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별
최문정 지음 / 다차원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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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정 작가의 글을 처음 접한 건 바보엄마를 통해서였다. 간결하면서도 쉬운 문체에 녹아든 진심이 느껴져서 그녀의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졌다. 그런 저자의 신작이 아빠를 주제로 한 이야기라 더욱 기대가 됐고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로 눈물을 쏙 뽑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보엄마로 높아진 기대치를 충족시키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은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등장인물의 설정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민이 사랑한 남자가 꼭 재벌일 필요가 있었나 싶다. 드라마에서 심심하면 등장해 식상하기 짝이없는 재벌3세라는 설정을 굳이 책에서까지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약간의 막장과 통속적인 내용도 그렇다. 바보엄마에서 영주의 남편도 악질 중에 악질이었는데 이번 아빠의 별에서 수민의 남편 역시 좋은 남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재벌 3세다운 몸에 밴 매너에 한없이 다정해보이는 모습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일 뿐 실상은 달랐다. 본모습은 정작 자신과 다른 평범한 삶을 이해하려 하지도 이해하고 싶어하지도 않는 이기적인 인간일 뿐이었다. 물론 수민의 삶과 아버지와의 관계회복을 위해서 수민의 남편이 좋은 인물로 그려질 수는 없었다는 건 알지만 그 배경이 어째서,왜,굳이 하필이면 재벌이었어야 했는지...더 나은 설정을 할 수는 없었는지 아쉽기만 했다.

 

세계에서 인정받는 프리마 발레리나인 수민과 군인출신의 고지식하고 냉정한 아버지.

다정한 부녀사이와는 거리가 먼 서먹하고 어색하기만한 아빠와 딸이 소설에만 있는 건 아니다. 친구처럼 지내는 엄마와 딸이 많은데 비해 아빠란 존재는 어쩐지 다가가기 어렵게 느껴지는게 사실이다. 나 역시 나이가 들면서부터 아빠에게 속내를 털어놓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서운함을 느낄 법도 하다. 세상 모든 아버지들이 겪는 서운함일테지만 책을 읽을 수록 죄송한 마음이 든 것은 수민이 아빠를 대하는 모습에서 내가 보였기 때문인 듯 하다.

 

아버지는 뉴욕에서 떨어져 지내는 수민이 걱정되지만 수민은 그런 아버지의 연락을 반가워 하기는 커녕 피하기 바쁘다. 그러나 수민을 불효막심한 딸이라고 욕할 수만은 없다. 수민과 아버지의 거리가 멀어진 것은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들 때문이고 아버지 역시 이를 알기에 수민에게 섭섭함만큼 미안함이 크다.

수민은 일찍이 이 세상은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가 군인이라 관사에서 살던 수민은 아버지보다 계급이 높은 다른 집 아이에게 잘못한 것 없이 용서를 빌어야 했고 그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그레서 오로지 실력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발레리나가 되었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발레를 위해서라면 개인적인 시간도 사랑도 모두 포기할 수 있던 수민이었지만 태훈을 만난 뒤 급속도로 그에게 빠져든다. 예상치 못한 임신사실을 안 후 수민은 목숨과도 같았던 발레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태훈네 가족이 급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하자 수민의 아빠는 딸을 미혼모로 만들 수 없어 수민을 장교인 친구에게 입양시키면서까지 수민을 결혼시킨다. 그러나 수민의 결혼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아빠는 수민이 행복하지 못한게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괴롭다. 아빠를 오해한 채 오랜 시간 마음을 닫고 살아온 수민이 비로서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고 마음을 여는 결말이 따뜻하고 감동적으로 그려졌다. 

 

