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무대를 만들다 - 뮤지컬 신화 박명성, 열정과 도전의 공연기획 노트
박명성 지음 / 북하우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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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뮤지컬에 푹 빠져살던 때가 있었다. 원하던 대학에 합격하지 못해 마음에 없는 학교 생활을 하던 중 재수를 결심하고 다니던 대학에 자퇴서를 냈는데 막상 일을 저지르고 보니 덜컥 겁이 났다.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멋대로 내린 결정이라 혹시 이번에도 실패하면 어쩌나 싶어 막막하기만 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내가 속해 있는 곳이 학교도 회사도 아닌 입시학원이란 사실이 나를 더욱 불안하게 했던 것 같다. 내키지 않는 학교였지만 대학생활을 하는 동안은 소속감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생각은 미쳐 하지 못했었다. 내가 속해있는 곳이 아무데도 없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더 크게 와닿았고 그렇게 불안함에 집과 학원을 오가는 하루하루를 보내다 어느날 뮤지컬 한 편을 보게 됐다. 그날 이후 의욕상실과 무력감에 시간만 죽이던 나날을 보내던 내게 뮤지컬은 신선한 자극이고 일상의 즐거움이 되었다. 

그렇게 뮤지컬과 사랑에 빠진 나는 재수생 주제에 부모님께 뮤지컬 보겠다고 돈을 달란 소리를 차마 할 수가 없어서 옷도 사입지 않고 되도록 끼니도 집에서 해결하며 용돈을 모아 보고 싶은 뮤지컬을 보는 것을 재수생활의 낙으로 삼았던 기억이 난다. 재수를 하면서 딴데 정신 팔 시간이 어디있냐고 할지 모르지만 가끔 그렇게 스트레스를 풀어준 덕분인지 다행히 원하던 대학에 합격 했고, 대학 입학 후 나의 뮤지컬 사랑은 더더욱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은 고스란히 뮤지컬 티켓 구매에 들어갔고 나중에는 뮤지컬극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뮤지컬도 실컷 보고 돈도 버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리기도 했다.

뮤지컬 음반을 사모으고 뮤지컬 관련 서적은 모조리 찾아 읽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책 이외에 무언가에 그렇게 열정을 쏟아본 일이 없는 듯 하다. 그렇게 보고 또 봐도 질리기는 커녕 늘 새롭고 설레던 뮤지컬. 언젠가는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의 모든 뮤지컬을 보고 말겠다는 꿈에 부풀었던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혐실과 타협하며 뮤지컬과 멀어져버렸다. 그러나 지금도 새로운 작품 소식이나 뮤지컬 관련 서적을 보면 기분좋은 두근거림을 느낀다.

 

이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무대를 만드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뮤지컬 무대를 보면서 나는 늘 그런 궁금증과 부러움에 사로잡혔다.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하고 연기하는 무대 위 배우들도 물론 멋지지만 이 멋진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뛰어다니는 사람들의 삶이 더 궁금했다. 그 중 한사람이 바로 이 책의 저자 박명성대표다.

뮤지컬매니아들이라면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신시의 대표이자 뮤지컬 성공신화의 주역인 박명성 대표. 나 역시 그가 올린 수많은 무대의 관객이다. 국민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는 맘마미아 같은 경우 캐스팅이 바뀔 때마다 극장을 찾았고, 아이다는 초연 이후 재공연도 빼놓지 않았다. 다만 이 책에서 소개한 엄마를 부탁해는 원작 소설을 무대에 올렸을 때의 우려와 실망감이 걱정돼 아직 보지 못했다. 이미 오래전에 회곡 산불을 뮤지컬로 옮긴 댄싱섀도우에 한차례 실망을 했기 때문에 우려가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으로 희곡원작을 소극장도 아닌 대형뮤지컬로 재탄생시킨 댄싱 섀도우는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개인적으로 그리 만족스럽지가 않았었다. 그래서인지 엄마를 부탁해만큼은 그런 실망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말로 다 할수 없이 좋아하는 소설이 혹여나 무대에서 다른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본 후 그런 우려는 접어두고 꼭 무대 위에서 그려질 엄마의 이야기를 만나러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프로듀서가 어떤 마음으로 이 작품을 무대에 올렸고 어떤 사람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작품을 만들었는지 알게 되자 내 우려와 걱정이 너무도 섣부른 판단이었음을 깨달았다. 한마디로 괜한 걱정을 한 것 같다. 신경숙 작가가 이 작품을 연극과 뮤지컬로 제작하고 싶다는 요청을 수락한 것은 소설이 주는 감동을 저해할지 모른다는 우려보다는 무대가 주는 또다른 형태의 감동을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엄마를 부탁해를 아끼고 사랑하는 독자들이 이번에는 관객의 입장이 되어 다시금 감동을 느낄 기회를 얻었으니 이것만으로도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신경숙 작가가 제작이 진행되는 동안 일절 작가의 권위를 내세우지도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지도 않았다는 것 역시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역시라는 말과 감탄이 절로 나왔다. 원작에 없던 장면이 들어간 것을 보고 화를 내거나 따지는 것이 아니라 며칠동안 주변사람들의 감상을 듣고 생각을 정리한 후 연출가의 의견을 존중한 결론을 내린 것 또한 신경숙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 일화였다. 글을 통해 느껴지던 신중함과 배려가 사람에게서 묻어나온 것이었나보다 싶어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이 책은 박명성 대표가 수많은 뮤지컬과 연극을 무대에 올리면서 겪었던 일들과 하나의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제작과정을 비롯해 그가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연기를 못해서 연출을 시켰더니 그것도 젬병이란 소리를 들었던 그가 이제는 한국 공연계를 이끌어가는 뮤지컬의 신화로 자리잡기까지의 이야기가 감탄을 넘어 감동을 자아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 일상에 지쳐 묻어뒀던 무언가가 가슴에서 끌어오름을 느꼈다. 무언가에 미쳤던 대학시절의 나를 잊고 그저 현실에 안주해 살아왔던 나를 돌아보게 만든 책... 책과 글, 드라마에 대한 잃어버린 열정을 찾게 해준 이 한권의 책이 고맙고 또 고맙다.

 

 

인상깊은 구절

그들 각자의 꿈을 모아 하나의 거대한 꿈을 완성해내는 사람이 바로 프로듀서다. 그러니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는 프로듀서의 일을 제대로 해낼 수가 없다. 그들 각자의 꿈을 지지해주고,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고, 흐트러진 마음을 곧추 세워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꿈도 알지 못한다. 사람을 사랑할 줄 알아야 위로를 해줄 수 있다.
관객을 사랑할 줄 알아야 그들을 감동시킬 꿈을 꿀 수 있다. 그래서 기획은 사람에 대한 사랑이자 사람과의 소통이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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