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어 1 줄리애나 배곳 디스토피아 3부작
줄리애나 배곳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이토록 끔찍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세기말의 이야기를 다룬 문학작품을 처음 읽어본 것도 아니건만 예상을 뛰어넘는 상세한 묘사와 현실감을 불어넣는 설정들이 놀랍고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책을 읽기 전만 해도 지구의 대폭발이란 설정은 그다지 새롭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래선지 기껏해야 뿌연 안개 속에 어둠으로 뒤덮인 황무지 정도를 상상했던 나는 책에 몰입할 수록 그 안에 그려진 지구의 모습과 살아남은 자들의 현실에 책장을 넘기기가 망설여졌다.

 

지구의 대폭발이 지나간 자리, 그곳에 더이상 정상적인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검은 구름이 뿌리는 검은 비, 먼지와 재만 남은 어두운 공기, 그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처절하게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 끔찍한 재앙은 인간의 육체마저 비정상적으로 변화시켰다. 대폭발 당시의 엄청난 열과 방사능으로 인해 사람들은 주변의 모든 것들과 융합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사물이나 동물, 혹은 또다른 인간과 융합되어 버린 인간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이런 설정을 직접적으로 묘사한 작가 덕분에 장면장면들이 눈앞에 그려졌고 마치 활자가 아닌 영상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든 예외는 있는 법. 이렇듯 끔찍한 상황속에서도 온전히 살아남은 자들이 있었다. 바로 돔안의 사람들이었다. 퓨어라 불리는 그들은 대폭발에 노출되지 않아 신체의 융합이라는 저주에서 비껴갈 수 있었다. 선택받은 돔 안의 사람들은 절망에 빠진 바깥세상의 사람들에게 한 장의 쪽지를 남기지만 희망의 메세지는 시간이 흘러 더이상의 아무런 희망도 되지 못한다.

형제자매여, 우리는 여러분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압니다.

언젠가 우리는 돔에서 나와 여러분과 평화롭게 공존할 것입니다.

 다만 지금은 멀리서 사랑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대폭발로 인해 들고 있던 인형과 손이 융합된 소녀 프레시아는 변해버린 세상에서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아가지만 이마저도 허락된 날이 얼마남지 않아 두려워한다. 열여섯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16세가 되면 강제로 혁명군에 끌려 가게 될 프레시아를 지키기 위해 할아버지는 프레시아를 캐비닛안에 숨어 살도록 한다.

한편, 돔안에 사는 소년 패트리지는 코딩에 거부반응을 일으켜 검사를 받게 된다. 패트리지는 폭발 당시 미처 돔안으로 들어오지 못해 바깥세상에서 죽음을 맞은 것으로 알려진 어머니가 바깥세상에 살아계실지 모른다는 의문을 품는다. 결국 어머니를 찾고자 결심한 패트리지는 돔의 설계도를 발견하고 탈출을 감행한다. 마침내 탈출에 성공한 패트리지는 바깥세상에서 우연히 프레시아와 마주친다. 돔 안의 소년과 돔 밖의 소녀앞에 기다리고 있는 운명은 무엇일까.

 

디스토피아문학, 판타지문학이란 장르로 이 소설을 설명하기는 뭔가 부족하다. 다소 비현실적이게 느껴지는 배경을 너무도 현실적이고 상세히 묘사해 놓은 덕분에 지구의 멸망이 현실이 될 지 모른다는 두려움마저 들게 했다.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을 보게 되리라는 진부한 표현이 뇌리를 스칠 정도로 살아남은 자들과 그들이 사는 공간이 잔인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우울한 분위기와 스릴넘치는 스토리 전개, 탄탄한 구성은 시간이 지날 수록 대폭발 후의 세상으로 나를 끌어들였다. 소년과 소녀의 만남을 시작으로 점점 더 탄력이 붙는 이야기는 페이지의 압박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게 만들었다. 초반에 생각치 못한 직설적인 묘사로 인해 받은 충격이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이야기 속으로 몰입하기가 수월했다.  지금껏 읽었던 세기말이나 종말을 다룬 소설 중에서도 특히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야기로 오래도록 기억되리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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