최문정 작가의 글은 언제나 간결함 안에 따뜻함을 품고 있어서 좋다. 어려운 표현을 잔뜩 늘어놓는 것 보다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글을 쓰는게 훨씬 어렵다는데 최문정 작가야 말로 쉽고 좋은 글을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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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너 매드 픽션 클럽
헤르만 코흐 지음, 강명순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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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되면 누구나 자식의 일에는 아무것도 안보이고 안들리게 되는 걸까? 그래서 정상적인 사고회로가 멈추게 되는 걸까? 이 책을 읽고 난 후 멀쩡한 사람도 한순간에 싸이코로 만들어버리는 모정이 참으로 대단하다 못해 징그럽게 느껴졌다. 이런 그릇된 모정으로 순간의 위기를 모면할 수는 있을 지언정 아이들을 지킬 수 없을 것이다. 언젠가 나도 아이의 엄마가 되겠지만 절대로 자식을 저렇게 키우지는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혹시 책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저런 부모는 되지 말자 마음먹게 만드는게 작가의 의도였다면 충분히 성공했다고 보인다.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데 엄마 혹은 아빠라는 자리가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되지만 제 자식의 일이라면 물불안가리고 나서는 엄마들이 많은게 현실이다. 남의 자식 눈에 흐르는 눈물은 안보이고 오로지 내 자식 얼굴에 묻은 티끌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는 엄마들....금쪽같이 귀한 내새끼가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인 살인자임을 알게된다면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이 책 속 미헬의 엄마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애석하게도 장담하지 못하겠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내가 세상을 너무 비뚫어진 시선으로 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책장을 덮은 뒤 허탈함에 사로잡혀 소설은 소설일 뿐 오해하지 말자고 흥분을 가라앉히려 해도 그간 언론에 심심찮게 등장한 여러 사건들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돈다.

 

이 모든 일은 15살 소년 미헬이 노숙자를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에서 시작된다. 우연히 TV뉴스를 통해 노숙자 폭행사망 사건의 범행 당시 CCTV를 보게 된 미헬의 아빠 파울은 화면을 보자마자 범인이 자신의 아들임을 알지만 누구에게도 내색하지 않는다. 그리고 미헬의 휴대폰 속에 저장된 또다른 영상들로 이런 일이 한번이 아니었을을 알게 된다. 마음 속에 무거운 짐을 지닌 채 형네 부부와의 내키지 않는 저녁 식사 자리에 참석한 파울과 그의 아내. 겉으로 보기에는 더없이 완벽하고 평온해 보이지만 참석한 이들은 저마다 마음 속에 폭탄을 안고 있다. 가벼운 에피타이저로 시작된 식사가 무르익는 가운데 드디어 폭탄을 꺼내놓는 두 부부. 마침내 밝혀지는 진실을 앞에 둔 부모들의 선택 앞에서 독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 차라리 현실이라면 마음껏 비난이라도 퍼붓겠건만 소설을 두고 화를 내기도 뭐하니 말이다.

 

작가는 인물의 심리상태와 행동, 과거에 있었던 작은 일들을 통해 이들의 속마음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내린 너무도 비정상적인 선택과 결론이 의아하다기 보다 납득이 되었던 것은 바로 작가가 보여준 과거의 일들 덕분이었다. 예를들어 파울의 아빠는 완벽한 도덕의식과 철저한 준법정신의 소유자 처럼 보이지만 이미 이전에도 아들의 일에는 상식을 벗어나는 행동을 한 적이 있다. 아들 미헬의 상점의 유리창을 깨자 미헬을 데리고 상점으로 가지만 상점주인이 미헬을 나무라고 훈계를 늘어놓자 격분해서 상점 주인을 때려 눕힌 것이다. 적반하장을 넘어선 아빠의 행동에 미헬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리고 그런 아빠의 행동을 보면서 자라온 미헬의 가치관이 어떻게 자리잡았을지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아들의 휴대폰을 몰래 보는게 잘못된 행동이란 걸 아는 사람이 아들이 상점의 유리창을 깬 게 잘못이란 건 모르는 모양이다.

