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너의 그림자를 읽다 - 어느 자살생존자의 고백
질 비알로스키 지음, 김명진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자살 생존자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죽음을 목도하게 된다. 그리고 여러 형태의 죽음 가운데 남은 이들을 벗어날 수 없는 후회와 상실감에 빠지게 만드는 것은 바로 스스로 선택한 죽음일 것이다. 내가 조금만 더 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였더라면..혹은 내가 곁에서 위로가 되주었더라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은 시간이 지나 잊은 듯 싶다가도 불현듯 머릿속을 헤집어 과거로 돌아가게 만든다.
사랑하는 가족이 혹은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할 정도로 고통스러워 할 동안 나는 뭘 하고 있었나... 내가 대수롭지 않게 여긴 그 한마디가 마지막 인사였다는 것을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내가 변함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 어떤 이는 죽음으로 벗어나고플 만큼 괴롭고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었음을 우리는 늘 너무 늦게 알아버린다. 그리고 뒤늦은 깨달음에 자책해봐야 떠나간 이는 돌아오지 않는다. 때론 그 죽음이 나의 가까운 가족, 친구일 수도 있고, 오며가며 마주친 얼굴만 알던 사이일 수도 있다. 혹은 전혀 모르는 사람의 죽음을 언론을 통해 알게 되기도 한다. 그때마다 나는 떠나간 이보다 남은 이들의 삶이 걱정되곤 했다.
이렇듯 자살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을 자살생존자라고 부른다. 남겨진 이들 즉, 자살생존자들은 떠나간 이를 그리워하며 고통 속에 살아간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자살생존자가 되었다.
나는 이 책을 받아들고도 쉽게 펼쳐들 수가 없었다. 새빨간 표지에 그려진 한줄기 눈물을 한참을 바라보다 다시 꽂아두기를 여러날 반복한 끝에 비로소 마음을 다잡고 첫장을 넘겼다.
자살을 이해하는 것은 잡히지 않는 삶의 환영을 이해하려는 것과 같다.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어둠, 공포, 나약의 힘.
그 힘은 바다처럼 신비롭고 거칠고 복잡하고 통제가 안 되며, 감당하지 못할 만큼 강력한 파괴력이 있다.
P.16
자살을 꿈꾸는 사람
이 책의 저자는 막내 여동생을 잃은 상실감에 여러해를 보낸 뒤 동생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책을 쓰기 시작한다. 동생의 일기장과 유서를 비롯해 그녀와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되짚어보며 동생을 죽음에 이르게 한 발자취를 따라간다.
동생 킴은 네 자매 중 막내이자 유일하게 아버지가 다른 자매였다. 가족은 물론이고 저자에게도 열살 터울의 동생은 딸처럼 소중한 존재였다. 그러나 저자의 새아버지이자 킴에게는 친아버지인 남자는 킴이 세 살때 가족을 떠난다. 아버지의 부재는 아직 어렸던 킴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고, 아버지의 사랑이 그리웠던 킴의 마음 속 깊숙한 곳에 결코 사라지지 않을 상처로 남았다. 그것은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편과 사별한 뒤 또다시 이혼으로 가정을 지키지 못한 어머니는 나날이 무기력해졌고, 그 안에서 킴은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가족을 버리고 다른 여인에게 가버린 아버지, 오랜시간 연락조차 하지 않는 아버지가 킴에게는 친아버지였기에 그 상처는 더욱 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아버지 대신이었던 앨런과의 사랑은 또한번 킴에게 상처를 남겼고 마지막 순간 킴은 앨런에게 먼 곳으로 떠난다는 말을 남긴 채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물론 킴의 죽음을 아버지나 앨런의 탓으로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저자는 알고 싶었던 것 같다. 동생이 삶의 기로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자 결심했던 까닭을, 그리고 그렇게 만들었던 상황들을 말이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분명 있을 터인데 아무것도 모른 채 동생이 그런 선택을 하도록 내버려 둔 자신을 탓할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자살생존자들을 괴롭히는 가장 큰 후유증이 자책과 후회가 아닐까 싶다. 손을 잡아주지 못했다는 후회,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했다는 자책은 남아있는 이들을 오랜시간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한다. 저자 역시 바쁜 일상에서 불쑥 떠오르는 킴의 자살에 대한 생각과 의문에서 벗어나 해답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킴의 생전 모습을 돌아보며 글을 써나간다.
우리는 죽은 동생과 끝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무덤 앞에서 나는 두 가지 이유로 그 애에 관한 글을 쓰기로 다짐했다.
동생의 죽음을 되짚고 기리기 위해서, 그리고 그 애가 뭘 했고 왜 그랬는지 이해해 나의 삶을 계속해 나가기 위해서.
....내가 글을 통해 킴의 내면세계를 재창조하고 그 강인함을 앗아간 요인들을 알아낸다면, 그 아이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작업을 통해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쩌다가 그 아이를 잃어버렸을까? 어쩌다가 우리는 그냥 그렇게 보내버렸을까? 풀어야 할 숙제가 많았다.
P.12
심리 부검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심리 부검은 자살의 원인을 파악하고 이해하기 위해 그 사람이 살아온 삶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심리부검을 통해 자살에 이르게 된 사회적, 심리적 요인을 보다 정확히 알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심리 부검은 자살 예방과 치료 프로그램을 위해서도 쓰이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자동차안에서 숨을 거둔 동생의 마지막을 기억에서 지우지 못해 스스로 동생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심리부검의 결과를 책으로 엮었다. 실제로 저자는 자살생존자들의 모임에 나가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을 치유해 나가는 듯 했다.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슬픔과 상처를 나누며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자살을 결심한 이들은 마지막 순간에 구원의 손길을 기다린다고 한다. 대부분의 자살이 충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그 순간의 감정을 넘기면 죽음이 아닌 삶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래서인지 죽음으로 발을 내딛기 전 주변사람에게 메세지를 전하는데 이 메세지를 누군가 자신을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보내는 구조요청으로 보는 것이다. 삶의 끝에서 보낸 절박한 한마디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해 소중한 이들을 잃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접한다. 그리고 그렇게 남은 자살생존자들은 마지막 끈을 자신이 놓아버렸다는 죄책감에 시달려 더욱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게 된다. 킴의 남자친구였던 앨런 또한 킴의 마지막 인사에 담긴 뜻을 알지 못한 채 전화를 끊어버렸고 킴이 떠난 지 5년 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책을 읽으며 소중한 가족, 사랑하는 친구를 잃은 상실감이 전해져 가슴이 아려왔다. 한사람의 죽음이 너무도 많은 것을 앗아가 버렸고 너무도 많은 감정들을 남겼다. 자살이라는 단어가 막연하게 느껴지거나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라고 여길수도 있겠지만 같은 일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킴의 이야기를 통해 아픔을 공유하고 함께 나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비극들은 우리를 피해 갈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자살은 우리 가족이 아닌 다른 가족, 다른 사람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겨우 몇시간 만에 우리 중 누군가가 떠나버렸고,남은 우리의 삶은 영원히 바뀌어버렸다.
P.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