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1 줄리애나 배곳 디스토피아 3부작
줄리애나 배곳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이토록 끔찍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세기말의 이야기를 다룬 문학작품을 처음 읽어본 것도 아니건만 예상을 뛰어넘는 상세한 묘사와 현실감을 불어넣는 설정들이 놀랍고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책을 읽기 전만 해도 지구의 대폭발이란 설정은 그다지 새롭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래선지 기껏해야 뿌연 안개 속에 어둠으로 뒤덮인 황무지 정도를 상상했던 나는 책에 몰입할 수록 그 안에 그려진 지구의 모습과 살아남은 자들의 현실에 책장을 넘기기가 망설여졌다.

 

지구의 대폭발이 지나간 자리, 그곳에 더이상 정상적인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검은 구름이 뿌리는 검은 비, 먼지와 재만 남은 어두운 공기, 그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처절하게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 끔찍한 재앙은 인간의 육체마저 비정상적으로 변화시켰다. 대폭발 당시의 엄청난 열과 방사능으로 인해 사람들은 주변의 모든 것들과 융합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사물이나 동물, 혹은 또다른 인간과 융합되어 버린 인간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이런 설정을 직접적으로 묘사한 작가 덕분에 장면장면들이 눈앞에 그려졌고 마치 활자가 아닌 영상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든 예외는 있는 법. 이렇듯 끔찍한 상황속에서도 온전히 살아남은 자들이 있었다. 바로 돔안의 사람들이었다. 퓨어라 불리는 그들은 대폭발에 노출되지 않아 신체의 융합이라는 저주에서 비껴갈 수 있었다. 선택받은 돔 안의 사람들은 절망에 빠진 바깥세상의 사람들에게 한 장의 쪽지를 남기지만 희망의 메세지는 시간이 흘러 더이상의 아무런 희망도 되지 못한다.

형제자매여, 우리는 여러분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압니다.

언젠가 우리는 돔에서 나와 여러분과 평화롭게 공존할 것입니다.

 다만 지금은 멀리서 사랑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대폭발로 인해 들고 있던 인형과 손이 융합된 소녀 프레시아는 변해버린 세상에서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아가지만 이마저도 허락된 날이 얼마남지 않아 두려워한다. 열여섯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16세가 되면 강제로 혁명군에 끌려 가게 될 프레시아를 지키기 위해 할아버지는 프레시아를 캐비닛안에 숨어 살도록 한다.

한편, 돔안에 사는 소년 패트리지는 코딩에 거부반응을 일으켜 검사를 받게 된다. 패트리지는 폭발 당시 미처 돔안으로 들어오지 못해 바깥세상에서 죽음을 맞은 것으로 알려진 어머니가 바깥세상에 살아계실지 모른다는 의문을 품는다. 결국 어머니를 찾고자 결심한 패트리지는 돔의 설계도를 발견하고 탈출을 감행한다. 마침내 탈출에 성공한 패트리지는 바깥세상에서 우연히 프레시아와 마주친다. 돔 안의 소년과 돔 밖의 소녀앞에 기다리고 있는 운명은 무엇일까.

 

디스토피아문학, 판타지문학이란 장르로 이 소설을 설명하기는 뭔가 부족하다. 다소 비현실적이게 느껴지는 배경을 너무도 현실적이고 상세히 묘사해 놓은 덕분에 지구의 멸망이 현실이 될 지 모른다는 두려움마저 들게 했다.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을 보게 되리라는 진부한 표현이 뇌리를 스칠 정도로 살아남은 자들과 그들이 사는 공간이 잔인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우울한 분위기와 스릴넘치는 스토리 전개, 탄탄한 구성은 시간이 지날 수록 대폭발 후의 세상으로 나를 끌어들였다. 소년과 소녀의 만남을 시작으로 점점 더 탄력이 붙는 이야기는 페이지의 압박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게 만들었다. 초반에 생각치 못한 직설적인 묘사로 인해 받은 충격이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이야기 속으로 몰입하기가 수월했다.  지금껏 읽었던 세기말이나 종말을 다룬 소설 중에서도 특히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야기로 오래도록 기억되리란 예감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 '윤하정의 공연세상' 무대 위 20인과의 진솔한 이야기
윤하정 지음 / 끌리는책 / 201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대를 사랑하고 무대가 사랑한 스무명의 예술가들.

