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를 읽고 장자에게 배운다
푸페이룽 지음, 한정선 옮김 / 지와사랑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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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살면서 한번은 읽어봐야 하지만 생각만큼 접하기가 쉽지않은 책이 바로 성인들의 가르침을 담은 책이 아닐까 싶다. 그런만큼 '노자를 읽고 장자에게 배운다'라는 제목의 책이 한눈에 들어왔다. 딱딱하거나 어렵지 않을까 하는 걱정스런 마음도 잠시, 한장 두장 넘어갈 수록 점점 이야기 속에 빠져들었다. 딱딱하게 가르침을 늘어놓는 게 아니라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 풀어내는 이야기 속에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담겨 있었다.

 

"군자지교담약수" 군자 사이의 사귐은 담담하기가 물과 같지만,소인배 사이의 사귐은 그 맛이 단술과 같다는 뜻이다. 장자에 나오는 이 말에는 심오한 인생철학이 담겨 있다. 진정한 우정은 흐르는 물처럼 담담해 오래 유지되지만, 이익을 바탕으로 이룬 관계는 향기로운 술처럼 달콤해도 이해가 상충하면 바로 등을 돌린다는 것이다. 장자는 사람들 사이의 이러한 관계를 어떻게 바라볼까? 어떤 우화로 사람들 사이의 이해득실을 설명할까?

 P. 65

장자가 들려준 우화는 이러했다. 가라는 나라에 살던 임희라는 사람이 도망칠 때 보물는 모두 버리고 어린아이만 업고 가자 이를 의아하게 여긴 사람들이 어째서 금은보화도 마다하고 아이만 업고 가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가 말하길 '보물이 이익이라면 아이는 본성에 해당하기 때문이오.' 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이어서 장자는 "이익은 후에 재난이 닥피면 갈라설 수 있지만 본성은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절대 떨어지지 않고 견고하게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라고 이야기 했는데 이처럼 사람의 본성이 지닌 귀한 가치를 이익과 견주어 무엇이 우선해야하는가, 그리고 이해득실을 떠나 진정 가까이 해야할 것이 무엇인가를 말한다.

 

우리는 평소 이득을 좋고 손해는 피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불확실한 요소는 다소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때로는 변화가 생겨서 이해관계가 바뀌기까지한다. 새옹지마 고사가 대표적인 예다.

P.70

또하나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는 점쟁이를 찾아가 자식들의 관상을 봐달라고 한 남자의 이야기였다.

그는 점쟁이를 찾아가 여덟 아들 중에 누가 가장 출세할지를 물었고 그러자 점쟁이는 '곤'이라는 아들의 팔자가 가장 좋다고 말해준다. 이유인 즉 평생 국왕 옆에 있으면서 좋은 술과 고기를 먹으며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좋아하기는 커녕 울기 시작했다. 입에 단 술과 고기를 먹는 대신 치러야 할 대가를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술과 고기는 입에 다니 먹을 때는 좋겠지여. 하지만 그 술과 고기의 대가를 언젠가는 피러야 할 것이오. 그 대가가 아들놈이 치르기에 너무 벅찰까 그것이 걱정일 뿐이오. 난 줄곧 내 자식이 세상의 부귀영화 따위는 좇지 않기를 바랐소. 그런데 지금 내 아들이 국왕 곁에서 함께 술과 고기를 나눈다고 하니 이 어찌 슬프지 아니하겠소. "

