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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기순 옮김, 김선욱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4월
평점 :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반쯤 읽다 책장에 꽂아둔 전적이 있어서 그런지 이 책이 쉬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그러나 책의 첫부분이 시장과 도덕의 그 모호한 관계에 대한 다양한 예로 시작하고 있어 생각보다 빠르게 읽혔다. 돈, 시장, 경제와 관련된 책이니 어려울거란 당연한 예상을 비껴가는 기분좋은 출발이었다.
자녀의 명문대 입학허가 - 가격미정
가격이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일부 명문대 관계자가 <월스트리트 저널>에 밝힌 사실에 따르면, 학생이 자격미달이어도 부모가 부유해서 상당한 금액을 대학에 기부한다면 입학을 허락한다고 한다. P.21
이 책에 제시된 예시 중 하나다.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있어왔던 분편한 진실이기도 하다. 기부금 입학...소위 명문고,명문대로 불리는 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자격 조건으로 성적 대신 돈을 내는 관행은 공공연이 알려져 있다. 그 방법도 다양해서 잔디를 깔아준다는 말부터 하프와 같은 고가의 악기를 기증한다는 말까지 각양각색이다. 특히 예체능의 경우는 기부금 입학이 아닌 교수들에게 뒷돈을 건네고 입학을 청탁하는 비리를 간혹 뉴스를 통해 접하기도 한다. 다른 학생들과 같은 기준을 만족시키지는 못하지만 기부를 통해 학교시설이나 장학제도에 이바지 하니 좋게 생각해야 하는 걸까? 사실 위의 경우는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유독 좋은 대학이 인생의 질을 결정한다고 여겨 교육열에 불타는 대한민국의 부모들에게는 예민한 문제일 것이다.
이밖에도 유명한 공연의 표를 사기 위해 웃돈을 얹어주는 암표거래, 남들보다 빨리 입장하기 위해 새치기를 하며 돈을 지불하는 행위 등은 선착순이라는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할 윤리가 시장의 윤리로 변화하고 있는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돈이면 뭐든 다 가질 수 있고, 돈만 내면 다른 사람들 보다 빨리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발상은 언뜻 생각하면 어떤 일의 순서를 정하는데 가장 공정하고 빠른 방법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도덕의 결함이라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숨겨져 있다.
일을 결정하는데 있어 '돈만 내면 된다' 내지는 '내가 돈을 더 냈으니 선점하는게 당연하다'는 식의 생각은 뒤집어 보면 돈을 내지 못하거나 적게 낸 사람들은 그 돈의 액수만큼 자격을 상실한다는 말과도 같다. 이 사회 어디에나 어두운 곳은 있게 마련이지만 돈과 관련된 경우 특히나 사람들은 도덕이나 윤리를 마음 속에서 밀어내기가 쉽다. 내가 웃돈을 지불함으로써 차례에서 밀려난 상대방의 입장을 잊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내가 낸 웃돈이 도덕적으로 결여되어 있기 때문임을 알려주는 명백한 증거이다.
이런 경우 돈을 낸 사람들은 지불한 돈에 대한 댓가로 기회를 얻었으니 공평한 것이고 그로 인해 얻은 기회를 타당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기회를 돈을 낸 사람이 가져갔으니 불평등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불평등과 부패는 이렇듯 돈으로 모든 것을 사고 팔 수 있다는 현대인의 사고방식이 낳은 결과물이다. 우리가 말하는 빈익빈 부익부의 대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책은 사회가 지켜야 할 시장의 역할과 사회 구성원들이 잊지 말아야 할 도덕적 가치를 말한다.
최소한의 도덕성이 담긴 거래를 하고 내가 지불란 돈에 윤리가 빠져있지는 않은지 고민한다면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