 

 

난생 처음으로 뮤지컬을 본 날, 무대 위에서 살아가는 저 배우들의 삶은 얼마나 환상적이고 매순간 설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마음껏 춤추고, 마음으로 노래하고, 온 힘을 다해 쏟아내는 감정들이 눈물이 날 만큼 멋졌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작품 속에 녹여내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 연습하고 또 연습했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고된 훈련으로 흘린 땀방울이 관객들의 따뜻한 박수로 보상받는 순간의 희열은 경험해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다. 내 눈에 비친 무대 위 배우들의 모습은 선택받은 이들과 같았다.

 

이 한권의 책에 스무명의 이야기를 담아내기는 부족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럼에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든 것은 바로 뮤지컬 배우 류정한과 정성한의 이름이었다.  

처음 류정한의 무대를 본 것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올려진 지킬 앤 하이드였다. 당시 조승우의 폭발적인 연기와 가창력으로 큰 화제가 되었던 지킬 앤 하이드가 공연마니아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전 일찌감치 조승우의 연기를 본 터라 두번 째 관람에서는 더블 캐스팅이었던 류정한의 연기를 보게 되었다. 사실 첫번째 관람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동에 전율이 일었던 나 역시 다시 한번 조승우의 연기가 보고 싶었지만 막이 오른 후 연일 기립박수가 쏟아졌던 조승우의 공연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얼마되지 않아 연일 매진행렬을 이뤘다. 내가 지킬앤 하이드를 예매할 때 만 해도 아직 공연이 시작되기 전이라 표를 구하기 어렵지 않았었는데 미리 봐둔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사실 나 역시 조승우란 배우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지킬앤 하이드라는 작품 자체에 대한 믿음으로 표를 예매했던 터라 조승우란 배우의 역량이 이정도일 줄은 몰랐었고 공연이 이렇게까지 큰 성공을 거둘 줄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었다. 여튼 조지킬이 예상을 뛰어넘는 성공을 거두자 조승우가 공연하는 날짜의 표는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워졌고 차선으로 류정한의 공연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오페라의 유령의 라울역으로 알려진 배우였지만 그의 공연을 본 적이 없던 나는 지킬과 하이드라는 이중적인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된 게 사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까다롭고 어렵기로 정평이 난 이 역할은 모든 남자 배우들이 가장 하고 싶어하는 역할인 동시에 최고의 뮤지컬 배우조차 섣불리 도전하지 못할만큼 힘든 역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블 캐스팅인 조승우에 대한 찬사가 같은 인물을 연기해야하는 배우 입장에서는 더욱 부담이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그의 노래는 들어본 적이 있지만 연기는 본 적이 없었던 터라 류정한이란 배우가 검증된 가창력만큼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 예매를 해두고도 취소를 해야하나 망설였다.

그러나 예매해둔 자리가 워낙 명당이었던데다 지킬앤 하이드에 푹 빠져 하루종일 앨범을 듣고 또 듣는 지킬 폐인 생활을 하던 나는 어쩌면 새로운 지킬을 발견할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안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결과만 말하자면...탁월한 선택이었다. 막이 내리고 쏟아지는 기립박수와 누구라 할 것 없이 일어서기 바쁜 관객들의 틈 속에서 나 역시 류지킬의 탄생을 축하하며 손바닥이 시뻘겋게 익는 줄도 모르고 박수를 치고 또 쳤다. 그런 류정한의 이야기가 실렸다니 책을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터뷰 형식으로 이루어진 책이라 그의 대답을 읽는 내내 특유의 입꼬리가 올라간 미소로

쾌활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무대 위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장난기 넘치는 소년같은 모습의 인간 류정한이 들려준 자신의 이야기는 역시 몇장에 담기에는 부족한 듯 해 아쉬움이 남았다. 

  

