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드 레드 로드
모이라 영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그는 나의 빛이다. 나는 그의 그림자고.  

루는 태양처럼 빛난다. 그래서 그들이 그를 찾아내는 게 그렇게 쉬웠을 것이다. 그냥 그의 빛만 따라서 오면 되니까. 

 

 

 

쌍둥이 남매 루와 사바. 둘은 쌍둥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른 점이 많다. 오빠인 루는 태양처럼 눈부신 밝은 금발에 파란 눈을 가졌고 언제나 주변을 따스하게 만드는 온화함을 지녔다. 그에 반해 두 시간 늦게 태어난 여동생 사바는 흑발에 갈색 눈동자를 지닌 차가운 소녀다.

엄마는 막내인 에미를 낳다 목숨을 잃었고 엄마를 많이 사랑했던 아빠는 그 후로 삶의 의욕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사바는 동생을 사랑할 수가 없었다. 에미만 태어나지 않았으면 엄마는 살아계셨을거고, 예전처럼 행복할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자꾸만 떠올라 에미가 미웠다. 사바가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쌍둥이 오빠 루 뿐이었다. 그런데 루와 사바가 열여덟이 되던 해, 정체모를 남자들이 나타나 아빠를 죽이고 루를 데려간다. 

사바는 끌려가는 오빠를 향해 울부짖는다. 내가 꼭 찾으러 가겠다고.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P 39. "내 시간도 거의 끝난 것 같구나." "안 돼요, 아빠!"

"잘 들으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나도 모른다. 난 그저 어렴풋한 그림자만 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들에겐 네가 필요할 거야, 사바. 루와 에미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있단다.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거야. 두려움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강해지렴.

네가 강하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절대 포기하지 마라. 내 말 알겠니?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돼.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간에."

나는 아빠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포기하지 않을게요.절대로 그만두지 않겠어요,아빠."

   

사바는 어린 에미를 엄마의 친구였던 머시아줌마에게 맡긴 후 루를 찾아나서지만 에미는 자신 역시 루의 동생이니 함께 오빠를 찾으러 갈 자격이 있다고 소리친다. 에미는 몰래 사바를 따라가고 이를 알게 된 사바는 화를 내지만 결국 에미와 함께 루가 끌려간 흔적을 쫓는다. 그러던 중 뜻밖의 위험에 처한 사바는 소년소녀에게 목숨을 건 싸움을 시켜 세 번 이상 패한 사람을 공개처형에 처하는 철창 격투기에 참여하게 된다. 반드시 살아나가 오빠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하나로 무자비하고 처절한 격투게임을 이겨나가는 사바를 사람들은 죽음의 천사라고 부른다.  

 

P 162. 난 살 거야. 살아서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낼 거고, 우린 루를 찾으러 갈 거야. 그에게 찾겠다고 약속했고 난... 에미....에미.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지? 내기 어떻게 해야 될까?".... (중략)......나는 고통으로 몸을 웅크렸다. 천에 대고 힘껏 울부짖었다. 온몸이 떨렸다. 나는 빰에 나비 모양이 있던 소녀를 위해 울었다. 에미를 위해서 울었다. 아빠를 위해서. 루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예전의 우리 모습을 위해서. 우리가 빼앗긴 것들을 위해서. 우리가 영원히 잃어버린 것들을 위해서.

P 161. 소녀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끝이다. 종말. 그 애의 종말. 나의 시작.

그들은 나에게 그 애의 이름을 말해 주지 않았다. 그 애의 얼굴에는 작은 분홍색 모반이 있었다. 나비 모양 같았다.

철창 운영자가 말한 것처럼, 좋은 투사가 공개 처형으로 사라지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중 한 사람은 사라져야만 한다. 그리고 절대로 그게 내가 되진 않을 것이다.

 철창에 갇힌 채 계속되는 싸움에 지쳐가던 어느날 한 소녀가 말을 걸고, 사바는 그제서야 오빠가 끌려간 이유를 알게 된다.

 

P 176. "말 하고 싶지 않아." 그 애가 중얼 거렸다.

"말해야 돼. 제발, 헬렌. 계속 말해 줘."

"아빠는 ...하짓날 죽일 소년을 찾았다고 말했어. 왕의 목숨을 연장시키기 위해 죽일 소년을."

뱃 속이 뒤틀렸다. 숨이 가빠졌다.

"난....난 이해가 안돼.... 왕의 목숨을 연장시키기 위해 죽인다니.....그게 무슨 뜻이야?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중략)........

"정확히 6년마다 하짓날 밤이 되면 그들은 소년을 제물로 바쳐. 그 소년을 죽이는 거야. 그리고 그냥 아무나여서는 안돼.

반드시 열여덟 살이어야 하고, 동짓날 태어났어야 하지."

왕은 찰을 재배해 사람들에게 퍼트리고 이에 중독된 사람들은 판단력을 잃은 채 점점 공격적으로 변해간 것이다. 이로인해 왕은 오랜세월을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고,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동짓날에 태어난 아기를 찾아 열여덟살이 될 때까지 감시한 후 납치해 제물로 삼아왔다. 루가 미치광이 왕에 의해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했음을 알게 된 사바는 자신과 싸워야하는 또다른 소녀와 탈출을 계획한다.

 

   

P 442.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아주 천천히 흘러간다. 그 애의 눈꺼풀이 깜박이는 것까지 보일 정도로 아주 느리게. 숨을 들이쉬는 그 애의 입술 움직임까지 보일 정도로. 그 애가 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한다. 양팔을 넓게 벌리고 고개를 위로 들어 올린다. 그리고 뛰어오른다. 눈물이 시야를 가렸다. 나는 그것을 닦아내고 활을 들어올렸다. 조준을 한다.

에포나가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 애가 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양팔을 넓게 벌리고 고개를 위로 들어 올린다.

그애가 지붕에서 뛰어오른다. 몸이 허공으로 치솟는다. 그 마지막 찰나 그 애는 자유로웠다. 그리고 그 순간에, 나는 화살을 날렸다.

 스스로를 루의 그림자라고 여기던 사바는 오빠 루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여행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해나간다. 자신을 도우려는 친구들의 마음이 부담스러워 도망치려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그들의 진심을 깨닫게 된다. 사바는 오빠를 구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용기를 낸다. 

 

단순히 판타지 소설이라고 보기엔 가족애와 우정등 많은 요소가 성장소설과도 닮아있었다. 엄마의 죽음을 동생의 탓으로 돌리던 철없던 소녀, 자신을 보잘 것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던 소녀가 동생을 지키고 오빠를 찾기 위해 목숨을 거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인물의 감정 변화와 그 과정을 섬세하게 풀어낸 것은 물론이고 영화를 보는 듯한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이미 영화화 작업에 들어갔다고 하니 스크린을 통해 사바의 성장을 지켜볼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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