아버지의 걱정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후에 아버지는 곤을 연나라로 보내 일을 시켰는데 가는 도중에 강도를 만나 두 다리가 잘린 채 풀려났가. 그리고 곤은 제 강공의 문지기가 되어 평생을 강공을 따르며 그와 같은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점쟁이의 말대로 왕과 같은 음식을 먹으며 평생을 살 수 있었지만 두 다리를 잃었던 곤의 이야기처럼 우리 인생에서도 하나를 얻기 위해 커더란 희생을 치러야 할 경우가 종종 있는 듯하다. 극단적인 예일지 모르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을 실감케하는 이 우화를 통해 운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복권당첨자들의 불행한 인생을 여기에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흔히 부러워하는 타인의 운이 어쩌면 많은 희생을 치르고 얻어낸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사람은 어디서 저런 운을 타고 나서 복권에 다 당첨되는 거지?'라고 부러워 하지만 그들이 생각과 달리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던 이유가 엄청난 부를 얻는 대신 치렀던 대가가 아니었나 싶다. 타인의 운을 부러워 할 게 아니라 내게 주어질 운 또한 그 대가가 내가 지불하기에 너무 가혹한 것이라면 과감히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장자의 말처럼 분수에 넘치는 욕심을 부리기보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행복한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다양한 우화를 통해 삶의 지혜를 일깨워 주는 이 책 속에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값진 가르침이 가득했다. 타인의 삶에 나를 비추어 볼 수 있었음은 물론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한층 밝아질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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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상처받는 관계만 되풀이하는가
카르멘 R. 베리 & 마크 W. 베이커 지음, 이상원 옮김 / 전나무숲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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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좌절감을 맛보지만 그 중에서도 인간관계에서 겪는 어려움은 자기비하에 시달리게 만들곤 한다. 왜이리 세상이 내 마음 같지 않은지 답답해하다가, 때로는 나만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게 아닌가 싶어 덜걱 겁이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울컥하는 감정을 주체 못해 가까운 이에게 상처를 주는 내 모습에 또한번 실망하게 된다.

어려서는 관계를 이어가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나이를 먹어갈 수록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는 친구를 얻기가 힘들어진다. 어쩌면 또다시 상처받는 게 두려워 지례 겁을 먹고 포기하는 것 같다.

 

누구나 살아오면서 한번쯤 솔직하게 털어놓은 말들이 초래한 곤란한 상황에 맞닥드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혹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해 마음을 열고 상대를 대했는데 그것이 나중에는 생각치 못한 상처가 되어 돌아온 경험도 있을지 모른다. 나 역시 그러했다. 대수롭지 않은 일로 넘길 수도 있겠지만 어렸을 때라 아무렇지 않은 척 잊어버리기가 쉽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 그때의 경험들은 상처로 남았다. 지금이야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상대방과 부딪히기 싫어 내색하지 않고 지나치는 편을 선택하지만 예전에는 나름 옳다고 생각되는 일은 짚고 넘어가야 직성이풀리던 때도 있었다. 어른이 된 지금 스스로를 돌아보면 어떤게 맞는 것인지 보다 어떤게 편한 것인지를 먼저 판단하는 모습이 실망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신념이 사라진 어른이라...스스로가 생각해도 한심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것밖에는 나 자신을 보호하고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을..딴에는 상처받지 않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 마음 속에 벽을 쌓았고 그렇게 세운 벽을 부셔버리기란 생각보다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표면적으로만 드러나는 반복되는 상처에 지쳐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진솔하게 이어가지 못하는 지금의 나. 다른 이에게도 다가가지 못하고 누구도 내게 다가올 수 없도록 쳐놓은 울타리 안에서 주위를 살피는 나는 피해 입을게 두려워 포기를 택한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마음을 터놓고 진솔한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관계가 불가능하게 느껴지시 시작할 무렵 나는 내 생각을 말하는 대신 조용히 있는 편을 택했고, 그렇게 굳어진 성격은 회복불가능하게 여겨졌다.

                                                      