또 한 사람의 매력적인 배우 정성화. 뮤지컬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개그맨으로 더욱 익숙할 이 배우의 진가 역시 아이러니 하게도 조승우와 함께 시작되었다. 오매불망 기다렸던 맨 오브 라만차의 공연 그리고 예상했던 치열한 예매전쟁에서 실패한 나는 정성화의 공연을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얼굴은 익숙한데 딱히 떠오르는 작품이 없는 이 배우를, 뮤지컬 배우보다 개그맨이란 호칭이 더 익숙한 이 배우의 연기와 노래를 단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사실 영화 한편을 보는 것과 공연 한 편을 보는 것은 큰 차이라 예매에 있어서도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다. 영화야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막말로 돈 날린 셈 치면 된다지만 뮤지컬의 경우 한두푼 하는 것도 아니고 큰 마음 먹고 예매한 공연인데 만족스럽지 못하면 그 속상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솔직히 말해 아..고작 이런 공연 보려고 돈 들이고 힘들게 예매했나 싶은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예매할 때 배우를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영화는 그냥 보고 싶은 이야기를 고르면 되지만 뮤지컬의 경우 한 작품에도 더블 캐스팅, 많게는 트리플 캐스팅까지 나오니 고민은 더욱 심해진다. 두 배우의 인지도가 비슷하면 별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한쪽으로 관객이 몰리게 되고 상대적으로 다른 배우의 공연은 예매율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조승우의 공연을 보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작품에 대한 기대감 하나로 개그맨으로만 알았던 정성화란 배우의 공연을 예매했다. 공연날을 기다리며 예상외의 관객들의 반응에 또 한번 놀랐다. 정성화의 공연을 본 이들은 하나같이 감탄해 마지않았고 정성화의 재발견이란 글들을 보며 다시한번 예매하길 잘했구나 싶어 흐뭇했다. 부푼 기대를 안고 공연날만을 기다린 다는 그날 이후 정성화의 팬이되었다. 이런 보석이 어디 숨어있었을꼬.....아니 왜 여지껏 이런 보석을 몰라봤을꼬..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이지만 궁디팡팡~두드려 주고 싶을만큼 멋진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 뭐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말이 곧 그 사람을 나타낸다고.....그의 인터뷰는 인간 정성화를 담고 있었다. 개그맨으로 알려진 자신이 뮤지컬 무대에서 인정받기까지의 과정과 작품을 대하는 태도 등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그는 훨씬 멋진 사람, 멋진 배우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페포포 기다려
심승현 지음 / 홍익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뽀글뽀글 파마머리의 여린 포포와 순수한 파페를 오랜만에 만났다. 둘의 이야기에는 늘 세상을 아름다워 보이게 하는 힘이 있다. 썩 내키지 않는 일, 나도 모르게 마음이 쓰이는 일까지도 부드러운 그림과 언어로 뽀얗게 감싸준다. 아마도 이런게 오래도록 사랑받는 파페와 포포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어도 사람을 기분좋게 만드는 특유의 분위기는 여전하다. 세월이 가면 잊혀지거나 퇴색되어 버릴만도 한데 시간이 갈수록 더 기다려지고, 그 기다림만큼 반갑기만하다.

 

시간의 흐름에 비례해서 인지 예전보다 약간 성숙해 보이는 파페와 포포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다 보니 가슴 한켠이 짠해졌다.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가슴을 울리는 이 책에는 생각보다 단단한 힘이 있었다. 실화라서 더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도 있었고 일상의 경험을 통해 공감을 자아내는 이야기도 있었다. 때론 익히 알려진 일화나 영화 속 이야기가 그림에 녹아들어 새롭게 다가왔고, 귀여운 장난감이 마치 살아있는 듯 생동감있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여러 에피소드들 중에서 마음을 울리고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도 여럿 있었다. 결혼 한지 백일밖에 지나지 않아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불치병으로 시력을 잃게 된 개그맨 이동우씨의 이야기도 그 중 하나였다. 천안에 사는 40대 남자가 그 사연을 듣고 자신의 눈을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기쁜 마음으로 달려간 이동우씨는 눈을 기증받지 않고 돌아왔다고 한다. 왜 그냥 돌아왔냐는 물음에 이동우씨는 "이미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분은  저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주셨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한다. 까닭인 즉, 눈을 기증하겠다던 남자는 사지를 못쓰는 근육병 환자였다. 오직 성한 곳은 눈 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P.60   나는 하나를 잃고 나머지 아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분은 오직 하나 남아 있는 것마저 주려고 하셨습

         니다.  어떻게 그걸 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P.142  마음이 지어낸 괴물에 무릎 꿇지 않는 것, 절망 앞에서 호들갑을 떨며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 하지 않는 것,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겁을 먹으며 주저앉을 필요는 없다는 것......

 

참 기분좋은 만남이었다. 파페와 포포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가만히 귀기울이다 보니 마음 한켠이 상쾌해지는 기분이었다. 봄날의 햇살처럼 따뜻하고 환한 기운이 듬뿍 담긴 책과 보낸 하룻동안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리를 떠다녔다. 마음에 남는 여운이 가실때 쯤 파페와 포포가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길 기다려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촌마게 푸딩 2 - 21세기 소년의 달콤한 시간 여행
아라키 켄 지음, 미지언 옮김 / 좋은생각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보들보들, 몰캉몰캉 생각만으로도 입에 넣는 순간의 기분좋은 식감이 떠오르는 듯한 달콤한 푸딩!

