 열기를 비롯해 즐거웠던 한국의 뒷풀이 문화 등 간간히 등장하는 이야기들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 요시다 슈이치가 가진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알 수 있게 해 괜스레 마음이 뿌듯해졌다.
책 소개에서 작가의 민낯과 화장한 얼굴을 두루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라는 글을 읽었는데 이 부분에는 그다지 동의할 수가 없었다. 확실히 꾸미지 않은 민낯처럼 담백한 글이 대부분이었고 마치 맛이 없는 음식을 먹은 기분이었다. 여기서 맛이 없다는 건 뱉어내고 싶은 맛이란 뜻이 아니라 니맛도 내맛도 아닌 말그대로 아무 맛도 없는 음식을 말한다. 밍숭맹숭해서 대체 무슨 맛인지 모르겠는 간이 덜 된 심심한 음식처럼 수록된 12편의 단편들 중 몇편을 제외하고는 기억에 남질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첫인상에 대한 기대감을 채워주지 못한 표지는 선명했으나 내용은 어렴풋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