쾌활하고 낙천적이게 보이는 사람들도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너무 오래되어 딱지가 앉아버린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사람의 다양한 감정들이 인간관계에서 비롯됨을 생각해봤을 때 '인간 관계를 망치는 덫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치유 심리학'이란 책 소개는 인간관계를 망치지 않는 비법이라도 담겨있는 게 아닐까 하는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이 책에서 제시한 방법들은 생각보다 마음을 평온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두려움, 분노, 죄의식, 슬픔, 거짓힘 이 다섯가지의 피해자 덫을 사례를 통해 이해시키고 이어서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내놓았다. 이같은 구성은 막연하게 느껴질 수 있는 책의 내용을 나 자신에게 대입해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각 장마다 다양한 사례를 들려줌으로써 공감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 게 현명한 일인지 생각하게끔 한다. 이런저런 부연설명보다 사례를 통해 상대의 마음을 느끼고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동반되는 것이 훨씬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인간관계에 정답이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각각의 상황에서 어떻게 마음을 다스리느냐에 따라 많은 부분이 달라질 수 있음을 조금이나마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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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동안 나를 기다리는 것들 - 미리 알아두면 삶이 편해지는 23가지에 대하여
웬디 러스트베이더 지음, 이은정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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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간단해 보이지만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물음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꿈꾸는 궁극적인 인생에 목표는 단연코 행복한 삶이다.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과 종류는 저마다 다를지언정 행복을 추구하는 마음에는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먼 훗날, 생의 마지막 기로에서 지나온 날을 돌이켜 봤을 때 내가 바라던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적어도 이 책에 등장한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었다. 결코 적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활기차고 건강한 마음이 그들의 삶을 매순간 멋진 곳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이 책에는 미리 알아두면 삶이 편해지는 23가지에 대하여 라는 부제답게 인생이란 씨앗을 기르는데 거름이 될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있다. 희망을 위한 소통, 변화를 위한 정지, 평화를 위한 외침이라는 세가지 틀 안에서 각각의 주제에 어울리는 일화를 들려주며 독자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다. 인간관계, 마음의 회복, 느리게 살기, 뒤늦은 깨달음, 마음이 시키는 일 등등 모든 이야기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는데 지나온 삶과 다가올 삶의 모습을 그려볼 수록 내가 마주할 무언가가 어렴풋이나마 형체를 갖추는 느낌이었다. 저자는 자기 자신의 어린시절 기억과 심리상담을 통해 만난 이들의 사례를 들려주기도 하고 때론 자신이 바라본 타인의 모습을 통해 삶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50대 말에 뇌졸증을 겪은 한 남성은 투병생활을 하며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이전에는 자신에게 신경쓰느라 주위를 돌아보지 않았다면 이제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또한 96세의 할머니는 50대 이후가 되어서야 용기를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늘어난다고 생각했다. 한해가 지날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진다는 생각에 아쉽고 나이를 먹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나 이 책에는 내 생각과는 반대로 나이가 먹은 후에 젊었을 적보다 더 많은 것들을 즐기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세월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인생에 있어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 보였다. 무엇보다 행복한 삶을 결정짓는 요소는 부의 축적도 명예와 성공도 아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인생이란 것을 말이다. 하고 싶은 일의 가치..그 일의 가치는 생각보다 훨씬 큰 것이었다. 젊은 시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겪은 이들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치유되는 모습을 보며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안달하는 내 삶을 그저 시간에 맡겨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언젠가 꿈의 종착역에 도착한다면 부디 지금보다 많은 인생의 깨우침을 가슴에 새겼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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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 게임 헝거 게임 시리즈 1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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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나는 살아 남아야 한다!

 

책을 읽는 내내 무자비한 살인 게임에 참여한 열여섯 소녀의 외침이 들리는 듯 했다. 그것은 캐피톨 사람들의 유희를 위해 해마다 희생되고 있는 스물네명의 목소리이기도 했다.

 

수도인 캐피톨이 지배하는 독재국가 판엠. 그곳에서 캐피톨 이외의 주변구역 사람들은 모두 캐피톨 사람들을 위해 희생해 마땅한 노예에 불과하다. 캐피톨의 독재정치에 반역을 꾀하는 구역은 철저히 파괴당하고, 캐피톨에 대항하려는 마음조차 품을 수 없도록 그들은 모든 것을 통재하며 공포정치를 펼친다. 그리고 해마다 돌아오는 추첨일이 되면 주변구역 사람들은 두려움과 절망 속에 확률의 신이 자신과 가족의 편에 서주길 기도하는 것 밖에는 할 수가 없다.

 

캐피톨 사람들의 가장 큰 오락거리이자 캐피톨 권력의 상징이기도 한 헝거게임. 이 게임의 대상은 아직 어린 십대 소년소녀들이다. 총 12개 구역의 십대들 중 추첨으로 뽑힌 스물네사람이 헝거게임의 대상이된다. 게임의 룰은 간단하나 자비란 없다. 각 구역마다 소년 소녀 한명씩 반드시 참여해야하며 게임은 서로를 죽여 단 한사람의 생존자가가 나올 때까지 계속된다. 다른 것은 필요없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만 하는 무자비한 살육게임인 것이다. 그리고 게임에 참여한 이들의 모습은 추첨부터 훈련, 게임, 마지막 우승자가 탄생하기까지 모든 것이 TV를 통해 생중계된다. 스포츠를 가장한 이 게임에 캐피톨 사람들은 열광한다. 마치 자신들이 보고 있는 것이 살아있는 생명임을 망각한 듯 더욱 잔인하고 흥미롭기를 원하고, 보상이라도 되는 듯 우승자와 우승자의 출신 구역에는 많은 양의 식량이 상품으로 주어진다.