예전에 일본에 잠시 다녀온 뒤 가장 생각났던 음식은 화려한 스시도 든든한 라멘도 아닌 바로 고로케와 푸딩이었다. 추운 겨울 일본에 머무는 동안 며칠을 매일같이 고로케를 먹겠다는 일념하나로 친구들과 달려갔던 기억, 집에 가면 부모님께도 꼭 맛보여드리겠다는 생각에 돌아갈 준비를 하며 제일 먼저 편의점에 가서 푸딩을 잔뜩 샀던 기억이 난다. (부모님 입맛에는 별로 안맞으셨던지 결국에는 거의 내 뱃속으로 들어가버렸지만 말이다.)

나를 사로잡았던 달달한 푸딩. 단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처음 먹어본 푸딩의 맛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유명한 가게에서 파는 푸딩도 아니었고 그저 아무 편의점에나 들어가면 살 수 있는 흔한 푸딩이었는데도 왜그리 꿀맛이던지...입에 넣으면 어느새 사라져버리는 야들야들한 푸딩은 일본에 다시한번 가보고 싶은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그만큼 내게는 푸딩의 첫 맛이 인상적이었기에 그때 먹어본 푸딩과 똑같은 모양이 그려진 이 책이 눈에 번쩍 들어온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책을 읽을수록 야스베와 도모야가 최고의 푸딩을 만들기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지쇼안과자점의 푸딩이 입 속에 그려지는 듯 했다.

 

촌마게 푸딩 1권을 읽지 못한 상태에서 2권을 받아들어 사실 걱정이 약간 앞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1권의 내용이 어느정도 언급되어 있어 별 무리없이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1권에서 에도시대 사무라이 야스베가 어느날 갑자기 타임슬립으로 현대에 떨어져 도모야와 도모야의 엄마를 만났다면 2권에서는 반대로 도모야가 에도시대에 떨어진다. 도모야는 직감적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야스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야스베를 찾으려던 도모야는 이상한 복장으로 위험에 처하게 되지만 우연히 만난 린타로와 센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이후 도모야는 센을 따라 간 가부키 공연장에서 최고의 배우 에비조의 눈에 들어 가부키에 입문하게 되고 여성스런 분위기로 큰 인기를 끌게된다. 도모야는 자신의 인기에 취해 신문인터뷰에서 서양문물을 개방해야 한다는 위험한 발언을 하고 이로인해 또다시 위험에 처한다. 서양문물의 유입을 철저히 막고 있던 에도시대 사람들에게 도모야의 염색한 머리와 옷차림, 휴대폰과 시계같은 정체모를 물건들은 의심을 사기 충분하다. 도모야는 결국 감옥으로 끌려가고 그곳에서 생각치도 못했던 야스베를 만나게 된다. 야스베는 에도시대로 돌아와 사무라이를 그만두고 과자점을 열기위해 노력하던 중 빚어진 오해로 인해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그는 강도높은 고문을 여러차례 견뎌내며 감옥 안 사람들에게 신이라 불리고 있었다. 도모야는 유배를 갈 뻔하지만 다행히 풀려나 야스베의 석방을 위해 노력하고 마침내 야스베의 목숨을 건질 단 한번의 기회를 얻는다. 누구도 맛보지 못한 최고의 푸딩을 만들어 에도시대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것이 야스베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만 만약에 실패한다면 살아남을 수 없는 위험한 제안이기도 하다. 어쩔 수 없이 이를 받아들인 야스베와 도모야. 최고의 푸딩을 만들기 위해서는 두유의 비린 맛을 없애야만 한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결전의 날, 과연 도모야와 야스베는 푸딩을 완성시키고 야스베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까. 그리고 도모야는 무사히 현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타임슬립이라는 진부한 설정을 유쾌한 에피소드와 매력적인 캐릭터들로 시종일관 흥미롭게 풀어낸 촌마게 푸딩2. 기대이상으로 달달하고 맛있는 이야기였다. 시공을 초월한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은 언제봐도 즐겁고 설렌다. 비록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임을 알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책을 통해 상상을 펼칠 수 있어 더 흥미로운게 아닌가 싶다. 이미 많은 이야기들이 타임슬립을 다루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칠 수 없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책을 통해서나마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것이리라. 많은 시간이 흘러 만약에 타임슬립이 가능해지는 날이 온다면 어쩌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거기에 달콤한 푸딩이 어우러진 이야기는 생각보다 유쾌했고 예상보다 참신했다. 일본의 역사를 잘은 알지 못하지만 도모야가 만났던 에도시대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를 알게 되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도모야를 도왔던 린타로가 훗날 이루어 낸 일들은 어쩌면 도모야를 만났기에 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역사와 상상을 버무려 낸 재미...바로 이런 게 이야기의 매력이 아니겠는가. 야스베 아저씨가 만든 지쇼안 푸딩이 먹어보고 싶어 혹시 실재로 존재하는 과자점이 아닐까 검색 해봤지만 아쉽게도 이 역시 책 속에만 존재하는 곳이었던 모양이다.  허구임을 알면서도 이야기 속에 빠져들었던 것은 아마도 에도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녹인 마성의 푸딩, 지쇼안 푸딩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보엄마 1 - 영주 이야기, 개정증보판
최문정 지음 / 다차원북스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240  "....내가 엄마를 세상에 묶어 두는 닻이라고 했었나? 그런데 나는 내가 엄마를 가두고 있는 감옥처럼 느껴졌어. 나 때문에 돈 버느라 힘들고, 나 때문에 끔찍한 결혼생활 버티느라 아프고....그래. 어쩌면 엄마 말처럼 내가 엄마의 닻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닻이 너무 무거우면 배는 아무데도 못 가니까. 그러니까 이젠 조금 가벼운 닻이 될게. 엄마가 바다로 나갈 수있도록." 

