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너 매드 픽션 클럽
헤르만 코흐 지음, 강명순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부모가 되면 누구나 자식의 일에는 아무것도 안보이고 안들리게 되는 걸까? 그래서 정상적인 사고회로가 멈추게 되는 걸까? 이 책을 읽고 난 후 멀쩡한 사람도 한순간에 싸이코로 만들어버리는 모정이 참으로 대단하다 못해 징그럽게 느껴졌다. 이런 그릇된 모정으로 순간의 위기를 모면할 수는 있을 지언정 아이들을 지킬 수 없을 것이다. 언젠가 나도 아이의 엄마가 되겠지만 절대로 자식을 저렇게 키우지는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혹시 책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저런 부모는 되지 말자 마음먹게 만드는게 작가의 의도였다면 충분히 성공했다고 보인다.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데 엄마 혹은 아빠라는 자리가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되지만 제 자식의 일이라면 물불안가리고 나서는 엄마들이 많은게 현실이다. 남의 자식 눈에 흐르는 눈물은 안보이고 오로지 내 자식 얼굴에 묻은 티끌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는 엄마들....금쪽같이 귀한 내새끼가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인 살인자임을 알게된다면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이 책 속 미헬의 엄마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애석하게도 장담하지 못하겠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내가 세상을 너무 비뚫어진 시선으로 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책장을 덮은 뒤 허탈함에 사로잡혀 소설은 소설일 뿐 오해하지 말자고 흥분을 가라앉히려 해도 그간 언론에 심심찮게 등장한 여러 사건들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돈다.

 

이 모든 일은 15살 소년 미헬이 노숙자를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에서 시작된다. 우연히 TV뉴스를 통해 노숙자 폭행사망 사건의 범행 당시 CCTV를 보게 된 미헬의 아빠 파울은 화면을 보자마자 범인이 자신의 아들임을 알지만 누구에게도 내색하지 않는다. 그리고 미헬의 휴대폰 속에 저장된 또다른 영상들로 이런 일이 한번이 아니었을을 알게 된다. 마음 속에 무거운 짐을 지닌 채 형네 부부와의 내키지 않는 저녁 식사 자리에 참석한 파울과 그의 아내. 겉으로 보기에는 더없이 완벽하고 평온해 보이지만 참석한 이들은 저마다 마음 속에 폭탄을 안고 있다. 가벼운 에피타이저로 시작된 식사가 무르익는 가운데 드디어 폭탄을 꺼내놓는 두 부부. 마침내 밝혀지는 진실을 앞에 둔 부모들의 선택 앞에서 독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다. 차라리 현실이라면 마음껏 비난이라도 퍼붓겠건만 소설을 두고 화를 내기도 뭐하니 말이다.

 

작가는 인물의 심리상태와 행동, 과거에 있었던 작은 일들을 통해 이들의 속마음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내린 너무도 비정상적인 선택과 결론이 의아하다기 보다 납득이 되었던 것은 바로 작가가 보여준 과거의 일들 덕분이었다. 예를들어 파울의 아빠는 완벽한 도덕의식과 철저한 준법정신의 소유자 처럼 보이지만 이미 이전에도 아들의 일에는 상식을 벗어나는 행동을 한 적이 있다. 아들 미헬의 상점의 유리창을 깨자 미헬을 데리고 상점으로 가지만 상점주인이 미헬을 나무라고 훈계를 늘어놓자 격분해서 상점 주인을 때려 눕힌 것이다. 적반하장을 넘어선 아빠의 행동에 미헬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리고 그런 아빠의 행동을 보면서 자라온 미헬의 가치관이 어떻게 자리잡았을지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아들의 휴대폰을 몰래 보는게 잘못된 행동이란 걸 아는 사람이 아들이 상점의 유리창을 깬 게 잘못이란 건 모르는 모양이다.

다시 저녁식사자리로 돌아가 두 부부를 살펴보면 아까의 품위있 인물들은 온데간데 없고 하는 모양새가 가관도 아니다. 한술 더떠 파울의 아내는 이미 사건이 발생한 바로 그 직후 자신의 아들이 한 끔찍한 짓을 알았단다. 미헬이 직접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하자 아들의 잘못에 좌절하고 이를 꾸짖기는 커녕 아들이 벌인 일을 합리화로 일관하고 편들기 바쁘다. 미헬이 그 노숙자를 죽인게 노숙자 주제에 현금 인출기를 차지하고 그 안에서 자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놀라운 사고방식에 입이 떡 벌어졌다. 아무리 인간이란 동물이 자기 좋을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이기적인 족속이라지만 이쯤되면 정신과 치료가 의심되는 발상 아닌가. 왜 하필 그 안에서 자고 있어 자기 아들이 노는데 필요한 돈을 찾는데 방해가 되냐 이 말이다. 그러므로 잘못은 현금인출기 안에서 자고 있던 노숙자에게 있고 미헬로서는 어쩔 수 없이 한 행동이었으며 고로 고작 15살 밖에 되지 않은 자기 아들 인생을 한낱 노숙자가 망치는 걸 두고 볼 수는 없다는 게 미헬 엄마의 입장이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아직 정상적으로 생각이란 걸 하는 사람도 있긴하다. 미헬의 범행에 동참했던 또다른 소년의 아버지이자 파울의 형인 동시에 유력한 차기 시장후보인 세르게가 바로 그 정상인이다. 파울은 식사 내내 자신의 자격지심을 드러내는 듯 형을 못마땅해 하고 그의 단점을 부각시키려 노력하지만 영화를 쭉쭉빵빵한 여배우를 감상하기 위해 보고 비싼 식사를 고집하며 사람들에게 가식적인 미소나 날리는 그 형이 적어도 도덕적인 면에서는 훨씬 정상의 범주에 속하는 인물임을 인정해야 한다. 당선이 거의 확실시 된 시장 자리를 포기하고 아들이 자신이 저지른 범행을 뉘으칠 수 있도록 밝히겠다는 어려운 결정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세르게의 이같은 결정은 자식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에 눈 감고, 귀 닫고, 정신줄까지 놓아버린 두 엄마와 한 아빠에 의해 좌절된다. 누굴 원망하겠는가. 남편의 결정을 응원하지는 못할 망정 겁장이라 힐난하며 동생 내외에게 말려달라 매달리는 여자를 부인으로 둔 것도 그의 선택이라면 선택인 것을. 누가 그 자식에 그 부모 아니랄까봐 말도 안되는 일을 벌인 아이들의 부모답게 말도 안되는 결과로 이어진 저녁식사 자리는 그렇게 마무리 된다. 그나마 세르게의 아들은 죄책감에 시달리기라도 하지, 파울의 아들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조차 모르니 시간이 지나 어떤 식으로 살아갈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근래 읽은 책 중에서 가장 개운하지 않고 뒤끝이 오래남는 책이었다. 몇년 전 국민을 경악케 했던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의 피해 여학생이 전학간 학교를 찾아가 자기 아들의 합의서를 써내라며 난리를 친 가해 학생들의 부모들이 떠올랐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며 넘길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니 이런 책도 나온 거겠지 싶어 씁쓸하다 못해 기분이 불쾌해졌다.

혹시 주변에 자기 자식만 최고로 알고 잘못을 해도 꾸짖을 줄 모르는 막장 부모가 있다면 조용히 이 책을 선물해 보는 건 어떨까? (하긴 그런 사람들이라면 남에게 비추어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것도 못할테니 소용 없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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