 

그리고 또다시 돌아온 절망의 날이 시작된다. 추첨을 위해 광장에 모인 12구역 사람들 가운데는 열여섯소녀 캣니스와 여동생 프림도 있다. 광산에서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와 삶의 의욕을 상실해 버린 엄마를 대신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캣니스는 누구보다 사랑하는 동생 프림만큼은 이 확률게임에서 결코 선택되지 않을 거라 믿는다. 그도 그럴것이 첫 추첨대상이 되는 열두살에는 이름이 적힌 쪽지가 한장만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 이듬해인 열세살에는 두장이 들어가고 그런 식으로 매년 한장씩 늘어나 마지막 해인 열여덟살에는 총 일곱장의 쪽지가 들어간다. 물론 예외는 있다. 그것도 아주 불공평한 예외가 말이다. 이름이 적힌 쪽지 한장은 1년동안 먹고 살 수 있는 배급표 한장과 바꿀 수 있다. 또한 한사람이 가족을 위해 쪽지를 여러번 집어넣는 것도 가능하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이유로 올해 열여섯이 된 캣니스의 이름이 적힌 쪽지는 스무 장이 들어가 있다. 확률의 신이 언제나 당신 편이기를....이 공허한 가호마저 가난한 자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나 프림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배급표와 바꾼 일은 단 한번도 없다. 그러니 착하고 여린 프림이 헝거게임에 끌려가는 일은 결코 없을 거라 안도했다. 그러나 믿어의심치 않았던 최악의 순간이 벌어졌다. 확률의 신은 캣니스의 편이 아니었다. 단 한장밖에 적혀있지 않은 동생 프림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캣니스는 이성을 잃고 무대로 달려나간다. 그리고 자신이 자원하겠다고 외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헝거게임에는 추첨과 상관없이 자원이 가능했다. 물론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라 하더라도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헝거게임에 스스로 자원하기란 여간해선 불가능 한 일이었고, 지금껏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울며 매달리는 프림을 억지로 떼어놓고 살육게임에 뛰어든 캣니스는 누구보다 용감했다. 이 어린 소녀의 용기에 12구역 사람들은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캐피톨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조용한 침묵으로 대신했다.

그러나 확률의 신은 또다시 캣니스를 저버렸다. 마치 네 불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며 비웃는 듯 소년의 이름을 불렀다. 피타 멜라크!

한번도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었지만 캣니스에게 있어 피타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존재였다. 오래 전 식량을 구하다 지쳐 굶어 죽기 직전이었던 캣니스에게 위험을 감수하고 몰래 따뜻한 빵을 던져주었던 소년. 자신에게 빵을 주기 위해 일부러 빵을 태웠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캣니스는 그 아이의 친절한 행동을 결코 잊을 수 없었고 시간이 지나서도 그 빵은 살 수 있다는 희망의 의미였다. 그랬는데...자신을 구해준 그 아이에게 고맙다는 인사조차 못했는데 이제는 서로를 죽여야하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캣니스에게 선택할 자유란 없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경쟁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가 피타라 할 지라도 자비는 허락되지 않는다. 자신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어린 동생과 엄마를 두고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고 다짐한 캣니스는 동생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반드시 살아돌아올 거라 마음 먹는다. 그리고 마침내 목숨을 건 게임이 시작된다.

 

날카롭고 예리한 사회비판과 살육의 현장에서 피어나는 풋풋한 로맨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까지 고루 갖춘 이야기에 흠뻑 빠져 들었다. 게임이 진행되는 모습은 실제로 요즘 유행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지켜보는 듯 긴장감이 느껴졌고, 캐피톨 사람들이 벌이는 비인간적인 만행에 분노가 치솟았다. 그저 지배층의 오락을 위해 제물로 바쳐진 조공인. 그리고 그 대상이 십대 소년소녀라는 설정은 내가 읽고 있는 것이 지어낸 이야기라는 것을 잊게 할 만큼 충격적이었다. 탄탄한 구성과 잘짜여진 스토리에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고 그들이 맞서야 할 어른들의 세계가 처참히 무너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줄 한줄 읽어나갔다.