 

마지막 장을 덮고 난 후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불행을 넘어선 불행에 차마 불행이란 단어를 입에 담기조차 망설여지는 이야기...그 여운이 오래도록 가시질 않아 힘들었다. 시간이 지나자 서평을 어떻게 작성해야 세 모녀의 사랑 앞에 내가 느낀 감정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스러웠다. 닻별이와 닻별의 엄마 영주, 그리고 영주의 엄마인 선영까지.. 세사람은 서로에게 상처인 동시에 서로가 서로를 세상에 붙잡아두는 닻이었다. 영주에게는 닻별이 세상을 살아야 하는 이유였고, 선영에게는 그런 영주가 자신의 존재이유였다. 모질다 못해 신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힘든 삶 속에서 그녀들이 견뎌야 했던 상처가 얼마만큼인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그런데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아픈 이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졌다니 나 또한 신이 원망스러웠다.

 

강간당해 영주를 낳고는 미쳐버린 영주의 바보엄마 선영, 언니인줄 알았던 선영이 실은 자신의 엄마였음을 알게 된 후 어떤 호칭으로도 부를 수 없어 마음의 문을 닫은 영주, 그런 영주가 자신을 둘러 싼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치듯 결혼한 후 결코 엄마같은 엄마는 되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낳은 딸 닻별, 그런 두 사람의 상처를 그대로 물려받아 열살이란 나이에 우울증을 앓고 있는 어린 닻별. 세 모녀의 상처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기억나지도 않을만큼 그녀들의 줄곧 삶을 따라다녔다.

 