다시 저녁식사자리로 돌아가 두 부부를 살펴보면 아까의 품위있 인물들은 온데간데 없고 하는 모양새가 가관도 아니다. 한술 더떠 파울의 아내는 이미 사건이 발생한 바로 그 직후 자신의 아들이 한 끔찍한 짓을 알았단다. 미헬이 직접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자 아들의 잘못에 좌절하고 이를 꾸짖기는 커녕 아들이 벌인 일을 합리화로 일관하고 편들기 바쁘다. 미헬이 그 노숙자를 죽인게 노숙자 주제에 현금 인출기를 차지하고 그 안에서 자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놀라운 사고방식에 입이 떡 벌어졌다. 아무리 인간이란 동물이 자기 좋을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이기적인 족속이라지만 이쯤되면 정신과 치료가 의심되는 발상 아닌가. 왜 하필 그 안에서 자고 있어 자기 아들이 노는데 필요한 돈을 찾는데 방해가 되냐 이 말이다. 그러므로 잘못은 현금인출기 안에서 자고 있던 노숙자에게 있고 미헬로서는 어쩔 수 없이 한 행동이었으며 고로 고작 15살 밖에 되지 않은 자기 아들 인생을 한낱 노숙자가 망치는 걸 두고 볼 수는 없다는 게 미헬 엄마의 입장이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아직 정상적으로 생각이란 걸 하는 사람도 있긴하다. 미헬의 범행에 동참했던 또다른 소년의 아버지이자 파울의 형인 동시에 유력한 차기 시장후보인 세르게가 바로 그 정상인이다. 파울은 식사 내내 자신의 자격지심을 드러내는 듯 형을 못마땅해 하고 그의 단점을 부각시키려 노력하지만 영화를 쭉쭉빵빵한 여배우를 감상하기 위해 보고 비싼 식사를 고집하며 사람들에게 가식적인 미소나 날리는 그 형이 적어도 도덕적인 면에서는 훨씬 정상의 범주에 속하는 인물임을 인정해야 한다. 당선이 거의 확실시 된 시장 자리를 포기하고 아들이 자신이 저지른 범행을 뉘으칠 수 있도록 밝히겠다는 어려운 결정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세르게의 이같은 결정은 자식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에 눈 감고, 귀 닫고, 정신줄까지 놓아버린 두 엄마와 한 아빠에 의해 좌절된다. 누굴 원망하겠는가. 남편의 결정을 응원하지는 못할 망정 겁장이라 힐난하며 동생 내외에게 말려달라 매달리는 여자를 부인으로 둔 것도 그의 선택이라면 선택인 것을. 누가 그 자식에 그 부모 아니랄까봐 말도 안되는 일을 벌인 아이들의 부모답게 말도 안되는 결과로 이어진 저녁식사 자리는 그렇게 마무리 된다. 그나마 세르게의 아들은 죄책감에 시달리기라도 하지, 파울의 아들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조차 모르니 시간이 지나 어떤 식으로 살아갈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근래 읽은 책 중에서 가장 개운하지 않고 뒤끝이 오래남는 책이었다. 몇년 전 국민을 경악케 했던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의 피해 여학생이 전학간 학교를 찾아가 자기 아들의 합의서를 써내라며 난리를 친 가해 학생들의 부모들이 떠올랐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며 넘길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니 이런 책도 나온 거겠지 싶어 씁쓸하다 못해 기분이 불쾌해졌다.

혹시 주변에 자기 자식만 최고로 알고 잘못을 해도 꾸짖을 줄 모르는 막장 부모가 있다면 조용히 이 책을 선물해 보는 건 어떨까? (하긴 그런 사람들이라면 남에게 비추어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것도 못할테니 소용 없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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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남았다면 - 죽기 전에 후회하는 7가지
카렌 와이어트 지음, 이은경 옮김 / 예문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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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남은 날이 일주일 밖에 없다면...나는 어떤 마음으로 남은 시간을 보내게 될까?

남은 가족들의 슬픔을 염려하고, 이루지 못한 꿈을 아쉬운 하고, 갚지 못한 부모님의 은혜를 가슴 아파하며 지나온 시간들을 후회하게 될 것 같다. 왜 그때는 남은 시간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나 하고 말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나를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날들이 매일 아침 똑같이 찾아올거라 의심 없이 믿는다. 아느날 갑자기 의사가 내리는 시한부 선고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일어나는 남의 일쯤으로 여긴다. 나 역시 다를 건 없었다. 어느날 갑자기라는 것은 내게는 존재하지 않을것 같고 죽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사는 삶이 어떨지 막연함 이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 책은 25년간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들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온 한 호스피스 의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는다. 만약 당신의 삶에 일주일이 남았다면 행복하게 이 세상과 이별할 수 있느냐고...

죽기 전에 후회하는 7가지에서 나는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만약 지금의 내게 일주일이 남았다면 나는 이 모든 것들이 아쉬워 내 삶과 제대로 된 작별인사를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아직 죽을만큼 마음껏 사랑해 보지 못했고 마음에 담아둔 미움을 버리지 못해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 매 순간 다가올 일들을 걱정하느라 마음놓고 행복을 만끽하지도 못했으며 누군가의 잘못에 마음을 열어 포용해 준 적이 있었는가 하는 질문에 떠오르지는 사람이 없다.  여유로운 삶과는 거리가 멀었고 있는 그대로에 감사하며 살기보다는 내가 처한 현실을 원망하며 아등바등 살기 바빴다. 무엇보다 한 번뿐인 인생을 열정적으로 살지 못하고 그냥저냥 시간이 흐르는대로 살아왔다. 이 모든 항목에 단 한가지도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는 지금이 내게 남은 시간을 소중히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임을 잊지 말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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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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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반쯤 읽다 책장에 꽂아둔 전적이 있어서 그런지 이 책이 쉬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그러나 책의 첫부분이 시장과 도덕의 그 모호한 관계에 대한 다양한 예로 시작하고 있어 생각보다 빠르게 읽혔다. 돈, 시장, 경제와 관련된 책이니 어려울거란 당연한 예상을 비껴가는 기분좋은 출발이었다. 