이 무자비한 게임이 끝은 그저 시작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2권과 3권에서도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인간이하의 행태가 벌어질 것임이 너무도 분명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을 덮는 것이 아쉽다 못해 화가 날 정도로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각 구역에서 아이들을 데려가 죽고 죽이게 하고, 우리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그들에 비해 얼마나 무력한지, 다시 한번 반란을 일으켰을 때 우리가 살아남을 확률이 그 얼마나 희박한지

일깨워주는 캐피톨의 방식이다. 그들이 어떤 식으로 표현하든 간에 진짜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명확하다.

"똑똑히 봐둬. 우리가 너희 아이들을 데려다 희생시켜도, 너희들이 한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하면 너희들을 마지막 한 명까지 박살내버릴 거야. 13번 구역에서 했던 것처럼 말이야."

P.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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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그림자를 읽다 - 어느 자살생존자의 고백
질 비알로스키 지음, 김명진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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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생존자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죽음을 목도하게 된다. 그리고 여러 형태의 죽음 가운데 남은 이들을 벗어날 수 없는 후회와 상실감에 빠지게 만드는 것은 바로 스스로 선택한 죽음일 것이다. 내가 조금만 더 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였더라면..혹은 내가 곁에서 위로가 되주었더라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은 시간이 지나 잊은 듯 싶다가도 불현듯 머릿속을 헤집어 과거로 돌아가게 만든다.

사랑하는 가족이 혹은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할 정도로 고통스러워 할 동안 나는 뭘 하고 있었나... 내가 대수롭지 않게 여긴 그 한마디가 마지막 인사였다는 것을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내가 변함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동안 어떤 이는 죽음으로 벗어나고플 만큼 괴롭고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었음을 우리는 늘 너무 늦게 알아버린다. 그리고 뒤늦은 깨달음에 자책해봐야 떠나간 이는 돌아오지 않는다. 때론 그 죽음이 나의 가까운 가족, 친구일 수도 있고, 오며가며 마주친 얼굴만 알던 사이일 수도 있다. 혹은 전혀 모르는 사람의 죽음을 언론을 통해 알게 되기도 한다. 그때마다 나는 떠나간 이보다 남은 이들의 삶이 걱정되곤 했다. 

이렇듯 자살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을 자살생존자라고 부른다. 남겨진 이들 즉, 자살생존자들은 떠나간 이를 그리워하며 고통 속에 살아간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자살생존자가 되었다.  

나는 이 책을 받아들고도 쉽게 펼쳐들 수가 없었다. 새빨간 표지에 그려진 한줄기 눈물을 한참을 바라보다 다시 꽂아두기를 여러날 반복한 끝에 비로소 마음을 다잡고 첫장을 넘겼다.

 

                    자살을 이해하는 것은 잡히지 않는 삶의 환영을 이해하려는 것과 같다.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어둠, 공포, 나약의 힘.

                              그 힘은 바다처럼 신비롭고 거칠고 복잡하고 통제가 안 되며, 감당하지 못할 만큼 강력한 파괴력이 있다.

                                                                                                                  P.16

 

자살을 꿈꾸는 사람

이 책의 저자는 막내 여동생을 잃은 상실감에 여러해를 보낸 뒤 동생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책을 쓰기 시작한다. 동생의 일기장과 유서를 비롯해 그녀와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되짚어보며 동생을 죽음에 이르게 한 발자취를 따라간다.

