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
릴리 블레이크 지음, 정윤희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어릴 적 읽었던 동화를 어른이 된 후 다시 읽게되면 어린이의 눈에는 보이지 않던 불편한 진실들이 눈에 띄기 마련이다. 백설공주 역시 마찬가지다. 요즘으로 치면 소위 말하는 막장 드라마에 속하는 요소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막장 동화다. 단지 자신보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의붓 딸을 죽이려는 비정상적인 새어머니와 어렵게 부지한 목숨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심성도 없이 얹혀사는 주제에 난장이의 말은 무시한 채 물건에 혹해 모르는 사람에게 계속 문을 열어주는 어이없는 공주까지, 하나하나 파헤쳐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 허술한 스토리 전개와 비호감캐릭터가 난무한 이야기다.

어린 마음에도 백설공주의 행동이 참 마음에 들지 않았었는데 어른이 되고보니 더더욱 마음에 안드는 것 투성이다. 모름지기 이야기라면 캐릭터가 매력적이어야 하는데 주인공 백설공주는 내가 읽었던 동화 속 주인공들 중에서도 최악이었다.  

아름답게 포장한 동화를 해서 굳이 따져서 무엇하겠냐만은 몸도 마음도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 동화는 동화일뿐이라고 넘기기엔 영 찜찜한 부분이 많다. 어른의 눈으로 본 백설공주는 이렇듯 계모에 의한 핍박과 존속살인이란 다소 잔인한 막장동화였다.

 

그런데 이 막장스런 이야기도 깎고 다듬고 살을 입히니 제법 볼만한 이야기로 재탄생했다. 스노우 앤 더 헌츠맨. 길고 장황해 보이는 제목이지만 우리말로 바꾸면 백설공주와 사냥꾼이란 단순하기 그지없는 제목이다. 얼마전 개봉한 동명의 영화의 원작소설이기도 한 이 책이 마음에 든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제목 때문이었다. 백설공주와 이웃나라 왕자도 아니고 백설공주와 난장이도 아닌 백설공주와 사냥꾼이라니! 참으로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작가가 비호감 백설공주 이야기를 매력적인 이야기로 재탄생 시키기 위한 구원투수로 사냥꾼을 지목한 것은 당연한 선택이란 생각이 든다. 나 역시 동화 백설공주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현실적이라고 생각든 캐릭터가 바로 사냥꾼이었기 때문에 여왕의 명을 무시하고 백설공주의 심장 대신 짐승의 심장을 가져다 바친 사냥꾼이 궁금하고 걱정됐다. 물론 동화에서는 백설공주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안 여왕이 분노해 직접 백설공주를 죽이러 가지만 사냥꾼을 잡아다 처형하는 것까지 자세히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왕이 자신의 명을 어긴것도 모잘라 짐승의 심장으로 자신을 농락한 사냥꾼을 그냥 살아뒀을리 만무하다. 이 매력적인 캐릭터가 조연도 아니고 단역에 불과하다니 아쉬울 따름이었는데 이렇듯 동화 속에서 별 비중없이 사라진 백설공주의 은인 사냥꾼을 주요인물로 부각시키고 이야기를 끌어가게 만들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별 두개를 투척하고 싶다.

 

나머지 별 두개는 백설공주를 수동적이고 어리석은 비호감에서 매력적인 여전사로 업그레이드한 작가의 노고에 바친다. 그렇게 낯선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건만 예쁜 물건만 보면 정신을 못차리고 난장이들의 당부는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는 백설공주는 주인공이라고 봐주기엔 답답하고 열불나는 민폐캐릭터에 불과했다. 그런 백설공주가 '우리 백설공주가 달라졌어요' 에 나갔다 온 것도 아닌데 확 바뀌었다. 능동적이고 용기있는 여전사캐릭터로! 이제 백설공주는 자신의 목숨은 스스로 지킬줄 알고 예쁜 머리빗에 혹하지 않는다. 홀로 살아남아 고난에 빠진 백성을 모른척 하지도 않는다. 잔혹한 여왕으로부터 나라를 되찾고 백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싸움을 이어가는 백설공주는 이제 더이상 공주의 신분으로 민폐나 끼치는 비호감이 아니다. 비록 어린시절 친구의 모습으로 위장한 여왕을 알아보지 못하고 사과를 받아먹긴 했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인간적이고 용기있는 공주였다. 이 또한 백설공주를 비호감으로 전락시키지 않으려는 작가의 계산이었을 것이다. 여왕이 위장한 모습이 낯선 사람이 아니라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친구였기에 백설공주가 사과를 받아들 수 밖에 없었고 독자 역시 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여왕의 극악무도한 행동에도 어느정도 정당성을 부여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동화속에서는 왕이 죽은 후 여왕이 본색을 드러내지만 이 책 속에서는 집시를 모조리 죽인 왕에 의해 어머니를 잃은 소녀가 복수를 마음먹고 왕궁에 들어간다. 더없이 아름답고 자애로운 여인의 모습을 훌륭히 연기해 낸 덕분에 왕의 마음을 빼앗고 결혼에 성공한 집시소녀가 첫날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왕을 죽이고 여왕의 자리에 오른다. 물론 여왕이 된 후 자신의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젊고 아름다운 소녀들을 잡아다 기를 빼앗고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죽인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지만 엄마의 죽음에 대한 복수라는 배신의 이유를 부여했다는 것이 동화의 부족함을 더욱 채워주었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흥미로운 스토리 전개로 이야기가 주는 즐거움을 마음껏 느낄 수 있었던 이 소설은 동화의 어설픔을 잊게 할 만큼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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