어린 시절, 우연히 듣게 된 친척들의 수근거림으로 자신이 선영의 동생이 아닌 딸임을 그것도 사랑의 결실이 아닌 범죄의 결실로 생겨난 딸이었음을 알게 된 영주는 그제서야 모든 의문의 풀렸다. 늘 의아했다. 늦둥이로 귀여움을 독차지해야 할 자신이 왜 늘 천덕꾸러기로 미움을 받는지, 어째서 선영을 제외한 가족들이 모두 자신을 멀리하는지도....어쩌다 모인 친척들이 자신을 흘깃대며 지었던 까닭모를 야릇한 미소의 의미를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그저 늦은 나이에 자신을 낳은게 민망해서 엄마라 부르지 못하게 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엄마가 실은 외할머니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모든 것이 이해가 갔다. 엄마라고 부를 때마다 매를 맞으면서도 꿋꿋하게 엄마소리를 포기하지 않던 영주는 그 의문이 풀린 후 더이상 엄마라는 말도 언니라는 말도 입 밖에 꺼낼 수가 없었다.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가족이란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 싶었던 영주는 대학도 졸업하기 전 결혼한 후 닻별을 낳는다. 혹시나 하는 우려와 달리 닻별은 아이큐 측정이 어려울만큼 뛰어난 천재로 태어났지만 열살이 되자 세상을 놓아버리려 자살을 시도 할 정도로 심각한 우울증을 앓게 된다. 영주가 선영의 맹목적인 사랑이 무서웠던 것처럼 닻별 또한 영주의 사랑이 갑갑하고 부담스러운 동시에 한순간에 사라지지 않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양심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영주의 남편은 수없이 많은 여자들과 바람을 피고 뻔뻔하게도 이혼을 요구한다. 그리고 영주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엄마라고 불러야할지 언니라고 불러야할지 모를 그녀를 데리고 가라는 전화였다. 강간으로 인한 충격에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던 선영을 외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외삼촌들은 모두 외면했고 영주는 선영을 병원에 입원시켰다. 그렇게 10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그녀의 병이 모두 나았으니 데려가는 전화에 영주는 선영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다. 영주에게는 차갑게만 대하던 닻별이 선영과 스스럼없이 시간을 보내는 모습에 영주의 닫힌 마음은 조금씩 열리는데 이제 조금씩 행복해지려는 영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시한부 선고였다.

 

p.222  그만두고 싶었다. 닻별이가 자살 시도를 할 때마다 빌었다. 그만하고 싶었다. 남편이 바람피울 때마다 빌었다. 차라리 다 그만두게 해 주세요. 내 안에 갇혀있는 엄마가 생각날 때마다 빌었다. 모두 그만두고 싶어요. 다른 기도는 안 들려도 그 기도는 들렸니 보다. 그 생각에 우스웠다. 신은 있을지도 모른다. 미친 엄마 대신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는 엄마였으면, 천재가 아니라도 좋으니 밝고 건강한 딸이었으면...내 다른 기도는 다 못들었어도 그것만은 들은 모양이었다. 제발 소름끼치는 이번 생을 그만두게 해 주세요. 신에게는 그 기도만 들린 모양이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와 다양한 방식의 사랑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어떤 사랑도 자식을 향한 엄마의 사랑과는 견줄 수가 없다. 그녀들은 사는 내내 자식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살아가다 죽는 순간에도 남아있을 자식을 걱정한다. 그녀들의 인생에 어느날 갑자기 생겨나 자식이란 이름으로 온갖 생채기를 내고 헤집어도 오로지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덮어주고 용서해준다. 사는 내내 쏟았던 사랑만으로도 부족한지 죽어가면서도 자식을 생각한다.  

 

엄마를 이야기한 책들의 대부분이 슬프고 아프다. 가슴을 먹먹하게 울리는 그 숙연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 책에는 두 엄마가 등장한다. 그래서 슬픔도 더욱 컸다. 영주는 닻별의 엄마인 동시에 선영의 딸이었고, 닻별을 보며 자신을 향한 선영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이제는 엄마를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는데 그걸 깨달은 순간 이별이 다가왔다. 영주를 통해 세 모녀의 살아온 시간들을 지켜보는 내내 가슴에 돌맹이를 얹은 것 마냥 아파왔다. 이제는 모두가 행복해져도 좋으련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당연하다 못해 지겹기까지 한 평범한 가족이 이들에게는 끝까지 허락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 사랑이 너무나 커 잊는 것조차 쉽지 않겠지만 부디 떠나간 이에 대한 후회와 아픔은 버리고 고마움과 사랑만을 남겨두길 바라본다.

 

p.267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이 하는 거짓말일 터였다.자장면보다는 찬밥이 훨씬 맛있다고,새 옷보다는 헌 옷이 편해서 좋다고,구멍 난 양말은 바람이 잘 통해 좋다고...말도 안 되는 그 거짓말들을 난 당연하게 받아들였다...(중략)...우스웠다. 어쩌면 한 번도 그 쉬운 거짓말들을 의심하지 않았을까. 왜 엄마는 그런 손해나는 거짓말을 해야만 했을까.이유는 간단명료했다. 엄마니까. 그게 답이었다.그 많은 질문들의 답은 하나였다. 엄마니까. 하지만 내 머릿속엔 아직도 답을 알 수 없는 질문 하나가 맴돌고 있었다. 엄마는 내게 얼마나 얼마나 더 많은 거짓말들을 했을까. 나를 위해 얼마나 더 많은 눈물을 삼키며 거짓말을 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