동생 킴은 네 자매 중 막내이자 유일하게 아버지가 다른 자매였다. 가족은 물론이고 저자에게도 열살 터울의 동생은 딸처럼 소중한 존재였다. 그러나 저자의 새아버지이자 킴에게는 친아버지인 남자는 킴이 세 살때 가족을 떠난다. 아버지의 부재는 아직 어렸던 킴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고, 아버지의 사랑이 그리웠던 킴의 마음 속 깊숙한 곳에 결코 사라지지 않을 상처로 남았다. 그것은 어머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편과 사별한 뒤 또다시 이혼으로 가정을 지키지 못한 어머니는 나날이 무기력해졌고, 그 안에서 킴은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가족을 버리고  다른 여인에게 가버린 아버지, 오랜시간 연락조차 하지 않는 아버지가 킴에게는 친아버지였기에 그 상처는 더욱 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아버지 대신이었던 앨런과의 사랑은 또한번 킴에게 상처를 남겼고 마지막 순간 킴은 앨런에게 먼 곳으로 떠난다는 말을 남긴 채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물론 킴의 죽음을 아버지나 앨런의 탓으로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저자는 알고 싶었던 것 같다. 동생이 삶의 기로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자 결심했던 까닭을, 그리고 그렇게 만들었던 상황들을 말이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분명 있을 터인데 아무것도 모른 채 동생이 그런 선택을 하도록 내버려 둔 자신을 탓할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자살생존자들을 괴롭히는 가장 큰 후유증이 자책과 후회가 아닐까 싶다. 손을 잡아주지 못했다는 후회,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했다는 자책은 남아있는 이들을 오랜시간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한다. 저자 역시 바쁜 일상에서 불쑥 떠오르는 킴의 자살에 대한 생각과 의문에서 벗어나 해답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킴의 생전 모습을 돌아보며 글을 써나간다.  

 

  우리는 죽은 동생과 끝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무덤 앞에서 나는 두 가지 이유로 그 애에 관한 글을 쓰기로 다짐했다.  

  동생의 죽음을 되짚고 기리기 위해서, 그리고 그 애가 뭘 했고 왜 그랬는지 이해해 나의 삶을 계속해 나가기 위해서.

  ....내가 글을 통해 킴의 내면세계를 재창조하고 그 강인함을 앗아간 요인들을 알아낸다면, 그 아이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작업을 통해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쩌다가 그 아이를 잃어버렸을까? 어쩌다가 우리는 그냥 그렇게 보내버렸을까? 풀어야 할 숙제가 많았다.    

 P.12

 

심리 부검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심리 부검은 자살의 원인을 파악하고 이해하기 위해 그 사람이 살아온 삶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심리부검을 통해 자살에 이르게 된 사회적, 심리적 요인을 보다 정확히 알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심리 부검은 자살 예방과 치료 프로그램을 위해서도 쓰이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자동차안에서 숨을 거둔 동생의 마지막을 기억에서 지우지 못해 스스로 동생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심리부검의 결과를 책으로 엮었다. 실제로 저자는 자살생존자들의 모임에 나가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을 치유해 나가는 듯 했다.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슬픔과 상처를 나누며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자살을 결심한 이들은 마지막 순간에 구원의 손길을 기다린다고 한다. 대부분의 자살이 충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그 순간의 감정을 넘기면 죽음이 아닌 삶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래서인지 죽음으로 발을 내딛기 전 주변사람에게 메세지를 전하는데 이 메세지를 누군가 자신을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보내는 구조요청으로 보는 것이다. 삶의 끝에서 보낸 절박한 한마디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해 소중한 이들을 잃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접한다. 그리고 그렇게 남은 자살생존자들은 마지막 끈을 자신이 놓아버렸다는 죄책감에 시달려 더욱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게 된다. 킴의 남자친구였던 앨런 또한 킴의 마지막 인사에 담긴 뜻을 알지 못한 채 전화를 끊어버렸고 킴이 떠난 지 5년 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책을 읽으며 소중한 가족, 사랑하는 친구를 잃은 상실감이 전해져 가슴이 아려왔다. 한사람의 죽음이 너무도 많은 것을 앗아가 버렸고 너무도 많은 감정들을 남겼다. 자살이라는 단어가 막연하게 느껴지거나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라고 여길수도 있겠지만 같은 일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킴의 이야기를 통해 아픔을 공유하고 함께 나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비극들은 우리를 피해 갈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자살은 우리 가족이 아닌 다른 가족, 다른 사람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겨우 몇시간 만에 우리 중 누군가가 떠나버렸고,남은 우리의 삶은 영원히 바뀌어버렸다.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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