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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별
최문정 지음 / 다차원북스 / 2011년 11월
평점 :
최문정 작가의 글을 처음 접한 건 바보엄마를 통해서였다. 간결하면서도 쉬운 문체에 녹아든 진심이 느껴져서 그녀의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졌다. 그런 저자의 신작이 아빠를 주제로 한 이야기라 더욱 기대가 됐고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로 눈물을 쏙 뽑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보엄마로 높아진 기대치를 충족시키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은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등장인물의 설정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민이 사랑한 남자가 꼭 재벌일 필요가 있었나 싶다. 드라마에서 심심하면 등장해 식상하기 짝이없는 재벌3세라는 설정을 굳이 책에서까지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약간의 막장과 통속적인 내용도 그렇다. 바보엄마에서 영주의 남편도 악질 중에 악질이었는데 이번 아빠의 별에서 수민의 남편 역시 좋은 남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재벌 3세다운 몸에 밴 매너에 한없이 다정해보이는 모습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일 뿐 실상은 달랐다. 본모습은 정작 자신과 다른 평범한 삶을 이해하려 하지도 이해하고 싶어하지도 않는 이기적인 인간일 뿐이었다. 물론 수민의 삶과 아버지와의 관계회복을 위해서 수민의 남편이 좋은 인물로 그려질 수는 없었다는 건 알지만 그 배경이 어째서,왜,굳이 하필이면 재벌이었어야 했는지...더 나은 설정을 할 수는 없었는지 아쉽기만 했다.
세계에서 인정받는 프리마 발레리나인 수민과 군인출신의 고지식하고 냉정한 아버지.
다정한 부녀사이와는 거리가 먼 서먹하고 어색하기만한 아빠와 딸이 소설에만 있는 건 아니다. 친구처럼 지내는 엄마와 딸이 많은데 비해 아빠란 존재는 어쩐지 다가가기 어렵게 느껴지는게 사실이다. 나 역시 나이가 들면서부터 아빠에게 속내를 털어놓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서운함을 느낄 법도 하다. 세상 모든 아버지들이 겪는 서운함일테지만 책을 읽을 수록 죄송한 마음이 든 것은 수민이 아빠를 대하는 모습에서 내가 보였기 때문인 듯 하다.
아버지는 뉴욕에서 떨어져 지내는 수민이 걱정되지만 수민은 그런 아버지의 연락을 반가워 하기는 커녕 피하기 바쁘다. 그러나 수민을 불효막심한 딸이라고 욕할 수만은 없다. 수민과 아버지의 거리가 멀어진 것은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들 때문이고 아버지 역시 이를 알기에 수민에게 섭섭함만큼 미안함이 크다.
수민은 일찍이 이 세상은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가 군인이라 관사에서 살던 수민은 아버지보다 계급이 높은 다른 집 아이에게 잘못한 것 없이 용서를 빌어야 했고 그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그레서 오로지 실력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발레리나가 되었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발레를 위해서라면 개인적인 시간도 사랑도 모두 포기할 수 있던 수민이었지만 태훈을 만난 뒤 급속도로 그에게 빠져든다. 예상치 못한 임신사실을 안 후 수민은 목숨과도 같았던 발레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태훈네 가족이 급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하자 수민의 아빠는 딸을 미혼모로 만들 수 없어 수민을 장교인 친구에게 입양시키면서까지 수민을 결혼시킨다. 그러나 수민의 결혼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아빠는 수민이 행복하지 못한게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괴롭다. 아빠를 오해한 채 오랜 시간 마음을 닫고 살아온 수민이 비로서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고 마음을 여는 결말이 따뜻하고 감동적으로 그려졌다.
최문정 작가의 글은 언제나 간결함 안에 따뜻함을 품고 있어서 좋다. 어려운 표현을 잔뜩 늘어놓는 것 보다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글을 쓰는게 훨씬 어렵다는데 최문정 작가야 말로 쉽고 좋은 글을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