 

자녀의 명문대 입학허가 - 가격미정

가격이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일부 명문대 관계자가 <월스트리트 저널>에 밝힌 사실에 따르면, 학생이 자격미달이어도 부모가 부유해서 상당한 금액을 대학에 기부한다면 입학을 허락한다고 한다. P.21

이 책에 제시된 예시 중 하나다.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있어왔던 분편한 진실이기도 하다. 기부금 입학...소위 명문고,명문대로 불리는 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자격 조건으로 성적 대신 돈을 내는 관행은 공공연이 알려져 있다. 그 방법도 다양해서 잔디를 깔아준다는 말부터 하프와 같은 고가의 악기를 기증한다는 말까지 각양각색이다. 특히 예체능의 경우는 기부금 입학이 아닌 교수들에게 뒷돈을 건네고 입학을 청탁하는 비리를 간혹 뉴스를 통해 접하기도 한다. 다른 학생들과 같은 기준을 만족시키지는 못하지만 기부를 통해 학교시설이나 장학제도에 이바지 하니 좋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 사실 위의 경우는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유독 좋은 대학이 인생의 질을 결정한다고 여겨 교육열에 불타는 대한민국의 부모들에게는 예민한 문제일 것이다.

이밖에도 유명한 공연의 표를 사기 위해 웃돈을 얹어주는 암표거래, 남들보다 빨리 입장하기 위해 새치기를 하며 돈을 지불하는 행위 등은 선착순이라는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할 윤리가 시장의 윤리로 변화하고 있는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돈이면 뭐든 다 가질 수 있고, 돈만 내면 다른 사람들 보다 빨리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발상은 언뜻 생각하면 어떤 일의 순서를 정하는데 가장 공정하고 빠른 방법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도덕의 결함이라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숨겨져 있다.

 

일을 결정하는데 있어 '돈만 내면 된다' 내지는 '내가 돈을 더 냈으니 선점하는게 당연하다'는 식의 생각은 뒤집어 보면 돈을 내지 못하거나 적게 낸 사람들은 그 돈의 액수만큼 자격을 상실한다는 말과도 같다. 이 사회 어디에나 어두운 곳은 있게 마련이지만 돈과 관련된 경우 특히나 사람들은 도덕이나 윤리를 마음 속에서 밀어내기가 쉽다. 내가 웃돈을 지불함으로써 차례에서 밀려난 상대방의 입장을 잊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내가 낸 웃돈이 도덕적으로 결여되어 있기 때문임을 알려주는 명백한 증거이다.

이런 경우 돈을 낸 사람들은 지불한 돈에 대한 댓가로 기회를 얻었으니 공평한 것이고 그로 인해 얻은 기회를 타당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기회를 돈을 낸 사람이 가져갔으니 불평등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불평등과 부패는 이렇듯 돈으로 모든 것을 사고 팔 수 있다는 현대인의 사고방식이 낳은 결과물이다. 우리가 말하는 빈익빈 부익부의 대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책은 사회가 지켜야 할 시장의 역할과 사회 구성원들이 잊지 말아야 할 도덕적 가치를 말한다.

최소한의 도덕성이 담긴 거래를 하고 내가 지불란 돈에 윤리가 빠져있지는 않은지 고민한다면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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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러리엄
로렌 올리버 지음, 조우형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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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축복받아 마땅한 일이 아니라 고쳐야 할 질병으로 여겨지는 세상....

말도 안된다 못박기에는 어느정도 수긍이 가는 부분도 있다. 인간의 모든 고통과 좌절을 유발하는 동시에 기쁨과 행복이란 치료약을 선사하기도 하는 근본적인 감정이 사랑이기에 이것만 없으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도, 문제가 되는 일도 없는 통제 가능한 세상이 될 거라는 발상이 가능한 것이다. 사랑만 없으면 만사가 평온할거라는 아주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 된 듯한 이 책은 어쩌면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법한 사랑에 대한 원망과 혼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랑이 치료해야 할 병으로 취급되는 세상에서 산다면 사랑에 의해 울고 웃는 일은 아마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의 배신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고 치정에 의한 살인 같은 극단적이 사건도 더이상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모든 이들에게 주어지는 공평하고 평온한 삶이 기쁨과 행복을 안겨줄 수 있을까? 오히려 사람들은 사랑이란 감정과 함께 사랑이 동반하는 많은 것들을 빼앗기게 될 것이다. 그정도는 평온한 세상을 위해서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고 말하기에는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과 폭격으로 인해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린 도시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다. 그들은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사랑이란 격렬한 감정을 질병으로 규정한다. 만 18세가 되면 누구나 평가를 받아야 하고, 치료 후에는 국가가 정해준 상대와 결혼해 정해준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 심지어 자녀조차 국가가 배당한 인원만 가능하다. 인간의 가장 자연스럽고 기본적인 감정의 자유가 빼앗긴 삶을 별 무리없이 받아들인 사람들은 마치 평온한 삶을 위해서는 그것이 최선이라 생각하는 듯 하다.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야 좋은 집안의 사람과 짝이 되고 그래야만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다.  레나의 엄마는 사랑이란 질병에 감염되어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그 후 레나는 이모집에서 살게 된다. 레나 역시 정해진 법에 따라 평가를 받기 위해 준비하고 레나의 이모는 레나가 엄마처럼 그 병에 걸릴까 염려되어 평가일에 레나가 모범적인 답변을 하도록 몇번이나 다짐을 받는다. 그러나 레나는 마음 속 어딘가에 숨어있던 의문이 고개를 내밀어 생각했던 것과 다른 답변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평가를 망치고 만다. 천만다행으로 평가장에서 일어난 소란 덕에 그날의 평가는 무효가 되고 재평가를 받은 레나는 좋은 점수를 얻어 무사히 배우자를 지목받는다. 레나를 돌봐준 이모의 부유한 가정환경 덕분에 시장의 아들과 결혼하게 된 레나는 평가일에 본 알렉스를 우연히 다시 만나고 그 후로 감정의 소용돌이로 빠져든다. 모든 감정이 통제된 세상에서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한 채 사는 삶이 과연 행복한 것인지 오랫동안 품어왔던 의문과 불신이 사랑이란 감정에 불을 붙이고, 레나와 알렉스는 자신들에게 찾아온 사랑을 지키기 위해 주어진 삶을 버린다. 편안한 인생 대신 자유로운 인생을 꿈꾸며 이들이 택한 길은 위험하지만 그렇기에 더 가치있는 것이었다.

 

가늘고 길게 살고자 한다면 인생에서 사랑을 배제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사랑 때문에 애태울 일도 눈물 흘릴일도 없을테니..그러나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지로 통제하는 것은 곧 인간의 행복 그 자체를 빼앗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한 머리와 마음으로 긴 시간을 살아간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느낄 수 없다면 행복도 없다. 아프더라도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을 살고 있어 다행이다. 

 

 

지금이야말로 평가에 대해 절대로 의구심을 가져서는 안 될 시기인데. 나는 마음속으로 해나를 원망했다. 이건 다 그 애가 밖에서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했기 떄문이다. '정말로 행복해지려면 가끔 불행을 견디지 않으면 안 돼.' '제한된 선택.' '우리는 우리를 위해 선택된 사람들 중에서 선택할 수 있을 뿐이야.'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선택을 해 준다는 게 나는 좋았다. 스스로 선택해야 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누군가가 나를 선택하도록 할 필요가 없다는 점 역시도. 해나 같은 사람에게야 옛날 같은 방식도 괜찮을 것이다...(중략) 해나 같은 사람들이 있는 세상에서 제정신인 남자가 나른 선택하려 들리 없다. 그런 이유로 나는 '승인된 상대'라고 인쇄된 깔끔한 서류를 받아 볼 수 있다는 게 도리어 기뻤다. 아무도 나를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았다.(아주 가끔 누군가가. 단 한 순간이라도 나를 예쁘다고 여겨주길 소망하긴 하지만 말이다.) 설령 내가 눈이 하나밖에 없다고 해도 아무 상관없을 것 같다. P.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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